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끼 -38
영상이 공개된 이후.
성우에 대한 관심은 크게 증폭되었다.
물론 처음 보는 성우를 향해 듣보잡 배우라 말하는 이들도 있었지만, 막상 그 영상을 본 이후에는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지 않을 수 없었다.
가장 큰 공신은 따로 있었다.
그것은 여러 매체에서 쏟아지는 기사였다.
물론 기자들이 직접 쓴 것도 있겠지만, 상당수가 왈우의 홍보팀에서 사전에 준비해 놓았던 것들이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여파는 커졌다.
SNS를 통해 영상은 여기저기 퍼져나갔다.
결국, 양대 포털 사이트의 메인에 영상이 걸리며 정점을 찍었다. 조회수는 하늘 높을 줄 모르고 쭉쭉 올라갔다. 원본의 조회수는 24시간 만에 15만을 넘겨 20만을 향하고 있었다.
-쪽파352 : 와 저게 CG가 아니라고?
-나실바 : 나는 영상에 손댔다는 것에 한 표! 저게 가능하다고 보는 거는 아니겠지?
-불통 : 혹시 화교가 아닐까. 소림사에서 왔다고 해도 믿을 거 같다.
-Keqi112 : 이번 영화 엄청 기대된다. 유성우라고 했나? 모처럼 멋진 액션 영화가 나올 것 같아.
-Henry : Wow! It's fantastic.
성우 역시 그것이 싫지 않았다.
일단 연예계에 발을 내딛는 순간부터 어쩔 수 없었다. 연예인은 대중의 인기를 먹고 산다는 것은 충분히 알고 있는 그였다. 비록 의도했던 것은 아니지만, 인지도가 높아지는 것을 싫어할 이유는 없었다. 심지어 오튜브에 올린 원본 영상에는 외국인의 댓글도 심심치 않게 보였다.
그게 전부는 아니었다.
본인은 아직 존재도 모르는 팬카페 ‘페르세우스’
그곳 역시 갑작스러운 가입자 폭주로 인해 기분 좋은 몸살을 앓았다. 50명도 안 되던 그곳은 단숨에 천여 명 이상이 되었다.
하지만 부작용도 있었다.
영상이 등록된 지 1주일이 넘었지만, 아직도 전화는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평소 연락 한 번 안 하던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종종 무척 반가운 이들도 있었지만, 그 비율이 현저히 낮았다. 물론 반가운 이들 가운데는 그 먼 타국에서 어떻게 알았는지 성우의 부모님도 끼어있었다.
반면에 받고 싶지 않은 전화도 있었다.
그 대표적인 것이 바로 지금 전화를 건 이였다.
전화번호는 이미 지웠지만, 그 번호마저 기억에서 잊히진 않았나 보다. 번호를 보는 순간 누군지 바로 알아보았다.
“하아··· 너는 왜?”
[손소연 010-XXXX-XXXX]
가장 피하고 싶은 사람이었다.
한때 성우가 죽도록 사랑하던 여인이었다.
그리고 죽을 만큼 아프게 했던 장본인이기도 했다. 이미 끝난 지 오래되었다고 해도 옛 연인의 전화가 달가울 리는 없었다. 솔직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이제 와 전화해서 뭘 어쩌려는 걸까?
잠시 망설이는 사이.
전화는 자기 혼자 울다가 그쳤다.
한동안 멍하니 액정에 뜬 부재중 전화 표시를 바라봤다. 성우는 이내 핸드폰을 전원을 끄려고 했지만 결국에는 참았다. 언제 또 어떤 연락이 올지 몰랐다. 만약 전화를 꺼놓으면 결국 진수가 고생할 뿐이었다.
그날 밤.
성우는 좀처럼 잠이 오지 않았다.
온갖 생각이 그를 괴롭히며 놔주지 않았다.
옛날에 이랬으면 어땠을까 싶던 후회가 대부분이었다. 군대를 다녀오며 이미 잊었다고 생각했던 그녀와의 추억이 망령처럼 되살아났다. 달콤했던 키스와 한없이 따뜻하던 품속이 그리웠다. 그런 생각이 들자 별안간 두부가 끼어들었다.
-너 요즘 욕구 불만이냐?
‘그따위로 말할래? 노닥거릴 기분 아니다.’
-벌써 새벽이야. 쓸데없는 생각하지 말고 잠이나 자.
‘오늘은 촬영도 없는데 늦잠자지 뭐.’
그렇게 말하며 성우는 눈을 살짝 떴다.
창문 너머에서는 해가 슬며시 고개 내밀 준비를 하고 있었다. 어차피 잠자긴 글러 먹은 것 같았다. 잠시 고민하던 그는 트레이닝복을 찾았다. 이럴 때는 운동을 하는 것이 가장 효과가 좋았다. 어쩌면 지금의 그의 근육은 그런 이유로 만들어졌다고 봐도 무방했다.
귀뚜르르...
귀뚜르르르....
오늘따라 귀뚜라미 우는 소리가 처량했다.
그것을 들으며 성우는 공원으로 향했다.
벌써 해가 부쩍 높아져 아침 이슬이 반짝였다.
한숨도 자지 못해서 피곤할 법도 한데 제법 컨디션이 좋았다. 무예를 연마한 이후부터 체력이 엄청나게 좋아진 것 같았다.
-이왕에 나왔으니 제대로 해.
‘피곤하니까 좀 조용히 해줄래?’
-오늘이 마지막 날이야. 그러니까 제대로 하라고!
평소 들을 수 느낄 수 없었던 진중함.
두부의 낯선 목소리에 성우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가 말한 마지막이 혹시 성불을 의미한 것이 아닐까 걱정되었다. 지금껏 티격태격해도 지금껏 많은 도움을 주던 녀석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그의 큰 오해였다.
-나 말고! 이게 누굴 보내는 거야?
‘그럼 마지막이란 게 무슨 뜻인데?’
-니네 사부 사택천이 성불을 앞두고 있어. 잘하면 오늘 떠날 것 같다.
그 말에 성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그럴 것 같다는 이야기는 종종 들던 그였다. 그가 알려주던 위례검은 모조리 배운 상태였으니 그럴 만도 했다. 이제는 개인적인 수련으로 성장하는 것밖에 없었다고 했다.
성우는 목검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
해솔 못지않게 고마운 이가 사택천이었다.
직접 대화를 해본 경험은 없었지만, 환상 속에서 본 그는 선이 굵고 진중한 사나이 중의 사나이였다.
‘오늘은 최선을 다하자.’
그렇게 마음을 먹은 이후.
성우는 위례검의 처음부터 힘차게 펼쳤다.
동작 하나하나에 신경을 집중하려 했지만, 그 동안 이것을 배우며 있었던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갔다. 불과 3~4개월에 불과했지만, 참 많은 일이 있었던 것 같았다. 그러는 사이에 이미 지난 밤의 고민과 번뇌는 사라진 지 오래였다.
부우웅!
부웅~ 샤사삭!
잡념은 점차 사라져갔다.
몸은 본능적으로 움직였고 힘찼다.
그리고 마침내 마지막 동작을 마치고 멈출 무렵.
그의 시야에는 예전과 같이 환상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제는 몇 번 보았다고 성우는 놀라지도 않고 그 광경을 두 눈에 똑똑히 담았다. 아마 사택천이 자신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는 것 같았다.
-이렇게 직접 이야기하는 것은 처음이구나.
날카로운 장검을 짚고 선 한 남자.
그의 긴 머리카락은 바람에 흩날리고 있었다. 사택천은 자상한 눈으로 성우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는 자신의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것은 무사귀가 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이자 죽기 전에 간절하게 바라던 소망이었다. 성우는 그런 그의 이야기를 하나라도 놓치지 않으려 애썼다. 그는 충분히 그 정도의 대접을 받을 자격이 있었다.
-마지막 부탁이 있다.
‘무엇이든 말씀하세요.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살아생전 가장 후회했던 것이 나의 대에서 전승이 끊긴다는 것이었다. 가능하다면 아니 꼭 위례검의 맥이 끊기지 않도록 해다오.
그 말에 성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이라면 이미 생각해 놓은 바가 있었다.
물론 자신도 노력을 다하겠지만, 홍문석 정도의 영향력이라면 가능할 것 같았다. 그런 그의 생각을 읽었는지 사택천은 희미하게 미소지었다.
-그래 그 정도면 되었다. 전승을 받은 자여... 고맙구나.
그 말을 남기고 사택천은 사라졌다.
그가 사라진 곳에는 예전에 해솔이 떠났을 때와 같은 빛이 가득했다. 그 빛의 너머에 어떤 곳이 있을지 궁금했으나 다가갈 엄두는 나지 않았다.
“감사합니다. 스승님.”
처음으로 뱉은 호칭.
그 말에는 존경과 애틋함이 어우러져 있었다.
마침내 환상이 사라지자 성우는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매번 느끼지만, 심적인 소모가 상당했다. 하지만 무예를 수련해서 그런지 전과 비교하면 그 여파가 미미한 편이었다.
-장군 그 녀석도 천년을 기다리더니 드디어 갔구나.
‘그런데 말이야. 궁금한 게 있어.’
-뭔데?
‘성불하면 너희 무사귀는 어디로 가는 거야?
성우의 물음에 두부는 침음성을 흘렸다.
마치 묻지 말아야 하는 것을 물은 것 같은 느낌이었다. 하지만 두부는 모처럼 대답을 회피하지 않았다. 웃음기 하나 없는 목소리로 답한 것을 듣고 성우는 안색을 굳힐 수밖에 없었다.
-지옥. 그곳이 아니라면 더 지옥 같은 곳.
* * *
그날 이후.
성우는 성불에 대해 생각이 바뀌었다.
전에는 하루라도 빨리 성불하라며 강요하던 그였다. 하지만 이제 차마 그렇게까지 하기는 어려웠다. 악독한 무주귀라면 모를까 어린 시절의 자신을 살려주었던 무사귀였다. 하지만 그런 그의 생각은 두부에 의해 부정당했다.
-쓸데없는 동정이야.
‘그게 무슨 소리야?’
-결국, 언젠가는 다 떠날 존재이니 신경 쓰지 마. 그리고 네가 언젠가 죽게 되면 지옥행 문은 저절로 열릴 거야.
‘어차피 운명은 바뀌지 않는다는 거야?’
두부는 답이 없었다.
성우는 그가 했던 말을 다시 곱씹어 봤다.
하지만 그럴 만한 시간은 별로 없었다. 그 상념을 깨고 진수가 그를 깨웠기 때문이었다.
“성우야~ 이제 일어나라. 도착했다.”
그 말에 성우는 눈을 떴다.
사실 잠들어 있던 것은 아니었지만, 두부와 대화를 나눌 때는 이게 더 편했다. 창문 밖을 보자 이제는 익숙한 스태프들이 보였다.
“아 맞다. 오늘 밥차 온다고 하던데.”
“이번에는 누가 쏘는 거야? 조강철 선배님?”
“아니 네 이름으로 오는 거야.”
“나? 회사에서 보내는 건가?”
성우는 조금 의아했다.
하지만 곧 이어지는 진수의 말을 듣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생각지도 못한 이가 보내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정준 감독님하고 유해준 선배님이?”
“밥차 오면 전화라도 드려. 그리고 이 말은 꼭 전해달라고 하더라.”
“뭔데?”
“다음 영화는 무조건 자기랑 하자고 강조하시던데.”
그 말에 성우는 웃음꽃이 피었다.
아직 그가 경험한 촬영 현장은 두 곳이 전부였다. 그 가운데 정준 감독의 ‘귀신의 집’에는 불과 반나절 동안만 촬영했었다. 그런데도 이렇게 챙겨주는 것이 너무 고마웠다.
다음 작품을 생각하는 것.
그것은 아직 이른 일이었지만, 같이 영화를 찍고 싶은 마음은 충분히 있었다. 특히 정 감독의 영화 스타일은 꽤 마음에 드는 편이었다. 추정만 감독의 장점이 스펙타클한 맛을 잘 살리는 것이라면 정준 감독은 미세한 감정의 변화를 잘 잡아냈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무렵.
노크 소리와 함께 차 문이 열렸다.
성우가 고개를 돌리니 분장을 담당하는 구 실장님과 의상을 담당하는 이 실장님이 함께 서 있었다.
“왔으면 내려야지 뭐해요?”
“유 배우님! 어서 머리하러 가시죠.”
“어머! 구 실장님 의상이 먼저죠. 더구나 성우 씨는 머리가 짧아서 금방 끝나시잖아요.”
“이 실장님 잘 모르시나 본데요. 오히려 그게 더 오래 걸려요.”
성우는 멀뚱히 두 사람을 바라봤다.
두 여인은 자신을 먼저 데려가겠다고 옥신각신하고 있었다. 그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렇게 끌려다니고 싶진 않았다. 성우는 틈을 보고는 그 사이로 잽싸게 내렸다.
“어디 가요?”
“어서 준비해야 해요!”
“감독님과 선배님한테 인사만 하고 올게요. 저 다녀오기 전에 어느 분이 먼저 하실지 정해 놓으세요.”
그렇게 말하며 잽싸게 발걸음을 놀렸다.
괜히 두 실장의 틈에 껴 있어봤자 득보다는 실이 더 컸다. 이제는 촬영 현장에 조금 적응한 성우였다. 이런 상황에서는 몸을 피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는 것을 알 정도는 되었다.
하지만 그보다 더한 강적이 있었다.
바로 그것은 홍문석 무술 감독이었다. 어디서 성우가 도착했다는 소식을 들은 것인지 그는 경공술이라도 쓰는 듯 날아왔다. 그런 그의 두 손에는 목검이 한 자루씩 쥐어져 있었다.
그것을 보는 순간 성우는 인상을 찡그렸다.
배움에 집중하는 것은 좋으나 그 집착이 너무 심했다.
“홍 감독님 너무 하시는 거 아니에요? 수련은 촬영이 없는 날만 하기로 했잖아요.”
“아직 촬영 들어가려면 여유 있잖아.”
“그래서 따로 연습하시라고 영상도 찍어 드렸잖아요. 자꾸 이러시면 추 감독님한테 이를 거예요.”
“흐흐 오늘은 어차피 내 손에서 못 벗어나. 오후에 찍을 액션의 합도 맞춰야 해서 별말 안 할걸?”
성우는 잠시 할 말을 잃었다.
결국, 알겠다며 기다리라고 말할 수밖에 없었다.
촬영장을 돌아다니며 스태프와 선배 배우에게 인사를 마치고 돌아왔다. 그 직후 성우는 다시 검을 들어야 했다. 그런 그의 손아귀에는 힘이 잔뜩 들어갔다.
‘자꾸 사형한테 기어오르신단 말이야.’
사형과 사제의 관계.
그것이 암묵적으로 형성된 그와 홍 감독의 사이였다.
물론 대놓고 이야기하고 다닐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위례검의 중흥을 맡기기 위해서는 상하관계를 다잡을 필요가 있었다. 그런 성우의 모습을 본 홍문석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왠지 살기가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뭐해?”
“가르침을 원하시니 해드려야죠. 연습도 실전같이! 아시죠?”
그 말을 끝으로 성우는 입을 닫았다.
이미 목검의 끝을 문석을 향해 겨누고 거침없이 달려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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