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미친 재능의 탑스타-12화 (13/161)

광끼 -12

암전된 무대.

성우는 그 뒤로 간신히 걸어 나왔다.

하지만 온몸에 힘이 없었다.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았다. 결국, 무대 뒤에서 바닥에 주저앉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곧 무대의 조명은 다시 켜졌다.

무대 위에서 들리는 대사.

지금의 무대는 철민과 혜정 둘만 등장하는 장면이었다. 덕분에 다시 무대에 오르기까지 약간의 여유가 있었다. 그나마 다행이었다. 만약 바로 다시 올라가야 했다면 첫 공연을 그대로 망칠 뻔 했다. 남몰래 한숨을 내쉬며 성우는 두부를 불렀다. 무슨 일인지 궁금했다.

‘두부! 도대체 무슨 일이야?’

-잠깐만 기다려. 여기 안에서도 난리 났어.

‘야!’

두부의 다급한 목소리.

그것이 들린 후에 다시 그의 목소리가 들릴 때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동안 성우는 두근거리는 가슴을 부여잡고 있었다. 대충의 상황을 봐도 감은 왔다. 자신 안에 깃들어 있는 해솔과 저 여인은 평범한 관계는 아닌 것 같았다. 그때 두부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미안. 해솔이가 안에서 폭주하고 있었어.

‘도대체 왜?’

-아까 그 여자 때문이지! 뭐 다른 이유 있겠어?

‘그럼 이제 괜찮은 거야?’

성우의 질문에 두부는 답이 없었다.

아무래도 확답은 하기 어려운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이대로 무작정 올라갔다가 또 그런 상황이 오면 최악이었다. 다시 무대에 오르기까지 여유는 약 3분 밖에 없었다. 하필 오늘같이 중요한 날에 이런 일이 생긴 것이 운명의 장난 같았다.

‘어떻게 좀 해봐! 나 다시 무대 위로 올라가야 해.’

-나도 최선을 다해서 노력하고 있다고! 그래서 말인데 해솔이 부탁하고 싶은 것이 있데.

‘뭔데?’

-마지막으로 저 여자한테 자신의 연기를 보여주고 싶다는데.

성우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두부가 하는 말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뭘 어떻게 보여주겠다는 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이내 짐작되는 부분이 있었다.

‘빙의라도 하겠다는 거야?’

-아니라고 하기에는 좀 애매한데. 반쯤 비슷해.

‘내가 뭘 믿고 무사귀인 너희한테 몸을 맡겨?’

-연기가 끝날 때까지만이야. 그리고 좋은 소식도 있어.

성우는 좋은 소식이란 말에 귀가 쫑긋했다.

하긴 여기서 더 나쁜 소식은 없을 것 같았다. 이제 남은 시각은 2분도 채 되지 않았다. 마음은 더 다급해졌다.

-내 느낌인데 이 녀석 이번에 잘하면 성불할 거 같아.

‘성불?’

-그래 성불! 이승의 한을 풀어내는 거니 당연히 여한 없이 저승으로 갈 길 가는 거지.

‘그거는 마음에 드네.’

사랑하는 이를 다시 보고 싶다는 염원.

그리고 그녀에게 보여주고 싶은 생의 마지막 무대. 해솔이 이승에 남을 수밖에 없던 이유가 그것이라고 했다.

그 두 가지를 이루면 자신의 안에서 사라진다.

어차피 지금 상황에서 성우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별로 없었다. 어떻게든 오늘의 무대만이라도 잘 마무리하고 싶을 뿐이었다. 자신을 믿고 주연을 맡긴 주이호였다. 그가 내린 선택을 후회하게 만들고 싶지는 않았다.

‘알았으니까 뭘 어떻게 해야 해?’

-오케이! 너 올라갈 차례야 서둘러. 나머지는 우리가 알아서 할게.

‘아오~ 이게 뭔 난리야.’

그렇게 속으로 외치며 성우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다행히 아까처럼 무기력한 증상은 나타나지 않았다. 그리고는 서둘러 무대 반대편으로 향했다. 곧 자신이 다시 무대 위로 올라갈 타이밍이었다. 그리고 무대 위로 몸을 날리듯 올라섰다.

[더 이상 도망칠 곳은 없어!]

철민의 목소리가 공허하게 울렸다.

그 순간 성우는 평소 같지 않는 묘한 기분에 휩싸여 있었다. 가슴 속 가득하게 차오르는 흥분과 밑도 끝도 없는 자신감, 관객석에서 어렴풋이 보이는 한 여자를 향한 애틋함 등이 한 번에 몰려왔다. 해솔이 지금 이 순간 느끼는 감정인 것 같았다.

그 때문일까?

철민의 말 뒤에 바로 치고 들어가야 하는데 그 타이밍을 놓치고 말았다. 하지만 그의 입은 의지와 별개로 벌써 움직이기 시작했다. 하나 확실한 것은 성우 본인의 의지로 직접 말한 것은 아니었다.

[다들 여기 있었군. 아쉽네! 쉽게 따돌릴 수 있었는데.]

성우가 무대에서 등을 돌리는 순간.

그가 나왔던 곳에서 상준이 나타났다. 더 도망칠 곳도 없이 사면초가에 빠진 것이었다. 그 순간에도 성우는 당황하지 않았다. 오히려 무덤덤하게 두 손을 살짝 들며 농을 지껄였다.

표정과 몸놀림 그리고 목소리.

그 어느 것 하나 부족함이 없었다. 평소보다 농도 짙은 연기에 다른 배우들이 살짝 당황했지만, 연기는 무리 없이 이어졌다. 그 모습에 성우는 일단 이 사태를 관망했다. 현재 그의 몸을 움직이는 것은 해솔이었다.

뭔가 차원이 달랐다.

적당한 호흡과 몸놀림이 돋보였다.

그는 순식간에 극에 녹아들었다. 하나 아쉬운 것이 있다면 표정은 직접 볼 수 없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성우는 그것만으로도 재능의 차이를 느끼며 한탄했다.

‘제길! 이 연기가 이렇게도 가능하구나.’

혼신의 힘을 다하는 펼치는 해솔의 연기.

그것은 연극이 끝날 때까지 이어졌다. 그리고 곧 엔딩 장면에 도달해 주인공이 죽는 장면을 연기해야 할 차례가 왔다. 그 순간 성우는 잠시 해솔이 망설이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 장면이 지나면 정말 이승과 무대 그리고 자신의 연인과 영원한 이별을 해야 하니 당연했다.

[으하하. 역시 너도 나와 똑같아!]

그 대사를 하며 숨지는 주인공.

그런 해솔의 연기에는 광기와 함께 진한 슬픔도 녹아들었다. 오히려 성우는 그런 그의 연기가 더 좋았다. 주인공이 그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던 수많은 이유가 밝혀진 직후였다. 그런 그의 연기는 충분히 설득력이 있었다.

무대의 조명이 꺼졌다.

암전된 무대 위에는 성우와 함께 해솔이 있었다.

그는 어둠 속에서 객석을 잠시 바라보다 무대 밖으로 나섰다. 해솔이 향하는 그곳은 뭔가 성스러운 느낌이 가득한 빛이 가득했다. 하지만 그 바로 앞에서 해솔은 발걸음을 멈췄다. 그리고 등을 돌린 상태로 성우에게 외쳤다.

-첫 무대인데 내가 민폐를 끼쳤구나. 사과의 의미로 받아줘. 내가 줄 거는 이거밖에 없어.

해솔이 그렇게 말하는 순간.

성우는 말로 설명 못 할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뭔가 줬다고 듣기는 했는데 도저히 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더구나 지금 당장은 그것보다 무대 인사가 더 먼저였다.

*

그렇게 [악의]의 첫 무대가 끝났다.

다시 불이 켜지자 객석에서는 박수가 터졌다.

일부 관객은 기립 박수도 아끼지 않았다. 그 사람들 사이에는 물론 성우의 친구인 진수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는 눈물마저 글썽이는 것 같았다. 아마 옆에 앉아 있던 여자의 눈물이 전염된 것으로 보였다.

확실히 오늘 주연 배우인 성우가 보여준 연기는 대단했다. 하지만 정작 당사자인 그는 충분히 만족스럽지 못했다. 반쯤은 그가 아닌 해솔이 연기를 했으니 당연했다.

짝짝짝!

그래도 기분은 좋았다.

객석에서 밀려드는 그 환호 소리는 짜릿했다.

한번 맛보면 잊을 수 없는 마약과 같다는 상준의 말이 맞는 것 같았다. 역시 무대를 마치고 느껴지는 이 감정은 그의 말처럼 특별했다.

무대 인사를 마친 이후.

분장실로 돌아온 단원들을 주이호가 반겼다.

첫 공연임에도 평가는 상당히 좋을 것 같았다. 하지만 반면에 고쳐야 할 사항도 적지 않았다.

“다들 수고했어. 정리하고 오늘은 들어가서 푹 쉬어.”

“수고하셨습니다.”

“나는 인터뷰가 있어서 먼저 나간다.”

주이호는 그렇게 말하고는 급히 나갔다.

그가 빠져나가자 다들 분장실로 들어갔다. 공연 뒤에 느껴지는 것은 환희만은 아니었다. 무대가 끝난 직후의 텅 빈 객석은 공허함이 밀려왔다. 마치 조금 전의 일이 꿈만 같이 느껴졌다. 하지만 지금 당장은 더 급한 일이 있었다.

‘해솔 그 양반은 어떻게 되는 거야?’

-아까 무대 마치면서 성불해서 떠났잖아.

‘그런데 마지막에 가면서 나한테 뭘 줬다고 하던데 그게 뭐야?’

-연기력이 +1 되셨습니다...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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