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미친 재능의 탑스타-32화 (33/161)

광끼 -32

성우의 제안은 런닝 개런티였다.

지금 당장 현금은 크게 필요 없었다.

3천만 원이라는 큰 금액을 무시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저 그보다 더 나중의 일을 기약하기로 했다. 어떻게 생각하면 무모한 일이라 할 수 있었다. 그래도 그는 천만 관객을 동원했던 배우와 감독을 믿기로 했다.

사실 도박에 가까운 일이었다.

기대치가 낮은 주식을 사서 몇 배의 대박을 기다리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제작사 입장에서는 전혀 나쁜 제안은 아닐 것이 분명했다. 물론 나중에 억! 소리 나는 런닝 개런티가 나가게 된다면 두고두고 후회할 것이 분명했다.

제작사가 반기는 이유는 단 하나였다.

이미 파트별로 책정된 제작비 때문이었다.

개런티를 모두 확정한 마당에 이제 와 추가 개런티를 줘야 한다면 좋아할 프로듀서는 없었다. 결국, 제작사에서 취할 수 있는 방법은 단 하나였다. 바로 다른 제작비를 쥐어짜는 것이었다.

“실패할 가능성도 생각해야 해. 너무 무리하는 거 아냐?”

“저는 감독님만 믿고 가겠습니다.”

“그게 더 무섭다!”

그래도 기분은 좋은 것 같았다.

추 감독은 웃음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앞날이 기대되는 배우가 자신을 믿는다는 말에 기분 나쁠 감독은 없었다. 물론 부담감은 당연히 있겠지만, 그 정도는 충분히 껴안고 갈 수 있는 추정만 감독이었다.

“내 예감으로는 500만 나올 거 같은데?”

“에~ 감독님! 쪼잔하게 그게 뭐예요 호기롭게 1,000만 가시죠.”

“서 작가까지 왜 그래. 부담되게.”

“바뀐 시나리오라면 가능할 거 같아요. 저 못 믿어요?”

서 작가의 자신감.

그것은 오롯이 성우 때문만은 아니었다.

영화의 중심을 잡아줄 조강철이라는 대형 배우와 스태프와 추 감독을 믿기에 할 수 있는 이야기였다. 사실 그녀는 천만까지는 몰라도 750만은 되지 않을까 예상했다.

“그럼 나중에 인터뷰할 때 천만 달성 공약 같은 거는 하지 말아야겠네.”

“왜요? 덕분에 금연도 성공하셨는데. 이번에는 10kg 감량 뭐 이런 거 걸어 보세요.”

“저얼대 싫어!”

정만은 고개를 도리질 쳤다.

또 그런 무모한 공약은 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그런 둘의 대화를 들으며 성우는 그저 웃을 뿐이었다. 아직 천만 관객이니 그런 것이 너무 멀게만 느껴졌다. 그러나 그런 여유는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그런데 왜 천만이 넘어가면 런닝 개런티로 8천만 원을 생각한 거야?”

“너무 높게 불렀나요?”

“그게 아니라 낮아도 너무 낮아.”

정만은 정보를 슬쩍 흘려 주었다.

아마 이 정도의 개런티는 가능할 것 같다는 수치였다.

그의 입장에서는 성우가 런닝 개런티를 얼마큼 가져가도 문제 될 것은 없었다. 영화가 성공한 이후의 돈 잔치는 그가 아닌 제작사의 몫이었다. 그의 이야기를 들은 성우는 깜짝 놀랐다. 자신의 예상보다 훨씬 더 높았기 때문이었다.

“허억 2~3억이요?”

“뭘 그렇게 놀라. A급 배우들은 그 정도 관객 찍으면 개런티와 별개로 10억 넘게 가져가.”

“정말 그게 가능해요?”

“너는 받아야 할 3천을 묻어두고 들어가는 거니 가능할 거야.”

믿어지지 않는 금액이었다.

영화 촬영은 반년 정도 걸릴 것으로 예상했다.

아마 내년 초까지는 촬영에만 매달려야 할 것 같았다. 그래도 그 몇 개월의 대가가 억 단위라면 평범한 것은 아니었다. 자기 또래 사회 초년생의 몇 년 연봉에 가까운 금액이었다.

“일단 가서 오 실장과 의논부터 해. 너 혼자 정할 이야기는 아닌 것 같다.”

“알겠어요. 그럼 저는 먼저 가볼게요.”

“그래. 나도 프로듀서에게 런닝 개런티 이야기는 해놓을게.”

그렇게 말하며 추 감독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성우 역시 자리를 뜨려고 했지만, 그를 잡은 것은 서 작가였다. 그녀는 테이블 위에 놓여있던 시나리오를 집어 들며 그에게 다가왔다.

“성우 씨. 시나리오 가져가야죠.”

“아차! 깜빡했네요. 감사합니다.”

“가서 열심히 캐릭터 연구해서 와요. 기대가 커요.”

그 말에 성우는 미소지었다.

그녀 못지않게 그 역시 기대되고 있었다.

과연 이번 영화에서 자신이 어떻게 나올지 궁금해졌다. 특히 이번에 바뀐 시나리오에서 흑표의 액션만 추가된 것은 아니었다. 그 시대의 울분과 처절함 그리고 광기 어린 복수심도 담아내야 했다.

“기대에 어긋나지 않도록 노력하겠습니다.”

* * *

다음 날 바이올렛 회의실.

그곳에는 강 대표와 오 실장 그리고 성우가 앉아 있었다. 그들 사이에 흐르는 분위기는 사뭇 무거워 보였다. 그것도 그럴 것이 오만석 실장이 꺼낸 이야기는 쉽게 생각할 것은 아니었다. 한동안 말없이 있던 강훈은 입술을 뗐다.

“추가 개런티는 안 받고 런닝 개런티를 하면 좋겠다고?”

“대표님 생각은 어떤가요?”

“오 실장은 런닝 개런티로 얼마를 예상하는데?”

“추 감독님이 천만 관객에 2~3억은 가능할 거라고 성우한테 귀띔해줬다데요.”

“2억이라···”

강훈은 그 금액이 참 애매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성우의 이번 영화에 그는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영화로 따지면 첫 데뷔작이었다. 그런 신인 배우에게 주어지는 개런티 수준이야 뻔했다.

그래서 이번 영화는 발판이라 여겼다.

앞으로 더 좋은 배역과 높은 개런티를 따내기 위한 영화였다. 하지만 뭐가 어떻게 되는 건지 주연급 조연이라 들었던 배역이 주연급으로 바뀌었다. 필모그라피를 따지지 않는다면 적어도 몇억은 받아야 하는 자리였다.

하지만 그게 문제가 아니었다.

과연 이 젊은 청년이 그 중압감을 이겨내고 잘 할 수 있을지부터 의문이 들었다. 연극 무대와 영화 촬영 현장의 차이는 엄청났다. 대학로에서 잘나가던 배우가 영화 쪽으로 넘어가 자빠지는 경우는 허다했다.

“자신은 있어요? 조연과 달리 주연은 압박감이 상당한데.”

“열심히 해야죠.”

“연극과 영화는 차이가 커요. 대학로에서 난다 긴다 하던 배우도 실패하는 경우가 상당하죠.”

강 대표의 말에 서둘러 오 실장이 나섰다.

그의 얼굴에는 왜 그런 말을 하냐는 원망이 가득했다. 하지만 강 대표 역시 그대로 물러날 생각은 없었다.

“대표님! 이제 와서 그런 말씀은...”

“전에 봤던 시나리오와 많이 달라져서 그렇지. 물론 나는 성우 씨의 연기와 액션의 가능성 모두를 믿어요.”

“그런데요?”

성우는 침착하게 물었다.

강 대표의 말이 괜한 우려는 아니었다.

그 역시 연극과 영화의 차이가 크다는 것은 알았다. 더구나 해솔이 전해준 것이 과연 영화에서도 통할지 의문스러웠다. 그래도 낯선 무대에 적응하기 위해 사력을 다할 생각이었다. 아직 부딪혀보지 못한 것에 미리 두려워할 필요는 없었다.

“솔직히 저는 지금처럼 무모한 런닝 개런티는 하기 싫습니다. 왜인지 알아요?”

“글쎄요. 잘 모르겠습니다.”

“아직 우리 배우라는 느낌이 안 들어요.”

그제야 성우는 무슨 말인지 이해됐다.

그가 지적하는 것은 성우의 계약 기간이었다. 보통 신인 배우의 업계 평균이 5년이었다. 연습 기간이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7년짜리 장기 계약도 종종 있었다. 그것을 생각하면 확실히 성우의 계약 기간은 너무 비정상적이었다.

18개월이란 기간.

그것은 생각보다 무척 짧았다.

영화 한 편을 촬영하고 개봉하면 1년쯤은 후딱 지난다. 그때 다시 바이올렛은 또 계약서를 내밀어야 한다. 그때의 몸값은 지금과 확연하게 다를 것이라 강 대표는 예상했다.

“계약 기간 때문이군요.”

“거기에 위령탑도 한 몫을 차지하고 있죠. 처음 생각했던 것보다 제작비가 꽤 나오더군요.”

“제가 어떻게 하면 될까요?”

“18개월이 아니라 최소 36개월로 다시 계약하죠.”

“대표님!”

그 말에 반응한 것은 오만석이었다.

반면에 성우는 그냥 덤덤한 표정으로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이런 이야기는 언젠가 나올 거라 예전부터 예상했다. 계약을 맺었을 당시에 기대치는 그다지 높지 않았다. 그 어떤 누구도 그가 단번에 주연급의 역할을 따낼지 몰랐다. 그것은 성우 역시 마찬가지였다.

“오 실장은 그냥 나가 있을래?”

“아뇨 계셔도 될 것 같아요. 뭐 다시 계약하죠.”

성우는 그렇게 말하며 웃었다.

계약이란 말은 쉽게 꺼냈지만, 얼토당토않은 조건에 사인할 생각은 없었다. 특히 짧은 기간이기에 기존에는 계약금은 거의 받지 않은 그였다. 솔직히 위령탑이 계약금이라 여긴 그였다.

“설마 또 다른 곳에 위령탑을 세워달라는 거는 아니죠?”

강 대표는 호탕하게 웃었다.

하지만 그의 말에는 뼈가 있었다.

확실히 계약에 있어서 그는 쉽지 않은 상대가 분명했다. 하지만 성우 역시 만만한 편은 아니었다. 그의 속에는 두부라는 말 많은 능구렁이가 있었다.

“아뇨. 계약금은 딱히 필요 없습니다.”

“진짜요? 후회하실 텐데요.”

“기간을 바꾸는 대신 저도 계약서의 일부는 바꾸고 싶어서요.”

강 대표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추가 계약금까지 포기하며 수정하려는 것이 뭔지 궁금해졌다. 그것은 성우의 옆에 있는 오만석 실장도 마찬가지였다. 성우는 의미심장하게 웃으며 자신이 원하는 것을 꺼내놓았다.

“활동의 선택은 제가 합니다. 그게 전부입니다.”

성우가 가장 원하는 것은 그것이었다.

얼마가 될지 모르는 계약금의 가치를 평가절하하는 것은 아니었다. 어쩌면 나중에 크게 후회할지 모를 일이었다. 하지만 강요에 의해 일을 하는 것은 싫었다. 아직 바이올렛에서 그런 것을 요구한 적은 없지만, 인기를 얻은 이후에도 그럴지 모를 일이었다.

“흐으음···”

“괜찮은 조건 아닌가요?”

“악용의 소지가 있어서 그렇죠. 이것도 싫다 저것도 싫다 하면서 활동을 미루는 경우도 있으니까요.”

“그럴 일은 없을 거예요. 제가 생각보다 욕심이 많거든요.”

그렇게 말하며 성우는 웃었다.

처음 연기를 시작할 때와 달리 그는 지금 먼 미래까지 생각하고 있었다. 장차 어디까지 자신이 발전할 수 있을지 몰라도 조금 더 높은 곳으로 향하고 싶었다. 그것은 금전적인 이득보다 개인적인 성취감 때문이었다.

‘네 인생이야. 너 하고 싶은 대로 살아.’

부모님은 항상 그렇게 말씀했다.

그리고 그를 울타리에 가두는 일은 일절 하지 않으셨다. 그래서일까? 이번에 영화 출연이 결정되었다는 전화에도 그다지 놀라지 않은 눈치였다. 그가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 강 대표도 결정은 내렸다.

“좋아요. 그런데 안전장치는 해야겠죠.”

“계약 종료 전까지 이번 영화를 제외한 작품 하나로 하시죠.”

“오 실장은 도대체 누구 편이야?”

“저는 배우 편입니다.”

만석은 당당하게 말했다.

그것을 들은 강훈은 그저 웃을 뿐이었다.

둘이 젊었을 때부터 당해오던 것이라 이제는 새롭지도 않았다.

“성우 씨도 동의하나요?”

“작품 하나면 연극도 포함되나요?”

“그렇기는 하죠. 뭐 되도록 영화나 드라마에 출연하는 것을 권하고 싶지만요.”

“그건 나중에 상황을 보고 정하도록 하죠.”

그렇게 말하며 성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36개월로 계약 기간을 바꾸는 대신 활동의 선택은 성우의 몫이 된 것이었다. 물론 그러기 위해서 작품 하나를 더 해야 하지만 그것은 나중의 일이었다. 그제야 강 대표도 협상용 포커페이스 얼굴을 걷어내고 예전처럼 돌아왔다.

“부디 천만 돌파하길 바랍니다.”

* * *

런닝 개런티 계약 이후.

눈 깜박할 사이에 크랭크인 시기가 다가왔다.

그 떨리는 날을 며칠 앞둔 성우는 영화가 잘 되길 바라는 의미에서 지내는 고사에 참석해야 했다. 늦지 않게 일산의 어느 뷔페 집에 도착한 그는 좀처럼 차에서 내리지 못하고 있었다.

“어서 올라가자. 감독님하고 오 실장님 기다리시겠다.”

“조금만 기다려 봐.”

“행사 시작 30분 전에는 오라고 했단 말이야.”

진수는 계속 그를 보챘다.

여기서 이러고 있어 봐야 긴장이 풀리는 것은 아니었다. 한편으로는 이래서 어떻게 영화 촬영을 할 건지 두려웠다. 하지만 매니저인 그가 배우를 믿지 못하면 안 될 일이었다. 모두가 성우를 의심해도 그만은 믿어야 했다.

똑똑!

그 순간 차창 너머에서 누군가 노크했다.

둘이 동시에 고개를 돌리자 조강철이 서 있었다. 그는 한쪽 손을 차에 올려놓고 허리를 숙여 안을 바라보고 있었다. 정신이 번쩍 든 성우는 서둘러 차에서 내려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선배님.”

“안 올라가고 여기서 뭐 해?”

“이제 막 올라가려고 했습니다.”

“뭐 이렇게 긴장해. 오늘은 그냥 고사지내는 거야. 어서 가자.”

그렇게 말하며 그는 성우의 어깨에 팔을 둘렀다.

하지만 자세가 좀처럼 나오지 않았다. 그의 키도 작지 않은 편이었으나 성우의 키가 생각보다 컸기 때문이었다.

“너 키가 도대체 몇이냐?”

“184cm인데요.”

“생각보다 크네? 전에 봤을 때는 그 정도로 안 보였는데.”

“제가 굽 있는 신발은 별로 안 좋아해서요. 오늘은 구두를 신어서 그런가 봐요.”

그렇게 말하며 성우는 아래를 내려다봤다.

그러자 아직도 낯설게 느껴지는 구두가 보였다. 평소에는 발바닥이 아파 즐겨 신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는 조금씩 길들일 필요가 있었다. 이번 영화에서 흑표는 정장 차림으로 나오는 씬이 제법 많았다.

“그런데 자네 매니저는 왜 저래?”

강철의 말을 들은 성우는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진수가 입을 반쯤 벌리고 있었다.

평소 흠모하던 조강철을 보고 혼이 나가버린 것 같았다. 그런 그를 보고 두부가 다급하게 외쳤다.

‘어! 쟤 유체이탈 할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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