광끼 -45
동그란 눈망울.
그리고 앵두 같은 입술.
포메라니안을 연상시키는 그 여자... 아이는 무척 귀여웠다. 주머니 속에 쏘옥 넣어서 다니고 싶을 정도였다. 잠시 멍하게 보던 성우는 재차 물었다.
“누구세요?”
“아.. 안녕하세요! 유하나라고 합니다.”
“유하나?”
성우는 잠시 기억을 더듬었다.
바이올렛에서 그런 이름을 들은 적이 전혀 없었다. 물론 그가 모든 직원을 다 아는 것은 아니었다. 그래도 중요한 아티스트의 이름 정도는 알았다. 그때 그 아이의 등 뒤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야. 2호실에 가 있으라니까.”
“오빠 여기 아니었어?”
“2.호.실! 왜 엉뚱한 곳에 가 있어?”
유하나 등 뒤로 다가오는 남자.
성우는 그녀가 누군가 묘하게 닮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싱어송라이터 유일한.
성우와 일한은 지난 연말 바이올렛에서 연말에 개최한 파티에서 처음 만났다. 그 자리는 소속 아티스트들이 친목을 다지는 자리였다. 둘 다 새내기였고 동갑이었기에 쉽게 친해질 수 있었다.
“어! 성우잖아? 네가 왜 여기에 있어.”
“뭐 그럴 일이 있어. 그런데 둘이... 가족 맞지?”
“이쪽은 우리 집 고딩2 유하나. 용케 알아보는 거 보니 우리가 좀 닮았나? 하하.”
하나는 수줍게 일한의 뒤에 숨었다.
그리고는 조용히 그의 등에 대고 말했다. 마치 입술은 안 움직이고 복화술로 말하는 것 같았다.
“1호실이라며.”
“내가 언제 ‘일’이라고 했어. ‘이’라고 했지.”
“발음 똑바로 안 해?”
으르렁거리는 목소리.
현실 남매의 전형적인 모습이었다.
하지만 은근히 성우는 둘의 모습이 부러웠다.
외동아들로 자란 그이기에 더 그럴 수도 있었다. 티격태격해도 누군가 옆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힘이 되는 경우가 있었다. 더구나 저렇게 귀여운 여동생이라면 더할 나위 없었다.
“그런데 얘가 어떻게 이걸 열었어?”
“몰라! 그냥 열렸어. 그런데 안에 저 아저... 아니 저분이 안에 계셨단 말이야.”
“성우야 문 안 잠갔어?”
성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문을 꼭 잠궈야 하는 건지도 몰랐다.
이곳에는 겨우 두 번째 온 것이었다. 전에 왔을 때 보컬 트레이너가 있었기에 신경도 안 썼던 문제였다.
“문을 꼭 잠가야 해?”
“방해받기 싫으면 그래야지. 연습하는데 누가 벌컥 열고 들어오면 집중이 깨지잖아.”
“그렇구나. 나는 그것도 몰랐네.”
“그래도 연습 방해한 거는 우리니까. 유하나 너 사과 안 하고 뭐해?”
“죄송합니다아~”
하나는 앞으로 나와 허리를 숙였다.
두 손을 배에 올리고 정중하게 배꼽 인사를 하는 모습이 너무 귀여웠다. 성우는 괜찮다며 손을 저었다.
“이 녀석이 회사 구경하고 싶다고 해서 왔는데 너를 볼 줄은 몰랐다.”
“학교는?”
“오늘 개교기념일이랍니다.”
하나는 대답과 함께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오랜만에 오라버니와 보내는 시간이었다. 나이 차이가 꽤 나는 둘이지만, 제법 친하게 지냈었다. 그런데 지난겨울 일한이 첫 앨범을 낸 이후 좀처럼 얼굴조차 보기 힘들었다. 아이돌만큼의 큰 인기를 끌었던 것은 아니지만, 오디션 프로그램에 나가서 우승한 경력 덕분인지 일한의 팬층은 제법 두꺼웠다.
하지만 방해꾼이 생겼다.
성우를 바라보는 하나의 눈빛은 제법 매서웠다.
둘은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서로의 안부를 묻느라 바빴다. 그러다 일한은 성우가 쥐고 있는 기타에 눈길이 갔다.
“기타 칠 수 있어?”
“배우는 중이라 아주 조금.”
“얼마나 배웠는데?”
성우는 잠시 망설였다.
30분도 안 되었다고 말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자신이 방금 쳤던 것을 생각하면 아무도 믿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결국, 그가 선택할 수 있는 거라고는 대충 둘러대는 것밖에 없었다.
“고등학교 때부터 조금씩 그리고 군대에 있을 때 선임한테 많이 배웠지.”
“역시 군필은 다르구나. 에혀~ 나는 언제 다녀오냐.”
“빨리 갈수록 좋지.”
“한번 들어볼 수 있을까?”
일한의 말에 성우는 손사래 쳤다.
진짜 뮤지션 앞에서 연주라니 아직 엄두가 나지 않았다. 번데기 앞에서 주름잡는 꼴이었다. 그런 그의 반응에 하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녀가 듣기에 오빠만큼은 아니어도 충분히 멋진 연주였다.
하지만 일한은 포기하지 않았다.
그 역시 2층에 내려오다가 그 연주를 얼핏 들었다. 하나가 문을 열고 잠시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던 탓이었다. 작은 실랑이 끝에 성우는 결국 다시 기타를 고쳐 매야 했다.
“흉보지는 마.”
그렇게 말하며 사르르 손을 움직였다.
그의 손으로 만들어지는 그 음률은 아까와 또 다른 것이었다. 마치 봄날의 살랑이는 바람처럼 간질거리는 느낌이었다. 그때 한동안 멍하니 듣고 있던 일한이 움직였다. 그는 피아노 앞으로 다가가 능숙하게 피아노의 덮개를 열었다.
성우는 그런 그를 잠시 바라봤다.
일한은 신경 쓰지 말고 계속하라며 재촉했다.
그리고는 곧 손가락을 움직여 그의 연주를 따라왔다. 하나의 리듬으로 수많은 변주하는 그것은 재즈의 즉흥연주와 비슷했다. 연주하면 할수록 성우는 신났다. 음악가들의 세계를 엿보는 것 같았다.
따라란 딴~착!
성우는 퍼커시브 주법으로 바꿨다.
단 한 번도 그런 방식의 주법을 배운 적은 없었다. 그저 몸이 저절로 움직이고 있었다. 그러자 일한 역시 그 분위기에 맞춰 능숙하게 스타일을 바꿨다. 딱히 말하지 않아도 서로 통하는 기분이었다.
한껏 분위기가 달아오를 무렵.
일한은 자신의 여동생인 하나를 향해 소리쳤다.
“하나도 드루와~ 드루와~”
“나?”
“노래는 네가 나보다 잘 하잖아.”
“이게 무슨 곡인데?”
둘은 동시에 성우를 바라봤다.
하지만 그 역시 제목을 알 리가 없었다.
그저 나는 모르겠다며 딴청을 피울 뿐이었다. 그때 하나가 고개를 끄덕이며 서서히 리듬을 타더니 입술을 뗐다.
“흠~ 흐으으흠.”
소녀의 허밍.
그 소리는 정말 청량했다.
마치 레몬즙이 연습실에 퍼지는 느낌이었다.
확실히 하나보다 둘이 더 신났고 셋이 되니 흥이 폭발했다. 나중에는 모래가 든 볼링핀처럼 생긴 알록달록한 막대기(마라카스)까지 등장했다. 하나가 어디서 찾아냈는지 들고 나타난 것이었다.
차차차착! 차착!
하나는 그것을 흔들며 몸도 좌우로 흔들었다. 그런데 그게 어색하거나 그렇지는 않았다. 적절한 수준으로 마라카스를 흔드니 더 신이 났다. 확실히 저 둘한테는 뭔가 음악인의 피가 진하게 흐르는 것 같았다.
“아하하 그거는 또 어디서 찾았어?”
“나 혼자 아무것도 연주 안 하니 뻘쭘하잖아. 저기 박스 안에 있던데.”
“오케이 다시 가보자~”
일한은 누구보다 신났다.
지금껏 바이올렛에 이런 적은 없었다.
이처럼 재미있는 것이 바로 음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 음반을 작업하며 프로듀서에게 치를 떨었던 순간들은 이미 지워졌다. 역시 자신에게 가장 잘 맞는 것은 음악이라며 더 빨리 그리고 더 신나게 건반을 두드렸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한참 신나게 놀던 그들은 녹다운이 되었다.
온몸의 진이 쏙 빠진 기분이었다. 하지만 정작 성우는 아직 체력이 남아돌았다. 매일 검술을 수련하던 그였기에 체력에서 차이가 날 수밖에 없었다.
“너 기타 정말 잘 친다. 그 아까운 실력 썩히지 말고 차라리 이번 기회에 가요계로 전향해.”
“그럴 생각은 없다.”
“아~ 아쉽다. 같이 작업하면 재미있을 거 같은데. 너도 그렇지 않아?”
“그건 인정!”
음악이 주는 즐거움.
그것을 알아버린 성우였다.
그런 그들을 바라보며 하나가 한 손을 번쩍 들었다. 성우와 일한은 동시에 고개를 돌렸다.
“오빠들.”
“오빠...들? 언제부터 호칭이 그렇게 바뀌었냐?”
“둘이 동갑이라며 그럼 오빠 맞지. 그럼 아저씨라고 불러?”
“뭐 그건 그렇고 왜?”
일한이 묻자 하나는 가방에서 핸드폰을 꺼냈다. 그 나이의 아이들처럼 이름 모를 노란 캐릭터 커버를 씌워 놓은 상태였다.
“매니저 아저씨가 이런 거는 찍으라고 했어.”
“그럼 아까 찍던지. 다 끝난 다음에 뭐야.”
“나도 까먹었지.”
“그리고 성우는 오빠인데 호혁이 형은 왜 아저씨냐?”
“10년 넘게 차이 나면 아저씨지 뭐야. 숙녀 맘이니 따지지 좀 말아줄래?”
그렇게 말하며 하나는 둘을 바라봤다..
어떻게 할 거냐며 묻는 의미였다. 그것을 본 일한은 성우를 바라봤다. 자신 혼자 결정할 것은 아니었다. 그 의미를 알아차린 성우는 별거 아닌 듯 말했다.
“뭐 우리 매니저도 그런 이야기를 하더라.”
그건 사실이었다.
지난 위례검 영상 때 천여 명을 돌파했던 팬 카페는 오히려 점차 줄어들고 있었다. 성우가 촬영 외에는 별다른 활동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팬들에게 뭔가 끊임없이 보여줘야 하는데 그게 거의 없었다.
“좋아! 이번에는 성우 너도 노래 한번 해 봐.”
“나? 그냥 기타만 치면 안 돼?”
“그러면 내 위주로 편집될 텐데. 이왕에 할 거면 제대로 해야지.”
“알겠어. 일단 해보고 정 안 되면 자르면 되겠지.”
아직 노래 실력은 확인하지 못했다.
아까의 허밍만으로 정확한 판단을 하기 어려웠다. 그래도 전에 비교하면 꽤 괜찮아진 것 같았다. 확실히 목소리를 내는 것은 조금 쉬워진 기분이었다.
따라란~ 따란!
일한의 손가락이 건반을 튕겼다.
한 마디가 지나고 난 이후에 성우는 그 레이스에 동참했다. 이미 한 번 맞춰봤다고 제법 손발이 잘 맞았다. 둘은 조금 전까지 힘들다고 하던 이들이 맞나 싶을 정도로 금방 달아올랐다.
성우는 고개를 들었다.
그러자 의자에 앉아 핸드폰을 들고 있는 하나가 보였다. 그것을 의식하자 손가락이 살짝 꼬였다. 하지만 그 흠마저 일한은 받아냈다. 마치 미리 맞춰놓았던 것처럼 느껴졌다.
“우~ 우우~ Lonely Night~ Someday···”
일한의 노래는 감미로웠다.
마치 미리 수차례 연습을 하며 준비한 것 같은 느낌이었다. 확실히 저 녀석도 일반적인 녀석은 아니었다. 적어도 천재의 범주에 속하는 것 같았다. 물론 그랬기에 몇만 명이 참가한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우승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의 노래가 끝나는 순간.
일한이 성우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어서 들어오라는 신호였다. 하지만 그것이 생각보다 쉬운 일은 아니었다. 세차게 돌리는 줄 안으로 뛰어드는 기분이었다. 잠시 삐끗하면 그 줄에 턱하고 걸릴 것 같았다.
하나.둘..셋...
박자에 맞춰 성우는 입술을 뗐다.
그가 몇 개 알지 못하는 재즈곡 가운데 하나를 고를 수밖에 없었다. 일한처럼 즉흥적으로 가사를 붙이려니 쉬운 일은 아니었다. 도저히 노래를 부르며 다음 가사가 떠오르지 않을 것 같았다.
“Fly me to the~ moon~~ And let me···”
성우는 담담하게 노래했다.
영문학과인 그에게 이 정도 가사는 쉬운 편이었다.
솔직히 발음도 구린 편은 아니라 자부했다. 그래서일까 그의 노래는 부드럽게 이어졌다. 그 순간 본인은 알아차리지 못했지만, 그를 바라보는 유일한과 유하나 남매는 제법 놀란 눈치였다.
아주 뛰어나다 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어디서 노래를 못한다고 이야기를 들을 수준은 아니었다.
따라라란~ 탁!
마침내 연주를 마친 이후.
하나가 촬영을 마치자 일한은 피아노 의자에서 내려와 바닥에 풀썩 주저앉았다. 손가락을 주물럭거리는 것이 제법 무리한 것으로 보였다. 하긴 피아니스트도 아닌 그가 3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연주를 한다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성우도 그에 못지않았다.
“아야~”
“이럴 줄 알았다. 너무 무리했나 봐.”
“이 오빠 정말 무식하네. 어떻게 피 나는 것도 모르고 연주를 해요?”
붉게 물든 손가락.
코드를 짚었던 성우의 왼손이 피로 살짝 물들어 있었다.
잘 버티다가 연주 막판에 터진 것 같았다.
아무리 검술을 연마했다고 해도 그건 손아귀에 해당하는 이야기였다. 기타는 처음 잡아본 그였다. 굳은살이 없어 당연한 일이었다. 어쨌든 손가락 끝이 찢어져 피가 제법 났다. 일한은 사무실에서 약과 반창고를 가지고 와 치료했다.
“당분간 기타는 치지 마.”
“어쩔 수 없지.”
“그나저나... 배고프지 않아? 나는 뱃가죽이 등에 닿을 거 같은데. 일단 뭐라도 먹고 오자”
“나는 족발! 그리고··· 보쌈!”
하나는 손을 번쩍 들었다.
무언가 말을 할 때 버릇 같아 보였다.
그런 그녀를 보며 둘은 아빠 미소를 지었다. 아무리 봐도 미워할 수 없는 존재였다. 결국, 그들 세 명의 저녁 메뉴는 족발이 되었다.
그날 밤늦은 시각.
성우는 한 통의 메일을 받았다.
유일한의 동생인 하나가 보낸 파일이었다.
메일에는 온갖 이모티콘이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텍스트에서도 그 아이의 발랄함이 묻어 나올 것 같았다. 그중에 가장 많이 보이는 것은 하트였다. 물론 그걸 특별하게 생각하지는 않았다. 철컹철컹이 두려운 성우였다.
[띠링! 메일이 도착했습니다.]
[파일 : 소름 돋는 You Bro(유일한 &. 유성우)의 즉흥 연주 원본.Mov]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