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렘마스터] 116 # 절망과 희망의 미묘한 차이[5]
홀리 캐슬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장소에서 어마어마한 전
투가 벌어지고 있는 이 상황에서 성안의 사람들 역시 아주 다
급하게 움직이며 시간과의 싸움을 벌이고 있었다. 아직 테이
란 스플랜을 막을 수 있는 그것이 완성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론대로라면 테이란 스플랜은 이것이 완성되는 순간 쓰러
진 것과 다름없게 될 것이다. 하지만 만약 이론과 달리 이변
이 일어난다면? 그러한 불안감을 갖기 전에, 사람들은 시간 내
로 이것을 완성하지 못하면 어찌하는가 하는 마음으로 작업
에 열중했다.
"기스뮬. 아직 멀었어? 지금 그라디우스님과 화이엘이 전투
를 벌이고 있지만 얼마 버티지 못할 것 같단 말이야."
커다란 공간. 바로 홀리 캐슬의 자랑거리 중 하나인 안뜰에
마련된 작업장에서 아투의 다급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드
워프 기술자들과 제국의 기술자들의 움직임을 바라보고 있던
몇 몇 귀족들과 아투 일행의 얼굴에는 긴장감이 역력했다.
"조용히 좀 해줄래, 아투? 간단해 보여도 이 작업은 쉽지가 않
다고. 차라리 잔소리를 하려면 나가서 시간이나 좀 끌어보던
지 해. 아니아니. 그건 이쪽에 꽂아야지. 이 바보들아! 거기에
꽂았다간 사용 즉시 폭발해버릴 거야. 다 날아가고 싶어? 인
생 종 치고 싶지 않으면 똑바로 해!"
잔뜩 엄해진 기스뮬이 아투마저 질책했고, 그 불똥이 다른
기술자들에게 튀었다. 민망해진 아투가 얼굴을 붉히며 고개
를 돌려 저 멀리 우뚝 솟은 거대한 골렘 테이란 스플랜과 그라
디우스, 그리고 화이엘을 바라보았다.
『이래로 가다간 완성되기도 전에 타크니스에 의해 황성이
파괴될 것 같다. 일단 우리라도 나가서 녀석을 상대해야 한
다.』
백색의 금강 골렘 가이트리아가 흑검 다크 바스타드로 몸을
풀면서 주인에게 말했다. 안 그래도 그것이 완성될 때까지 기
다리라는 말에 실망하던 아투는 결국 가이트리아의 어깨에 올
라탔다.
"잠깐, 아투야. 나도 함께 가자꾸나. 여기 거인 기사단의 기사
들도 함께 갈 것이다."
아투가 고개를 돌려 어제 도착한 아버지를 향했다. 수도 유적
지로 급히 갔다가 없어진 일행을 수소문하여 제국의 수도까
지 오게 된 아트란. 물론 거인 기사단의 실력자 몇 명과 함께
온 것이었다. 때문에 지금 아트란의 옆으로는 강직한 인상을
띈 골렘술사 세 명이 15베타가 넘는 거대한 자신의 골렘에 올
라타 명령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좋아요, 아빠. 하지만 목숨은 소중히 여기셔야 해요. 전장에
선 도와줄 여유가 없을 거에요."
"좋다. 걱정하지 말거라. 오히려 전투에서라면 내가 너보다
더 경험이 많으니 말이다. 자, 거인 기사들이여. 따를 준비가
됐는가!"
아트란의 목소리에 다른 골렘술사들은 자신들의 골렘 포효소
리로 답하였다. 곧 그들은 기사 단장인 아트란을 따라 급히 성
의 북쪽으로 달려갔고, 아투도 그 뒤를 따르려 하는 때에 미스
티의 음성이 들려왔다.
"아투."
"응?"
하얀 정장 차림의 지적인 아름다움이 풍기는 그녀의 얼굴에
는 사랑하는 사람을 걱정하는 표정이 떠올라 있어 아투의 마
음을 가득 채웠다.
"하하. 지금 하려는 말. 저 괴물들을 해치운 뒤 돌아와서 들었
으면 하는데? 걱정하지마, 미스티. 나는, 아니 우리들은 강하
잖아. 파괴신도 이겼는데 뭘. 그럼 지금 하려고 했던 말 아껴
뒀다고 나중에 분위기 좋을 때 해줘! 갔다 올게!"
마치 맡겨둔 물건을 찾으러 가는 사람처럼 아투는 그렇게 농
담처럼 외친 뒤 미스티에게서 멀어져갔다. 백색의 금강 골렘
의 어깨 위로 보이는 그의 뒷모습을 멍하게 바라보고 있던 미
스티는 주위의 위로에도 불구하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저 제발 돌아 와주기를 빌 뿐.
"황제 폐하. 작업 속도를 최대한 빠르게 해주십시오. 아무래
도 저희도 나가봐야겠습니다. 아, 그리고 다른 제국의 병사들
이나 기사들, 그리고 신관들의 출전를 제한하여 주십시오. 그
들이 나선다면 희생만 커질 뿐입니다.'
샤우드 백작이 나이츠와 함께 풍검술의 기본 초식을 시전하
여 검에 녹색 기류를 맺히게 한 뒤 말하였다. 그의 뒤로는 궁
중 마법사 실피스, 그리고 흑마법사 소울드. 엘프이자 후작의
작위를 가진 폰네스와 바주크도 보였다.
"부디 다들 조심하세요."
미스티는 그들의 용기 앞에서 그것말고는 해줄 말이 없음을
슬퍼했지만, 내색하지 않고 황제의 위엄을 갖췄다. 곧 그들이
멀어짐과 동시에 다시 표정이 어두워지긴 했지만 말이다.
"신이시여…. 빛을 상징하는 샤이트리아님. 부디… 저 사람들
을 수호하여 주세요."
미스티는 간절한 마음을 담아 양손을 모으고 기도 자세를 취
했다. 그녀의 시중을 들던 하녀들도 진지한 표정으로 바닥에
무릎을 꿇고 기도에 들어갔고, 작업장에서 연신 기술자들을
윽박지르던 기스뮬 역시 친구 녀석이 걱정이 되는 모양인지
불안한 시선을 그가 사라진 북쪽 문으로 향했지만 이내 그것
의 완성을 위해 정신을 집중하여 빠져들었다.
콰과과과광!
빛의 형상을 띈 거대한 빛의 검 샤이닝 브레이커가 허공을 가
르며 핏빛 바람과 함께 쇄도해들었다. 가이트리아의 다크 바
스타드로 간신히 그 공격을 흘려보낸 아투는 급히 골렘과 함
께 뒤로 물러섰다.
곧 소울드에 의해 소환된 이단아 리치가 마기를 잔뜩 끌어올
려 수많은 촉수를 쏘아냈다. 동시에 소울드가 준비한 강력한
흑마법, 블랙 서클이 선명한 룬의 문자를 띄며 촉수를 뒤따랐
다.
쿠구구구궁!
동시에 실피스가 준비한 빙계 8서클 최강의 마법, '언리미트
아이스포그'가 테이란 스플랜의 발 아래로 낮게 깔렸고, 반대
로 녀석의 머리를 노리는 폰네스 후작의 바람의 정령이 크게
폭풍을 일으켰다. 샤우드 백작과 나이츠에게서 쏟아진 날카로
운 풍검술의 녹색 기류 또한 정령의 힘과 어우러져 강력한 힘
을 발했다.
『웃기는 군!』
하지만 테이란 스플랜은 그 엄청난 연합 공격 속에서도 아무
렇지도 않게 서있었다. 빙계 마법이 다리를 꽁꽁 얼리면서 극한의 온도까지 이끌었지만, 핏빛의 기운이 뿜어지
면서 마법
이 깨져버렸고, 머리 쪽을 노리고 날아든 날카로운 기류는 어
깨에 올라탄 타크니스의 마기에 의해 소멸된 것이다.
꾸오오오오오!
모든 공격이 무산되자, 거인 기사단이 앞으로 날려나와 테이
란 스플랜의 거체 중 발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아트란의 지휘
아래 펼쳐지는 능수 능란한 작전 속에서 잠시 녀석의 몸체가
흔들거렸지만, 그것뿐이었다. 대륙에서도 명성이 자자한 거
인 기사단의 골렘들은 단 한 차례의 발길질로 인해 허공을 날
아 바닥에 처박혀버렸다.
『과연 대단하다. 전설로 칭해지는 이유를 실감할 수 있었
군.』
가이트리아는 지금 상황을 오히려 즐기는 듯 중얼거리면서
주인 아투의 명령에 따라 그림자 보법을 사용하여 내달렸다.
순간 금강석의 새하얀 빛깔만큼이나 밝은 샤이닝 브레이커가
가이트리아를 노리고 떨어졌지만, 빠른 속도를 잡지 못하고
괜한 지면만 박살을 냈다.
"다크 바스타드에 모든 마나를 집중해줄게."
아투는 누가 들어라 할 것도 없이 혼자 중얼거리며 체내의 마
나를 모두 운용하였다. 곧 그의 몸 주변으로 푸른빛의 마나가
형상화되었고, 가이트리아가 손에 쥔 다크 바스타드 검은색
의 대검을 향해 흘러갔다.
후우우우웅!
순간 핏빛 골렘의 하얀 검이 가이트리아의 머리 위로 떨어졌
다. 가이트리아는 주인의 요구대로 바닥을 뒹굴어 그것을 피
해냈고 강하게 바닥을 박차고 뛰어올라 최대한 높은 지점에
서 푸른 마나가 실린 흑대검을 휘둘렀다.
후우우웅!
바람을 가르며 푸른 기운이 실린 대검이 테이란 스플랜의 핏
빛 흉갑 형태의 부분을 노리고 날아갔다. 빠른 회피에 이어진
도약, 그리고 강력한 횡 베기 공격이었기에 테이란 스플랜도
타크니스도 어찌하지 못하였고 그대로 대검이 녀석을 갈랐다.
카강!
하지만 놀랍게도 상당한 마나가 실린 다크 바스타드로도 테
이란 스플랜의 외갑에 피해를 입히지 못했다. 검이 퉁겨진 반
발력으로 허공에서 균형을 잃은 가이트리아가 등부터 바닥과
닿으며 떨어졌고 흙먼지가 높게 솟아 그들을 가렸다.
『죽어라! 하찮은 벌레들아! 크하하하하.』
타크니스의 섬뜩한 음성과 동시에 핏빛 거체의 하얀 검이 먼
지 속 가이트리아를 노리고 다시 한번 떨어져 내렸다. 하지만
이번에도 역시 괜한 땅의 일부만 갈랐을 뿐, 날렵한 동작의 가
이트리아를 맞추지는 못했다.
"헉…. 헉…. 역시 금강 골렘으로 변모한 가이트리아와 함께
라도… 힘들겠어. 파괴신을 상대할 때에는 빛의 힘을 모조리
흡수하는 다크 바스타드의 힘으로 승리할 수 있었지만, 지금
은 그저 마나와 변질된 어둠의 신성력으로 뭉친 존재이니."
다행히 재빨리 자리를 벗어나 공격을 피하고 숨을 고르던 아
투가 힘겹게 말했다. 거대한 골렘과의 싸움에서 별 도움을 주
지 못하고 무표정한 시선을 보내던 바주크가 무언가를 결심
한 듯 무모하게 앞으로 달려나갔다.
"바, 바주크. 무모한 행동이야, 돌아와!"
"괜찮다. 다른 사람들에게 엄호나 좀 부탁한다고 말해주면 된
다."
왠지 무모해 보이는 그의 행동에서 자신감이 넘쳐흐르는 것
만 같았다. 아투는 그를 말리려던 생각을 접고 대신 다른 존재
에게 그의 엄호를 부탁했다.
'드래곤 로드, 엔젤, 그리고 거인 기사단의 골렘과 인간 능력
자들 각 각의 힘으로 어찌하지 못하는 저 마도 병기를 어쩔 셈
일까.'
아투의 그러한 의문에 대답이라도 하듯이 바주크가 타크니스
의 시선을 피해 테이란 스플랜의 발로 뛰어올라 갑자기 핏빛
골렘의 어깨를 향해 마구 올라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바주크
가 막 허리 부근까지 올라서면서 보인 그 살기 어린 눈빛을 보
고서야 아투는 그의 의도를 파악하고 급히 도와주기 위해 나
섰다.
'그래, 테이란 스플랜을 굳이 공격할 필요 없이 그것을 조종
하는 조종자를 막으면 되는 거야.'
일단 바주크를 돕기 위해선 타크니스의 관심을 다른 쪽으로
돌려야 했다. 금강 골렘 가이트리아를 몰고 나간 아투가 상대
의 오른쪽으로 크게 선회하면서 그대로 다크 바스타드를 강
한 회전 베기 형식으로 휘두르게 했다.
후우우웅!
『어딜!』
변칙적인 동작에 잠시 당황한 타크니스가 아크 스태프를 바
삐 놀렸다. 그와 동시에 테이란 스플랜의 손에서 강력한 적살
풍이 뿜어졌고, 그대로 가이트리아를 덮칠 듯이 다가왔다.
후우우웅!
다행히 어디선가 날아든 강한 기류로 인해 적살풍도 대기와
함께 무마되어 소멸했다. 한숨 돌리며 구원의 주인공을 확인
하던 아투의 눈에 그라디우스의 황금빛 드래곤 거체가 잡혔
다.
"돕는 건 좋지만 그렇다고 너까지 무모해지지는 말거라."
충고 한 마디를 남긴 그라디우스는 화이엘과 엔젤 나이트를
동반하고 크게 방향을 틀어 브레스와 샤이닝 블라스터를 각
각 쏘아냈다. 상상할 수 없는 힘이 실린 그 두 기운이 중간 지
점에서 한데로 융합됐고, 그대로 한 거대한 성의 크기 만한 기
둥이 되어 테이란 스플랜을 향했다.
"으아악! 바주크가 저기 있단 말이에요!"
돌발적인 드래곤과 엔젤이 행동에 당황한 아투는 급히 모든
마나를 동원하여 바주크의 주변에 방어막을 형성했다. 암암리
에 드래곤 하트에서 추출된 순수한 마나까지 뒤섞여 평소보다
도 더욱 견고했다.
『샤이닝 브레이커. 신의 영혼조차 가른 검이다. 과소평가하
지 말아라!』
샤아아아앙!
짧은 외침과 동시에 핏빛 거체가 하얀 섬광의 검을 휘둘러 대
기를 갈랐다. 그와 동시에 그 베기 공격에 휘말린 드래곤과 엔
젤의 연합 공격도 함께 갈라져 전혀 뜻하지 않은 방향으로 쇄
도하다가 공중에서 폭발을 맞이했다.
"크윽. 짜증이 난다!"
번번이 실패하는 공격에 화가 난 그라디우스가 마구잡이로
속성 블라스터 마법을 난사하며 테이란 스플랜의 주변을 쑥
밭으로 만들었다. 비록 시민들이 모두 대피했다고는 하지만
너무 하는 처사였다.
그리고도 한참동안 이어진 그라디우스의 폭주는 다행히 화이
엘의 한 마디로 잠잠해졌다.
"그라디우스님. 지금은 흥분하실 때가 아니에요."
한편 테이란 스플랜의 몸체에 올라 여러 가지 위협을 받았던
바주크는 다시 결의를 다지며 몸을 솟구쳐 이제 막 어깨까지
오를 수가 있었다. 다행히 반대편 어깨에서 아크 스태프로 명
령을 내리고 있는 타크니스는 그의 존재를 눈치 채지 못한 상
태. 대검을 꼬나 쥔 바주크가 최대한 빠른 속도로 자신의 몸
에 채찍질을 하는 듯 내달려 투구 부근의 발판을 따라 녀석이
서있는 어깨 쪽으로 넘어갔다.
"으아아아아아아악! 마왕이라고는 하지만 어디 내 대검을 막
을 수 있는지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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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바주크의 대검이 녀석을 가를 수 있을 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