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끼 -4
무사귀(無祀鬼).
혹은 무사귀신이라 불리는 존재.
그것들은 악귀였다.
온갖 불행한 이유로 죽음을 달한 이들의 원혼이 무사귀였다. 당연히 그런 원한을 가지고 있는 귀신이 인간에게 해코지하지 않을 리 없었다. 행인에게 행패를 부리는 것은 기본 중의 기본이었다.
더구나 성우가 발견된 그 공동묘지는 무연고 사체를 묻는 곳이었다. 당연히 무사귀가 득실거릴 수밖에 없는 조건이었다.
-옛날이 좋았지 그때는 전염병이 돌면 우리한테 제사도 해주고 그랬는데.
“그런데 자꾸 우리라고 하는데 너 혼자가 아니야?”
-물론이지. 여럿이 있는데 나도 정확하게 몇인지 몰라.
“에혀··· 나한테 왜 이런 일이.”
꽈드득!
성우는 맥주캔을 찌그러뜨리며 중얼거렸다.
집으로 돌아온 그는 도저히 맨정신으로 있을 수 없었다. 아무리 이야기를 해봐도 자신이 미쳐가고 있는 것 같았다.
내 안에 다른 존재가 있다.
그 말을 누가 믿어줄지 모르겠다. 군대를 제대하면서 황금빛 미래를 꿈꾼 것은 아니었지만, 이런 일이 생길 거란 생각은 전혀 못 한 그였다. 그러다 문득 옛 생각이 났다.
해리성 장애와 이인증.
부모님의 말씀으로는 자신이 어렸을 때 겪었던 증상이라 했다. 하지만 전혀 기억이 나지 않았다. 혹시 이 목소리 때문인지 궁금했다.
“옛날부터 함께였다고? 나랑 이야기한 적이 있나?”
-있지. 그때의 너는 순수해서 재미있었는데.
한동안 이야기는 이어졌다.
전혀 믿을 수 없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그 어떤 누구도 이 현상을 설명해줄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지금 같은 상황에서 해외에 계신 부모님께 연락하기도 어려웠다. 타지에서 고생하고 계시는데 걱정을 끼치기 싫은 그였다.
“그래서 너는 살아있을 때 어떤 사람이었는데?”
성우는 그것이 궁금했다.
자신 안에 깃든 이들의 대표 격인 이 목소리의 주인이 알고 싶었다. 하나 확실한 것은 적어도 현대의 인물은 아닌 것 같았다. 그 질문에 목소리는 신이 나서 자신의 소개를 했다.
두사충의 후손.
이름은 부라 말한 이 사람은 구한말 시대를 살았다고 한다. 아니 그 이전에 그 이름을 듣고 성우는 한참이나 웃어야 했다. 물론 그것을 듣고 두부는 성을 냈다. 엄연히 한자와 뜻이 다르다는 항의였다. 아마 생전에도 그 이름으로 인해 많은 놀림을 당했던 것으로 보였다.
“그래서 언제부터 나한테 기생했는데?”
-자꾸 기생. 기생하지 말라니까!
“내가 드루와~! 이런 말을 하며 몸을 내준 거는 아니잖아.”
-불쌍했거든 그냥 놔두면 잘못될 것이 뻔했고. 이래 봬도 아이는 안 건드려. 하지만 무리 속에 상종하지 못할 잡놈들 섞여 있어서 네가 고생이 많았지.
“잡놈들?”
-무사귀이자 자손도 없는 무주귀(無主鬼). 녀석들은 아이들을 보호해야 한다는 개념이 없어.
그 말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무사귀라 자신을 칭하는 이 녀석이나 그거나 별반 다르지 않을 것 같았다. 한동안 그 차이를 생각하다 성우는 그만두기로 했다. 무사귀든 무주귀든 귀신은 다 귀신일 뿐이었다. 그에게 둘의 차이가 그리 와닿지 않았다.
-하여튼 말썽 피던 녀석들은 모두 힘을 합쳐 강제로 잠들게 해놨지.
“퍽이나 고맙게 생각하겠다.”
-뭐 바라지도 않아.
두부가 말을 끝내는 순간.
성우의 머릿속은 번쩍였다. 그리고 그의 기억 속에서 사라진 기억의 파편이 하나씩 떠올랐다. 덕분에 성우는 자신이 겪었던 일을 조금이나마 알아차릴 수 있었다.
“혹시 그때의 그 푸른 불꽃?”
-오호 드디어 기억해냈구나. 맞아 그곳에 남아 떠돌던 영혼들이지.
“아 몰라! 시끄러우니까 인제 그만 사라져.”
가장 간절한 것이 그것이었다.
자신에게 깃든 이것들을 치울 방법이 필요했다. 하지만 딱히 떠오르는 것이 없었다. 심지어 팔찌를 다시 꺼내 이어보기도 했다. 믿고 있던 그것마저도 전혀 소용이 없었다.
-해봤자 소용없다니까. 내 말 믿고 괜히 힘 빼지 마.
-내가 한참 잘 나갈 때는 말이지...
-우리 집안이 대대로 관상을 잘 보는데 나 역시 그것을 배워서 한양 최고의...
-이봐! 듣고 있어? 무시하지 말라니까.
그의 말은 철저히 무시했다.
맘 같아서는 두부고 뭐고 갈아서 씹어 먹고 싶은 그였다. 하지만 곧 성우는 두 손을 들 수밖에 없었다.
두부라 자신을 밝힌 목소리.
그는 투 머치 토크의 달인이었다.
어찌나 끊임없이 말을 내뱉는지 정신이 혼미해질 정도였다. 결국, 성우는 그와 담판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든 조용히 시켜야 했다. 쉬고 있어도 쉬는 느낌이 전혀 안 들었다.
“말 정말 많네. 도대체 나한테 바라는 게 뭐야?”
-세계 평화? 미소녀들과 함께하는 하렘?
“그건 또 어디서 들어가지고. 꼴값하지 말고 내가 할 수 있는걸 말해.”
-글쎄 딱히 생각나는 게 없는데... 다른 이들한테 물어봤는데 너무 많아서 정리가 조금 필요할 것 같아.
“그럼 질문을 바꿀게. 뭘 어떻게 해줘야 입을 닥치고 있을래?”
성우는 인상을 팍 쓰며 말했다.
그러자 다소 움츠러든 목소리로 두부가 제안 하나를 꺼냈다. 지금까지와 다른 주눅 든 느낌이고 또 조심스러운 말투였다.
-우리를 위해 제사상 하나만 차려줄래?
* * *
귀신과의 기묘한 동거.
인간인 성우와 무사귀 두부의 합의점은 제사상이었다. 딱히 종교를 가지고 있지 않은 그이기에 안 될 이유는 없었다.
제사상이라 해도 별거 없었다.
집에 돌아다니는 즉석밥과 고기 몇 점 그리고 과일이 전부였다. 하지만 그마저도 두부는 무척 기뻐했다. 오랜만에 먹는 밥이라며 울먹일 정도였다. 그런 반응을 보며 성우는 조금 안쓰럽기도 했다.
-고맙다. 제삿밥은 정말 오랜만이야.
“고마우면 이제 적당히 떠들어.”
-오케이 인정!
“그런 거는 어디서 배우는 거야?”
성우는 그게 궁금했다.
그러자 두부는 웃으며 말했다.
-다 너를 통해 듣고 보고 배우지.
“내가 안 보면 너희도 모르는 거야?”
-물론이지. 그동안 우리는 말하지 못했을 뿐. 너를 통해 경험하고 느끼고 있었지.
그 말을 듣고 성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다가 곧 시계를 보고 나갈 준비를 했다. 오늘은 주이호와 저녁을 먹기로 약속된 날이었다. 사고가 날 뻔했던 날로부터 3일이나 지나 있었다.
그 동안 성우는 두부의 이야기를 듣느라 바빴다.
두부가 해주는 이야기는 재미있었고 또 흥미로웠다. 구한말 당시를 직접 살던 이의 생생한 증언에 홀딱 빠진 것이었다. 음성으로 지원되는 한 권의 책을 읽은 기분이 들 정도였다.
“하여튼 약속은 지켰으니 이제 너도 약속을 지켜야지?”
-조용해달라고 하면 입에 자물쇠 채울게.
“그리고 내 생각 읽지 말라는 것도 지켜.”
-물론이지!
그가 알아낸 새로운 사실.
그것은 그가 말을 하지 않더라도 두부가 알아차린다는 것이었다. 사실상 생각만으로도 대화가 가능한 것이었다. 그것을 알아낸 것도 우연에 가까웠다. 제사상에 과일을 올리기 싫다고 생각한 것을 두부가 귀신같이 짚어내는 것을 보고 추궁 끝에 알아낸 사실이었다.
1시간쯤 후 혜화역 2번 출구.
성우는 정말 오랜만에 그곳으로 향했다.
사실 오랜만이라고 해봤자 딱 한 번 온 것이 전부였다. 그마저도 친구끼리 저녁을 먹는다는 핑계였다. 하지만 오늘 그가 향하는 곳은 식당이 아니었다.
“이 주소가 맞나?”
주이호가 찾아오라며 준 주소.
그곳에 도착하니 허름한 건물 하나가 있었다. 심지어 그 입구는 시커멓게 불빛조차 안 들어왔다. 선뜻 내려가기 애매했다. 성우는 어쩔 수 없이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잠시 후 그곳에서 이호가 나왔다.
“미안. 아직 일이 안 끝나서 조금 기다려줄 수 있어?”
“괜찮아요. 근처에 가 있을까요?”
“아냐 그냥 내려와서 앉아 있어. 금방 끝날 거야.”
그렇게 말하며 이호는 어서 오라며 손짓했다.
그런 그의 덩치 큰 등을 따라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그의 시야에 환한 조명이 가득 찬 무대가 보였다. 확실히 연극의 성지라 불리는 대학로다웠다.
[저는 미치지 않았다구요!]
[어머니 제발 하나님 앞에 참회하세요. 과거를 속죄하고 미래의 죄악을 피하세요... 햄릿은 미친 게 아니라 미친 척 한다구 말이에요. 주무세요. 이 늙은 시체는 제가 처리하겠습니다.]
[사느냐 죽느냐, 이것이 문제로다.]
낯선 한 남자.
그가 무대 위에서 펼쳐지는 연기.
그 장면을 보며 성우는 소름이 끼쳤다.
처음 대면하는 연극 무대 위에서의 연기였다. 영화나 드라마로 보던 것과 선명한 차이가 있었다. 배우의 발성과 호흡 모두가 직접 생생하게 전해지는 것이 느껴졌다. 성우는 순식간에 그의 연기와 작품에 몰두했다.
유성우와 무대.
그 떼어 놓을 수 없는 인연.
그 운명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