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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친 재능의 탑스타-10화 (11/161)

광끼 -10

깔끔한 검정 슈트.

오랜만에 그것을 입은 성우는 조금 불편했다.

군대 가기 전에는 조금 넉넉한 편이었는데 이제는 달라졌다. 예전과 다른 근육 때문이었다. 군대를 제대해서도 틈틈이 운동은 계속하고 있는 그였다.

생각 같아서는 새롭게 맞추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여유는 없었다. 그게 금전적인 이유 때문만은 아니었다. 일단 최근에는 그럴 만한 시간조차 없었다.

“2시인데 어디 계시지?”

성우는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평일 낮인데도 압구정역 주변은 붐볐다.

다들 뭐가 바쁜지 총총걸음으로 어디론가 급하게 걸었다. 더구나 성우를 스쳐 지나는 똑같아 보이는 얼굴들. 그것을 보고 두부는 혀를 찼다.

-다들 제 복을 걷어차는 거나 마찬가지네.

‘성형하면 관상도 바뀌나?’

-변하지 않을까? 내가 살았을 때는 그런 게 없어서 정확하게 답하기 어려워. 하지만 운명을 거스르는 데에는 언제가 대가가 따르는 법이지.

‘금전적인 대가는 다들 충분히 내고 있어.’

성우가 고개를 들었다.

그러자 성형외과 간판이 보였다.

나란히 줄지어 서 있는 간판을 보며 확실히 이 주변에 그런 곳들이 참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내 시계를 보며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아직 그가 기다리는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하긴 그가 나타나면 이 주변이 이렇게 조용할 리 없었다. 그 순간 검은색의 승용차 하나가 다가와 성우가 서 있는 바로 앞에 멈췄다.

“세이프~ 안 늦었지?”

“저도 방금 도착했어요.”

“어서 타.”

뒷좌석에서 창문을 내리며 말하는 남자.

그는 바로 며칠 전에 성우의 공연을 보러왔던 유해준이었다. 그가 얼굴을 보이자 주변에 서 있던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해준은 사람들에게 손을 흔드는 여유까지 보여줬다. 그리고 성우가 타자 차는 곧바로 출발했다.

“여기 운전하는 친구는 내 매니저. 언제나 찬성 따위는 하지 않는 노찬성.”

“어휴 또 분위기 썰렁하게 그러시네. 노찬성입니다.”

“반갑습니다. 유성우입니다.”

“제 이름도 독특한 편인데 성우 씨 이름도 멋지네요.”

그런 찬성의 말에 해준이 웃었다.

확실히 이 차에 있는 사람들의 이름은 다들 독특했다. 유해준 역시 유해물질을 차단하는 생활용품 광고를 최근 찍었으니 빠질 수 없었다.

“역시 남자는 슈트지. 잘 어울리네.”

“선배님 그런데 오늘 어디를 가나요?”

“영화 촬영장 간다고 미리 말했잖아. 오전에 연극 연습은 잘 마쳤어?”

해준의 말에 성우는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이 자리에 오기 위해 모든 단원은 새벽부터 모여서 연습을 시작했다. 그가 빠진 상태로 공연 연습이 안 되니 어쩔 수 없었다.

첫 공연이 임박해오고 있었다.

불과 다음 주의 주말이면 관객 앞에서 공연해야 했다. 이제 불과 열흘밖에 남지 않은 것이었다. 하지만 성우가 반나절 빠지는 것을 탓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넌 작두의 주연 배우야. 대표로 가는 거니 쫄지 마!

-나중에 1초 나왔다고 울지는 마라.

-아예 통편집 안 당하면 다행이지. 뭐 그럴 거라는 말은 아니고 내 경험이야.

오히려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다들 그런 경험이 제법 많은지 온갖 팁을 주기까지 했다. 뭐 대부분은 그리 쓸모 있어 보이지는 않았다. 어쨌든 유해준이 오라고 해서 오기는 했는데 정작 성우는 오늘 어떤 역할을 하는지 아직도 모르고 있었다.

“제가 뭘 하면 되는데요?”

“그냥 째려보기만 잘 하면 돼.”

“네? 무슨 말씀인지 잘 모르겠는데요.”

“무대 위에서 연기한 것처럼 노려 보기만 하면 돼.”

“그런 거면 왜 굳이 저를...”

솔직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

비중이 있는 캐릭터는 아닐 것이 분명했다. 그 정도면 이미 배역이 정해졌을 것이다. 그렇다고 또 비중 없는 장면이라면 굳이 자신을 데리고 갈 필요도 없었다. 아니 애초에 그런 장면이란 것이 있을까?

“그날 연기를 보니 네가 딱 그 역할을 해야 해.”

해준은 확신했다.

그때의 그 눈빛에 매료된 그였다.

지금 찍는 영화에서 꼭 필요한 것이 바로 성우였다. 심지어 감독도 주저 없이 오케이를 한 상태였다. 물론 그를 설득하기 위해 작두의 단장인 주이호의 동의를 얻어 성우의 연기 장면 일부를 촬영해서 보내준 덕분이었다. 그러나 곧 성우는 유해준을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뭐라고요? 특수 분장요?”

“몇 컷 안 돼.”

“뭘 어떻게 연기해야 할 지 전혀 모르겠네요.”

“눈빛에 분노만 잘 담아내도 반은 먹고 들어갈 거야.”

성우는 난감했다.

첫 영화 출연이 귀신 분장을 하고 나올지 몰랐다. 설마 유해준이 찍고 있는 영화가 그런 것이라는 예상은 전혀 못 했다. 더구나 특수 분장만 몇 시간이 걸린다고 하니 오늘 하루가 길고 험난할 것이 분명했다.

*

5시간 후.

성우는 거울을 보고 할 말을 잃었다.

그 속에 비친 자신은 완벽하게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아니 정확하게는 완벽히 다른 존재였다. 그 모습을 보고 두부는 깔깔거리며 웃었다.

-네가 나보다 더 귀신같다.

‘그게 칭찬이냐? 욕이냐?’

-요즘 악귀들은 그렇게 피칠갑은 하지 않고 다닌다고. 뭐 때론 취향이 이상한 얘들이 있기는 하지만.

‘에효 나도 모르겠다.’

첫 영화 출연이라 떨렸다.

하지만 이게 출연이라 할 수 있을까?

영화가 나오더라도 자신이 나왔다고 말하기도 조금 어려운 그런 상황이었다. 분장 속에 숨어있는 자신을 알아보는 사람은 전혀 없을 것 같았다. 그렇게 망연자실하게 있을 무렵. 유해준이 그를 향해 다가왔다.

“오~ 분장 잘됐네.”

그렇게 말하며 웃음을 참는 것이 보였다.

성우 역시 멋쩍게 따라 웃을 수밖에 없었다. 확실히 특수 분장팀에서 심혈을 기울인 것이 티가 났다. 무려 4시간이나 그 하나만 잡고 끊임없이 작업했으니 당연했다.

“조금 있으면 날도 어두워지니 곧 촬영 들어갈 거야. 대본은 봤지?”

그 말에 성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대답하고 싶어도 얼굴이 땅겨서 하기 힘들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따로 대사는 없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곧 촬영한다던 그 장면은 계속 미뤄졌다. 결국, 연출팀이 성우를 찾은 것은 거의 자정이 다 되었을 때였다.

“촬영 들어갑니다!”

“슛!”

이 영화의 감독인 정준의 목소리가 현장에 울렸다.

그 신호에 맞춰 성우는 눈꺼풀을 떴다.

어둠 속에서 번쩍이는 그의 눈동자는 또렷이 한 곳을 바라봤다. 그 안에 담긴 악의적인 기운은 날카로웠다. 마치 당장 달려가 상대밤의 숨통을 끓어버리겠다는 의지마저 느껴질 정도였다. 그리고 곧 그의 얼굴 전체가 드러났다.

얼굴이 뭉개지고 피가 흐르는 귀신.

꿈에 나올까 두려워지는 외모였다. 하지만 그보다 아까의 그 눈빛이 더 살 떨리게 두려웠다. 인간 내면의 공포를 끌어올리는 뭔가가 있었다.

‘꿀꺽!’

촬영 현장은 단숨에 그 분위기에 전염됐다.

성우가 뿜어내는 그 존재감은 확실히 대단했다. 갑자기 어디선가 뭔가 툭 튀어나올 것 같았다. 하지만 곧 그는 어둠에 휩싸여 사라졌다.

그 순간 정준은 컷을 외쳤다.

그리고는 현장에 설치된 모니터를 응시했다. 그것은 옆에 있던 유해준도 마찬가지였다. 동갑내기의 두 사람은 입을 쩍 벌릴 수밖에 없었다.

그만큼 그 장면은 임팩트가 있었다.

아마 나중에 영화의 가장 인상적인 장면을 뽑으라면 누구나 이 장면을 선택할 것 같았다. 그 순간 정준 감독은 이 친구를 소개해준 유해준이 고마워 죽을 지경이었다.

“이거 미치겠네.”

“장난 아니지? 무대 위에서 저놈 연기 보는데 나도 모르게 쫄았다니까.”

“이런 녀석이 있으면 진즉에 데려왔어야지.”

“나도 며칠 전에 후배가 극단을 만들었다길래 오랜만에 보러 갔다가 발견했어.”

해준의 말에 정준은 아쉬움을 느꼈다.

몇 개월만 더 빨리 만났어도 더 좋은 배역에 넣어 볼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미 영화의 촬영은 반 이상이 진행되어 있었다. 이제 와 조연 하나를 더 넣자고 전체 촬영분을 흔들 수 없는 노릇이었다. 더구나 그랬다면 이 멋진 장면 역시 나오지 않았을 것이 분명했다.

“저 친구 어느 매니지먼트 소속이야?”

“아직 회사 없을걸.”

“그럼 나중에 작품을 같이 하고 싶을 때는 어디로 연락해?”

“촬영 끝나면 따로 연락처를 받아 놔. 일단 극단 작두의 단원이니 거기로 연락해도 되고.”

“작두? 그런 극단이 있었나?”

정준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연극이라면 그 역시 자주 보러 다녔지만, 그런 이름의 극단은 전혀 들어본 적이 없었다. 그런 그의 모습에 유해준은 웃으며 말했다.

“들어봤을 리가 없지. 이제 머리 올리는 신생 극단이야.”

“연극 제목은 뭔데?”

“이번에 초연으로 올라가는 건데 [악의]라던가? 며칠 전에 타이틀 명을 바꿨다고 들었는데 이게 맞나 모르겠네.”

“그 제목에 저 친구면 어떤 느낌인지 감이 온다.”

정준 감독은 오랜만에 두근거렸다.

충무로에서 잔뼈가 굵은 그였지만, 종종 대학로에 연극을 보러 가던 그였다. 이번에 뭔가 특이한 연극이 나올 것 같다는 기대되었다. 하지만 지금 당장은 그것을 보러 갈 여유는 없었다. 오늘만 해도 밤늦게까지 촬영해야 했다.

“다음 씬 갈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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