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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친 재능의 탑스타-28화 (29/161)

광끼 -28

성우가 떠올린 한 사람.

그는 바로 가장 친한 친구인 공진수였다.

마침 회사를 그만뒀다는 이야기도 있었는데 그 안타까운 소식을 들은 것은 바로 성우가 오디션을 보던 날이었다. 연극 공연 때문에 위로주도 못 사준 것이 내내 걸렸다.

“고등학교 친구라고?”

“유치원부터 함께 다녔어요. 저에 대해서는 가장 잘 알죠.”

“나는 그다지 추천하고 싶지는 않은데.”

오만석은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 식으로 매니저를 시작한 이들이 이 바닥에서 하나둘이 아니었다. 때론 형이나 동생과 같은 혈연관계일 때도 있었고 지금처럼 친구가 매니저를 하는 경우도 있었다. 가장 편한 존재이자 또 배우를 잘 아는 것은 확실히 장점이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단점도 적지 않았다.

“왜요?”

“공과 사 구분이 쉽지 않아. 더구나 의 상하기 딱 좋지.”

“그건 서로 조심하면 되지 않을까요?”

“처음에는 다들 그렇게 말하지. 친구는 수평적인 관계지만, 매니저는 수직적인 관계에 가깝거든.”

배우와 매니저의 관계는 특수했다.

수면 위에 비치는 백조의 우아한 자태가 배우라면 수면 밑에서 쉴 틈 없이 물갈퀴 질을 하는 것은 매니저였다.

“친구인데 서로 안 불편하겠어? 너도 뭔가 시키기 어렵고 상대방도 자존심 상하기 쉽고.”

“그···렇기는 하죠.”

“그리고 이 바닥이 좀 더러워야지. 오래 버티는 녀석 많지 않아.”

만석은 자조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매니저들의 평균 근속은 생각보다 무척 짧았다.

로드부터 시작하는 이들의 월급은 쥐꼬리만 했고 일은 엄청 많았다. 촬영이 한창일 때는 배우보다 더 강행군하는 것이 바로 매니저였다.

그는 한동안 단점을 설명했다.

그러나 끝에 가서는 한 발을 빼야 했다. 결국, 선택은 그가 아닌 성우 본인이 할 문제였다. 어쨌든 그의 조언은 그걸로 끝이었다.

“뭐 그런데도 함께하고 싶다면 말리지는 않겠어.”

“조금만 더 생각해볼게요.”

“그래. 일단 복지 여건하고 급여는 내가 메일로 보내줄게.”

성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곧 진수와 약속을 잡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이 아무리 고민해봐야 소용없었다. 만약 진수가 싫다 하면 그만이었다. 그때 갑자기 오만석이 손뼉을 치며 외쳤다.

“아차! 내가 축하한다는 말도 제대로 못 했네.”

“고맙습니다. 전부 다 실장님 덕분이에요.”

“내가 뭘 했다고 직접 가보지도 못했는데. 그런데 언제부터 액션 배우를 꿈꿨던 거야?”

만석의 말에 성우는 의아했다.

액션 배우를 꿈꾸다니 무슨 말인지 전혀 감이 안 왔다.

“네? 액션 배우요?”

“그게 아니면 뭐 UFC라도 나갈 생각이었어?”

“무슨 소리인지 잘 모르겠네요.”

“720도 발차기. 그걸 오디션장에서 했다고 말했잖아. 그게 보통 쉽게 되는 거는 아니잖아. 원래 태권도 4단 정도 되는 유단자인가?”

성우는 태권도 이야기에 웃었다.

만석의 말처럼 그에게도 단증이 있기는 했다.

하지만 제대로 된 단증은 절대 아니었다. 모래처럼 흔하디흔한 군대에서 딴 1단이었다. 그 이야기를 들은 만석도 웃었다.

“그렇게 따지면 나도 1단이지.”

“운동하다 심심할 때 연습해보던 건데 운이 좋았어요.”

“심심해서 그런 720도 발차기를 연습 한다는 녀석도 너 하나뿐일 거다. 그나저나 슬슬 액션 스쿨 다녀야 할 것 같은데.”

“당장이요?”

성우는 조금 곤란했다.

일과가 적지 않게 빠듯한 그였다.

새벽부터 아침까지는 무예를 배우고 낮에는 도서관에서 책을 읽었다. 그리고 저녁에는 연극 무대에 잦은 뒤풀이까지 쉴 틈이 없을 정도였다. 그 와중에 스케줄을 더 넣으려면 뭔가 하나를 빼거나 줄여야 했다.

“혼자 하는 것보다는 좋지 않겠어? 와이어 액션은 독학이 불가능하잖아.”

“그건 그렇죠. 일단 생각 좀 해볼게요.”

“가능하면 촬영 전에 시간있을 때 다니는 걸로 하자.”

그 말에는 성우도 동의했다.

촬영이 시작되면 눈코 뜰 사이가 없을 것이 분명했다. 그리고 시나리오를 봤을 때 와이어 액션도 상당할 것이라 예상되었다. 그걸 떠올리자 성우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높은 곳은 싫은데!’

*

며칠 후.

성우는 제작사와 계약을 무사히 마쳤다.

그 자리에서 그가 해야 할 일은 거의 없었고 대부분 오만석 실장의 몫이었다. 그가 할 것은 자신을 뽑아준 이들에게 고맙다는 인사와 함께 촬영 때 좋은 연기로 보답하는 것 뿐이었다.

그리고 그날 저녁.

성우는 진수와 약속을 잡았다.

오늘 같은 날에는 축하주를 빼놓을 수 없다는 핑계였다.

물론 그 약속은 공연이 끝난 이후였다.

이 약속을 나오기 위해 극단에는 계약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 안 그랬다면 그는 단원들에 의해 지금쯤 술독에 빠져 있을 것이 분명했다.

“여기야!”

“일찍 왔네. 공연 때문에 너무 늦었지?”

“아니야. 뭐 어차피 집 근처인데.”

진수는 여전했다.

어떻게 그렇게 마를 수 있는지 궁금할 정도였다. 그래도 전에 회사를 다닐 때와 비교하면 조금 혈색이 좋아 보이기는 했다.

“더 맛있는 곳으로 가자니까.”

“에헤~ 고기면 다 똑같지. 오늘은 내가 낼 테니 맘껏 먹어.”

“어디서 백수가 돈 자랑이야?”

“연극을 하는 너보다는 내 통장이 더 두둑할걸?”

사실 진수의 예상은 틀렸다.

성우의 통장은 절대 빈곤하지 않았다.

부모님이 제대 후에 쓰라며 주고 간 생활비도 제법 두둑했고 바이올렛과 계약하며 받은 천만 원도 그대로 있었다. 더구나 영화의 출연료도 곧 들어올 예정이었다.

이번 출연료는 3천만 원 남짓 되었다.

아마 그의 프로필에 더 많은 작품이 있었다면 더 높았을 것이 분명했다. 그나마 경력에 비해 역의 비중이 높았기에 이 정도였다. 지금 현재로서는 이것도 감지덕지한 상황이었다. 물론 그 금액에서 일부는 바이올렛에서 떼갈 예정이었다.

하지만 그 금액이 아깝지는 않았다.

어차피 바이올렛은 그를 담당할 매니저를 채용해야 했다. 회사는 성우와 계약한 이후 여전히 마이너스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됐어. 이번에 영화 계약했잖아. 내가 한턱 쏠게.”

“뭐 그렇게 기쁜 소식과 함께라면 말리지는 않겠어. 내일은 공연 없는 거지?”

“오늘 얼마나 마시려고 내일 스케줄까지 챙기냐?”

“내가 다른 거는 몰라도 술은 제법 많이 늘었다.”

그렇게 말하며 진수는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하루를 버틸 수 있게 만드는 유일한 탈출구가 그에게는 술이었다. 그런 그를 보며 성우는 그동안 차마 묻지 못하던 것을 물었다.

“그런데 회사는 왜 그만둔 거냐?”

“그걸 술도 안 마시고 이야기할 수는 없지. 일단 주문이나 하자.”

이글거리는 숯불.

그 위에서 지글거리며 노릇하게 익는 삼겹살.

저절로 위를 꼬이게 만드는 그 냄새를 뒤로하고 둘은 연신 술잔을 들어 올렸다. 고기는 그저 배경에 불과했다. 그만큼 둘이 마시는 속도는 상당했다. 어느 정도 얼굴이 붉게 달아오르자 진수는 자신의 이야기를 꺼냈다.

“사장이 보면 볼수록 양아치더라.”

“뭘 어쨌길래?”

“얼마 전에 보조 출연자 하나가 다쳤거든.”

“또?”

성우의 말에 진수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언제 또 누군가 다쳤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곧 성우가 처음으로 보조 출연했던 날이 떠올랐다.

“맞다. 너도 다칠 뻔 했지.”

“크게 다친 거야?”

“아니 그 정도는 아니야. 다리가 골절된 건데... 문제는 사장이 고작 20만 원 주고 아예 쌩까더라.”

쉽게 이해가 되지 않는 이야기였다.

그게 진수가 그만둔 것과 무슨 상관인지 모를 일이었다. 혹시 책임이라도 지라고 한 것은 아닐까 걱정되었다.

“그런데 그게 퇴사하는 거랑 무슨 상관이 있는데?”

“우리 회사의 일을 자주 해주던 분이라 그냥 모른척하기 어렵더라고 그래서 사장한테 따졌지.”

“그런데?”

“그러다 쫓겨났어. 현장 관리를 제대로 못한 내 탓이라고 오히려 화를 내더라.”

“뭐 그런 인간이 다 있어!”

성우는 오랜만에 화가 치밀었다.

그래서일까? 그의 술잔은 연달아 비워졌고 진수에 의해 순식간에 채워졌다. 그것은 진수 역시 마찬가지였다.

“까짓거 잘 됐지. 어차피 내가 그 일을 하고 싶던 것은 아니었잖아.”

“너 원래는 영화 찍는 현장 가는 게 목표 아니었나?”

“솔직히 그건 이제 포기다. 현실을 보니 비전공자인 내가 비빌 곳은 아니더라. 뭐 다른 일을 찾아봐야지.”

그래도 진수는 존경할 만 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며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찾아낸 녀석이었다. 그에 비하면 자신은 그저 물 흐르는 듯이 살았다. 성적에 맞는 적당한 대학을 다니다 군대에 다녀온 것이 전부였다.

성우는 찰랑거리는 술잔을 단숨에 비웠다.

그리고 오늘 그를 만난 진짜 이유를 꺼냈다. 지금껏 망설이던 것과 달리 그의 음성은 단호했다. 그리고 간절했다.

“너 나랑 같이 일하자.”

“푸흡! 나 연기에는 소질 없는데.”

“연기? 하긴 너는 유치원 때도 엉망이었어.”

성우는 옛 기억이 떠올랐다.

유치원에 다닐 때 진수 저 녀석은 발표회 때마다 홍역을 치렀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무대 위에 오르는 것을 극도로 싫어했다. 결국, 진수는 하기 싫다며 발악하다 그날 친구들과 함께 서지 못했다.

“누가 무대 위에 서래? 그건 재능있는 내가 할게.”

“워~ 갑자기 재수 없어. 그럼 뭘 같이 하자고? 너 요즘 다단계 하는 거는 아니지?”

“다단계는 무슨!”

“그럼 뭔데?”

“내 매니저가 되어줘. 섭섭하지 않게 해줄게.”

그런 그의 말에 진수는 잔을 내려놓았다.

잠시 생각하던 그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건 아닌 것 같았다.

“그건 좀 힘들겠다.”

“왜? 내가 성공하지 못할 거 같아서?”

“그런 말은 아니잖아.”

“같이 하자. 둘이 같이 다니면 재미있을 것 같아.”

“형들이 아무리 친해도 같이 일하면 틀어지는 거 순식간이라고 하더라.”

성우는 그런 진수의 말에 뜨끔했다.

오 실장님이 이야기했던 것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더구나 진수의 가족 가운데 형 두 명이 같이 일하다 트러블이 난 것은 성우 역시 잘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우리가 언제 싸운 적 있냐?”

“없지. 그래도 혹시 모르잖아.”

“집에서 놀면 뭐해 잠시만 도와줘. 나 당장 다음 달부터 촬영장 가야 해. 나 혼자 보내고 싶냐?”

“영화 촬영이 다음 달부터야?”

성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다행히 영화 촬영과 연극 무대의 일정은 별로 겹치지 않았다. 열흘 정도 되는 그 기간 동안은 감사하게도 스케줄이 조절될 예정이었다. 오만석 실장이 아니었다면 그런 편의는 생각할 수도 없었다. 현장은 무조건 감독과 주연 배우 위주로 돌아간다. 그쯤은 성우도 잘 알고 있었다.

“딱 4개월 어때?”

“올해 연말까지네.”

“나 따라다니면서 현장 분위기도 익히고 그러면 되잖아.”

“웃기지 마. 너 아니어도 현장은 매일 출근하다시피 했어.”

그건 성우 역시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아직 그에게는 마지막 카드가 남아 있었다. 그것은 진수에게 잘 먹힐 것으로 예상했다.

“조강철 선생님.”

“응?”

“이번 영화의 주연이 바로 그분이야. 너 그 분이 연기하는 거 직접 보고 싶다고 언제나 말했잖아.”

진수는 그 말에 흔들리기 시작했다.

다른 배우도 아니고 조강철이었으니 당연했다.

녀석 역시 성우 못지않게 조강철의 광팬 가운데 하나였다. ‘믿고 보는 조강철’이라는 말도 진수가 항상 하는 말이었다.

“제길. 이거는 거부할 수 없는 제안이잖아.”

“굿! 잘 생각했어. 앞으로 잘 부탁해. 꽁~ 매니저님!”

“제발 굶어 죽지 않게만 해다오. 배우 님아!”

그렇게 말하며 둘은 악수를 했다.

유성우의 생의 첫 매니저이자 평생을 함께 할 파트너가 공진수로 결정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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