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미친 재능의 탑스타-23화 (24/161)

광끼 -23

강훈은 잠자코 이야기를 듣기만했다.

어느 정도 듣고나서야 오만석이 생각하던 구상이 그려졌다. 크게 보면 만석의 기획은 크게 나쁘지는 않았다. 물론 그 기획을 모두 이뤄내려면 재계약은 당연히 필요했다. 1~2년 안에 그 모든 것을 해내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래서 다음 단계가 뮤지컬 배우?”

“네 일단 연극과 가장 비슷하니까요.”

만석이 봤을 때 연극 못지 않게 뮤지컬에서도 성우는 크게 성공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물론 그것이 생각보다 쉬운 일은 아니었다. 연극과 달리 춤과 노래 모두 능해야 가능한 일이었다.

“그런데 노래 못한다고 했잖아.”

“저도 그 정도인지는 몰랐죠. 그래도 개선의 여지는 있다고 봐요.”

“개선이 가능하다고?”

강훈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게 가능한 문제인가 싶은 그였다.

음치가 하루이틀만에 개선되는 것도 아니었다. 제아무리 좋은 선생을 붙여도 한계는 분명 있었다. 트레이닝을 받아봐야 조금 나아질 뿐이었다. 뮤지컬 무대에 오를 수 있을 수준이 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영역이었다.

“그게 가능하겠어?”

“성우면 왠지 가능할 거 같다는 예감이 들어요.”

“허허! 그 녀석 말이라면 팥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도 믿을 녀석이네.”

그만큼 만석의 믿음은 상당했다.

그는 성우의 잠재력을 무한대로 보는 것 같았다.

하지만 강훈으로서는 전혀 이해가 되지 않았다. 평소 냉철하던 만석의 모습은 어디로 갔는지 모를 일이었다.

“형이 그 녀석 춤 추는 거를 못 봐서 그래요.”

“춤은 잘 춘다며?”

“아니요. 처음 2시간 동안 완전히 몸치였는데 갑자기 확 바뀌더라고요.”

“그거랑 노래는 조금 다르지. 성대는 기본적으로 타고나는 거 알잖아.”

“조금만 더 시간을 줘 보죠. 겨우 2시간 트레이닝 했던 것이 전부에요.”

만석의 요구는 타당했다.

강훈은 그것마저 거부하지는 않았다.

어차피 보컬 트레이너는 회사에서 고용해 놓은 상태였다. 그것도 다른 회사와 달리 파트 타임이 아닌 전속이었다. 직원을 최대한 이용하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뭐 그건 그렇고 일단 여기로 불러 봐. 그것 말고도 할 이야기가 있으니.”

“어떤 이야기인데요?”

“내가 그런 것도 하나하나 보고해야 하냐?”

“아니죠! 아닙니다.”

만석은 어떤 이야기인지 궁금했다.

그러나 굳이 이자리에서 묻는 것은 피했다.

괜히 신경이 날카로워진 대표를 건드려서 좋을 일이 없었다. 강훈이 그에 대해서 잘 알듯이 만석 역시 강 대표의 성격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그저 묵묵히 핸드폰을 꺼내 성우에게 전화를 걸었다.

*

파아앗~! 팟!

이것은 입으로 내는 소리가 아니었다.

성우의 두 주먹과 발이 격하게 움직이며 나는 소리였다. 몸이 한 차례 움직일 때마다 옷자락이 펄럭이며 소리가 허공에 퍼져나갔다. 그런 그의 몸놀림은 제법 모양새가 갖춰져 있었다.

얼마나 그렇게 몸을 움직였을까?

얼굴에 흥건해진 땀방울이 바닥에 뚝뚝 떨어졌다.

그제야 성우는 움직임을 멈췄다. 최근 그가 하던 운동의 종류가 바뀌었다. 예전에는 근육을 키우는 것이 위주였으나 지금은 무술 단련에 가까워졌다. 이게 뭔짓인가 싶은 그였다.

“이제 만족하냐?”

-아직 한참 부족하지만 휴식도 중요하다네.

“어후. 너희 때문에 내가 죽겠다.”

-능력을 가져다 썼으면 소원 하나 쯤은 들어줘야지.

성우는 그말에 이가 갈렸다.

지난 주말에 두부의 꼬드김에 넘어간 자신을 탓해야 했다. 그날 이후부터 두부는 장군의 소원이 있다며 그를 계속 괴롭혔다. 생전에 무관이었다던 그의 무예를 계승해달라는 것이었다.

자신의 대에서 실전된 죄가 크다나?

더구나 아직 그 장군이라는 무사귀의 이름조차도 모르고 있는 성우였다. 거기에 더불어 지금 배우고 있는 이 무술 역시 이름조차 알려주지 않고 있었다. 신비주의 컨셉인지 뭔지 도통 알 수 없엇다.

처음에는 격하게 거부했던 성우였다.

하지만 그가 이렇게 무술 훈련에 나서게 된 이유는 하나밖에 없었다. 두부가 또 다시 성불을 거론한 것이었다. 확실히 눈치 빠르고 언변이 좋은 두부였다. 성우의 가장 취약한 부분을 건든 것이었다.

‘하나라도 더 없애자.’

자신의 안에 들어있는 무사귀.

그것들이 도대체 몇이나 있는지 성우도 모른다.

하지만 해솔의 성불 이후에 작은 희망이 있었다. 하나씩 없애다 보면 언젠가는 정상으로 돌아갈지 모른다는 것이었다. 일단 젊다는 것이 최대의 무기였다. 그리고 내심 이번에 또 성불을 하면 자신에게 어떤 선물을 남길지 기대가 되었다.

-땀 식기 전에 다시 시작하래.

“조금만 더 쉬자. 덥다 더워!”

-몸이 달아 올랐을 때 더 움직여야한데.

그나마 다행인 것도 있었다.

보컬 트레이닝 당시에 두부의 두 번째 제안을 거절한 것이었다. 그것마저 그를 괴롭혔다면 폭발했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내심 아예 이 상황이 싫은 것만은 아니었다.

파팟! 팟!

경쾌하게 허공을 가로지는 주먹.

그 안에서 느껴지는 힘은 태산이라도 뚫어낼 것 같았다. 이게 무슨 조화인지는 알 수 없었다. 그러나 확실히 무사귀의 소원을 들어주면서 그들이 생전에 가졌던 능력이 이전되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또 다른 하나.

장군이라는 그 존재가 알려준 무술.

그것을 처음부터 끝까지 한 차례 하고 나면 기분이 좋아졌다. 죽도록 힘들던 몸도 조금 상쾌해지는 느낌이었다.

뭔가 충만한 느낌이랄까?

이러다 영화에 나오는 것처럼 장풍도 날리는 무림의 고수가 되는 거는 아닌가 싶었다. 그러면 그들처럼 막 날아다니고 그러는 건가? 그런 생각을 할 무렵 두부가 끼어들었다.

-그럴 일은 없어. 소설을 너무 많이 읽었구나?

“내 생각은 읽지 말라고 했지!”

-아차~ 나도 모르게 그만.

성우가 두부를 쪼으려던 찰나.

바닥에 고이 모셔놨던 핸드폰이 울리기 시작했다.

그는 허리숙여 집어 올리며 두부를 향해 잠시 후에 두고 보자고 으르렁거렸다. 하지만 액정 위에 뜬 만석의 이름을 보고 의아했다. 오늘은 딱히 연락올 이유가 없었다.

“여보세요?”

*

만석의 전화를 받은 후.

성우는 바이올렛 사옥으로 향했다.

입구를 지키는 경비 아저씨가 그의 얼굴을 알아봤다. 몇 번 보았다고 알아봐주시는 것이 고마워 성우는 깍듯하게 인사드리고 5층의 회의실로 들어섰다. 그곳에 들어서자 강훈 대표와 오만석 실장이 기다리고 있었다.

“어서와요.”

“안녕하세요. 대표님.”

“왔어? 여기 앉아.”

만석은 자신의 건너편을 가리키며 말했다.

성우는 그런 그의 말에 테이블 너머 그 자리로 향했다. 그가 자리에 앉자 강훈 대표는 예상 외의 주제를 꺼내 들었다.

“위령탑을 세우는 일 먼저 이야기할게요. 인허가는 끝났고 공사는 다음 달 말 정도에 진행될 예정이에요.”

“제가 한참 어린데 편하게 말 놓으세요. 대표님.”

“저는 이게 편해요. 나중에 조금 더 긴 시간 함께 지내면 제가 알아서 놓겠습니다.”

강훈의 말에 성우는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쨌든 어려운 부탁인데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솔직히 이거 무척 힘들었어요. 그나마 회사와 성우 씨 이름으로 기증하겠다고 빡빡 우겨서 겨우 진행된 거에요.”

“역시 대표님은 다르시군요. 제가 알아봤을 때는 담당 공무원이 콧방귀도 안 뀌던데요.”

“칭찬 고맙습니다. 위령비 디자인은 전에 성우 씨가 골랐던 것으로 준비 중이에요.”

강훈과 성우의 대화.

그것을 듣고 있던 만석은 내심 혀를 내둘렀다.

대표가 그 이야기를 먼저 꺼낸 이유가 짐작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현재 성우를 향해 자신에게 빚진 것이 있다는 것을 인지시키고 있었다. 그러는 사이 강훈은 오늘 그를 불러낸 진짜 이유를 설명했다. 그러나 말이 완전히 끝나기도 전에 성우의 대답이 나왔다.

“그것 때문에 부르신 거면 저의 대답은 정해져 있어요.”

“어떤 대답인가요?”

“아이돌 그룹에 합류할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그것이 제 대답입니다.”

성우의 대답은 단호했다.

그런 그의 말에 만석은 내심 환호성이 터졌다.

확실히 그의 예상에서 한치도 벗어나지 않은 답이었다. 사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둘이 지난 주말에 점심을 먹으며 한번 나눴던 것이었다. 물론 차이는 있었다. 그때의 성우는 약간이나마 고민을 했었다.

“이유라도 알 수 있을까요?”

“뭐 특별한 이유가 있어야하나요.”

“아니요. 그런 거는 아니죠.”

“일단 지금 완성되어 있던 그룹에 들어가는 것도 꺼림찍해요. 그리고 저는 무대 위에서 연기하는 것이 훨씬 더 좋습니다. ”

강훈은 입이 근질거렸다.

가수가 오르는 곳도 무대라고 하려다 참았다.

그가 말하는 무대가 어떤 것인지 뻔히 아는데 괜히 말장난을 하는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꼭 묻고 싶은 질문은 따로 있었다.

“그럼 제가 하나 더 물어도 될까요?”

“그러시죠. 대표님.”

“성우 씨는 어떤 연예인이 되고 싶은 건가요.”

강훈의 질문에 모처럼 성우는 망설였다.

그런 그의 모습을 만석은 이채롭게 바라봤다.

지금까지 오면서 그런 모습을 처음 보는 것이었다. 한동안 입을 닫고 있던 성우 서서히 입을 열었다. 그가 요즘 막연하게 꿈꾸던 소망 하나를 처음으로 입 밖으로 꺼내는 것이었다.

“저의 꿈은 브로드웨이에 서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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