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미친 재능의 탑스타-17화 (18/161)

광끼 -17

어둠이 가득한 공간.

덥수룩한 머리를 한 남자.

그는 좁은 방안에서 넋 놓고 한 곳만 바라봤다. 그의 시선이 닿은 곳은 두 개의 거대한 모니터가 놓여 있었다. 그곳에서는 거듭해서 하나의 영상이 플레이되고 있었다.

“와 미쳤다.”

몇 번을 봐도 새로웠다.

과연 이것을 만든 것이 자신이 맞단 말인가? 그것이 스스로도 의심될 정도였다.

30대 초반의 박지원.

충무로에서 예고편 제작의 달인이라 불리는 존재가 그였다.

그가 보고 있는 것은 정준 감독의 신작 [귀신의 집]이었다. 사실 이 작업 의뢰가 들어왔을 당시에는 큰 기대는 없었다. 솔직히 말하면 딱히 하고 싶지 않던 작업이었다. 그 결정적인 이유는 개인적인 친분과 별개로 정준 감독의 영화 스타일은 그와 맞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랬던 그의 생각은 달라졌다.

지금까지 몇 번이나 공포 영화의 예고편 작업을 해봤지만, 이번 만큼 완성도가 높은 결과물이 나온 적은 없었다. 만약 한국에도 ‘골든 트레일러 어워드’ 같은 시상식이 있다면 상을 받을 자신이 있을 정도였다.

그 결정적인 차이.

그것은 단 하나의 장면에서 벌어졌다.

연기한 배우가 누구인지 몰라도 그 장면을 뺐던 티저 예고편과 넣은 본예고편의 차이는 엄청났다. 2시간에 가까운 런닝 타임을 90초로 압축시키는 예술이라 불리는 장르라지만, 다른 어떤 장면보다 그 1초의 임팩트가 훨씬 셌다.

그것은 팔뚝에 오른 소름이 증명했다.

이런 경험은 그 역시 처음이었다. 몇 번이나 편집 영상을 돌려보며 자르고 붙이다 보면 무감각해지기 마련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확실히 달랐다.

“와··· 이거는 정말 다시 봐도 무섭네.”

그렇게 중얼거리며 에어컨을 꺼야 했다.

그리고 곧 핸드폰을 집어 들어 이 영화를 촬영한 정준 감독에게 전화를 걸었다.

“정 감독님. 이거 뭐에요?”

-갑자기 전화해서 뭐가 뭔데? 앞뒤 다 잘라먹고 이야기하지 마.

“아니 씬 3-5에 나오는 장면이요. 그거 왜 티저 만들 때는 안 줬어요?”

정준은 그 이야기를 듣고 웃었다.

어떤 장면을 이야기하는 건지 안 봐도 뻔했다. 특히 그 씬은 자신 역시 애지중지하는 중요 컷 가운데 하나였다.

-하하. 그거 장난 아니지? 역시 너도 딱 보니 꽂혔네. 본예고편 잘 나올 거 같아?

“물론이죠. 지금 본예고편 임시 편집본 나왔는데 보내드릴까요?”

-아니! 근처니까 지금 바로 갈게.

그로부터 20분 후.

그의 작업실에 정준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근처에 있다더니 뛰어 왔는지 들어서며 손수건으로 연신 땀을 닦아내고 있었다.

“나 왔어.”

“빨리 오셨네요. 일단 먼저 보실래요?”

“물론이지. 어떻게 나왔는지 궁금하다.”

정준은 긴장된 표정으로 말했다.

영화 예고편이 성적에 주는 역할은 지대했다.

아무리 재미없는 영화도 호기심이 들게 만들어야 하는 것이 예고편의 덕목이었다. 특히 공포영화에서 예고편의 비중은 엄청났다. 그가 박지원에게 맡긴 것도 그 이유 때문이었다. 그만큼 센스있게 만드는 예고편 감독은 국내에 없었다.

서서히 긴장감을 고조시키는 음악.

그리고 심장이 덜컥 내려앉게 하는 장면 연출. 거기에 스토리 라인까지 완벽하게 녹여내야 했다. 그것은 결코 쉬운 작업이 아니었다.

90초 후.

정준은 입을 다물 수 없었다.

그 역시 박지원 못지않게 충격을 받은 상태였다. 그 짧은 시간 동안 그는 화면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자신이 찍은 것인데도 새롭게 느껴졌다. 영상의 구성 역시 새로웠다.

“대만족! 티저 때보다 훨씬 더 좋다. 어디 손 볼 곳도 없네.”

“그렇죠? 저도 만들어 놓고 다시 손볼 곳을 찾았는데 딱히 없던데요.”

“이거 해준이한테 크게 한턱 쏴야겠네.”

“해준이 형이요?”

“저 장면 찍은 배우를 데려온 게 그 녀석이거든.”

그제야 지원은 무슨 소리인지 이해가 되었다.

그리고 지금껏 궁금했던 그 귀신의 정체를 알고 싶었다. 아무리 봐도 누군지 전혀 알 수 없었다.

“도대체 누구예요? 분장을 해서 전혀 감이 안 오던데요.”

“신인 배우라 당연히 모를 수밖에 없지. 대학로에서 연극하고 있는 친구야.”

“어쩐지 아무리 봐도 모르겠더라고요.”

“이거 신 프로듀서하고 나한테 메일로 보내줘. 바로 회의 들어가야겠다.”

그렇게 말하며 정준은 서둘러 다시 나왔다.

이제 본예고편이 나왔다. 극장에 상영되기 전까지 남은 시각은 그리 많이 남지 않았다.

* * *

오만석이 전화를 준 다음 날.

성우는 대학로 부근의 카페에 앉아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약속 시각보다 조금 일찍 나온 그는 핸드폰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테이블 위에 놓인 요즘 유행한다던 플랫 화이트는 진한 커피 향을 내뿜으며 차갑게 식어갔다.

“그 장면이 이렇게 나왔구나.”

성우는 커피를 마실 생각도 못 했다.

그저 핸드폰으로 계속해서 같은 장면을 돌려봤다.

그 영상은 정준 감독이 방금 보내준 예고편이었다. 처음에는 설마 자신이 나올까 싶었는데 결과는 완전히 반대였다.

-확실히 그때 네 모습은 무서웠어.

‘그게 네가 할 말이냐? 귀신이 귀신을 보고 무섭다니.’

-그래도 예고편에 엄청 많이 나왔네.

두부에 말에 성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예고편이 나오는 90초 동안 그가 나온 장면만 무려 다섯 번이 넘었다. 그만큼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장면으로 사용하고 있는 것이었다. 짧았던 촬영 시간을 생각하면 전혀 예상도 못 했던 상황이었다.

“뭘 그렇게 집중해서 보고 계세요?”

성우는 갑자기 들린 목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그러자 그의 앞에는 어느 사이에 오만석 실장이 다가와 있었다. 그런 그를 보며 성우는 겸연쩍게 웃었다. 이제 두 번째 보는 것인데도 오만석이 무척 친근하게 느껴졌다.

“영화 예고편이요.”

“재미있는 작품인가 봐요.”

“제가 출연하는 장면이 있어서요.”

오만석은 잠깐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이제 막 연극 무대를 통해 데뷔를 한 것으로 알고 있던 그였다. 그런데 영화에 출연했다니 처음 듣는 소리였다.

“영화에 출연했다고요?”

“네. 유해준 선배님이 추천해주셔서 봄에 잠깐 엑스트라로 출연했거든요.”

“아~ 그러셨군요. 혹시 저도 볼 수 있을까요?”

성우는 잠시 망설였다.

아직 예고편이 뿌려지기 전이라 했다. 자신만 보라고 전해준 건데 그래도 되나 싶었다. 성우는 조심스레 안 될 것 같다고 운을 뗐다. 하지만 연예계 경력은 만석이 훨씬 더 많았다.

“그건 별로 신경 안 써도 돼요.”

“왜요?”

“계약서에 문제가 없으면 오늘 사인 하실 거는 맞죠?”

“네. 말씀하신대로 특별히 문제만 없으면요.”

“그럼 성우 씨는 이제 우리 배우가 되는 거잖아요. 기획사에서 소속 배우의 촬영 영상을 미리 본다고 문제 될 거는 없죠. 아니면 사인을 한 이후에 봐도 되고요.”

성우는 그제야 핸드폰은 그에게 건넸다.

그리고 곧 만석은 그 예고편을 바라보며 꼼꼼하게 영상의 구석구석까지 신경 쓰며 바라봤다. 엑스트라라고 말했으니 찾기 어려울 것이라 여겼다. 하지만 90초가 다 지나고 다시 플레이해서 눈을 씻고 찾아봐도 성우의 모습은 찾을 수 없었다.

“혹시 어디서 나오시나요? 제가 놓친 거 같아요.”

그런 그의 말에 성우는 웃을 수밖에 없었다.

역시 귀신 분장 때문에 못 알아보는 것이었다. 성우는 화면 되돌려 자신이 나오는 장면을 정지시켜 그에게 다시 건넸다. 그제야 만석은 성우가 출연한 역할이 어떤 것인지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아~ 이 귀신!”

“못 알아보시는 게 당연하죠.”

“그래도 예고편에는 무척 많이 나오네요.”

“저도 그래서 신기했어요. 촬영은 반나절밖에 하지 않았거든요.”

“조금 아쉽지는 않나요? 사실상 몇 초만 나오는 건데.”

성우는 만석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조금 더 많은 장면에 출연하고 싶은 욕심은 있었다. 잠깐 망설이던 것은 이미 버린 지 오래였다. 계약하겠다고 마음 먹은 것은 본격적으로 배우를 하겠다는 의미였다. 더 높은 곳을 바라보는 것은 당연했다. 그런 그를 향해 오만석은 가방에서 계약서를 꺼내며 자신 있는 목소리로 말했다.

“제 이름을 걸고 반드시 성공시켜 드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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