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미친 재능의 탑스타-26화 (27/161)

광끼 -26

성우의 화려한 발차기 이후.

오디션 현장의 분위기는 한껏 달아올랐다.

그만큼 그가 이곳에서 보여준 모습은 대단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런 분위기는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조강철이 별거 아닌 듯이 툭 던진 말 한마디 때문이었다.

“연기는 어때?”

그 말에 오디션장 내부의 공기는 착 내려앉았다.

아직 그것에 대해 명확하게 답을 해줄 수 있는 이는 여기에 없었다. 지금 이곳은 스턴트맨을 뽑는 곳이 아니었다. 제아무리 액션을 잘해도 연기가 꽝이면 끝이었다. 그런 그의 말에 추정만 감독이 앞으로 나섰다.

“이제부터 봐야죠. 자! 다시 테이블 원상태로 옮기죠.”

그의 말을 신호로 오디션장은 정리되기 시작했다. 한쪽 끝까지 밀어 놓았던 테이블이 다시 빠르게 제자리를 찾았다. 그리고 성우는 그 우당탕거리는 와중에 두부와 대화를 하고 있었다.

-오~ 반응 좋았어!

‘쉣! 큰일났어.’

-뭐가 문제인데?

‘대사 다 까먹었다. 너희는 다 외우고 있지?’

성우는 다급했다.

지정 연기를 하기 위해 외웠던 것들이 하나도 기억나지 않았다. 한차례 몸을 격하게 움직인 영향이라 여겨졌다. 그런 그를 향해 두부는 또 잔망스럽게 웃어댔다.

-히히힠! 아닌데~ 안 외웠는데~

‘웃기지마 다 외운 거 아니까 대사 좀 도와줘.’

-맨입에?

두부의 말은 무척이나 얄미웠다.

하지만 지금 현재 갑은 두부였기에 어떻게 할 방법이 없었다. 그가 이렇게 두부에게 부탁하는 이유는 있었다. 연극 무대 위에서 은근히 도움을 많이 받았기도 했던 그였다.

어찌된 일인지 무사귀들은 자신의 대본을 언제나 다 외우고 있었다. 그 가운데 무척 머리가 좋은 존재가 분명 있었다. 하지만 그 정체는 아직 알 수 없었다. 그 정체가 무엇이든지 지금은 도움을 받아야만 했다.

‘뭘 원하는데?’

-지금 말하기는 복잡하고 나중에 소원 하나만 들어줘.

‘또 어떤 말도 안 되는 거를 요구하려고.’

-싫으면 말고! 감독이 너 부른다.

“유성우 씨 준비된 연기 보여주실 수 있나요?”

추 감독의 질문이 들렸다.

그러자 성우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어느 사이에 오디션장은 다시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와 있었다. 그와 동시에 두부에게 알겠다며 약속하고 곧바로 입술을 뗐다.

“네! 준비됐습니다.”

하지만 그의 연기가 시작되기 전.

조강철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그리고 그의 이야기를 들은 성우는 슬쩍 인상을 찡그렸다.

“잠깐만 기다려 봐요. 추 감독 이거 말고 시나리오로 연기 보는 거는 어때?”

“시나리오요? 어느 부분으로요?”

“흑표 역할에 관심있는 거 아냐? 이왕에 볼 거면 그게 좋잖아.”

또다시 조강철이었다.

추 감독은 그런 그의 제안에 동의했다.

하지만 정작 성우는 멘붕에 빠졌다. 오늘 오후 내내 지정 연기를 준비한 그였으니 당연한 반응이었다. 괜히 시간을 빼앗긴 기분이 들었다.

“뭐 저는 좋죠. 다른 분들은 어때요?”

“저도 동의해요.”

“작가님도 괜찮아요?”

서윤희 작가마저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그러자 추정만 감독은 시나리오 하나를 스태프를 통해 성우에게 건넸다. 시나리오의 표지를 보니 이번 영화의 것이었다. 그나마 여러 번 읽었던 것이기에 안도가 되었다. 그가 시나리오를 받자 조강철이 기다렸다는 듯이 그중의 한 장면을 찍어 주었다.

“씬 5-3의 흑표를 맡으세요. 오디션은 3분 후에 시작할게요.”

“설마 직접 리딩해주시게요?”

“이왕에 오디션장에 왔는데 놀면 뭐해. 갑자기 바꾼 건데 이 정도는 해줘야지.”

조강철의 말에 추정만은 슬쩍 웃었다.

그가 왜 이렇게 신경을 쓰는지 충분히 아는 그였다. 그가 이번 영화에 참여했을 때 한 말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 영화는 흑표를 누가 하냐에 따라 성공과 실패가 나뉘어 질 수 있어.’

그 말에 당시 옆에 있었던 모두가 동의했다.

주연급 조연이지만 사실상 제2의 주연이라 해도 무방했다. 실제로 영화에서 가장 주목될 장면은 오히려 조강철이 맡은 배역보다 더 많았다.

일본 순사를 때려잡는 대규모 액션씬.

그리고 관객의 감성과 눈물샘을 자극할 캐릭터의 죽음까지 극적인 요소는 모두 가지고 있었다. 오죽하면 조강철이 주연이 아닌 그 배역을 하고 싶다고 하소연을 할 정도였다.

하지만 그것은 욕심에 불과했다.

영화상의 흑표는 이제 막 약관 정도의 청년이었다. 이미 환갑에 가까워지고 있는 조강철이 맡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나이 차이가 너무 심했다. 제아무리 기술이 발전했다고 해도 그 정도의 격차를 줄이기는 어려웠다.

반면 성우는 당황스러웠다.

하지만 그러고 있을 여유는 없었다.

다시 대사를 읽고 연기를 준비해야 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흑표라는 캐릭터를 하고 싶었던 그였다. 오만석 실장과 캐릭터 분석은 제법 해놨기에 다행이었다.

-에이 좋다 말았네. 칫!

아쉬움 가득한 두부의 목소리.

그것은 이미 들리지 않았다. 성우는 모든 신경을 집중시켜 대사를 분해하고 외우는데 온 힘을 다했다. 이렇게 집중해보는 것은 생애 처음이라 할 수 있었다. 지금의 이 짧은 시각이 무척 중요했다. 어쩌면 인생에 세 번 온다던 빅 찬스일 가능성이 높았다.

“자! 준비되면 시작하시면 됩니다.”

조감독의 목소리에 성우는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시나리오는 덮었다. 그것을 본 추정만과 조강철은 동시에 인상을 찡그렸다. 혹시 포기하는 것이 아닐까? 둘이 그런 생각을 할 무렵. 성우는 입술을 뗐다.

“어르신! 제가 가겠습니다. 그 폭탄 저한테 주세요.”

성우의 대사가 나온 이후.

조강철은 그에 맞춰 다음 대사를 이어주었다.

“됐네. 자네는 더 좋은 세상을 이끌어주게.”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제가 갑니다. 위험하니 어서 저한테 주세요. 제발요.”

“이 세상을 이렇게 만든 장본인이 우리란 말일세. 아직 어린 자네가 그 짐을 나눠질 필요는 없네.”

“하지만 몸도 성치 않으시잖아요.”

“허허 그러니 더 의심도 안 할 거 아닌가.”

조강철은 호기롭게 웃었다.

그리고는 성우를 지긋이 바라봤다.

그 눈길을 받으며 성우는 미안함과 고마움을 동시에 느낄 수 있었다.

성우는 그 느낌을 감미하며 뒤의 대사를 이어갔다.

지금 이 순간 성우가 느끼기에 그의 앞에 앉은 이는 조강철이 아니었다. 그는 이미 시나리오 속의 주인공 그 자체였다. 눈에는 현기가 가득했고 목숨을 내놓기를 마다하지 않는 기개도 엿보였다.

“그러면 이렇게 하시죠. 저도 어르신과 함께 가겠습니다.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고 하지 않습니까?”

“어허! 자네 춘부장이 그렇게 가르쳤나. 썩 여기서 나가게! 순사들이 언제 들이닥칠지 몰라.”

“모릅니다. 저는 두 분 다 일찍 잃어서 그런 거 몰라요!”

한동안 주고받는 대사들.

그것을 보며 모든 스태프는 입을 떡 벌렸다.

추정만 감독도 그들 가운데 포함되어 있었다. 하지만 서윤희 작가만큼 충격을 받은 이는 없었다. 그녀가 머릿속으로 그려낸 캐릭터였다. 그들이 시나리오를 찢고 밖으로 튀어나온 것 같았다.

반면에 조강철은 다른 것에 놀랐다.

그가 다음 대사를 확인하기 바쁜 반면에 유성우라는 저 배우는 달랐다. 성우는 시나리오를 덮은 상태로 두 번 다시 보지 않고 있었다.

‘모든 대사를 외운 건가?’

준비를 단단히 했다고 해도 무리였다.

지금껏 무수하게 많은 작품을 찍은 그였다. 하지만 이처럼 대사를 완벽하게 외우는 배우는 처음이었다. 더구나 토씨 하나 틀리지 않았다. 연기 역시 그의 기준에서 만족한다는 표현이 모자랄 정도였다.

짝짝짝!

둘의 연기가 끝난 이후.

오디션 장소에는 박수가 울렸다.

그것을 들으며 조강철은 쑥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자신도 모르게 진심을 다해 연기를 하고만 것이었다. 오디션 장소에서 이렇게 최선을 다했던 것이 언제적 일인지도 기억나지 않았다. 확실히 그의 앞에 서 있는 유성우라는 저 배우는 뭔가 흡입력이 상당한 느낌이었다.

“수고했어요.”

“대본을 함께 맞출 수 있어 영광이었습니다.”

“그런데 정말 그걸 다 외운 거예요?”

조강철이 묻는 말에 성우는 수줍게 웃었다.

사실은 두부의 도움을 받은 그였다. 연기에 조금 더 집중하고 싶은 마음 때문에 급하게 계약(?)을 맺었다. 하지만 그 자리에 다른 이들은 그걸 다르게 이해했다. 그것은 추 감독도 마찬가지였다.

“정말 다 외운 거에요?”

“아니요. 그럴 리가 없죠. 시나리오 가운데 제가 가장 인상 깊게 보았던 장면이기에 기억이 나서 가능했어요.”

“어쨌든 연기는 잘 봤어요.”

그리고 그 말을 끝으로 오디션은 끝났다.

그를 안내하는 스태프의 등 뒤를 따라 밖으로 나왔다. 그러자 아직도 오디션을 기다리던 이들의 시선이 몰려왔다. 남들보다 서너 배는 더 오래 오디션을 본 그였으니 당연했다. 그들의 눈에는 온갖 의문과 시샘이 가득했다. 안에서 들린 환호성이 밖에까지 전해졌기 때문이었다. 성우는 제작사를 나오며 속이 시원함과 동시에 조금 섭섭했다. 하지만 후회는 없었다.

‘어쨌든 최선은 다했으니...’

*

오디션을 본 이후.

성우는 기다림의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이틀이나 지났지만, 아직 오디션의 결과는 나오지 않고 있었다. 덕분에 성우는 점점 조급해졌다. 하지만 그런 그에게 오만석 실장은 원래 그런 거라며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그렇다고 넋을 놓고 있던 것은 아니었다.

여전히 극단 작두의 ‘악의’는 매일 공연을 이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아침에 장군이라는 무사귀와 무예를 수련하는 것도 여전했다. 그리고 그 외에 또 다른 스케줄 하나가 더 생겼다. 지난 오디션 당시의 약속 때문이었다.

‘솔직히 이건 말도 안 된다.’

-남아일언 중천금! 약속했으면 지켜야지.

‘좀 낮춰주면 안 될까? 그걸 언제 다 봐.’

그렇게 말하며 성우는 고개를 들었다.

그러자 책장 가득 채워진 어마어마한 양의 책이 눈에 들어왔다. 성우가 현재 있는 곳은 집 인근의 구립 도서관이었다. 두부의 요청은 단순하면서도 무식했다.

한 무사귀가 가진 지적 호기심.

그것을 충족시키는 것이 이렇게 힘든 것인지 전혀 몰랐던 성우였다. 그래도 그의 앓는 소리가 통했는지 두부는 조금 조건을 낮춰주었다.

-인심 썼다. 딱 500권! 그것만 읽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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