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미친 재능의 탑스타-25화 (26/161)

광끼 -25

적막한 대기실에 울리는 목소리

자신을 부르는 스태프의 말에 성우는 잠시 당황했다.

“유성우 배우님 들어오세요.”

잠시 휴식 시간을 갖는다고 방금 들었다.

그런데 바로 들어오라고 하는 게 수상했다. 다시 한번 그를 찾는 스태프의 목소리에 성우는 손을 번쩍 들었다.

“유성우 배우님. 자리에 안 계신가요?”

“여기 있습니다.”

문으로 들어서며 성우는 아찔했다.

잠시 마음을 놓았던 탓일까? 긴 시간에 걸쳐 어렵게 외운 대사가 통째로 기억나지 않기 시작했다. 머릿속에 누군가 들어와 지우개로 지운 것 같은 기분이었다.

‘제길! 갑자기 왜?’

하지만 그런 내색은 할 수 없었다.

어떻게든 방법이 있을 거라 믿는 수밖에 없었다. 그가 안으로 들어서자 군데군데 빈 자리가 보였다. 스태프가 안내하는 정면 중앙에 서자 그제야 테이블 위에 놓인 명패가 눈에 들어왔다.

추정만 감독과 서윤희 작가.

과거 천만 관객을 동원한 [왕과 거지].

그 제작의 주역이 바로 그 둘이었다. 그리고 이제 5년 만에 다시 손을 잡고 새 영화를 만들 준비를 하고 있었다. 지난 영화의 성적 때문에 이번에는 촬영 전부터 영화계에 큰 기대를 주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신인 배우 유성우입니다.”

성우는 고개를 숙여 정중하게 인사했다.

그러자 여기저기서 그를 훑는 시선이 느껴졌다.

연극 무대 위에서 받던 시선과는 크게 달랐다. 마치 판매대 위에 오른 상품이 된 기분이었다. 그런 생각이 들자 솔직히 당황스러웠다.

거기에 카메라 두 대가 동시에 자신을 찍고 있었다.

그것은 이미 오 실장과의 리허설에서 겪어봤던 그였다. 그래서 크게 신경 쓰이지는 않았다. 그런 그를 추 감독이 반겨주었다.

“반가워요. 갑자기 불러서 당황했죠?”

“조금 그랬습니다.”

“아직 휴식 시간 맞으니 너무 긴장하지는 마세요. 바이올렛의 강 대표님은 잘 계신가요?”

추 감독의 말에 성우는 그렇다고 답을 했다.

바이올렛의 소속 배우인 것은 사실이나 그 역시 대표를 볼 기회는 그리 많지 않았다. 그나마 이번 오디션을 준비하며 한두 차례 봤을 뿐이었다. 추 감독 역시 특별한 대답을 원했던 것은 아니었다.

“프로필을 보니 ‘귀신의 집’에 출연했다고요?”

“우연히 좋은 기회를 얻어서 잠깐 나왔습니다.”

“그런데 어느 장면인지 도통 기억이 안 나서요. 혹시 말해주실 수 있나요?”

“크음··· 그게 특수 분장을 하고 나와서 몰라 보셨을 거에요.”

추 감독은 잠시 생각에 빠졌다.

그러다가 곧 어느 장면 하나를 떠올렸다.

영화 전체를 놓고 보더라도 가장 중요했던 한 장면.

그 소름 끼치고 짜릿하던 장면이 떠올랐다.

당시 그것을 보며 그는 같은 감독으로서 정준 감독의 연출에 박수를 보낼 수밖에 없었다. 신의 한 수라 여길 수 있는 장면이었다.

“혹시 예고편에서 여러 차례 나왔던 그 귀신?”

“맞습니다.”

“오~ 정말요? 그거 보고 완전 소름 끼쳤는데.”

“저 역시 볼 때마다 놀랍니다. 특수 분장해주시는 분들이 상당히 수고해주신 덕분이죠.”

추 감독과 유성우의 대화가 이어져가는 중간.

그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서윤희 작가가 안경테를 고쳐 쓰며 중간에 끼어들었다.

“몸이 좋아 보이네요. 운동 좋아하세요?”

“네. 지금도 아침마다 한두 시간씩 하고 있습니다.”

“그래요?”

“혹시 상의 탈의 가능한가요?”

추 감독의 말을 듣고 성우는 깜짝 놀랐다.

갑자기 여기서 그런 요구를 할 것이란 생각은 못 했다. 자신이 출연하려고 하는 것이 19금도 아닌데 의아했다.

“혹시 시나리오 읽어 보셨나요?”

“네. 오기 전에 여러 번 읽었습니다.”

“그럼 흑표 아시죠?”

그제야 이해가 되었다.

사실 그 역시 흑표라는 배역을 노리고 있었다.

그리고 영화의 후반부에 그 캐릭터는 상의 탈의를 하고 고문을 받는 장면이 있었다.

성우는 알겠다며 재킷을 벗었다.

그리고 의자에 걸쳐 놓으며 셔츠의 단추를 하나씩 풀어내기 시작했다. 점차 그의 숨겨진 근육이 보이자 주변에서 뭇 여성들의 감탄사가 저절로 터져 나왔다.

하지만 서 작가는 달랐다.

그녀는 그저 관찰할 뿐 딱히 표정 변화조차 없었다. 성우가 가진 그녀의 첫인상은 무척 냉담하다는 것이었다. 그녀는 잠시 고민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을 본 추 감독은 질문 하나를 더 던졌다.

“그 정도면 됐어요. 혹시 액션씬도 대역 없이 가능해요?”

“가능합니다.”

“혹시 보여줄 수 있는 게 있나요?”

“여기서요?”

“네. 무술 감독님이 오셨으면 좋았겠지만, 없으니 할 수 있는 정도만 보여주세요.”

그 말에 성우는 옷을 다시 입으며 잠시 고민했다. 그러자 그 틈을 참지 못하고 두부가 끼어들었다. 녀석은 이게 재미있는 구경이라도 되는 듯 여전히 까불고 있었다.

-보여줘~! 보여줘~!

‘그러니까 뭘 보여주냐고.’

-아침마다 킥잇 보고 따라 하던 것 있잖아.

킥잇(Kick-It)

그것은 레드불의 후원하에 열리는 발차기 무술 대회 이름이었다. 채널을 돌리다 우연히 보게 된 그 대회의 출전자들은 화려한 발차기를 뽐냈다. 어느 남자라도 매료될 수밖에 없는 몸놀림이었다. 특히 마샬 아츠와 태권도가 어우러져 공중에서 시원하게 터지는 발차기를 볼 때마다 저절로 탄성이 나왔다.

성우 역시 마찬가지였다.

전에는 그저 감탄만 할 뿐이었다. 그러나 무술 수련을 하고 난 이후부터 조금씩 따라 하고 있었다. 근육만 가득하던 전과 달리 몸에 탄력이 생겼기 때문이었다.

그는 어느 사이에 고급 기술까지 탐하고 있는 상태였다. 특히 불가능할 것만 같았던 720도 발차기에 처음 성공했을 때 느꼈던 그 짜릿함은 대단했다. 하지만 이곳의 공간은 그리 넓지 않았다. 과연 가능할지 몰랐다.

“흠... 여기는 공간이 조금 좁은데요.”

“그럼 만들어주면 되죠. 뭐해요 어서 테이블 뒤로 빼요.”

추 감독의 말에 모든 스태프가 달라붙었다.

어차피 테이블과 의자는 몇 개 되지 않았기에 공간은 금방 만들어졌다. 그 공간의 넓이를 대충 파악한 성우는 그사이에 몸을 풀며 신발을 벗었다.

“성우 씨. 너무 무리하지는 마요.”

“감사합니다. 감독님.”

고개 숙여 인사한 성우는 자세를 잡았다.

그리고는 제자리에서 뛰어올랐다. 360도 몸을 비틀며 회전하는 백 텀블링이었다. 처음부터 과감한 움직임에 지켜보던 모두가 깜짝 놀랐다.

하지만 정작 더 놀란 것은 성우였다.

그의 발꿈치는 천장에 닿을 듯 말듯 아슬아슬하게 스쳤다. 그러나 깊은 생각을 하고 있을 틈은 없었다. 성우는 발이 바닥에 닿자마자 360도 돌려차기에 들어갔다.

파앗!

허공을 가르는 발차기.

그의 발이 한번 움직일 때마다 소리가 내부에 울렸다. 마치 힘차게 빨래를 털 때 나는 소리와 흡사했다. 그 발차기를 하며 성우는 신축성이 좋은 바지를 입고 나온 것이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마지막 하이라이트.

720도 발차기까지 깔끔하게 차내며 바닥에 떨어졌다. 그리고 다시 일어난 성우는 옷맵시를 바로 잡았다. 그의 상의는 이미 반쯤 풀어져 있었다. 더구나 몸을 비틀며 발차기를 해서인지 목 바로 아래의 단추 하나는 떨어져 버렸다.

‘이런··· 적당히 할 걸 그랬나?’

그가 그렇게 정리를 하는 사이.

오디션 장소에 있는 이들은 자신이 도대체 뭘 본 것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갑자기 성우가 하늘을 막 날아다니던 것만이 기억에 남아 있었다. 워낙 순식간이라 눈을 깜빡이는 것마저 잊을 정도였다.

“와아! 대박이다.”

“저게 가능한 거야? 이소룡이 환생한 지 알았네.”

“혹시 태권도 국가대표였나? 무슨 발차기가 저렇게 현란해?”

흥분한 스태프들의 목소리.

그 덕분에 오디션 현장은 왁자지껄해졌다.

그도 그럴 것이 특히 여자 스태프들이 가장 흥분하고 있었다. 하얀 셔츠 틈으로 보이던 근육은 심쿵을 유발시켰다. 벗고 있을 때보다 더 섹시했다. 짐승남이 뭔지 제대로 보여준 성우였다.

그때 문이 열렸다.

담배를 피우러 나갔던 이들이 돌아온 것이었다.

그런데 나갈 때보다 어째 한 명이 더 늘어나 있었다. 그것을 본 모든 스태프가 이구동성으로 인사하며 그를 반겼다.

“안녕하세요.”

“오셨습니까!”

그것은 추 감독과 서 작가도 마찬가지였다.

제아무리 감독이라도 무시할 수 없는 존재. 이번에 네 번째 천만 관객을 목표로 하는 조강철이 들어선 것이었다. 그는 이미 주연으로 확정된 상태였다.

“어! 오늘 못 오신다고 하셨잖아요.”

“어떻게 시간이 됐네. 오디션은 잘 돼가?”

“아직 다 뽑지는 못했는데 흑표 역할은 찾은 것 같아요.”

“정말? 그 역할은 가능하면 대역 안 쓰고 촬영하고 싶다며? 그런 배우가 있어?”

조강철은 연달아 질문을 던졌다.

그런 그를 향해 추 감독은 웃으며 그를 카메라 뒤편으로 불렀다.

“일단 이것부터 봐 보세요. 프로듀서님도 어서 와요.”

그리고 성우가 조금 전에 보여 줬던 것을 조강철과 프로듀서에게도 보여줬다. 그러자 서 작가를 비롯한 모든 이들이 조감독의 주변에 모였다. 물론 직접 본 그들이지만, 화면에 어떻게 담겼는지 궁금했기 때문이었다.

화면 안에 있는 성우.

그는 1초도 쉬지 않고 점프와 발차기를 이어갔다.

마치 공중에서 부양하고 있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하지만 정작 당사자인 성우는 그 당시 무척 불만스러웠다.

제대로 뛰어오를 수 있는 높이가 아니었다.

그래서 수직보다는 수평적인 움직임이 더 강했다. 덕분에 그는 화면 밖에서 안으로 그리고 안에서 밖으로 순식간에 사라졌다 나타나고 있었다.

“이거 뭐야? CG야?”

어이없는 표정으로 조강철이 주변을 둘러보며 물었다. 그것은 모든 스태프의 마음과 동일했다. 정작 성우는 그를 보며 멍하니 서 있을 뿐이었다. 그는 성우에게 있어서 연기 인생의 롤모델이라 할 수 있었다.

‘와 대박! 조강철을 코 앞에서 보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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