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미친 재능의 탑스타-8화 (9/161)

광끼 -8

두 명품 배우의 등장.

그것은 깜짝 놀랄 일이었다.

단원 가운데 단 한 명도 예상치 못했던 방문이었다.

특히 성우는 그중에 누구보다 놀랐다.

지금까지 살면서 유명한 배우를 직접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좀처럼 눈 앞에 펼쳐진 상황이 믿어지지 않았다. 그 둘은 마치 TV에서 갑자기 툭 튀어나온 것 같았다.

“우와··· 정말 유해준이다.”

성우는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그리고 두 눈을 끔벅이며 객석을 바라봤다.

최근 주가를 올리고 있다는 주지헌은 잘 몰라도 유해준을 모를 수 없었다.

평소 좋아하는 배우였다.

영화를 볼 때마다 연기 정말 잘 한다며 감탄을 하게 만드는 이가 그였다. 그런데 그렇게 연기력이 출중한 배우 앞에서 연기해야 하다니 믿어지지 않았다.

‘후아~ 우황청심환이라도 하나 더 먹을걸.’

갑자기 부담감이 밀려왔다.

진짜 배우 앞에서 연기를 펼쳐야 했다.

지금까지 살면서 이처럼 부담되는 경우는 전혀 없었다. 당장이라도 화장실로 달려가 토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하지만 그런 내색을 할 수 없었다.

바로 옆의 서 있는 심연빈.

성우가 슬쩍 보자 그의 눈동자에는 야심이 가득 차 있었다.

그런 그의 콧대를 무너뜨리고 싶었다. 이미 심연빈과 극단 작두의 관계는 악화 일로를 걷고 있었다. 그가 극단 작두에 남더라도 문제였다. 과연 제대로 무대가 꾸려질까? 성우가 생각했을 때 그건 불가능해 보였다.

-확 빼앗아! 저따위 녀석에게 지지 말라고!

두부의 쩌렁쩌렁한 외침.

그 사이를 참지 못하고 호들갑을 떨었다.

그런 두부의 목소리 덕분에 성우는 부담감이 한결 덜어졌다. 심연빈은 혼자지만, 그에게는 해솔이라는 믿음직한 조언자가 있었다. 물론 두부는 훼방이나 안 놓으면 다행이었다.

“자자! 그럼 올 사람은 다 왔으니 시작해 볼까?”

주이호의 외침.

그것을 들은 성우는 무대 뒤로 향했다.

두 사람 가운데 먼저 무대에 서는 것은 심연빈이었다. 그것은 이전에 주이호와 함께 미리 합의된 내용이었다. 내심 뒷순서에 하는 것에 성우는 안도했다. 마음의 준비를 할 시각이 조금 더 필요했다.

“핏덩이. 형이 오늘 진짜 연기가 뭔지 보여줄게.”

연빈은 그와 스치며 이죽거렸다.

성우가 아예 무대에 오를 엄두조차 나지 않게 만들겠다는 것이 그의 포부였다. 압도적인 연기력의 차이. 그것을 보여줄 필요가 있었다. 자신이 주연이어야 극단 작두는 디딤돌로 사용할 가치가 있었다.

따로 믿는 구석도 있었다.

좌석에 앉아 있는 주지헌은 예전에 자신과 함께 무대에 섰던 경험도 있었다. 평소 친분은 생각지 않더라도 자신 있었다. 연극을 해봤던 저 둘이라면 핏덩이 같은 연기 초보의 손을 들어줄 리 없었다.

타아악!

암전이 된 이후 연극은 시작되었다.

심연빈의 연기는 안정적이었다. 호흡과 발성 그리고 연기 어느 것 하나 흠잡을 곳은 거의 찾을 수 없었다. 그것은 무대 뒤에서 보고 있는 성우도 충분히 알 수 있었다.

-해솔이가 연기 제법이라고 칭찬하네.

‘그런데 두부 너 말고 해솔이라는 그분이랑 직접 이야기할 수 없어?’

-그게 불가능하니까 내가 너 때문에 이렇게 개고생을 하고 있지.

‘난 또 네가 말을 못 하게 막고 있나 했지.’

-크음! 그런 거는 아냐!

살짝 성질을 내는 두부의 외침.

그것을 듣고 조금 찜찜했지만, 노닥거리고 있을 틈은 없었다. 심연빈의 연기는 어느 사이에 예정된 끝부분까지 달리고 있었다. 아쉽게도 지금까지 단 하나의 실수도 없었다.

짝짝짝.

마침내 예정되어 있던 분량이 끝났다.

그러자 유일한 관객이었던 주지헌과 유해준은 박수를 아끼지 않았다. 확실히 누가 봐도 심연빈의 연기는 크게 흠 잡을 곳이 없었다. 그런 둘을 흘깃 바라보고 주이호는 무덤덤하게 말했다.

“수고했어요.”

연빈은 속으로 주먹을 불끈 쥐었다.

내심 염려했던 선배들의 반응은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내색하지 않고 고개를 숙이며 인사하고 무대에서 내려갔다.

-뭐해! 어서 올라가야지.

두부의 재촉하는 목소리.

그것을 들으며 성우는 무대 위로 향했다.

환한 조명이 눈을 찌르며 들어왔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관객석은 잘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가 들어서자 형사역인 상준이 눈짓을 보내며 대사를 쳤다. 어서 연기를 이어가라는 무언의 질책이었다. 배우는 바뀌었지만, 연극은 이어 가야 한다는 뜻이었다.

[좋아! 너의 정체를 밝힐 수 있는 증거를 찾아냈어. 조금 있으면 증인이 올 거야.]

[글쎄 그 증인 믿을 수 있어?]

[확실해. 그녀의 증언만 있으면 너는 평생 감방에서 썩게 만들 수 있어.]

[그녀? 후후훗! 누군지 뻔하네. 그 요망한 년의 말을 순진하게 믿었다가 재판에서 질 수 있어. 잘 생각해야 할 거야.]

성우는 오만하게 웃으며 상준을 바라봤다.

지금 이 순간은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았다. 뭔가에 씐 것 같은 기분이었다. 지금의 그는 두부의 도움 때문인지 상대역을 제외하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사회에 깊은 원망을 느끼는 살인자.

성우는 극 중의 캐릭터에 완벽하게 녹아 있었다. 잠시 자신의 원래 모습은 지워진 것 같았다. 그 덕분에 연기하는 그의 분위기는 평소와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전혀 그를 떠올릴 수 없는 180도 변신이었다. 성우의 날카로운 눈빛을 보며 상대역인 상준은 등골이 서늘했다.

‘뭔 놈의 눈빛이 저래?’

자칫 대사마저 씹을 뻔한 상준이었다.

그의 코 앞에 있는 성우는 손에 볼펜이라도 한 자루 쥐여주면 당장이라도 달려들어 자신의 목덜미에 꽂아 넣을 것 같았다. 그의 입장에서는 공포 영화가 따로 없었다. 다른 배우의 연기를 씹어먹는 연기력. 그것은 제법 연극판에 익숙해진 그에게도 낯선 경험이었다.

관객석의 반응도 비슷했다.

재미있는 것을 본 듯 유해준은 상체를 세웠다. 그리고는 성우를 뚫어지라 바라봤다. 그것은 주지헌도 마찬가지였다. 최근 로맨틱 코미디가 점령하다시피 한 대학로 연극판이었다. 그런데 재미있는 작품과 함께 요상한 배우 하나가 나타난 것을 그들 역시 느낀 것이었다.

고품격 스릴러.

유해준은 지금 보는 무대를 그렇게 정의했다.

영화에서 갑자기 툭 튀어나와 놀래키는 그런 것이 아니었다. 지금이라도 이 자리에 관객이 있다면 비명이 터질 것 같았다. 그만큼 성우의 연기는 현실감이 넘치다 못해 무서울 정도였다. 그리고 그 무대는 점차 엔딩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타아앙!

무대 위에 울리는 효과음.

형사의 총에 의해 살인마는 끝내 쓰러졌다. 살인마가 주장했던 것처럼 형사는 정의롭지 않았다. 자신의 죄가 탄로 날 위기에 처하자 형사는 살인마를 직접 처단하기로 마음을 먹은 것이었다. 어찌 보면 진짜 악당은 형사라고 해석할 수 있었다.

성우는 무대 위에 쓰러지며 이를 악물었다.

그의 이마에는 힘줄이 솟아났다. 그가 지금 이 무대 위에서 얼마나 연기에 심혈을 기울이는지 알 수 있을 정도였다. 그리고 살인마는 그 저주받은 생에서 할 수 있는 최후의 한 마디를 읊조렸다.

[으하하. 역시 너도 나와 똑같아!]

광기 어린 눈빛으로 외치는 목소리.

그와 동시에 성우는 무대 위에 쓰러졌다. 그는 쓰러졌지만, 무대 위에 섬뜩하게 남은 웃음소리가 여전히 울렸다. 그 소리를 들으며 형사는 바닥에 주저앉았다. 그리고 곧 무대 위에 오른 다른 경찰에 의해 형사는 제압당하며 막은 내려갔다.

모든 불빛이 꺼진 극장.

서늘한 무대 바닥 위에 누워 성우는 눈을 감았다.

그 잠깐의 연기를 하며 진이 쏙 빠진 느낌이었다. 하지만 가슴 속에 충만한 희열이 느껴졌다. 관객은 고작 2명에 불과했지만, 뭔가 해낸 것 같은 성취감도 느껴졌다.

‘연기가 이렇게 재미있는 거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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