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끼 -16
만석이 가지고 온 계약 조건.
그것은 바이올렛 엔터의 대표인 강훈의 골치를 아프게 했다. 지금껏 수많은 연예인과 계약했어도 확실히 이런 케이스는 본 적도 들은 적도 없었다.
“그래서 떡잎은 확실해?”
“백 퍼센트 확신합니다. 꼭 잡아야 해요.”
“그 정도야?”
“네! 이미 헤븐 쪽에서도 접촉했던데요.”
강훈은 그 말에 인상을 찡그렸다.
다른 곳은 몰라도 헤븐 컴퍼니라니! 그 쪽에게는 어느 누구라도 뺏기기 싫은 그였다. 지금껏 헤븐과 경쟁하다 뺏긴 배우의 수만 다섯이 넘어가고 있었다.
더 배 아픈 것은 따로 있었다.
그 가운데 이른바 대박이 났다고 할 수 있는 배우가 둘이나 있다는 것이었다. 아마 그 둘만 데리고 왔어도 바이올렛 엔터는 그저 그런 중견 기획사의 포지션에서 벗어날 수 있었을 것이었다.
그것을 떠올리자 속이 쓰려왔다.
강훈은 별안간 테이블을 탁하고 내리쳤다. 갑작스런 돌출 행동에 만석은 깜짝 놀랐다.
“그럼 어떻게든 잡아 와!”
“조건이 골 때린다니까요. 그걸 어떻게 들어줘요.”
“차라리 계약금을 더 달라는 거면 뭐 생각이라도 해볼 텐데. 그 친구 좀 4차원 이런 건가?”
가끔 그런 아이들이 있었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도통 가늠할 수 없는 성격. 그런 아티스트는 어디로 튈지 몰라서 관리하기가 쉽지 않았다. 남들 모두 별거 아니라 생각하는 것에 자존심이 상하고 또 이상한 것에 꽂혀 일을 멀리하는 경우도 허다했다.
“글쎄요. 저는 그렇게 안 보이던데요.”
“하긴 그게 딱 눈에 보이는 것도 아니고.”
“거기 단장한테 한 번 물어볼까요?”
“설마 나쁜 소리 하겠어?”
강훈의 이야기에 만석은 동의했다.
어제 봤을 때도 느꼈지만, 주이호 그 친구가 가장 아끼는 단원이 유성우였다. 지금 가장 애지중지하고 있을 그에 대해 안 좋은 이야기를 할 리가 없었다. 그런 그를 향해 강훈은 재차 물었다.
“그 조건 다시 한번 말해봐.”
그러자 만석은 당시를 떠올렸다.
지금 생각해도 참 어이가 없던 내용이었다.
* * *
하루 전.
만석이 극단 작두를 찾았던 당시.
성우의 조건을 들은 만석은 잠시 자기가 잘못 들은 것은 아닌가 싶었다. 그만큼 성우가 내건 조건은 쉽게 생각할 것은 아니었다.
“진짜 이 조건이면 계약한다고요?”
“네. 조금 이상하죠.”
“엄청 많이 이상하죠!”
만석은 자신도 모르게 언성을 높였다.
정말 계약을 하고 싶기는 한 건지 의심이 될 정도였다. 하지만 이내 자신 못지않게 난감해하는 성우의 표정을 보며 그런 것은 아니라 생각되었다. 그제야 만석은 자신이 큰 소리를 냈다는 것을 깨닫고 사과했다.
“미안해요. 제가 조금 흥분했네요.”
“아니요. 다른 분들은 뒤도 안 돌아보고 가시던데요.”
“충분히 그럴 만도 하죠. 이건 뭐...”
“이런 조건으로는 안 될까요?”
성우의 말에 만석은 고개를 흔들었다.
진짜 이 조건으로 계약을 할 거라면 자신의 선에서 대답해줄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의 조건을 전달했을 때 강 대표는 어떤 표정을 지을까? 아마 지금 자신과 별반 다르지 않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18개월의 계약 기간.
천만 원의 계약금.
이것까지는 들어줄 만 했다.
계약 기간이 짧은 것이 문제가 될 여지는 있었지만, 반면에 계약금이 거의 없다시피 하니 상쇄가 가능했다. 계약서에 연장 조건만 잘 넣어두면 될 일이었다. 이미 성우의 명품 연기를 본 그였다. 만석은 일단 성우가 바이올렛 엔터에 발을 들이면 어떻게든 놓치지 않을 자신은 있었다.
하지만 문제는 그게 아니었다.
그다음에 내건 조건이 문제였다.
아마 대부분의 기획사들이 이 부분에서 걸렸을 것이 분명했다. 성우가 더 많은 계약금을 포기하며 원하는 것은 무척 난감한 것들이었다. 설마 이런 것을 조건으로 걸 줄은 다른 곳에서도 아무도 몰랐을 것이었다.
“위령탑을 만들어 달라고요?”
“저 혼자서는 답이 안 나오더라고요.”
“아니 그걸 왜 거기에?”
만석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아무도 찾는 이가 없는 무연고자 공동 묘지라고 했다.
자신의 친인척이 거기에 묻힌 것도 아니라는데 왜 그곳에 그런 것을 지어달라고 하는 건지 알 수 없었다.
더구나 비용도 만만치 않을 것으로 보였다.
그가 지금까지 봐 온 위령탑은 크고 거대했다. 그 생각을 하자 차라리 계약금을 더 주는 게 나아 보였다. 그런 기색을 눈치 챘는지 성우는 말을 덧붙였다.
“뭐 크게 세워달라는 것은 아니에요.”
만석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아무래도 자신이 생각했던 규모는 아니었던 것 같았다.
“그것보다 알아 보니 절차가 엄청 복잡하더라고요.”
“우리라고 다를까요?”
“그래도 저보다는 인맥이 있으시지 않을까 싶어서요. 지역은 강화도 부근이에요.”
“하아··· 난감하네요.”
만석의 난처한 표정에 성우는 동질감을 느꼈다. 자신 역시 난감한 것은 마찬가지였다.
“일단 보고부터 할게요. 제가 결정할 사항은 아닌 것 같네요.”
“그럼 검토 부탁드릴게요.”
“네. 다음에 뵐게요.”
그렇게 말하며 만석은 떠났다.
그의 뒷모습을 보며 성우는 기분이 썩 좋지 않았다. 지금까지 다들 그가 내건 조건을 정상으로 보는 사람은 없었다. 그나마 만석은 양호한 편이었다. 몇 곳의 기획사에서는 미친 사람처럼 보기도 했다.
하지만 포기할 수는 없었다.
그가 이런 말도 안 되는 요구를 하는 것은 다 이유가 있었다.
‘무주귀들 때문에 어쩔 수 없어.’
해솔이 성불하고 묘지를 다녀온 이후.
무사귀들은 생각보다 조용해졌다. 그동안 두부를 통해 들어오는 요구를 마지못해 종종 들어줬던 탓인 것 같았다. 하지만 무사귀가 문제가 아니었다.
봉인되어 있던 무주귀.
그 악독한 것들이 날뛰고 있었다.
두부를 통해 전해지는 내용은 충분히 걱정될 만한 수준이었다. 예전에 펼쳐 놓은 봉인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는 것이었다.
-길어야 3개월. 그 이상은 못 버텨.
‘왜 갑자기 그러는 거야?’
-그 할망구가 채워 놓았던 팔찌의 힘을 이용했던 건데. 그게 없어져서 봉인도 불안정한 상태였거든.
‘하아 내가 너희 때문에 죽겠다.’
성우는 생각할수록 짜증이 났다.
살다 살다 이런 것까지 해야 하나 싶었다. 하지만 옛일들을 생각하면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이야기였다.
무주귀들의 악독함.
그것은 상상 이상이었다.
항상 성우의 몸을 빼앗을 생각만 하던 존재였다. 실제로 그 덕분에 어린 시절 한동안 학교도 제대로 못 다녔다. 성우는 다시 그 악몽 같던 시절을 다시 겪기는 싫었다.
‘그런데 위령탑이면 다 해결 되는 거야?’
-아마도?
‘무책임한 그 태도는 뭐지?’
-나라고 다 알겠어? 이것도 어르신과 회의 끝에 나온 결론이야.
‘어르신? 그게 누군데?’
성우의 물음에 두부는 답이 없었다.
언제나 자신에게 불리한 것을 물으면 이런 식이었다. 하지만 재차 물어도 두부는 꿀 먹은 벙어리처럼 말을 하지 않았다.
* * *
만석이 전달한 성우의 계약 조건.
그것을 들은 강훈은 곰곰이 생각하다 결국 두 손을 들었다.
하지만 포기한 것은 아니었다.
다른 곳도 아니고 강화도라고 했다.
그곳이라면 그리 어렵지 않을 것 같았다. 적어도 비빌 언덕은 있었다. 문제는 가능하면 연락하기 싫은 사람이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헤븐 컴퍼니를 생각하면 잠시 고개를 숙이는 것은 감당할 수 있었다. 강훈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이 일을 마무리 지었다.
“오 실장. 그 친구가 원하는 대로 계약해.”
“정말 계약 하시게요?”
“강화도라면 가능할 거야. 위령비는 내가 알아서 처리할게. 대신 그 친구는 오 실장이 전적으로 책임져.”
“감사합니다!”
오만석은 그 말에 쾌재를 불렀다.
책임이라는 단어가 무겁게 느껴졌지만, 그만큼 성공에 대한 보상도 따르기 마련이었다. 이번 기회에 실장이라는 직급을 떼고 조금 더 높은 곳으로 오르는 것도 가능할 것 같았다. 적어도 유성우라는 이 친구라면 그것을 가능하게 만들어줄 것 같았다.
그 생각을 하자 마음이 급해졌다.
핸드폰을 집어 들며 성우에게 전화했다. 자신보다 더 먼저 연락한 곳이 없기를 바랄 뿐이었다. 몇 번의 통화 대기음 끝에 성우가 전화를 받자 만석은 평소답지 않게 하이톤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성우 씨! 저희와 계약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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