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미친 재능의 탑스타-22화 (23/161)

광끼 -22

바이올렛 엔터테인먼트 5층 회의실.

그곳에 앉은 이들은 토론이 한창이었다.

그 주제는 올해 데뷔를 앞둔 와일드에 대한 것이었다. 결론 없이 계속 제자리를 맴도는 이야기에 마침표를 찍은 것은 바이올렛의 대표인 강훈이었다.

“올해 안에 데뷔는 가능한 거죠? 벌써 7월입니다.”

“아직은 조금 애매합니다. 조금만 더 시간을 주실 수 없을까요?”

“처음에 이 프로젝트 시작하면서 드린 기간은 올해 끝납니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이제는 결과물을 보여주셔야죠.”

“그렇기는 한데...”

아이돌 파트를 책임지는 윤종범 실장.

그의 안색은 무척이나 어두워지고 있었다.

냉정하게 말하는 강훈 대표의 말을 반박할 수 없었다. 아이돌 데뷔를 위해 바이올렛에서 기울인 노력은 적지 않았다. 더구나 이 순간을 위해 자신을 비싼 연봉에 스카우트해온 것이었다. 스카우트 당할 당시만 해도 두려울 것이라고는 없던 그였다.

한때 아이돌 제조기라 불리던 그였다.

그의 손끝에서 탄생한 아이돌은 무척 많았다. 그 대표적인 예가 어느 사이에 글로벌 아이돌로 자리 잡은 ’야차’였다. 안 실장의 말을 기다리던 강 대표는 문제의 해결책을 찾고 싶었다.

“뭐가 문제인가요?”

“일단 가장 큰 문제가 센터를 맡을 멤버가 없다는 것이죠.”

“트레이너분들 역시 동의 하나요?”

강훈은 테이블에 앉은 이들을 둘러봤다.

하지만 아무도 시원하게 대답하지 못하고 있었다.

보컬 트레이너 예지민

안무 트레이너 구한솔

와일드의 매니저인 공현철

세 사람은 그저 꿀 먹은 벙어리처럼 앉아 있을 뿐이었다. 특히 예지민과 구한솔은 입장이 무척 난처했다. 그들은 윤 실장이 피아노 엔터테인먼트에서 끗발을 날릴 때부터 함께 팀을 이뤄온 멤버였다. 결국, 그나마 세 사람 가운데 가장 연장자인 구한솔이 입을 열었다.

“그것은 윤 실장님의 말이 맞는 것 같습니다.”

“최근에 오디션도 여러 번 봤잖아요. 센터를 맡길 그런 인재는 없던가요?”

“짐승돌이라는 컨셉에 맞는 사람은 없었...아!”

구한솔은 말을 하다 멈췄다.

그의 뇌리에는 별안간 유성우가 떠올랐다.

안무 트레이닝에서 특출난 모습과 센터에 세워도 충분히 커버될 외모였다. 특히 표정 연기가 뛰어난 것도 장점이었다. 카메라가 클로즈업을 잡아도 충분히 매력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잠시 생각에 빠져있자 윤종범이 그를 재촉했다. 뭔가 해결책이 있기를 바라는 눈치였다. 그것은 그 자리에 있는 모두가 같은 생각이었다.

“왜 말을 하다가 말아?”

“있기는 한데 이게 좀 애매해서요.”

“누군데요?”

강훈이 답답한 듯 되묻었다.

그러나 한솔은 한동안 대답을 망설였다.

오만석 실장이 관리하는 배우 파트에 속한 배우였다. 쉽게 말을 꺼냈다가 그 뒷감당이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러나 곧 그는 어쩔 수 없이 입을 떼야 했다. 점점 더 냉랭하지는 회의실의 분위기 때문이었다.

“신인 배우 유성우 씨요. 짐승돌 컨셉에도 맞고 춤도 상당히 잘 춥니다.”

그의 말에 보컬 트레이너인 예지민이 고개를 저었다.

유성우라면 그녀 역시 지난 주말에 트레이닝을 해줬다. 그러나 아이돌에 적합한 노래 실력은 결코 아니었다. 제아무리 아이돌이 무대 위에서는 입만 벙긋하며 춤만 춘다고 해도 엄연히 가수였다. 그녀가 당시 들은 성우의 노래는 처참했다. 도저히 기계의 보정이 있더라도 엄두가 나지 않는 수준이었다.

“노래가 영 꽝이에요.”

“뭐 다른 아이돌은 전체 멤버가 다 노래를 잘 하나?”

“그건 한솔이 말이 맞아. 어차피 보컬은 따로 있잖아.”

“에이~ 그래도 그건 좀 아니네요.”

윤 실장은 한솔의 편을 들었다.

그가 직접 본 것은 아니지만, 그 유성우라는 친구가 해결책이 될 수 있다면 쌍수를 들어 반겨야 할 입장이었다. 그런 그의 반응에 예지민은 떨떠름하게 입을 다물었다.

강 대표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가 유성우를 모를 리는 없었다.

얼마 전에는 소속 배우의 기 좀 살려주라는 윤 실장의 말을 듣고 직접 ‘악의’의 공연도 보고 온 그였다. 그날 강 대표는 만석이 꼭 잡아야 한다던 이유를 찾아낼 수 있었다.

무대 위에서 빛나는 존재.

그날 강훈은 오만석 못지않게 그의 연기에 반했다. 그래서일까? 극단 작두의 멤버를 초대해 그날 저녁 회식 자리도 직접 마련해준 그였다.

“만약 센터에 세울 수 있어도 오 실장이 가만있겠어요?”

“다 같은 소속 아닌가요. 우선 아이돌로 데뷔하고 연기돌로 변신하는 것도 드문 예가 아닙니다.”

“그렇기는 한데 빼내 가는 거 알게 되면 버럭할 게 뻔한데.”

오만석의 반응이 예상되는 강훈이었다.

처음부터 아이돌 프로젝트에 반대하던 그였다.

그런데 자신의 책임하에 데리고 온 배우를 거기에 넣으라면 펄쩍 뛸 것이 분명했다. 이미 십여 년 이상 바닥부터 여기까지 함께 온 둘이었다. 안 봐도 뻔한 그림이 강훈의 머릿속에 그려졌다.

그러나 윤종범 실장은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적어도 테스트라도 해보게 해달라며 끈질기게 강 대표를 설득했다. 그런 그의 절실한 설득 때문일까? 한동안 고민하던 강 대표는 결국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

30분 후.

만석은 회의실에 들어왔다.

한동안 그는 대표와 윤 실장의 이야기를 잠자코 듣기만 했다. 대충의 이야기를 들은 그는 별안간 회의 테이블을 내리치며 소리쳤다.

“아니! 성우를 아이돌 시킨다고요?”

솥뚜껑 같은 그의 손끝에서는 굉음이 터졌다.

덕분에 전기에 감전된 듯이 찌릿함이 밀려왔다. 그러나 그는 그런 것에 신경 쓰지 않았다. 뛰어나다고 표현하기도 어려운 유성우였다. 그런 그를 그것도 그룹의 일개 멤버로 쓰는 것은 용납할 수 없었다. 그런 그의 모습에 강 대표는 헬쑥해졌다.

모처럼 보는 오만석의 분노였다.

이럴 때는 자신이 아무리 대표라도 좀처럼 진정시키기 어렵다는 것은 잘 알고 있는 그였다. 하지만 윤 실장은 그것은 몰랐다. 그는 계속 만석을 설득시키려 안달이 나 있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다른 트레이너와 매니저는 이미 내보낸 뒤라는 것이었다. 실장끼리 다투는 것을 보여줄 필요는 없었다.

“테스트만 받게 하자니까요. 확정 지어진 것은 없어요.”

“싫다고요. 윤 실장님 아이들 제가 터치하는 거 봤어요? 없잖아요. 왜 연기 잘 하고 있는 녀석한테 이러십니까?”

“아니 솔직히 말해서 배고픈 연극배우보다는 아이돌이 더 좋잖아요. 부와 명성 금방 움켜쥘 수 있어요! 왜 마다하는지 모르겠어요.”

“됐습니다! 배고파 굶어 죽어도 무대 위에서 죽을 녀석이에요. 테스트 제안은 못 들은 것으로 하겠습니다.”

그런 만석의 말에 종범은 어이가 없었다.

지금 이 시대에 연극배우라니 딱 굶어 죽기 쉬운 지름길이었다. 연극부터 기본기를 쌓아 드라마나 영화로 흘러간다?

그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대부분 보조출연 수준의 조연에 불과했다. 제아무리 출중한 연기력이 있다고 해도 그 기회를 잡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이었다.

반면에 아이돌은 달랐다.

어느 정도 이름만 알려지면 못 불러서 안달이 난다.

이른바 티켓 파워 때문이었다.

폭망한 아이돌이 아니라면 무명의 연극배우보다 훨씬 더 좌석 판매가 쉬워 요즘에는 연극계까지 노크하고 있었다. 확실히 출발 지점이 일반적인 배우와 다르다. 그런데 왜 마다하는지 모를 일이었다. 유성우라는 배우를 걱정하는 것이라면 오히려 부탁해야 할 것은 자신이 아니었다.

“그래도 본인 의사는 물어봐야 하는 거 아닌가요?”

그 말에 강훈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제일 깔끔한 것이 본인의 의사를 듣는 것이었다.

“일단 윤 실장님은 나가 보세요.”

“네? 아직 이야기 안 끝났는데요.”

“둘이 할 이야기가 있습니다.”

단호한 강 대표의 말에 윤 실장은 꼬리를 내렸다.

어찌 되었든 이번 일의 시작은 자신과 그에 속한 파트에서 발생한 문제였다. 그가 밖으로 나서자 강 대표는 다리를 꼬고 앉아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었다.

“대표님. 저는 정말...”

“쉿! 5분만 지껄이지 말고 그냥 있어.”

“대표님!”

“5분이라고 했다.”

5분이라는 시간이 참 오묘했다.

평소 같으면 쏜살같이 지날 그 짧은 시간이었다. 하지만 만석에게는 무척 길게 느껴졌다. 그 덕분일까? 그를 달구게 했던 거친 성미도 점차 가라앉았다.

“이제 좀 진정되냐?”

“죄송합니다. 대표님.”

“만석아. 지금은 둘만 있으니 편하게 이야기하자.”

오만석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런 그의 얼굴을 보며 강훈이 입을 뗐다.

“왜 테스트도 못 받게 하냐. 거절해도 본인이 직접 해야 하는 거 아냐?”

“그게···”

“그리고 실장 타이틀 뗄래? 아무리 네가 책임진다는 전제하에 데려왔어도 로드 역할까지 하는 건 그렇잖아. 회사에 배우가 유성우 하나뿐이야? 신미령이나 다른 배우는 신경도 안 쓰여?”

“죄송해요.”

강훈의 지적은 하나같이 틀린 것이 없었다.

그리고 그것들은 모조리 만석의 심장에 꽂혔다. 좀처럼 보기 힘든 재능을 가진 배우라는 생각에 너무 들떠 있었다. 그런 만석에게 강훈은 쐐기를 꽂아 넣었다.

“너는 네 배우도 못 믿어? 내가 그렇게 가르치진 않았는데.”

강훈의 말을 듣고 오만석은 자신의 실수를 깨달았다.

자신이 굳이 이렇게 치고받으며 싸울 필요가 없었다. 그는 성우의 선택이 어떤 것인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이미 성우의 본심을 알고 있는 그였다.

“아니요! 저는 성우가 바른 선택을 할 거라 믿습니다.”

강훈은 의외라는 눈빛을 보냈다.

그는 만석을 보며 담담하게 말했다.

“난 만석이 너를 믿어. 하지만 아직 그 녀석은 믿을 수 없어. 무슨 말인지는 알지?”

“그렇지만 성우 그 녀석의 재능은 아시잖아요.”

“그래 나도 잘 알지. 그 또래 가운데 아니 국내 배우 중에 그 녀석만큼 소름 돋는 연기를 하는 배우는 거의 없어. 하지만 부와 명성 앞에서는 어떤 선택을 할지 모르는 거야. 그러게 왜 그런 트레이닝을 시켰어?”

“저 나름대로 계획이 있었죠.”

만석은 억울한 듯 말했다.

그런 그의 말에 강훈은 도대체 무슨 꿍꿍이였는지 관심이 갔다. 그는 상체를 앞으로 기울이며 나지막하게 그 계획을 캐묻기 시작했다.

“그래서 그 계획이 뭐였는데?”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