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끼 -30
조강철의 방문이 있던 다음날.
성우는 아침에 일어남과 동시에 두통에 시달렸다.
어제 먹은 술이 훅~ 올라오는 느낌이 들었다. 잔인할 정도로 힘든 아침이었다. 덕분에 아침 운동은 평소보다 두어 시간이 늦었다.
-그러게 적당히 먹으라니까.
“다들 그렇게 막무가내로 달릴 줄 알았나. 집에 어떻게 왔는지도 모르겠네.”
-너 때문에 내가 고생 좀 했지.
“뭐?”
성우가 술에 뻗은 이후.
휘청거리는 그 몸을 이끌고 온 것은 두부였다.
그 말을 들은 성우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리고는 곧 술은 앞으로 적당히 먹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러다 아예 몸을 빼앗기면 하소연할 곳도 없었다.
-오해하지 말라고. 어쩔 수 없었어.
“그렇다고 내 몸을 네 마음대로 지배하냐?”
-길바닥에서 재울 수는 없잖아. 내가 무슨 대리운전도 아니고 적당히 마셔.
“어쨌든 딴짓 안 하고 고이 와줘서 고마워.”
-크음···.
두부의 반응은 뭔가 이상했다.
그것을 눈치챈 성우가 캐묻기 시작하자 녀석은 겨우 실토했다. 돌아오는 길에 곧장 온 것은 아니었다. 녀석은 분식점과 편의점을 들려 양껏 먹고 왔다고 했다. 어쩐지 배가 더부룩하고 아직도 빵빵한 느낌이었다. 그런 그에게 두부는 어서 나가라며 재촉했다.
-어서 무예 수련이나 하러 가. 늦었다고 화났어.
“오케이! 그런데 나 어제 실수 같은 거는 안 했지?”
기억이 가물가물했다.
하지만 그 질문에 두부는 그저 웃을 뿐이었다.
그 기분 나쁜 반응에 더 불안했다. 가장 마지막에 나는 기억은 3차로 호프집에 들어가던 순간이었다. 샤워를 서둘러 마치고 나온 성우는 곧바로 나가려다 진수에게 걸려온 전화에 발걸음을 멈췄다.
“여보세요?”
-너 오늘부터 액션 스쿨 예약되어 있는 거 잊지 않았지?
“뭐? 그게 오늘이었어?”
성우는 당황스러웠다.
고개를 돌려 달력을 보았다.
확실히 그곳에는 오늘 날짜 위에 붉은색으로 동그라미가 처져 있었다. 그런 그의 반응을 눈치챘는지 진수는 크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내가 그럴 줄 알았다.
“미안. 달력에 적어놓고 까먹었어.”
-10분 후에 도착하니까 운동복 챙겨서 나와.
그 말을 남기고 진수는 바로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얼마 후 집 앞에 하얀 차 한 대가 멈춰섰다. 혹시나 해 안을 들여다보니 진수가 보였다.
“이 차는 뭐야?”
“당연히 회사 차지 뭐겠어.”
“이게?”
“보기에는 새 차 같아도 벌써 40만 km 뛴 거라고 하더라. 일단 이번 주에는 이거 쓰래.”
진수의 말에 성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솔직히 차에는 관심도 없는 그였다. 연예인들이 타는 밴은 한번 타보고 싶었지만, 아직 그럴만한 위치도 시기도 아니었다. 그랬기에 어떤 차라도 상관없었다. 지금은 그저 액션 스쿨을 오갈 뿐이었다.
“어서 타. 이러다 늦겠어.”
진수의 재촉에 성우는 보조석에 올라탔다.
그러자 차는 쏜살같이 출발해 도심을 달리기 시작했다. 평일 오전이라 생각보다 도로는 막히지 않았다.
“회사 일은 할 만하냐?”
“말도 마라 죽을 지경이었다.”
“왜? 신미령 선배님이 뭐라고 해?”
“아니 잘해주시지. 그런데 스케줄이 많아도 너~~무 많아. 이수 형을 보면 내 앞날이 캄캄하다.”
오만석 실장이 내린 지시였다.
진수는 최근 신미령 선배의 스케줄을 따라다니고 있었다. 오 실장이 가장 믿고 맡길 수 있는 김이수에게 실무를 배우라는 의미였다. 아직 성우가 연극 출연 외에는 별다른 스케줄이 없었기에 문제 될 것은 없었다.
“야! 울렁거린다. 살살 좀 몰아.”
“차 막히기 전에 가야 해. 도대체 어제 얼마나 마셨길래 그래?”
“기억도 안 나.”
“이게 정신 안 차리지? 영화 촬영이 얼마나 남았다고.”
“추 감독님이 연극을 보러 오셔서 뒤풀이를 함께 했지. 조강철 선배님도 함께 계셔서 먼저 빠져나오기 힘들었어.”
부아아앙!
조강철이란 이름을 말하는 순간.
속도는 갑자기 훅 올라갔다.
성우는 살짝 고개를 돌려 진수를 보았다.
그러자 진수가 이를 꽉 물고 있는 것이 보였다. 마치 왜 자신을 부르지 않았냐며 시위하는 것으로 보였다. 조강철과 함께 연기한다는 단 하나의 이유만으로 매니저를 수락한 그이기에 충분히 그럴만했다.
“워~ 매니저님. 진정하시죠.”
“배우님아. 단 1초도 내 생각이 나지 않더냐?”
“너 드라마 촬영 현장에 내려간다고 했잖아. 그리고 예고 없이 오신 거라 나도 놀랐다고.”
그제야 차의 속도는 점차 줄어들었다.
그 와중에도 차는 이리저리 차선을 넘나들었다. 그리고는 곧 강변북로 위에 올라탔다. 성우는 그것을 보며 도대체 어디로 가는 건지 궁금해졌다.
“액션 스쿨이 어디길래?”
“파주 헤이리!”
“정말? 나 거기 한 번도 못 가봤는데. 거기 데이트하기 좋다고 유명하지 않아?”
“아마 평생 가보기 힘들 거다.”
진수의 악담에 성우는 고개를 저었다.
그렇게 이야기하던 와중에 성우는 잠에 빠졌다. 어제 밤늦게까지 달렸던 후유증은 쉽게 가시지 않았다.
그로부터 약 50분 후.
거침없이 달리던 차는 헤이리에 도착했다.
진수가 주차할 무렵 성우도 겨우 정신을 차렸다. 하지만 그의 눈앞에 보이는 것은 액션 스쿨이 아니라 해장국 집이었다. 의아한 눈으로 바라보자 녀석은 빙긋 웃으며 말했다.
“먹고 가. 열심히 달린 덕분에 해장할 시간은 있다.”
콩나물이 가득한 시원한 해장국.
그것을 들이켜며 성우는 역시 매니저를 잘 뒀다는 생각이 들었다. 확실히 오랫동안 함께해서일까? 자신의 취향을 너무 잘 알고 있었다. 다 먹은 후에 일어나려던 그를 진수가 붙잡았다.
“나가기 전에 일단 화장실에서 양치부터 다시 해라.”
“술 냄새 나?”
“조금. 괜히 첫인상부터 나쁘게 가져갈 필요는 없잖아.”
그렇게 말하며 진수는 세면 세트를 건넸다.
그것을 받아들며 성우는 진심으로 감탄했다. 내심 감동의 물결이 몰아쳤다. 이래서 매니저를 두는구나 싶었다.
*
조금 일찍 도착해서일까?
한국 액션 스쿨에 도착했지만, 반겨주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내부로 들어서자 몇 명의 사람이 있었지만, 아무도 둘을 향해 다가오는 이는 없었다. 다들 자신의 훈련에만 매진하고 있을 뿐이었다. 주변을 한 번 훑던 진수는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사무실에 가봐야겠다. 여기 그냥 있을래?”
“그래. 뭐 둘이 같이 가볼 필요는 없잖아.”
“그럼 몸이라도 풀고 있어.”
그렇게 말하며 진수는 2층의 사무실로 향했다.
액션스쿨이라 그런지 건물은 상당히 넓었다. 그가 사라지자 성우는 가볍게 몸을 풀기 시작했다. 어차피 트레이닝복을 입고 나온 그였다. 따로 갈아입을 필요는 없었다.
-장군이가 삐졌어.
두부의 말이 들렸다.
그 말에 성우는 한숨을 내쉬었다.
고작 하루 무술 수련을 빼먹었다고 저렇게 나오다니. 그 쪼잔함에 장군이라는 별명이 아깝다 여겨졌다.
‘그래서 뭐 어쩌라고. 고작 하루다.’
-일단 한 바퀴 돌리래.
‘그거 한번 시작하면 적어도 30분이잖아. 무리야 무리.’
-평소보다 더 빨리하면 되지. 어서.
두부의 제안에 대해 성우는 곰곰이 생각해봤다.
최선을 다해 가속을 붙이면 20분 정도 걸릴까? 아직 한 번도 시도해보지 않았지만, 될 것 같았다. 성우는 마지못해 알겠다며 말하고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장군이 말한 한 바퀴.
그것은 그가 가르쳐준 무술의 3가지 수련 초식을 처음부터 끝까지 한 번에 이어서 하는 것을 말했다. 무술의 이름은 안 알려주기에 그와 두부는 1번, 2번, 3번이라고 임의로 부를 뿐이었다. 물론 난이도는 숫자가 높아질수록 덩달아 높아졌다.
‘일단 1번부터!’
파앗! 파파팟!
주먹과 발차기의 연속 동작.
그것은 물 흐르듯 이어지며 전혀 끊기지 않았다.
몸이 격하게 움직일수록 굵은 땀방울이 흘러내렸다. 하지만 정작 성우는 그 기분이 묘하게 짜릿했다. 아까 그를 그토록 고생시켰던 숙취도 깔끔하게 사라지는 기분이었다.
‘어쩌면 해장국을 먹어서 그럴지도 모르지.’
그런 생각을 하며 2번을 이어서 시작했다.
그의 몸은 평소와 달리 무척이나 분주했다.
아이돌이 TV에 나와 2배속 안무라며 춤을 추던 것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놀라운 것은 그 속도에도 몸놀림이 흐트러지거나 그런 것이 전혀 없었다. 완벽한 균형 감각 덕분이었다.
마지막 3번을 시작할 무렵.
성우는 자신을 바라보는 여러 시선을 느꼈다.
특히 진수와 함께 걸어오는 사람을 보며 여기서 멈춰야 하나 살짝 고민이 되었다. 그런 그의 기색을 눈치채서일까? 그 남자는 멈추지 말고 계속하라며 재촉했다.
“신경 쓰지 말고 계속하세요.”
안 그래도 그럴 생각이었다.
거의 마무리 단계인데 이제 와 멈출 수는 없었다. 한 바퀴를 돌린 후에 느껴지는 그 충만함을 놓치기는 아쉬웠다.
그렇게 몇 분이 더 지났을까?
숨 쉴 틈도 없이 마지막 동작을 펼쳐내며 성우는 바닥에 떨어졌다. 특히 그 마지막의 공중 3연속 발차기가 마침표 역할을 했다. 성우는 그제야 거친 숨을 내쉬며 자리에 주저앉았다. 평소보다 2배쯤은 빨리 움직였기에 폐가 목구멍 밖으로 밀려 나오는 기분이었다.
짝짝짝.
어느 사이에 그의 주변에 모인 사람들.
액션 스쿨 안에 있던 모든 이들은 박수와 환호를 주었다. 마치 대단한 공연이라도 본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런 그들 가운데 한 명이 다가왔다. 아까 진수와 함께 있던 남자였다. 그는 자신의 소개도 하기 전에 다가와 흥분한 듯이 말했다.
“방금 보여준 그거! 도대체 어디서 배운 건가요?”
격렬한 그 반응에 성우는 의아했다.
그는 그런 성우의 표정을 보고서야 자신의 실수를 깨달았다. 그는 뒷머리를 긁적이며 자신의 소개를 했다.
“반갑습니다. 한국 액션의 홍문석입니다.”
무술 감독 홍문석.
국내 액션의 선구자가 바로 그였다.
액션 영화의 주연으로 출연도 했고 종종 TV에도 나왔기에 그의 이름은 성우도 알고 있었다. 문석이 손을 내밀며 인사하자 성우 역시 자신의 소개를 했다.
“안녕하세요. 신인 배우 유성우입니다.”
“제가 초면부터 실수했네요.”
“괜찮습니다. 그런데 아까 그 말이 무슨 의미인지 잘 모르겠어요.”
홍문석의 표정은 다시 상기되었다.
그는 악수를 하며 잡은 손을 놓지 않았다.
그리고 간절한 표정으로 성우를 바라봤다. 마치 답은 정해져 있으니 너만 말하면 된다는 느낌이었다.
“방금 보여주신 것이 혹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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