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끼 -1
참새가 재잘거리는 소리.
그 소리를 듣고 성우는 눈을 떴다.
잠시 후면 기상을 알리는 소리가 들릴 것이 분명했다.
그의 생체 시계는 남들보다 무척 정확했다. 하지만 그런 예상은 빗나갔다. 아무리 기다려도 정적만 흘렀다. 그러다 성우는 잊고 있던 것을 떠올릴 수 있었다.
“맞다. 나 어제 전역했지?”
성우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다시 눈을 감았다.
다시 잠을 청했지만, 이미 깨어버린 지 오래였다. 2년에 가까운 세월 동안 몸이 완벽하게 적응한 탓이었다. 한동안 침대 위에서 뒹굴뒹굴하다 결국 일어나야 했다. 그러자 그의 시야에 어제저녁 벗어 던져 놓은 군복이 보였다.
예비역이라 쓰고 백수라 읽는 존재.
성우는 당장 오늘부터 뭘 해야 하나 고민이 많았다. 어떻게 보면 군대가 편한 것이 그것이었다. 뭐를 해야 할 지 생각할 필요가 없었다. 위에서 정해준 일정에 따라 움직이면 그만이었다. 능동성을 잃어버린 그로서는 오늘 아침에 뭘 먹을지 그것마저 고민이 되었다.
“아차! 전화한다고 까먹었네.”
시계를 보니 적당한 시간이었다.
책상 위에 올려 두었던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어제 정지해 놓았던 것을 풀고 집에 와서 충전시켜 놓았기에 배터리는 충분했다. 그리고 어플을 열어 통화버튼을 눌렀다. 얼마나 기다렸을까? 마침내 상대방이 받았다. 그리고 하이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들~ 전역 잘 했어?
“물론이죠. 잘 지내고 계시죠?”
-호호 군대에서 고생한 아들만 할까. 제대하는데 못 가봐서 미안해.
“제 생각에는 그곳이 더 고생일 거 같은데. 막 사자가 뛰어놀고 그런 곳 아니에요?”
성우의 말에 어머니가 한참 웃었다.
하지만 그의 말이 그리 틀린 것은 아닌지 딱히 반박은 없었다. 그의 부모님은 현재 한국에 없었다. 그가 군대에 들어간 직후 아프리카 등으로 의료지원 활동을 위해 한국을 떠난 것이었다.
두 분 모두 의사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물론 성우는 그 결정에 위험하다며 반대했다. 하지만 그 이유가 자신 때문이라는 것을 듣고 무작정 반대만 할 수 없었다. 부모님은 이틀 정도 그가 실종되었을 때 아이만 찾을 수 있다면 사회에 헌신하며 살겠다고 깊게 다짐했다고 했다. 아쉽게도 성우는 그날의 일을 전혀 기억하지 못했다.
“아직도 나이지리아에 있어요?”
-그렇지 뭐. 그래도 처음 왔을 때 생각하면 많이 좋아지고 있어.
“다행이네요. 아빠는 어때요?”
-그이야 매일 환자 보느라 바빠. 바꿔줄까?
“바쁘면 다음에 통화할게요.”
-그래. 지금 막 위급한 환자가 도착해서 나오면 전화 주라고 할게. 팔찌는 잘 하고 있지?
“당연하죠. 아주 신줏단지처럼 모시고 있어요.”
그가 실종된 이후.
다시 사람들에 의해 발견된 것은 이틀 후였다.
발견된 장소는 놀랍게도 산 너머 공동묘지 부근이었다. 멧돼지가 파놓은 듯한 구덩이 안에 그가 들어가 있었던 것을 마을 주민이 찾아낸 것이었다. 그 모습에 귀신에게 홀렸다며 마을 사람들의 수군거림이 있었지만, 부모님 귀에는 그게 들어올 리 없었다. 그저 아들을 무사히 찾은 것이 중요했다.
하지만 그 이후 성우는 크게 아팠다.
도저히 알아들을 수 없는 헛소리를 했다.
종종 다른 사람이 빙의된 것 같은 모습도 보였다.
두 분 모두 의사였음에도 그 증상을 설명할 수 없었다. 온갖 병원을 찾아다녔지만, 차도가 없었다. 결국, 어머니는 자신이 의사라는 것도 잊고 용하다는 무당까지 찾아 나서야 했다. 그만큼 그의 증세는 평범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다 만난 한 무당 할머니.
그녀가 준 것이 바로 이 팔찌였다.
이것을 받으며 무척 많은 금액을 줘야했지만, 그 효과에 대해서는 어머니는 크게 만족했다. 팔찌를 하고 난 이후 그의 증세는 호전되었다. 그리고 곧 예전과 같은 밝고 건강한 아이로 돌아갔다. 그때부터 어머니는 언제나 팔찌를 잘 하고 다니는지 체크하는 것이 버릇처럼 되었다. 더 웃긴 것은 그 모든 것이 전혀 기억나지 않는 그였다.
“건강하시고 다음에 또 전화 드릴게요.”
-그래. 몸 조심하고
“네. 끊을게요.”
성우는 한동안 이야기를 나누다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는 방안을 둘러봤다.
긴 시간 비어있던 티가 확실하게 났다. 곳곳에는 먼지가 그득했다. 자칫하면 먼지 귀신이 나올 것만 같았다. 그것을 보며 오늘 할 일을 결정했다.
“으차! 일단 청소다.”
30평 남짓한 2층 단독 주택.
그곳을 치우기 위해 성우는 한동안 진땀을 흘렸다.
어머니가 부탁해 작은이모가 종종 봐주긴 했어도 사람이 살지 않은 티가 확연히 났다. 예전 그의 기억 속에 있던 반들반들한 모습은 좀처럼 돌아오지 않았다. 그렇게 얼마나 쓸고 닦았을까? 진이 모조리 빠진 성우는 두 손을 들고 말았다.
“역시 청소가 가장 힘들어.”
그렇게 중얼거리며 소파에 앉았다.
그래도 전과 비교하면 많이 상태가 좋아졌다. 그 모습에 뿌듯함이 밀려왔다. 하지만 이내 등줄기에 흐르는 땀에 샤워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졌다.
쏴아아!
시원한 물줄기 속에 들어갔다.
그러자 등골을 따라 상쾌한 기분이 들었다.
역시 땀을 흘린 이후에 샤워하는 것이 제일 기분 좋은 일이라며 성우는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이제 막 군대에서 제대해서일까? 그의 몸은 무척 다부졌고 잔 근육이 꿈틀거렸다.
말년 병장의 유일한 취미.
그가 한동안 열심히 몸을 만들었던 영향 덕분이었다.
하지만 뭐 딱히 보여줄 사람이 없다는 것이 흠이었다. 중고등학교는 물론 군대에 대학까지 남자들만 우글거리는 곳에 살던 그였으니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거울 속에 보이는 얼굴.
자신의 모습을 보며 성우는 희미하게 웃었다.
매번 볼 때마다 참 잘 생겼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것이 그만의 생각은 아니었다. 객관적으로 보더라도 조각 미남까지는 아니지만, 제법 잘 생긴 축에 들어가는 것은 사실이었다.
띠리리링!
핸드폰이 울리는 소리가 났다.
지금 그에게 연락할 인간은 단 하나였다. 그것을 떠올리며 성우는 옷을 입고 밖으로 나와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아 왜~?”
-이번 촬영 한 번만 도와주라. 내가 오죽하면 이렇게 또 부탁하겠냐. 그냥 가서 서 있기만 해도 된다니까.
“안 한다니까. 이 자식이 어제도 말했잖아.”
-술 사줄 때는 좋다고 먹더니 이제 와 모른 척 하기냐?
“내가 무슨 뇌물이라도 먹었어? 제대 축하주 사준다고 불러 놓고는 무슨!”
제대한 그날 만난 사람.
그것이 바로 이 녀석이었다.
중고등학교를 단짝으로 지냈던 공진수.
그 녀석이 축하해주겠다며 자신을 불러낸 것이었다. 하지만 문제가 생긴 것은 저녁 늦을 무렵 걸려온 전화 한 통 때문이었다.
갑자기 펑크 난 보조 출연자.
그것을 메꿔야 한다는 지시였다.
그가 현재 일하고 있는 곳은 보조 출연자를 제공하는 일종의 인력 회사였다. 하지만 이미 밤늦은 시각이었다. 진수 나름 이곳저곳 알아본다며 전화를 돌렸지만, 어려워 보였는데 결국 메꾸지 못한 것이었다.
-12시 사당역! 안 오면 알지?
“야!”
뚜뚜뚜.
대답하기도 전에 끊긴 전화.
일방적인 통보를 받은 성우는 한숨을 쉬었다.
앞으로 돈을 벌기는 해야 하지만, 전역 다음 날부터 일할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친구의 절규 어린 부탁을 거절하기는 어려웠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진수는 그에게 그런 부탁을 할 자격이 충분히 있었다. 군대에 있을 때 유일하게 면회 온 사람이 바로 그였다.
“에휴 모르겠다. 일단 가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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