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미친 재능의 탑스타-33화 (34/161)

광끼 -33

한껏 달아올랐던 긴장감.

성우를 괴롭히던 그것은 순식간에 날아갔다.

반쯤 넋을 놓은 진수.

그것을 보고 군침을 흘리는 두부까지!

지금 현재 그에게 도움이 되는 것들은 하나도 없었다. 더구나 바로 옆에는 조강철까지 멀뚱히 서 있었다. 그를 보는 진수의 표정은 마치 신의 재림을 본 듯한 감격에 젖어 있었다. 그런 상황이 되니 성우는 오히려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이 친구가 선배님 광팬이거든요. 아마 그래서 그럴 거예요.”

“그래? 고맙네.”

“올라가실까요?”

“매니저는 그냥 저대로 두고? 상태가... 조금 안 좋은 거 같은데.”

“선배님이 들어가시면 정상으로 돌아올 거예요.”

그렇게 말하며 성우는 멋쩍게 웃었다.

그것은 조강철 역시 별반 다르지 않았다. 지금껏 자신의 팬이라 말하는 이들을 수없이 만난 그였다. 하지만 지금 같은 반응은 처음이라 신선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성우는 서둘러 그 자리를 떠났다.

그러자 상황은 정리되기 시작했다.

빙의라도 할 것처럼 난동을 피우던 두부 역시 잠잠해졌다. 먹음직한 상태의 진수가 사라지자 흥미를 잃은 것이었다.

제작사에서 준비한 고사 현장.

그들 둘이 함께 들어서자 모든 이들의 시선이 집중됐다.

이번 영화의 주역이라 할 수 있는 두 배우가 함께 나타났기 때문이었다. 성우는 그 시선을 담담하게 받으며 앞으로 걸어갔다. 그보다 약간 앞서 걷고 있는 조강철 덕분이었다.

그의 등은 무척이나 듬직했다.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헤쳐나갈 것 같은 느낌이었다.

‘주연은 얼마나 큰 압박감이 있을까?”

생각하기도 싫었다.

이 영화의 제작비도 엄청나다고 들었다.

그런 영화를 이끄는 주인공이 된다면 아마 잠도 오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언젠가는 넘어야 할 벽인 것은 분명했다. 그런 둘을 가장 먼저 반긴 것은 입구 근처에 서 있던 추정만 감독이었다.

“어떻게 둘이 같이 들어와요?”

“주차장에서 만났어. 고사상은 오랜만이네.”

“요즘 이런 거 안 하는 추세지만, 촬영 내내 마음이 찜찜한 것보다는 하는 게 좋을 거 같아서요.”

추 감독은 그렇게 말하며 웃었다.

사실 이것도 그가 해야된다며 고집한 것이었다.

영화 촬영 중에 액션 씬이 상당히 많다는 것도 한 몫했다. 그렇기에 어쩔 수 없이 제작사에서도 받아들였다. 이 자리의 의미는 간단했다. 촬영 중에 큰 사고가 없기를 바라는 것이었다.

“나도 하는 게 좋다고 생각해.”

“형이 그렇게 말해주면야 저야 힘이 되죠. 비용 때문에 싫어하더라고요.”

“뭐 최소 수백은 깨지니 어쩔 수 없지. 그런데 어디 앉아?”

“저기요.”

추정만은 직접 자리를 안내했다.

그를 앞세워 도착한 곳에는 이미 여러 배우가 앉아 있었다. 그들은 조강철을 보고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동시에 일어나 인사했다.

그것은 성우도 마찬가지였다.

이곳에서 그보다 나이가 어린 이들은 하나도 없었다.

최소 연기 경력이 십여 년은 된 이들이었다. 특히 명품 조연이라 불리는 오창석, 고달수가 가장 눈에 띄었다. 그런 둘 옆에는 이번 영화의 홍일점이라 할 수 있는 최희선도 있었다. 둘이 함께 오자 고달수가 그 특유의 걸걸한 목소리로 빈정거렸다.

“형! 같은 주연이라고 벌써 이 친구만 챙겨주는 거예요?”

“그냥 앞에서 만난 거야.”

“주연 말고 우리 같은 잔챙이 조연도 좀 챙겨요.”

“네가 언제부터 조연이냐 맨날 상전 노릇하면서? 이번 촬영에서 또 얼마나 달달 볶으려고 벌써 그러냐?”

강철은 웃으며 말했다.

자신을 챙겨달라는 달수의 말이 농담인 것은 다들 알고 있었다. 그런 농담이 오갈 만큼 조강철과 그들의 친분은 깊었다. 그것도 그럴 것이 서로 알고 지낸 세월이 적지 않았다.

공통점도 있었다.

그들 모두 긴 무명의 세월을 이겨냈다.

그래서인지 나이는 서로 두어 살 이상 차이가 났지만, 친구 같은 분위기였다. 둘의 만담 같은 입담 덕분에 분위기는 화기애애해졌다. 그러나 그런 그들 사이로 성우가 끼어들 틈은 없었다. 그나마 그를 챙겨준 것은 바로 옆에 앉은 최희선이었다.

“그나마 성우 씨와 제가 젊은 피네요?”

“지난 리딩 때도 말씀드렸지만, 편하게 말 놓으셔도 돼요.”

“이제 초면은 아니니까 그럴까?”

확실히 캐스팅된 배우의 연령대는 높았다.

실존했던 인물인 ‘왈우 강우규 의사’의 이야기를 담다 보니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일단 조강철이 맡을 주인공이 환갑이 넘은 연령이었다. 그러니 조연들 역시 나잇대가 높았다.

그나마 가장 젊은 배우가 최희선이었다.

하지만 그런 그녀마저 성우보다 9살 정도 더 많았다. 비중이 제법 있는 캐릭터 가운데 20대는 성우를 빼면 전멸이라 할 수 있었다

“젊은 피끼리 잘 뭉치자고.”

“잘 부탁드려요. 선배님.”

“선배님 말고 누나! 그게 더 편해. 그나저나 나는 일제 강점기 전문 배우가 되는 것 같다.”

그녀의 투덜거림은 당연했다.

지금까지 그녀가 이름을 알린 영화는 모두 일제강점기 시대를 배경으로 두고 있었다. 더구나 맡은 역할도 모두 일본인이었다. 덕분에 많은 사람이 그녀를 일본인으로 알고 있기도 했다.

“그래도 이번에는 일본인은 아니잖아요.”

“호호호! 지난번에 시상식에서 소감 말할 때 사람들이 뭐라는지 알아?”

“뭐라고 했는데요?”

“일본 사람이 한국말 정말 잘한다고 하더라.”

“하하하하~!”

성우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

그런 그를 보고 희선이 자신의 이야기가 그렇게 재미있냐고 물었다. 하지만 그가 웃는 것은 그 이유가 아니었다.

“죄송해요. 누나 수상 소감 할 때 방송사고가 떠올랐어요.”

“아~ 스태프가 막말한 게 방송 타고 나간 그거? 완전 촌극이 따로 없었지.”

“그래도 신인 배우와 여우 주연을 동시에 석권하셨잖아요.”

“그래서 나도 크게 신경 안 써.”

그렇게 둘이 이야기 나눌 무렵.

고사는 시작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제작사에서 나온 것으로 보이는 한 사람이 마이크를 잡았다. 그는 이런 것을 한두 번 한 것은 아닌지 능숙하게 진행했다.

첫 시작은 투자자와 제작사 사람들이 나섰다.

그들은 절을 하고 돼지 머리에 돈을 끼워 넣었다. 대부분 적지 않은 금액이 들었는지 현금이 아니라 하얀 봉투였다. 다음은 추 감독과 프로듀서 그리고 서 작가가 나섰다. 그들이 절을 하는 것을 보고 있던 성우는 묘한 이질감을 느꼈다. 그것을 깨달은 성우는 서둘러 두부를 찾았다.

‘두부! 너 어디 있어?’

고사상을 놓고 얌전할 녀석이 아니었다.

제사상을 받지 못해 무사귀가 된 원혼이기에 정도가 심한 이들이었다. 그런데 그런 무사귀들이 오늘따라 칭얼거리는 것도 없이 조용했다.

더구나 진수가 보이지 않았다.

혹시 진수에게 빙의하러 간 것은 아닐까 우려됐다.

그런 생각이 들자 성우는 마음이 더욱 다급해졌다. 재차 그를 찾는 목소리에 곧 두부가 답을 해왔다. 그 목소리를 들으니 성우는 안심이 되었다. 그러나 대답하는 두부의 목소리는 침울했다.

-심란한데 왜 자꾸 불러?

‘고사상이 앞에 있는데 조용하니 이상해서 그렇지.’

-시끄러. 네 친구 녀석 몸 빼앗으러 간 거 아닌지 의심했지?

‘뭐 아니면 말고.’

확실히 생각을 공유하니 이럴 때는 애매했다.

그런 그에게 두부는 아쉬운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

-저거는 우리가 받을 수 있는 상은 아니야.

‘왜? 평소의 너라면 앞뒤 안 가리고 걸신들린 듯이 달려들면서.’

-우리가 무슨 굶어서 죽은 아귀인지 알아? 그것들과 격이 다르다고! 그리고 이 자리의 진짜 주인이 와 있어서 건드릴 수 없어.

그 말에 성우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영화 촬영을 위한 고사상이었다. 그런데 그 주인이 누구라는 건지 알 수 없었다. ‘영화의 신’ 이런 게 있는 건가 싶기도 했다. 하지만 두부의 말은 그의 예상을 뛰어넘는 것이었다.

-왈우 그 친구가 여기 와 있어.

‘왈우? 강우규 그분 이야기하는 거야?

-역시 자기 제사상은 귀신같이 찾아와서 먹네.

‘에이 진짜?’

-거짓말할 이유는 없잖아. 저기 안 보여? 너라면 조금은 보일 텐데

두부가 말한 곳.

그곳을 성우는 물끄러미 바라봤다.

그러자 그곳에 흐릿한 형체가 보이기 시작했다. 팔뚝에 소름이 일며 솜털이 바짝 세워졌다. 비록 무사귀가 자신의 몸속에 있지만 직접 귀신을 보는 것은 태어나서 처음이었다.

“커억···”

“왜 그래? 사례 들렸어?”

“아뇨. 별거 아니에요.”

성우는 희선에게 괜찮다고 말하고는 다시 고개를 돌렸다. 여전히 그곳에는 아까 보았던 그 형체가 그대로 있었다. 하지만 그 느낌이 독특했다. 한기가 느껴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포근한 느낌이었다.

왈우 강우규 선생의 영혼이라니!

그가 이 자리에 와 있다는 두부의 말은 좀처럼 믿어지지 않았다. 강우규 의사의 일생은 성우 역시 잘 알고 있었다. 시나리오 외에도 평전을 따로 읽어봤기 때문이었다.

‘후손이 북에 있다던데... 제사상은 잘 받고 계시려나?’

무사귀와 함께 지내서일까?

제사에 대해 성우는 보수적이었다.

그 서러움을 아는 그이기에 가장 먼저 생각난 것이 그것이었다. 남쪽은 점차 제사 문화가 사라지고 있었다. 과연 북에서는 어떨지 궁금했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무렵.

마침내 그가 나갈 차례가 돌아왔다.

이미 조강철과 오창석 등의 선배들은 자리로 돌아온 상태였다. 성우는 희선과 함께 고사상 앞으로 나섰다. 그리고 그곳에 절을 하며 다짐을 했다.

‘선생님이 보여주신 의기. 많은 사람이 기억했으면 좋겠습니다.’

의욕이 불처럼 일어났다.

10년 아니 20년이 지나도 기억하게 하고 싶었다.

그 이름 석 자를 이 영화를 통해 깊게 새겨 놓고 싶었다. 그런 그의 간절한 의지에 두부 역시 동조했다.

-아마 저 친구도 기뻐할 거다. 열심히 해 봐.

* * *

포토그래퍼 천석현.

그는 집에 돌아오자마자 가방을 풀었다.

온갖 장비가 든 그것을 바닥에 내려놓자 묵직한 소리가 들렸다. 그 가방 안에서 서둘러 SD카드를 꺼내 사진을 외장 하드로 옮겼다. 천천히 카피 되고 있는 것을 확인한 후 그는 샤워하러 들어갔다.

“아이고 힘들다.”

온몸이 노곤했다.

그것도 그럴 것이 모처럼 행사장 사진을 찍은 그였다. 평소라면 거절할 건이지만, 오늘은 어쩔 수 없었다. 이번에 새롭게 들어가는 영화의 스틸컷을 맡기로 계약했기 때문이었다. 그의 사진 인생에서 스틸 컷은 첫 도전이라 설렜다.

그로부터 10분 후.

석현은 서둘러 컴퓨터 앞에 앉았다.

아이맥의 거대한 화면은 그가 오늘 찍은 사진을 하나씩 보여줬다. 그가 이처럼 서두르는 이유는 분명 있었다.

영화 ‘왈우’의 서문희 홍보팀장.

그녀에게 서둘러 사진을 전달해줘야 했다.

아마 그녀는 홍보 기사를 다 작성해놓고 자신의 메일만 기다리고 있을 것이 뻔했다. 홍보는 모두 적절한 시기가 있다고 여기는 그녀이기에 어쩔 수 없었다.

딸칵!

딸칵딸칵!!

서둘러 A컷을 골라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기사용으로 쓸 용도였다.

잘 나온 것들 가운데 몇 장만 보정하면 됐다. 물론 그의 실력으로는 얼마 걸리지도 않았다. 그 바쁜 와중에도 그는 자신의 사진 실력에 심취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

바쁘게 움직이던 석현의 손가락은 멈췄다.

그리고 그의 눈동자는 사정없이 흔들렸다. 모니터 위에 보인 사진이 뭔가 이상했다. 그는 잠시 그렇게 있다가 고개를 흔들었다.

“에이! 렌즈에 뭐가 묻었나 보네.”

석현은 현실을 부정하고 싶었다.

그게 아니라면 이것을 설명할 길이 없었다.

하지만 그는 곧 그것마저 포기해야 했다. 아무리 렌즈에 불순물이라 여기고 싶어도 그럴 수 없었다. 그가 가진 상식상 그 이유라면 사진이 절대 이렇게 나올 수 없었다.

그 형체는 사람과 다름없었다.

아니 분명히 사람의 모습이 맞았다.

그것도 반쯤 투명한 것이 귀신이라고 볼 수밖에 없었다. 혹시나 싶어 그 사진의 앞뒤 컷 전부를 살폈다. 하지만 재미있는 것이 고사상 오른쪽을 찍은 몇 장에만 그 정체 모를 것이 나왔다.

석현은 몸을 부르르 떨었다.

말로만 듣던 심령사진을 찍은 것이었다.

그것을 자각함과 동시에 석현은 자리를 박차며 일어났다. 그리고 순식간에 컴퓨터에서 먼 곳까지 떨어졌다. 그 동작은 바퀴벌레에 버금갈 정도로 잽싼 몸놀림이었다.

“어우씨! 뭐야···”

석현은 핸드폰을 찾았다.

하지만 하필 모니터 앞에 놓여 있었다.

그는 화면이 보이지 않게 모니터 뒤로 돌아갔다. 그리고 떨리는 손으로 핸드폰을 집어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마침내 상대방이 전화를 받자 석현은 더듬거리며 말했다.

“팀장님. 저 석현인데요. 사진 몇 장이 조금 이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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