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끼 -6
“너희! 연기 똑바로 안 해?”
주이호는 호통을 쳤다.
그의 성량 큰 목소리가 돋보이는 순간이었다.
무대 위까지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그 소리에 두 배우는 움찔했다. 평소 인자하게 웃던 그는 사라진 지 오래였다. 하지만 성우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연출할 때의 그는 평소와 완벽하게 다른 존재였다. 저러다가도 막상 돌아서면 웃는 얼굴이 되는 것은 신기했다.
“상준아. 너는 왜 발성이 그 모양이야! 무대 뒤까지 전달이 안 되잖아.”
“죄송합니다.”
“그리고 연빈이 너도 상준이와 호흡이 전혀 안 맞잖아. 혼자 연극 할래?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
그렇게 외치며 이호는 자리에 앉았다.
벌써 연습은 몇 시간째 이어지고 있었다. 이른 오전에 성우가 도착했는데 적어도 4~5시간은 지난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이호는 여전히 불만스러운 표정이었다. 좀처럼 그가 바라던 연기가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그 한계가 보였는지 얼마 후 연습은 종료되었다.
“에잇! 밥 먹고 다시 하자.”
이호의 외침에 두 배우의 표정은 상반되었다.
한 명은 다행이란 표정이었고 또 다른 하나는 불만이 가득했다. 그런 두 사람을 보며 두부는 중얼거렸다.
-저 두 녀석 가운데 연빈인가 저 녀석은 가까이하지 마.
‘왜? 사람 좋아 보이던데.’
-눈꺼풀이 처지고 미간이 좁은 것이 인간관계에서 마찰도 많고 눈썹이 짧은 것을 보니 질투도 많아.
종종 두부는 이랬다.
자칭 구한말 시대에 최고의 관상가라 말하는 그였다. 무슨 이유 때문인지 몰라도 특히 주이호에 대한 평가는 무척 좋았다. 그와 함께하면 부귀영화가 따를 것이라는 말을 시도 때도 없이 했다. 하지만 성우는 그것을 귓등으로 흘려들었다.
전혀 믿음이 가지 않았다.
주이호의 현재를 봤을 때 그럴 가망성은 없어 보였다. 이번에 올리는 작품도 크게 마이너스를 안 보면 다행이었다.
더구나 성우는 그런 미신이나 그런 것을 잘 믿는 성격은 아니었다. 무사귀들이 아니었으면 지금도 귀신은 없다고 생각하고 있을 그였다. 요즘 같은 세상에서 성형한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말이 되지 않았다. 그런 그에게 주이호가 다가왔다.
“성우야 너도 같이 밥 먹으러 가자.”
“먼저 드세요. 저는 이따가 따로 갈게요.”
“갈 때 같이 가지.”
“아침을 늦게 먹어서 배가 아직 안 고파요.”
“뭐 알아서 해. 우리 돌아오는 게 조금 늦더라도 기다리지 말고 문 잠그고 다녀와.”
그렇게 말하며 이호와 함께 두 배우는 사라졌다.
성우가 그들과 함께 가지 않은 이유는 간단했다. 매번 밥을 얻어먹는 것도 눈치가 보였던 것도 있지만,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따로 있었다.
이호의 끈질긴 잔소리.
그것은 아마 밥을 먹을 때도 계속될 것이 분명했다. 괜히 그곳에 같이 가서 욕을 반찬으로 먹을 필요는 없었다. 몇 번 당해봤던 그이기에 안 봐도 뻔한 패턴이었다. 중간에 끼어서 배우들의 민망한 모습을 보는 것은 한두 번으로 족했다.
모두가 사라진 무대.
그 위의 조명은 아직 꺼지지 않았다.
그것을 물끄러미 보던 성우는 그 위로 발걸음을 향했다. 이곳에서 그가 유일하게 하는 일이 바로 무대 위를 청소하는 것이었다. 어찌 된 일인지 그곳만큼은 지저분한 것이 너무 싫었다. 그래서 오늘도 성우는 배우가 빠져나간 그 위를 쓸고 닦기 시작했다.
사아악!
무대 위를 빗질하는 소리.
싸리 빗자루가 스치며 내는 그 백색 소음은 기분이 좋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그 동작을 반복하며 성우는 흥얼거렸다.
입술 사이로 비집고 나오던 노래.
그것이 끝나자 곧 극단 작두에서 초연으로 올릴 연극의 대사로 바뀌었다. 특히 살인마의 대사는 거의 완벽하게 기억하는 그였다. 워낙 많이 들었던 탓도 있었고 대사 하나하나가 놓치기 싫을 정도로 완성도가 있었다.
“그것 봐! 너도 나와 별반 다른 것이 없다니까!”
타아악!
성우가 대사를 중얼거리는 순간.
무대의 조명은 한순간에 바뀌었다.
그를 중심으로 떨어지는 핀포인트 조명은 눈부셨다.
갑작스러운 변화였다.
성우는 빗질을 그만두고 허리를 폈다.
밖으로 나갔던 주이호가 돌아온 것이 아닌가 싶었다. 하지만 곧 그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의 시야에 보이는 무대는 극단 작두의 것과 차이가 있었다. 그리고 언제 들어왔는지 낯선 두 사람이 무대 위에 서 있었다.
-주이호! 너 그따위로 하려면 다 때려치우고 시골로 다시 내려가.
-더 열심히 하겠습니다. 다시 한번 기회를 주세요.
-발성도 연기도 모두 기준 미달이야! 내 무대를 더 더럽히지 말고 당장 꺼져!
-해솔 형!
무대 위의 두 사람.
그 가운데 성우는 익숙한 얼굴을 찾았다.
주이호가 15년 정도 어려지면 이런 얼굴일까? 확실히 앳되고 마른 시절의 그는 평소에 하던 말처럼 꽤 잘생겼다. 역시 최고의 성형은 다이어트라는 말이 헛된 말은 아니었다.
반면 해솔이라 불리는 남자.
그의 얼굴은 성우에게 보이지 않았다.
그 남자는 등을 돌린 상태로 주이호를 향해 호되게 호통을 쳤다. 그리고 그의 부족함을 낱낱이 까발리고 있었다. 그것을 들으며 성우는 두부를 찾았다. 설명조차 불가능한 상황을 벌일 존재는 그밖에 없었다.
‘이거 도대체 뭐야?’
-과거를 보여주는 거야. 유지하기 상당히 힘드니까 흘려듣지 말고 잘 들어.
‘도대체 뭘 보라는 거야?’
-해솔이라 불렸던 한 남자가 너에게 해주고 싶은 말.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성우는 그가 어떤 것을 바라는지 알 수 있었다.
자신의 안에 있는 해솔이라는 남자는 무대 위에서 장난치듯 대사를 내뱉은 자신을 탓하고 있었다. 말 한마디라도 무대 위에서는 진심을 담으라는 충고였다. 그것을 이야기하기 위해 이런 환영까지 끄집어낸 것이었다.
‘내가 연극배우도 아닌데.’
성우는 투덜거렸다.
하지만 멈출 수 없었다. 그만큼 해솔의 열정과 연기에 대한 한은 넘쳐 흐를 정도였다. 그렇기에 성우는 도저히 대충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결국, 해솔이 지적해주는 것을 계속 수정해가며 대사를 이어가야 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도 있었다. 점차 지적의 빈도가 점차 줄어드는 것이었다.
[그것을 왜 나한테 묻지? 나한테 원죄를 묻는 건가?]
-이 사람들의 눈을 똑바로 보고 말할 수 있어?
[할 수 있어! 내 죄는 그저 그들에게 안식을 준 것 뿐이야.]
-아니 네가 저지른 죄는 악마나 할 수 있는 일이야. 도저히 사람으로서 할 수 없는 짓이지.
[시끄러워! 나한테 유죄를 내릴 수 있는 존재는 단 하나야. 그게 바로 나란 말이야! 난 유죄가 아냐!]
대사를 하며 내뱉는 목소리.
성우는 그게 과연 자신의 것이 맞나 싶었다.
평소 자신의 목소리가 아니라 아예 다른 사람이 말하고 있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상대 역할의 대사를 두부가 해주자 점차 연기라는 매력에 푹 빠져들었다.
어느 시간이 지났을까?
극단 작두 안으로 누군가 들어오는 인기척이 났다.
그리고는 곧 성우가 펼치는 열연을 보고 발걸음을 멈춰야 했다. 성우는 빈 객석을 놓고 처절하게 연기를 펼쳐 보이고 있었다.
“저 녀석이 왜?”
그는 바로 주이호였다.
하지만 성우의 연기를 멈출 수 없었다.
그토록 절실하게 무대 위에서 펼쳐지길 바라던 그의 상상 속의 주인공이 엿보였다. 그런데 하필 그것이 무대 위에서 성우를 통해 보여지고 있었다. 그 낮게 깔린 저열한 목소리며 광기가 가득 찬 눈빛까지 완벽했다. 당연히 그의 입에서는 탄성이 터졌다. 그런 이호의 반응을 보며 뒤에서 심연빈의 심기 불편한 소리가 나왔다.
“저게 뭐 잘 하는 거라고...”
“정말 그렇게 생각하는 거야?”
“당연하죠. 연기의 기본도 안 되어 있는 녀석이랑 저와 비교하는 건가요?”
심연빈은 버럭 소리쳤다.
안 그래도 쌓일 만큼 쌓인 불만이었다.
불과 조금 전까지 자신에게 온갖 타박을 주던 이호의 탄성이 심기를 거스른 것이었다. 언제 터져도 터질 것이 이제야 터졌다고 봐야 했다.
연빈은 자신이 어느 극단을 가도 이렇게 지적질을 당할 짬밥이 아니라 생각했다. 하지만 이호의 계속되는 잔소리는 마치 극단 막내였던 지난 과거를 떠올리게 했다.
“그렇게 자신 있어?”
“저도 연극판에 선 지 6년째가 넘었습니다!”
“그러면 쟤랑 한 번 붙어 보든가?”
“주 연출님! 정말 너무 하신 거 아니에요?”
“내가 봤을 때. 지금의 너는 저 녀석이 보여준 것의 반도 안 돼.”
주이호의 이죽거리는 말.
그의 말은 결국 심연빈의 뚜껑을 열게 만들었다.
반면에 성우는 갑자기 들리는 큰 소리에 깜짝 놀랐다.
그 순간 두부가 만들어낸 환상은 깨졌다.
그제야 성우는 자신이 있는 곳이 극단 작두의 무대 위라는 것을 다시 감지할 수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그의 앞에 서 있는 사람들이었다. 어느 사이에 돌아왔는지 무대의 바로 앞에 서 있는 세 사람. 그들 가운데 주이호와 심연빈은 사나운 눈길을 주고 받고 있었다.
‘뭐지? 내가 무척 중요한 것을 놓친 거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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