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렘마스터] 117 # 절망과 희망의 미묘한 차이[6]
슈슈슈슉!
순간 녀석의 손바닥에서 심연의 구체가 쏟아져 나왔고, 모든
것을 실은 최후의 공격이 실패로 돌아가 멍해진 바주크의 가
슴에 작렬했다. 폭발도 없었고 파고드는 것도 없었지만, 순간
바주크의 얼굴이 무음의 고통으로 일그러지면서 그대로 균형
을 잃고 어깨에서 바닥으로 떨어져 내렸다.
"바주크……."
눈물 따윈 나지 않았다. 그가 죽었는지 죽지 않았는지는 아
직 모르는 일. 아투는 금강 골렘을 이끌고 무작정 다시 한번
달려나갔다. 아트란이 급히 아들을 말리려 했지만, 그 거친 기
세에 밀려 뒤쳐졌다.
"아투! 잠깐! 이 녀석, 그 새를 못 참고 일을 벌이려 하다니!
자자, 내가 왔으니 진정하라고!"
이성을 잃고 날뛰려는 아투의 귀에 낯익은 음성이 들려와 평
정으로 이끌었다. 곧 골렘과 함께 뒤로 물러선 아투는 음성의
주인공에게 다가갔다.
"자자, 인사 따윈 필요 없고, 일단 시키는 대로 물건을 완성시
키신 했어. 마법 과학의 지식으로 약간 편리함을 더했지."
제국에서 일하게 됐던 드워프 과학 장인 기스뮬이었다. 그리
고 그의 뒤쪽으로는 아투 일행이 부탁했던 거대한 그것이 천
에 가려진 채 사용될 순간만을 기다리는 듯 숨을 죽이고 있었
다.
"하지만 정말 이론대로 모든 것이 해결될까?"
바주크의 불안한 질문이 아투에게로 향했다. 하지만 아투 또
한 그러한 질문을 던지고 싶었을 뿐이다. 절레절레 고개를 젓
던 그는 열 명 가량이 매달려야 운반이 될 듯한 커다란 그것
쪽으로 다가가서는 덮인 천을 벗겼다.
후르륵
과연 드워프의 솜씨는 대단했다. 대충 종이에 그려주었던 이
미지를 그대로 현실 세계로 옮겨놓은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
킬 정도로 기스뮬은 정확히 그것을 구조대로 완성해온 것이
다.
그것의 정체는 거대한 대포였다. 훗날 마법 과학의 발달로 인
해 마법사 병단의 자리를 차지할 그 거대한 대포의 모체가 바
로 이 자리에 처음 등장했다고 할 수 있다. 매끄럽게 제련된
미스릴 재질의 대포 몸체는 완만한 곡선을 이루며 길게 뻗어
마차 위에 올려져 있었고, 마차와 대포의 포대를 이어주는 부
분 또한 갖가지 강력하다는 재질의 금속들로 이루어져 있었
다. 약간 눈여겨봐야 할 부분은 바로 포대의 뒤쪽 부분에 커다
란 투명한 색의 수정이 매달려 있다는 점이다.
"우리들의 생각대로라면 모든 것은 이것 한 방으로 끝날 거
야. 만약 뜻대로 되지 않는다면…. 하하. 그런 생각은 하지 말
자고. 좋은 쪽으로 생각해야 오래 살지 않겠어?"
친구 기스뮬의 앞이기에 농담을 주고받았지만, 사실 아투도
자신들의 판단이 그릇되어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가게 되지
는 않을까 그것이 두려웠다.
'잘 될 거야. 그래, 잘 될 거야. 엔젤과 드래곤 그리고 엘프와
드워프 마지막으로 인간의 모든 지식과 힘이 총 망라된 이 천
지마동포가 마족의 힘으로 탄생하게 된 테이란 스플랜의 공격
에 밀릴 리가 없잖아.'
스스로를 위로한 아투가 급히 테이란 스플랜과 사투를 벌이
고 있는 일행을 안정권 안으로 불러들였다. 천지마동포가 테
이란 스플랜을 제외한 다른 존재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
장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건 무슨 장난감이지?』
타크니스가 모두가 물러나 썰렁해진 공간에서 눈을 돌려 이
상한 물체를 확인하고는 그렇게 물어왔다. 하지만 대포를 작
동시키기 위해 서있는 아투와 기스뮬은 그 질문에 대답하지
않고 녀석을 향해 웃음을 흘렸다. 그리고 녀석이 사태를 눈치
채기 전 모든 것을 끝내기 위해 옆에 놓인 천지마동포로 손을
뻗었다.
"자 기스뮬. 조준은 미리 해놨겠지?"
"물론이지. 게다가 테이란 스플랜에게서 발산되는 독특한 성
질의 마나에 반응하도록 해달라는 주문 아래 제작된 것이라
아마도 어느 정도의 추적 기능은 갖췄을 거라 생각돼. 약간의 오차는 무시할 수 있다는 말이지."
"좋아, 그럼 시작하자!"
무엇을 저렇게 중얼거리는 것일까. 타크니스는 자신의 질문
에 대답하지 않고 자기들끼리 수군거리는 그들을 바라보면서
화가 치미는 걸 느꼈다. 감히 나를 무시하다니. 핏빛 골렘을
움직여 먼저 황성부터 파괴하여 자신의 강대함을 인식시켜주
고 싶었다.
"가동! 천지마동포!"
그때였다. 갑자기 타크니스의 깊은 곳에서 엄청난 공포가 살
아나 그의 머릿속을 지배했다. 천지마동포 따위의 장난 식 말
투에 놀란 것이 아니었다. 그와 동시에 폭발하는 엄청난 기
운. 그는 그 기운을 감지하고는 크게 떠진 눈으로 고개를 돌렸
다.
과연 갑자기 등장한 이상한 물체에서 반투명한 기운이 기둥
처럼 굵은 모습으로 날아오고 있었다. 이미 그것을 쏘아낸 장
난감 같은 물건은 반발력에 의해 뒤로 날아가 부셔져 있었지
만, 타크니스의 모든 오감과 정신은 반투명 기운에 집중되어
그 사실도 알아차리지 못했다.
『내 몸이…. 내 몸이 엄청난 공포로 인해 움직이질 않아.
어, 어째서 이런 일이…』
얼굴과 몸에서 경련을 일으킨 타크니스는 핏빛 골렘의 가슴
으로 그 반투명한 기운이 지나가는 것을 막지 못했다. 하지만
그는 느낄 수 있었다. 그 한 차례의 공격으로 테이란 스플랜
의 막강한 존재감이 서서히 사라지기 시작한 것을.
『어째서냐. 어째서 마도 병기가 그 따위 물건에서 뿜어진 기
운에 이런 꼴을 당하는 것이냐.』
타크니스가 낮게 깔린, 아직도 공포에 휩싸인 목소리로 물었
다. 천지마동포가 뒤로 날아갈 때 그 여파에 휘말려 아직 나타
나지 않은 아투와 기스뮬을 대신하여 그 대포의 제작을 의뢰
했던 화이엘이 엔젤 나이트와 그라디우스의 엄호 아래 녀석에
게로 다가갔다.
"타크니스, 당신은 애초에 모든 것을 생각지 못하고 오로지
한 가지의 목표에 집착하여 실수를 범했던 겁니다. 일단 당신
은 어둠의 신성력과 마나가 한군데 자연스럽게 융합할 수 있
다고 생각한 모양인데 그건 착각입니다. 그 둘은 잠시 함께 있
을 수는 있어도 힘을 합치진 못합니다. 물론 예전 역사 속에
등장했던 테이란 스플랜은 극도로 어둠의 신성력이 제한을 받
고 풍부한 마나만으로 활동하였기에 큰 단점은 존재하지 않았
지만, 지금은 달랐습니다. 당신은 아크 스태프로 골렘을 조종
할 때 본능적으로 마기를 주입하여 골렘에 적지 않은 무리를
준 것입니다. 그것 때문에 서서히 테이란 스플랜의 움직임이
둔해지고 본 힘을 발휘하지 못하게 됐습니다.
물론 결정적인 타격을 주었던 천지마동포. 그것은 순수한 신
성력의 강대한 방출 기계입니다. 테이란 스플랜은 거대한 골
렘이니만큼 외부의 마나를 제외하고도 스스로의 몸에 마나를
지녀 가동되는 거체라서 당연히 강한 마나가 응축된 핵이 필
요하겠죠. 골렘의 구조상 온 몸에 마나를 퍼뜨릴 수 있는 중심
은 바로 인간들의 심장이 자리하는 왼쪽 가슴. 바로 테이란 스
플랜 또한 왼쪽 가슴에 핵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들은 이
대포를 이용하여 핵의 중심 기운인 마나를 신성력의 방출로
소멸시키는 방법을 택한 것입니다. 과거 신들은 자신들의 강
성한 힘만을 믿고 그러한 약점을 노리지 않았지만, 우리들은
약한 존재입니다. 이런 방법말고는 테이란 스플랜을 제압할
방법이 없었습니다."
『크윽. 완벽한 계획. 태초부터 계획된 이번 일이 이렇게 허
무하게 무너지다니.』
타크니스가 이제는 완전한 힘을 잃고 오로지 약간의 마기만
이 남아 무너져 내리는 테이란 스플랜의 어깨에서 날아오르
며 씁쓸하게 중얼거렸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철저한
계획 아래 비밀리에 거행되는 거사였다. 누군가가 따로 개입
된 것도 아니고 그저 계획대로 차근차근 하나씩 이루어졌는
데 도대체 왜. 타크니스는 이제 두 동료 마왕까지 잃고 의지
할 곳도 없어 암담했다. 이번 일이 실패로 돌아감으로서 다른
마계의 능력자들이 자신에게 반기를 들을 것은 분명한 일. 암
담한 심정이 된 그의 바로 앞에 갑자기 백색의 거체가 불쑥 솟
아올랐다.
"당신들 같은 위대한 존재가 항상 말했지. 인간들은 완벽하
지 않아 실수를 반복하는 존재라고. 만약 고대 마도 제국의 사
람들이 신성력과 마나의 반발까지 생각하여 핵을 제조했더라
면 지금은 당신의 뜻대로 모든 것이 이루어졌을 거야. 결국은
당신의 말처럼 모든 것이 순리대로 돌아가게 되는 거지."
그냥 흘려듣기에는 너무나 어려운 말이었다. 하지만 아래에
서 타크니스와 아투, 그리고 금강 골렘 가이트리아의 대치를
바라보고 있던 제국의 사람들은 그 말에 동감하며 고개를 끄
덕였다.
『결국 하급 마족의 제한을 풀었다는 성과 하나로 만족한 채
돌아가야 하는 건가?』
타크니스는 더 이상 지상계 종족들을 상대할 맛이 나질 않았
다. 녀석들은 약했지만, 또한 너무나도 강했다. 거의 다 잡았
다고 생각하면 어느 순간 다시 힘을 내고 있는 녀석들이 바로
그들이었다. 마족과는 뭔가 다른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닐
까? 갑자기 그는 창조주인 어둠의 신들과 코스모스에게 원망
하는 마음이 생겼다.
"당신은 돌아갈 수 없습니다."
아투의 옆으로 화이엘이 날아왔다. 그녀의 옆에는 인간형으
로 다시 폴리모프한 그라디우스가 그림자처럼 붙어 있었다.
타크니스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말뜻을 이해한
것이다.
그녀가 손가락으로 가리킨 잿빛 하늘에는 이미 코스모스 대
원칙에 근본적인 힘을 둔 대마법진이 형성되어 있었고, 마법
진의 중앙에서 코스모스의 사자들, 바로 코스모스의 물리적
모습을 한 발키리들이 잔뜩 쏟아져 나왔다. 그들의 몸에 새겨
진 빛과 용기와 사랑의 문양을 보니 아마도 코스모스가 빛의
사도들의 편을 들기로 한 모양이다. 게다가 지상계에까지 그
들이 나타났다는 것은 지상계 위협의 존재인 타크니스를 잡아
가겠다는 의도였다.
『코스모스까지 나선 이상 도망갈 수도 없게됐군. 크하하하
하.』
그가 미친 듯이 웃어댔다. 아투는 그저 연민의 감정이 담긴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그의 그러한
시선은 발키리들이 타크니스의 몸을 속박하고 녀석과 함께 다
시 대마법진 속으로 사라질 때까지 계속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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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망의 1부 완결입니다... -ㅁ-
아, 에필로그도 곧 올라갑니다.
[골렘마스터] 118 # 에필로그
에필로그
테이란 스플랜의 심장 역할을 하던 핵이 멈추고 발키리에 의
해 마왕 타크니스가 이 세계에서 떠나간 후, 벌써 몇 일의 시
간이 흘렀다. 언제 그런 무시무시한 일이 있었냐는 듯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맑았고 태양은 눈부시게 빛나 대지를 비추었
다. 시원스런 바람은 다시 찾아온 대륙의 평화를 곳곳에 전달
했고, 마계의 남은 마족들이 스스로의 세계를 타 세계와 봉인
했다는 소식까지 함께 실려 바람에 날렸다.
천상계의 빛과 어둠의 대립 또한 무난히 정리되었다고 화이
엘이 알려주었다. 코스모스의 아바타들인 발키리의 가세로 인
해 전세는 급격히 빛의 사도들 쪽으로 기울었고 결국 어둠의
신들이 패배를 인정하고 모든 신의 권한을 양도한 것이다. 게
다가 그들은 수 만년간 근신 처벌을 받아 일정 공간 밖으로 자
신들의 능력을 퍼뜨릴 수 없게 됨으로서 존재 자체의 위협은
벗어나 그나마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고 했다.
평화…. 왠지 실감이 나지 않는 평화의 앞에 선 아투는 얼떨
떨한 표정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마치 소형판 매테오라도
맞은 듯한 한쪽 도시 외곽 지역은 높은 성벽에 가려 보이지 않
았지만 아직까지 그때의 기억이 생생히 떠올라 진땀마저 흐르
게 했다.
하지만 오늘만큼은 몇 일전의 그러한 일들을 싹 잊게 하는 기
분 좋은 행사가 준비되어 있었다. 그 행사에 맞추어 성의 커다
란 안뜰은 갖가지 레이스를 비롯한 화려한 장식 도구로 치장
이 되어갔고, 적당한 자리에는 커다란 테이블과 의자들이 놓
였다. 안뜰과 내성이 연결되는 부분에는 작은 단상도 놓여졌
고, 단상에서부터 안뜰의 바깥 입구까지는 붉은 융단이 멋지
게 깔려 있어 한껏 멋스러움을 더했다.
물론 많은 변화가 생긴 안뜰의 인테리어도 볼만했지만, 아투
의 관심은 오로지 안뜰로 모여든 꽤나 많은 수의 사람들의 옷
차림에 있었다. 물론 행사의 목적이 목적이니 만큼 그에 어울
리는 당연한 차림들이었지만, 일행들까지 그런 옷을 입고 나
타나니 솔직히 적응이 되질 않았던 것이다. 물론 행사가 이제
막 시작되려 하고 있어 내색하지는 못했지만.
"여어! 아투. 여기서 뭐하냐? 행사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맡
은 네가 이러고 있는 걸 안다면 행사의 주인공인 화이엘님께
서 화를 내실 걸?"
순간 등을 치며 말을 걸어오는 친구를 돌아본 아투에게서 행
사의 시작 따위는 상관없다는 듯 엄청난 웃음이 쏟아졌다. 술
통처럼 짜리 몽땅한 친구 녀석이 또 이번 행사에 맞추어 갈색
의 정장을 입고 나타난 것이다. 정장과 자그마한 키, 그리고
육중하게 퍼진 몸매와 어울리지 않게 자란 거친 수염. 아무리
봐도 좋게 봐줄 수 없는 그러한 웃긴 모습에 아투의 웃음이 그
칠 줄을 몰랐지만, 행여나 이곳에 배틀 액스가 날게 되지는 않
을까 하는 걱정에 간신히 입을 부여잡고 웃음을 그쳤다.
"만약 조금이라도 더 웃었다면 넌 내. 손.에. 죽.었.을. 거.야."
"아, 알았어. 내 실수였어 실수. 아, 그나저나 화이엘이 화를
낸다니 무슨 소리야?"
"아투. 너 어떻게 그걸 잊을 수가 있냐, 어제 화이엘님께서 너
에게 부탁하고 난 뒤 이 행사를 열기로 마음먹으신 거잖아! 네
가 승낙했으니까 당연히 이 행사가 열리게 됐고!"
"아, 맞다! 크, 큰일이다!"
가슴을 치며 답답함을 호소하는 드워프 친구의 모습에 아투
가 그제야 어제 낮에 들었던 그녀의 얘기를 떠올리고는 맞장
구를 쳤다. 그녀의 성격 상 만약 이번 일이 잘못되기라도 한다
면…. 불길한 상상 속에 허우적대던 아투는 친구의 생사를 확
인하려는 듯 눈앞에서 손을 흔들어 보이는 기스뮬을 놔둔 채
급히 안뜰에 마련된 단상으로 향했다.
이미 행사가 시작되려는 듯 사람들은 안뜰의 한쪽에 마련된
가지런히 놓인 의자에 앉아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의자
의 한쪽에는 조각처럼 아름다운 얼굴과 몸을 지닌 여성들이
백색의 정장을 동일 되게 입고 숙연한 표정으로 단상과 반대
되는 방향에 시선을 두고 있었고, 그 반대편으로 놓여진 의자
의 사람들-루미니 공작, 샤우드 백작, 폰네스 후작과 실피스,
소울드, 바주크를 비롯한 여러 제국의 귀족들과 황성에서 일
하는 사람들의 대부분-도 그 여성들과 마찬가지로 단상이 바
라보고 있는 행사장의 입구에 모든 시선을 고정했다.
그렇다. 이 행사는 다름 아닌 천상계 존재인 엔젤 나이트의
수장 화이엘. 무한의 삶을 허락 받은 그녀가 영원히 함께 할
존재를 맞아들이는 행사. 바로 결혼식이었던 것이다.- 그렇다
면 하객들로 참석한 오른편의 여성들은 다름 아닌 엔젤 나이
트 대원들이라는 소리가 된다.-
신부가 화이엘이라면 신랑은? 아투는 헛기침을 해대며 뒤늦
은 등장에 대한 잘못을 하객들에게 깊게 고개를 숙임으로서
사죄했다. 급히 검은색 정장의 옷매무새를 다듬은 그는 저벅
저벅 걸어 신랑이 대기하고 있어야할 장소에 자리했다……가
아니라 바로 단상 앞으로 걸어가 주례가 서야할 곳에 자리를
잡았다. 하지만 하객들 역시 그의 행동을 당연하다는 듯이 바
라보고 있었으니….
"허험. 그럼 사회자, 시작합시다."
마치 늙은 사람처럼 헛기침을 한 아투가 단상 옆에 작게 마련
된 음성 증폭 기계 앞에 서있는 사회자, 미사엘을 바라보았
다. 신호를 받은 미사엘도 곧 아투에게 화답했다.
"네, 주례 선생님. 그럼 지금부터 천상계 위대한 존재 화이엘
님의 결혼식을 시작하겠습니다. 먼저 참석해주신 하객 여러분
께 감사의 말을 전합니다. 흐흠. 신랑 입장."
미사엘은 간단하게 소개식을 마친 후 바로 식을 진행시켰다.
신랑 입장이라는 신호를 들은 관현악 연주단은 아름다운 선율
로 결혼 행진에 쓰이는 곡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음악이 흐름과 동시에 식장 입구에서 금빛으로 찬란히 빛나
는 존재가 등장했다. 매끄러운 머리를 허리까지 늘어뜨리고
모든 것을 꿰뚫는 듯한 날카롭게 매서운 눈빛을 발하는 존재.
바로 인간형으로 폴리모프를 한 만 살 이상으로 추측되는 드
래곤 로드 그라디우스의 검은 정장차림 입장이었다.
저벅저벅.
하객들의 박수 소리에 유난히 요란하게 들려 당황한 그는 어
색한 걸음걸이로 천천히 걸어나가 주례를 맞아준 아투가 선
단상까지 다가가 멈추었다.
계속해서 식은 진행됐다. 신랑 입장 뒤에 이어지는 신부 입장
의 외침. 다시 한번 결혼 행진곡과 함께 식의 입구에서 화사
한 백색의 드레스를 입고 면사포를 얼굴에 쓴 붉은 머리 여성
이 등장했다. 손에는 화려하게 제작된 부케가 들려 있었는데,
전체적으로 수수한 느낌을 자아냈다. 평소 화려한 걸 좋아하
는 화이엘을 놓고 따진다면 식의 성격을 생각하여 많이 자제
를 한 것 같다고 제멋대로 생각하는 아투였다.
천천히 걸음을 옮긴 화이엘 역시 그라디우스의 왼쪽으로 다
가가 살며시 고개를 숙이고 자리를 잡았다. 면사포에 가려져
얼굴이 잘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왠지 얼굴이 붉어진 것만 같
아 되려 아투가 당황하고 있었다.
그라디우스님과 화이엘의 결혼이라……. 아투는 새삼 그들
의 보여준 과거의 행동을 떠올리고는 다시 터져 나오는 웃음
을 참기 위해 곤욕을 치를 뻔했다. 티격태격 아슬아슬 넘어가
는 두 사람의 대화 속에서 이런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사랑이
싹 튼 것일까? 잠시 행복해 보이는 두 존재를 바라보던 아투
의 시선이 하객들의 앞쪽에 자리한 황제 미스티에게 고정되었
다.
"아투. 뭐해, 빨리 시작해."
주례를 맞은 아투가 머뭇거리며 딴 쪽을 바라보자 화이엘이
그에게만 들릴 정도의 작은 목소리로 그를 재촉했다.
"허험. 그럼 식을 시작하겠습니다. 여기 드래곤의 위대한 지
도자인 그라디우스님과 천상계의 고귀한 존재이신 화이엘이
그들만의 영원한 약속을 위해 자리하였습니다. 이 둘은 서로
의 감정을 공유해야 하며 힘든 시련이 닥쳐온다고 해서 지금
의 사랑이 변치 않아야 할 것입니다. 서로에 대한 비밀이 없
고 진실된 모습을 보여야 합니다. 그리고……."
결혼식장의 형식적인 절차. 주례 선생의 기나긴 말이 이어졌
다. 하지만 지루해하는 하객들은 전혀 없었다. 천상계의 고귀
함과 지상계의 자존심 이 둘의 결합은 흔히 있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게 시간이 조금 흐르자 아투가 밤새 준비했던
주례의 말도 거의 절정에 다다랐고 드디어 결정적인 질문이
던져졌다.
"먼저 그라디우스. 당신은 기쁠 때나 슬플 때나 항상 진실된
모습으로 아내인 화이엘을 맞으시겠습니까? 영원을 약속하여
주십시오."
"네, 영원을 약속합니다. 화이엘에게 영원을 약속합니다."
머뭇거릴 줄만 알았던 그라디우스가 의외로 시원스럽게 답
을 해주었다. 아투는 즉시 화이엘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예전엔 나를 좋아하는 것 같았는데 나만의 착각이었나?'
"그럼 화이엘. 당신은 기쁠 때나 슬플 때나 항상 진실된 모습
으로 남편인 그라디우스를 맞으시겠습니까? 영원을 약속하여
주십시오."
"약속합니다. 제 목숨이 다하는 순간에도 그 약속은 이어질
것입니다."
화이엘도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영원을 약속했다.
"그럼 마지막으로 맹세의 키스를 해주십시오."
주례로서의 마지막 역할 모든 것을 증명해줄 키스를 요구하
며 아투는 속으로 뿌듯함을 느꼈다. 비록 화이엘의 요청에 의
해 나이 어린 그가 주례를 맡았지만, 다행히 별 무리 없이 준
비된 주례사로서 식이 끝나가고 있었기에.
"화이엘."
"그라디우스님."
두 존재는 서로의 이름을 부르며 얼굴을 마주했다. 곧 그라디
우스의 부드러운 손이 그녀의 얼굴을 가린 면사포를 젖힘으로
서 그녀의 붉어진 얼굴이 드러났다.
"사랑한다는 느낌이 무언지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만큼은 자
신 있게 말하고 싶다. 사랑한다, 화이엘."
"저도 역시 당신과 마찬가지에요. 하지만 저 역시 당신을 사
랑한다고 말하고 싶어요."
곧 두 존재의 붉어진 얼굴이 한 대로 포개지면서 두 입술이
한데 어우러졌다. 하지만 식장에서의 가벼운 키스이기에 서로
는 아쉬운 감정을 뒤로 한 채 입술을 떼었다.
"네, 이로서 이제 두…… 존재는 영원을 함께 하게 될 한 부
부가 되었음을 선포합니다."
짝짝짝짝짝.
결혼 의식이 끝이 나자 하객들이 모두 몸을 일으키고 박수 갈
채를 보냈다. 주례를 보던 아투도, 사회를 보던 미사엘도, 누
구의 것이라 할 것 없는 아낌없는 축하의 박수가 쏟아졌다. 그
라디우스와 화이엘은 뒤를 돌아 하객들에게 고개를 숙여 인사
함으로서 그에 답례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호호호호호. 미스티, 앞으로 나와봐. 부케를 받아야 다음 해
에 아투와 결혼을 할 거 아니겠어?"
식이 모두 끝나고 이제 이미지 스크랩의 행사만이 남은 지
금, 화이엘이 갑자기 미스티를 불렀다. 그녀의 이름이 호명되
자 남아있던 하객들이 모두 환호를 지르며 그녀의 이름을 연
신 외쳤다.
"나, 나는 아직 어린 걸요. 받을 만한 적당한 사람도 있을 텐
데 왜 굳이 내가……."
적당히 몸을 빼려 하던 미스티였지만, 결국은 사람들에게 떠
밀려 화이엘의 앞으로 불쑥 밀려나왔다. 어느새 그녀의 얼굴
은 붉은 태양처럼 화끈 달아올라 있었다.
"호호호호호. 그럼 잘 받아! 간다!"
미스티가 뭐라 대답하기도 전에 화이엘이 반대편을 바라보
고 뒤쪽으로 전력을 다해 손에 쥔 하얀 부케를 던졌다. 공중
에 떠오른 부케는 하늘을 날아 정확히 미스티의 손을 향해 떨
어져 내렸다. 모두들 그녀가 부케를 받을 것이라고 예상하면
서 박수 갈채를 준비했다.
휘이이이.
하지만 갑자기 바람 한 점 없던 안뜰에 강한 바람이 휘몰아쳤
다. 평범한 상황이라면 바람이 불어도 상관이 없었겠지만, 지
금은….
털썩.
바람에 떠밀린 부케는 미스티의 손을 벗어나 예상 범위에서
더 밀려나 떨어졌다. 그리고 운 좋게 그것을 받은 존재는 무표
정한 얼굴을 하고 있던 키메라 바주크.-지금은 타크니스와의
전투 때 추락하여 입은 상처 때문에 전신에 붕대를 두른 상태
이다.- 먹지도 않고 숨쉬지 않아도 생존할 수 있는 막강 존재.
하지만 결정적으로 감정을 지니지 못한 무성(無性)의 생명체
였으니.
그 뒤 식장에는 경악의 소리로 가득 메워졌고, 홀로 상황을
파악하지 못한 바주크는 조용히 부케를 손에 쥐고 그 자리를
빠져나갔다. 아투와 미스티는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분간
할 수 없는 이 상황에서 서로의 얼굴만을 바라보며 얼굴을 붉
힐 뿐이었다. 과연 이 둘이 서로에 대해 조금이라도 더 적극적으로 변할 날은 언제일런지.
그런 한심한 커플 한 쌍을 바라보던 그라디우스 화이엘 신혼부부는 곧 신혼 여행을 즐기러 황성을 떠났고, 하
객들이 빠져나간 식장에 썰렁히 남겨진 아투는 입안에서 맴도는 말을 끝내 꺼내지 못했다. 그와 어색하게 식
장에 남아 눈치만 살피던 미스티도 달아오른 얼굴을 주채하지 못하면서도 뭔가 결정적인 말을 던지지 못하고
있었다.
"아투. 나한테 뭐 할 말 없어요?"
결국 먼저 용기있게 입을 연 사람은 미스티쪽이었다.
"으음. 그게 말이지. 할 말이라."
잠시 뭐라 말할지 입안에서 단어를 고르던 아투는 그녀의 은
근한 기대가 실린 눈빛과 눈이 맞아 화들짝 놀랐다. 그리고는
간신히 정리했던 말조차 다시 까마득하게 잊어버린 채, 어색
한 시간만 흘려 보내고 말았다.
한 쌍의 축복 받은 존재들이 하나로 이어진 그 날. 하늘은 맑
고 푸르렀지만, 그 둘의 주변만 잔뜩 구름이 몰려든 것은 왜일
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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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1부 완결입니다.
하아...
감회가 새롭군요.
골렘마스터가 벌써 완결이라니.
하지만 아쉽다기 보다는 오히려 후련한 느낌이 듭니다.
이제 수정 작업과 후속작 준비를 위해... 결정적으론 수능 준
비를 위해 이 게시판을 잠시 떠나있어야 하겠습니다.
아마 제가 돌아오는 시기는 수능 바로 다음 날이 될 것 같습
니다. 잊지 말고 기억해두셨다가 그 때 새로운 모습으로 보
게 됐으면 하네요. 지금까지 골.마를 사랑해주신 독자여러분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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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이 에필로그는 급조한 것이기 때문에 책으로 출간될 때
바뀔 확률이 높답니다. 책으로도 많이 봐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