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미친 재능의 탑스타-13화 (14/161)

광끼 -13

해솔이 남기고 간 흔적.

그것은 성우에게 적지 않은 의미가 있었다.

무대를 마친 직후 연기력이 늘었을 거란 두부의 말은 헛소리가 아니었다.

[연기의 이론]

[연극의 경험]

[무대의 연출]

.

.

.

해솔이 살아생전 무대에서 배운 모든 것.

그 노하우가 고스란히 성우에게 전해졌다. 그것을 성우가 알아차린 것은 바로 다음 날의 무대 위였다. 그 모습을 본 주이호는 물론 다른 단원들마저 한눈에 알아차릴 수 있을 정도로 차이가 났다.

무대 위의 동선.

손끝의 미세한 움직임.

대사를 처리하는 호흡.

자연스러운 시선 처리.

전에 자신이 보여주던 연기에서 부족했던 부분들이 많이 느껴졌다. 그리고 그 빈틈을 해솔의 노하우가 채워줬다. 천운이 따른다는 말은 이럴 때 쓰는 것일까?

전적으로 해솔의 성불 덕분이었다.

그런 생각을 하던 성우는 옆에서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핸들을 잡고 있는 진수가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성우야! 이 길 맞아?”

“맞는 거 같은데. 기억이 가물가물해.”

“길이 영 안 좋은데. 저런 곳에 잘못 들어가면 나오지도 못해.”

“일단 한번 가보자. 지도를 보니 길은 산 건너로 이어지는 거 같아.”

성우는 핸드폰으로 지도를 보며 말했다.

그 말에 진수는 마지못해 그 길로 핸들을 틀었다. 하지만 그 선택은 잘못된 것이었다. 울퉁불퉁한 그 비포장길은 곧 도저히 차가 들어가기 어려운 길로 바뀌었다.

“이거 완전 오프로드 달리는 기분이네.”

“차 돌려야겠지?”

“응. 이 길은 아닌 것 같다. 일단 근처 마을에 내려가서 다시 물어보자.”

진수의 말에 성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와 동시에 속으로는 타박을 아끼지 않았다. 이일의 원흉은 따로 있었다. 지금 현재 길잡이는 전적으로 두부의 몫이었다.

‘이쪽이 맞는 것 같다며?’

-에이~ 내가 이 동네 사람도 아닌데 틀릴 수도 있지.

‘너는 네가 죽어서 묻힌 곳도 몰라?’

-무사귀라는 것이 다들 똑같지 뭐. 낯선 타지에서 비명횡사한 놈이 지가 묻힌 곳이 어딘지 어떻게 알아?

뻔뻔한 두부의 말에 성우는 혀를 찼다.

하지만 딱히 방법은 없었다. 자신은 당시 기절한 상태에서 실려 내려왔다. 당연히 찾아가고 싶어도 어딘지 알 수 없었다. 그저 자신을 태우고 와준 진수에게 미안할 뿐이었다.

“나 때문에 네가 고생이 많다.”

“뭐 이런 거 가지고. 촬영 현장 따라다니면 전국에 온갖 외진 곳은 다 간다.”

“그래도 휴가까지 내고 말이야.”

진수는 그 말에 딴청을 부렸다.

그리고는 산자락 아래 있는 마을로 방향을 틀었다. 그 안으로 향하니 곧 마을 회관을 발견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주변에는 개미 새끼 하나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얼마나 있었을까? 마을 회관의 문이 열리고 머리가 하얗게 센 할아버지 한 분이 나왔다.

“거 누구쇼?”

“안녕하세요. 혹시 이 근처에 무연고 사체를 묻는 공동묘지 아시나요?”

“거기는 왜 가려고? 이제 날도 저물어 가는데 그런데 가는 거 아녀!”

“금방 내려올 거에요.”

성우의 말에 할아버지는 그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그러더니 손가락으로 한 방향을 가리켰다. 그곳은 산 중턱의 어느 곳이었다.

“저 길 따라서 쭉 올라가다 좌측으로 산길 따라 올라가. 길 끝에 공터가 있는데 거기 차 세우고 십 분 정도 걸어서 올라가면 나와.”

“감사합니다. 어르신.”

“거기는 무사귀들 천지라 여름에도 등골이 시린 곳이여.”

“귀신이 나와요?”

진수가 흠칫 놀라며 말했다.

그 말에 할아버지는 고개를 끄덕이며 성우를 보고 말했다.

“예전에 어떤 아이도 귀신에 홀린 곳이니께. 후딱 내려와야 혀.”

그 말에 성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할아버지가 말한 그 아이가 바로 자신이었다. 성우와 진수는 예의바르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서둘러 차를 몰고 그쪽으로 향했다. 확실히 날이 어두워지기까지 남은 시각은 얼마 되지 않았다.

그로부터 20분 후.

둘은 수풀이 가득 자란 산길을 따라 걸어 올라갔다. 그러다 잡초가 무성한 한 공동묘지를 발견했다. 확실히 무연고자들이 묻히는 곳이어서 그런지 관리는 전혀 되지 않아 보였다.

“여기 맞아?”

“그런 거 같아.”

“와~ 할아버지 말이 맞네. 여기 느낌이 좀 싸해!”

진수는 얼굴 가득 흐르는 땀을 닦으며 몸서리를 쳤다. 확실히 성우도 그와 별반 다른 느낌은 아니었다. 정말 이런 곳에서 이틀 가까이 자신이 있었다니 믿어지지 않았다. 더구나 폭우까지 내렸다고 했다. 확실히 무사귀들이 자신을 살려줬다는 것은 인정할만한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것을 내색하기는 싫었다.

바로 두부 때문이었다. 이 말 많은 녀석은 감회가 새로운지 연신 조잘거리고 있었다.

-아! 저기가 조선 최고의 갑부라고 떠들던 최가 놈의 묫자리였어.

-저쪽은 일제강점기 당시에 무슨 가수였다고 했는데 이름이 뭐였더라.

-저기는... 쯧쯧 죄다 섞여서 누구의 묘라고 하기도 뭐하네.

그러기를 잠시.

성우가 속으로 호통을 치자 그제야 두부는 정신을 차렸다. 그리고 곧 공동묘지 한쪽에 있는 다 허물어진 무덤 하나를 가리켰다. 성우는 두부가 알려주는 방향으로 걷다 곧 발걸음을 멈췄다.

“여기다.”

“확실해? 무덤이 아니라 그냥 흙더미 같은데.”

“이럴줄 알았으면 낫이라도 가져올걸. 일단 가방에서 준비한 거나 꺼내.”

가방에서 꺼낸 갖가지 것들.

돗자리 위에 깔아놓은 것들은 제사상에 올라갈 법한 것들이었다. 그리고 소주를 하나 잔에 따라 무덤 주위에 뿌렸다.

‘선배님. 이제라도 인사를 제대로 드립니다.’

그가 찾은 그 무덤.

그곳은 바로 해솔이 잠들어있는 곳이었다.

사실 이곳에 오기까지 많은 고민을 했던 그였다. 가능하면 가족에게 알려 그 유골이라도 수습할 수 있게 해줬으면 하는 생각도 했다.

하지만 그마저도 쉽지는 않았다.

성우가 알아본 바로는 이미 해솔의 부모님은 돌아가신 지 오래였다. 딱히 누군가에게 부탁할 친척을 찾는 것도 어려웠다. 성우가 직접 수습할까도 고민했지만, 현실적인 문제가 많았다.

이곳을 빼곡하게 채운 수많은 무덤.

무연고자 사체를 매장하며 묘비 하나 없는 이곳이었다. 그런데 그 중의 딱 하나를 특정을 지어 이장하겠다는 것도 우스웠다. 죽은 직후에 경찰마저 그 신분을 찾지 못한 사체들이었다.

그런데 이제 찾아냈다?

더구나 땅속에 묻혀 뼈 밖에 남아 있지 않은 상황이었다. 당연히 그런 말을 믿어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 아쉬움을 눈치챘는지 두부가 말을 걸었다.

-어차피 성불한 존재야. 딱히 의미 없어.

그 말에 성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의 모든 것이라 할 수 있는 것을 아낌없이 주고 떠난 해솔이었다. 그저 다음 생에는 천수를 다 누리고 행복한 삶을 살기를 바랄 뿐이었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성우가 돗자리에 앉자 옆에서 물끄러미 바라보던 진수가 곁으로 다가왔다.

“뭔 일인지는 결국 말 안 할 거냐?”

“나중에 기회 되면.”

“알았다. 내킬 때가 되면 하든지.”

그렇게 말하며 진수는 담배를 꺼냈다.

담배에 불을 붙여 한 모금 빨고는 흙더미 위에 살포시 올려놓았다. 그것을 보고 성우는 의문을 표했다.

“뭐냐 그건?”

“누구신지도 몰라도 술보다 담배를 더 좋아하실 수도 있잖아.”

“비흡연자면 어쩌려고.”

“그럼 뭐 주변에 친하게 지내시는 다른 분이 피시겠지.”

그렇게 말하며 진수는 웃었다.

그리고는 곧 성우를 바라 보며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너 연기 잘 하더라. 눈물 날 정도로.”

“아주 그냥 펑펑 울 기세던데. 왜 그랬냐?”

“뭔가 대단해 보여서. 그리고 부럽기도 하고. 그런데 앞으로 연기는 계속할 거냐?”

진수의 질문에 성우는 말문이 막혔다.

아직 깊게 생각해보지 못한 문제였다. 어찌어찌해서 무대에 오르고 있는 지금이지만, 평생 이렇게 살 수 있을 거란 자신은 없었다.

더구나 현실적인 문제도 한몫을 차지했다.

한 달 내내 공연을 해도 편의점 알바보다 못한 월급이 전부였다. 당연히 고민이 될 수밖에 없었다. 뭐 그렇다고 딱히 하고 싶은 것도 아직 없었다.

“글쎄 나도 아직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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