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끼 -21
남자 아이돌 그룹 ‘와일드’
그들은 곧 데뷔를 앞두고 있었다.
2년 가까이 연습생 시절을 동고동락한 그들이었다. 그런데 데뷔를 앞두고 지금 이 순간에 낯선 사람이 들어온다? 그건 다 된 밥에 수저만 얹는 거나 마찬가지라 할 수 있었다. 특히 리더인 JS의 경계심은 어느 때보다 강했다.
“제스야 걱정되냐?”
“그렇게 부르시지 마시라니까요. JS(제이에스)입니다.”
“너무 길어! 안 그러면 본명인 진순이라 부른다. 큭큭.”
한솔의 말에 제스는 씩씩거렸다.
자신의 본명을 어지간히 싫어하는 그였다. 부모님이 왜 그렇게 이름을 지어줬는지 아직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오히려 그 이름 때문에 더 남성적으로 보이기 위해 근육을 단련해왔던 것일지도 몰랐다.
그런 그의 모습에 한솔은 슬쩍 웃었다.
그리고는 다시 성우를 바라봤다. 굵은 땀방울을 흘리며 성우는 여전히 격렬하게 춤을 추고 있었다. 처음과는 완벽하게 다른 모습이었다.
안무의 후반부도 막힘이 없었다.
몇 번 보여주지도 않았는데 그 모든 것을 다 기억하고 있었다. 스펀지처럼 흡수한다는 말이 전혀 어색하지 않을 정도였다. 당연히 그런 성우를 트레이닝을 해주는 것은 안무 트레이너인 그로서도 상당히 재미있었다.
‘정말 와일드의 멤버로 들어와도 될 실력이네.’
몸짱 아이돌이 컨셉인 와일드.
그들과 비교해도 성우의 몸은 모자람이 전혀 없었다.
땀이 흘러 티셔츠가 상체에 딱 달라붙은 덕분에 근육의 굴곡이 눈에 띄었다. 그 안에 꿈틀거리는 야성미는 남자인 그가 봐도 대단했다.
더구나 표정 연기도 일품이었다.
확실히 배우는 다르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평소 표정도 춤의 일부라 말하던 그의 주장과 일치했다. 슬쩍 장난기가 든 한솔은 옆에 서 있는 제스를 바라보며 물었다.
“저 친구 얼마나 춤을 춘 거 같냐?”
“그걸 제가 어떻게 알아요. 그래도 어디서 춤 좀 추다 온 거 같은데요.”
“그렇게 보여?”
“저희 모르게 며칠 동안 따로 안무 봐주셨죠?”
“푸훕!”
제스는 그 웃음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한쪽 구석에서 입을 막고 웃고 있는 오만석 실장을 뒤늦게 발견했다. 그와 멤버는 다급하게 고개 숙여 인사했다. 긴 연습생 기간을 했던 그들이기에 아무리 배우 파트라 해도 모르는 직원은 거의 없었다.
“안녕하세요. 실장님 계신지 몰랐어요.”
“요즘 연습은 잘 되어가고 있지?”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그래 올해 안에는 꼭 데뷔하자.”
만석이 별생각 없이 던진 말의 파장은 상당히 컸다. 와일드 멤버 전체에 웃음꽃이 피었다. 회사에서 오 실장의 위치는 결코 낮지 않았다. 그런 그가 데뷔를 언급한 것이다.
정말 그 꿈같은 순간이 코앞에 다가온 것 같았다. 힘들고 서러웠던 연습생 시절도 이제 거의 끝났다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그런 와일드 멤버의 기대에 초를 친 것은 한솔이었다.
“실장님 얘네 데뷔하려면 아직 멀었어요. 괜히 들뜨게 하지 마세요. 너희는 뭐해? 왔으면 연습해야지. 저기 옆에서 같이 춰.”
“저 친구랑 같이요?”
“성우가 왜 너랑 친구냐. 쟤 군필이라 너희보다 서너 살은 더 많은데.”
만석은 제스의 말을 지적했다.
그것을 들은 한솔 역시 깜짝 놀랐다.
성우의 외모만 봤을 때 와일드 멤버와 비슷할 것이라 여겼던 그였다. 더구나 군필이라니 전혀 상상도 못 했다.
잠시 후.
성우의 곁에 선 와일드의 다섯 멤버.
그들 여섯 명은 음악에 맞춰 격렬하게 춤을 추고 있었다.
성우라는 존재를 의식해서일까?
그들의 춤은 평소보다 더 과격하고 야성미가 넘치고 있었다. 오히려 너무 파워 넘치는 춤을 추다가 다치지 않을까 싶어 오만석이 우려를 표할 정도였다. 하지만 그 가운데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그들이 아닌 성우였다.
“성우 씨는 배우보다 아이돌이 더 맞는 거 같은데요.”
“쟤 연기하는 거를 못 봐서 그래. 배우가 천직이야.”
“그래요? 저렇게 웃고 있는데요?”
한솔의 말에 만석은 거울을 바라봤다.
그곳에서 춤을 추고 있는 이들 가운데 유일하게 미소를 짓고 있는 이는 성우 단 하나였다. 처음에 춤은 못 춘다고 한 것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로 흥이 올라 즐거워하는 표정이었다. 만석 역시 그것을 보며 잠시 고민이 될 정도였다.
“아이돌이 될 가능성은 있고?”
“아직 모르죠. 노래나 랩은 잘 한데요?”
“그건 확인해봐야... 아차! 늦었다.”
만석은 시계를 보고 깜짝 놀랐다.
정신없이 보다 보니 10시로 잡았던 약속을 잊고 있었다. 벌써 시계는 10시 10분을 넘어가고 있었다. 그의 반응에 한솔은 음악을 멈췄다.
“성우야! 어서 가자.”
“어딜요?”
“10시에 다른 트레이닝 예약이 되어 있었는데 늦었어.”
그 말에 성우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지만 가야 된다는 말에 만석이 던진 수건으로 땀을 닦아냈다. 그리고는 2시간에 불과하지만 춤을 알려준 한솔에게 정중하게 인사를 하고 만석의 뒤를 따랐다. 그런 그의 뒷모습을 보며 한솔은 중얼거렸다.
“확실히 탐나기는 하네.”
*
댄스 수업 이후.
성우는 만석과 향한 곳은 바로 아래층이었다.
그곳에서 그는 두 시간 가까이 노래 트레이닝을 받았다. 하지만 처음 춤을 췄던 때처럼 성우는 음치와 박치가 무엇인지 확실히 보여줬다. 하지만 만석은 아까와 달리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저러다가 또 확 바뀔 수도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혹시 현자 타임이라도 필요해?”
“네? 무슨 말인지 모르겠는데요.”
“요즘 얘들 이런 말 많이 쓰던데 모르나? 아까도 조금 시간을 주니 확 달라지던데 혼자만의 휴식이 필요하냐고.”
그 말에 성우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나 다를까 두부가 또 은밀히 제안을 해오기는 했다. 그러나 그 제안은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그런 그의 단호함에 두부가 조금 삐진 것 같았지만, 크게 신경 쓰이지는 않았다.
솔직히 그럴 여건이 되지 않았다.
해솔에게 무대 위에서 몸을 맡긴 이후에도 느낀 것이지만, 무사귀들이 몸을 통제한 이후에는 진이 쏙 빠지는 기분이었다. 온몸에 힘이 없는 상황에서 무리해서 춤을 계속 췄으니 정상일 리가 없었다. 하여튼 그런 상태이기에 한 번 더 그런 모험을 할 수 없었다.
“조금 무리했나 봐요. 힘드네요.”
“하긴 그렇게 격하게 춤을 췄으니. 그럼 오늘은 여기까지 할까?”
“그러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오후에 무대 위에도 서야 하니까요.”
오후에 무대에 오를 생각을 하니 성우는 아찔했다. 더구나 오늘은 토요일이라 2회 연속 공연이었다. 그나마 그가 하는 연극이 정적인 것이라 다행이라 여겼다. 만약 뮤지컬 같은 것이라면 무대 위에 오를 엄두도 나지 않을 정도였다.
“그럼 점심이나 먹자. 내가 차로 데려다줄게.”
“괜찮아요. 지하철 타면 금방인데요.”
“그러면 내가 너희 단장한테 미운털 박힐걸. 뭐 먹고 싶은 거 있어?”
만석의 말에 성우는 골똘히 생각했다.
하지만 딱히 떠오르는 것은 없었다. 오히려 그 말에 격렬하게 반응한 것은 두부였다. 녀석은 이번이 기회라고 여겼는지 평소보다 더 많은 요구를 해왔다.
-장군이가 족발이 어떠냐며 묻는데?
-싫어? 그러면 한우는 어때? 아니면 회도 어떤 맛인지 궁금하다네.
-또 쌩깐다 이거지. 췌!!!
한우며 족발 등은 그 역시 좋아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점심으로 먹기에는 조금 부담되었다. 바이올렛 건물 내에 있는 샤워실에서 고심 끝에 그가 택한 메뉴는 여름에 어울리는 메밀면이었다. 식당에 앉아 음식이 나오자 만석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이걸로 괜찮겠어? 뭐라도 더 시킬까?”
“너무 배불러도 연기하는 데 불편하더라고요.”
“하긴 포만감이 가득하면 조금 그렇지.”
“이거 먹고 단원분들하고 저녁에 거하게 먹으면 되죠.”
“아니 매일 술 마시면서 그 몸은 어떻게 유지하는 거야?”
만석은 신기한 듯 성우를 바라봤다.
극단이 모두 그렇듯이 무대를 마치고 마시는 술이 상당했다. 거의 하루도 안 빼놓고 마시는 극단도 여럿 알고 있는 그였다. 작두라고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런데도 성우의 몸매는 나빠지기는커녕 더 좋아지고 있는 것 같았다.
“오전에 한두 시간씩 운동해요.”
“이야~ 부지런하네. 나도 옛날에는 이런 두툼한 뱃살은 없었는데. 세월 앞에는 장사 없네.”
“실장님도 운동하시면 쏙 빠지실 거에요.”
“혹시 말이야. 트레이닝은 계속 받을 생각 없어?”
성우는 의아한 눈으로 만석을 바라봤다.
그리고는 입에 걸쳐 놓은 면을 후르륵 들이키듯 입에 넣었다. 설마 이런 트레이닝을 더 하라고 할 줄은 전혀 예상치도 못한 그였다.
“쩝쩝. 매일이요?”
“그럴 필요까지는 없고 1주일에 3~4번 정도.”
“연기를 배우라는 말은 아닌 거 같은데요.”
“왜 필요해?”
성우는 생각할 것도 없이 고개를 저었다.
조금 건방지게 보일지는 몰라도 그럴 필요는 없어 보였다. 그에게는 무척 훌륭한 선생님이 따로 있었다. 해솔이 무대 위에서 전해준 가르침이 있었고 또 아직 그에게 깃들어있는 유산이 있었다.
“춤하고 노래는 배우면 좋잖아.”
“아이돌 하라는 말은 아니죠?”
“하고 싶은 거야?”
그 말에 성우는 다시 고개를 저었다.
그 역시 무대에 서는 배우였지만 무대라고 모두가 같은 것은 아니었다. 솔직히 아직 깊게 생각해보지 못한 문제였다. 지금까지 살면서 아이돌이 된다는 생각은 단 한 번도 해보지 못한 그였다.
솔직히 아직 엄두가 나지 않는다는 것이 더 맞을지 몰랐다. 하지만 그가 모처럼 바이올렛에 다녀간 그 날 이후부터 아이돌 그룹 와일드와 성우의 운명은 묘하게 엮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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