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골렘마스터-239화 (239/244)

[골렘마스터]  111   # 진실 속에 또 다른 진실[4]

아래쪽으로 보이는 성의 안쪽 공간에서도 역시 불안감을 감

추지 못하며 밖으로 나온 사람들로 북적거리고 있었다.

"이런 허전한 느낌은……."

정말 싫다. 예전 기억을 완전히 잃고 거리를 헤매던 때가 생

각났다. 갑자기 하염없는 슬픔이 밀려와 눈물샘을 자극했고,

그녀는 이런 생소한 느낌에 퍼뜩 놀라면서 손으로 눈물을 훔

쳤다. 하지만 불안한 마음은 전혀 사라지질 않았다.

지금 아투와 일행들은 모두 유적지에서 무슨 일을 겪고 있을

것이다. 몇 일 전 보고 받은 내용을 토대로 하여 추측하여 내

려진 결론이었다. 그리고 지금 갑자기 날씨가 흐려지면서 마

른하늘에 날벼락이 치고 어마어마한 기운이 지상에 퍼지게

된 것 또한 그들과 관련이 있음이 틀림없었다. 세상 사람들

중 그러한 사실을 아는 자들은 몇 없겠지만, 그녀만큼은 정확

히, 아니 직감적으로 느낄 수가 있었다. 아투, 그의 가슴이 떨

리고 있는 게 미스티 그녀에게 전달되는 기이한 느낌….

"부디 건강한 모습으로 돌아와야 해요."

그녀는 가슴으로 두 손을 꼬옥 모았다. 간절한 소망이 담긴

그 행동이 어떠한 결과를 낳게 될지. 또한 얼마나 영향을 미치

게 될 지는 알 수 없지만, 그래도 그녀의 몸에서 반짝이며 빠

져나온 빛의 가루들이 어둑한 하늘을 날아 어디론가 사라졌

다.-소망의 날개. 후세의 사람들은 역사서에서 언급된 그 부분

을 그렇게 칭하고 있다.-

*  *  *

기분 나쁜 빛깔이다. 비릿한 비를 연상시키는 진홍의 빛. 타

오르듯 끓고 있는 그 피의 물결이 허공을 갈랐다. 악마의 피인

지, 천사의 피인지 알 수 없는 그 순수한 피의 파도가 일순 크

게 일어나며 피의 주인이 목표했던 부근을 완전히 휩쓸었다.

그 손길이 지나치는 곳이면 어김없이 불길이 일었고, 모든 것

들이 생명이라는 단어 자체를 잃어버리며 타들어 갔다.

피가 흘러간 곳. 그곳은 시커먼 재만 남은 허무의 공간. 살아

있는 것을 찾는 행위 자체가 큰 오류라 느껴질 정도였다. 붉

은 색과 대조를 이루던 어둑한 잿빛만이 시간이 지날수록 주

변을 가득 메웠다. 절망을 상징하는 잿빛. 앞으로 닥칠 일을

예견하기라도 하는 것일까. 가까스로 피의 물결을 피해낸 나

약한 생명들은 이기적이지만,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밖에 없

었다.

『허무하다고 생각하나? 그렇다면 죽어버리면 모든 것이 해

결된다. 우리 마족은 소멸이라는 단어가 생소하지 않지만, 너

희들은 그러한 단어 자체가 생소할 것이다. 인간들을 비롯한

대부분의 생명체는 죽어서도 그 영혼이 멸하지 않아 다시 기

억이 정화되어 환생하니. 하지만 내가 지금 그 소멸. 멸의 공

포를 일깨워주마. 어둠의 마왕 타크니스의 이름으로.』

쿠구구구궁!

순간 100베타. 거대한 성과 맞먹을 정도의 마도 병기 붉은 골

렘 테이란 스플랜이 타크니스의 명령. 정확히 말해 그의 손에

들린 아크 스태프의 힘에 이끌려 크게 몸을 틀었다. 거체인 만

큼 동작이 둔할 만도 하지만, 녀석에겐 그런 상식이 통하질 않

는다.

다시 붉은 물결. 피의 물결이라 불리는 전설상의 공격이 또

몰려들었다. 믿기 어렵겠지만, 놀랍게도 녀석은 무기를 소환

하지도 않은 채 그저 손을 휘저으며 발생하는 엄청난 살풍만

으로 아투 일행을 모조리 제압하고 있는 상태였다.

슈슈슈슉!

잠시 테이란 스플랜의 어마어마한 자태에 흠뻑 빠져들어 정

신을 잃고 있던 아투는 눈앞까지 날아드는 붉은 기류를 확인

하고는 급히 몸을 틀면서 가이트리아를 앞으로 내세웠다. 비

록 크기는 비교할 수도 없겠지만, 그래도 금강 골렘이라는 극

상의 경지에 오른 가이트리아 역시 호락호락하지는 않아 그

피의 살풍을 양팔을 교차시켜 막았다.

"아투. 괜찮아?"

화이엘이 잠시 다른 곳에 피해 있다가 붉은 살풍이 조금 잠잠

해지자 잔뜩 굳은 표정으로 날아왔다. 바주크 또한 바닥에 납

작 엎드려 공격을 피해낸 뒤, 아투의 옆으로 다가와 있었다.

"내 걱정은 하지 마. 금강 골렘으로 진화한 가이트리아와 함

께 한다면 내 한 몸 지킬 자신은 있으니까. 일단은 다른 엔젤

나이트를 불러야 하는 거 아니야? 아, 그리고 마족의 모든 진

상이 밝혀진 이상 천상계 다른 존재들 역시 마족에 대항할 수

있지 않을까? 만약 그렇게만 된다면 다른 천상계 종족들을 모

셔오면 좋을 텐데."

표정은 긴장감이 역력히 묻어났지만, 그래도 어조는 느릿느

릿 여유가 묻어났다. 파괴신과의 엄청난 접전으로 인해 생긴

결과라고 할까. 폰네스 후작을 비롯한 실피스, 소울드 바주크

역시 크게 긴장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엔젤 나이트는 지금 당장이라도 부를 수 있어."

아투의 제안에 그녀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손가락을 퉁

겨 소리를 냈다. 그리 큰 소리는 아니었지만, 작은 신성력이

맺힌 그 음파가 사방으로 퍼졌고, 곧 테이란 스플랜의 거대한

몸 주변으로 밝은 빛이 연속적으로 뿜어졌다. 바로 수장의 부

름을 받고 즉시 달려온 대기 중인 엔젤들이었다.

"하지만 천상계의 다른 존재들까지 이곳에 합류할 수는 없을

거야. 이미 마족이 모든 것을 이루고 이렇게 공식적으로 선전

포고를 한 이상, 천상계에 존재하는 어둠 계열의 신들과 종족

들 역시 빛의 신, 그리고 종족들과 대립하여 대치 중일 테니

까. 벌써 천마 2차 대전이 벌어졌을 지도 모르고. 어쨌든 지상

계 일은 지상계 생명체들끼리 해결하는 수밖에 없어. 도움 따

위를 바라지말고 무언가 방법을 생각해야해."

"그렇다면 할 수 없지. 하지만 신조차 위협하고 드래곤도 쓰

러뜨리는 마도 병기를 지금 당장 어찌할 수는 없을 것 같은데

어떡하지?"

아투는 실망스런 그녀의 대답에 노골적으로 표현하지는 않았

지만, 그래도 목소리를 낮게 깔아 중얼거렸다. 옆에서 그의 목

소리를 들은 바주크가 대검을 한 차례 휘두르면서 오랜만에

입을 열었다.

"지금 당장 해결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닌 것 같다. 일단 이곳에

서 물러나는 것이 좋다. 무턱대고 싸움만 한다면 전멸. 저 마

왕이라는 녀석의 말처럼 멸하고 말 것이다. 다른 생명들에게

는 미안하지만, 일단은 궁극적인 목적을 위해 여기서 물러나

야 한다."

꾸오오오오!

『바주크. 이 키메라의 말이 맞다. 이곳에 머무른다면 개죽음

을 자초하는 일 밖엔 되지 않는다.』

살풍을 막아내며 기회를 노리는 듯 눈빛을 발하는 가이트리

아 역시 어렵다는 제스처를 취하면서 고개를 저었다.

아투 역시 그 점은 잘 알고 있었다. 비록 이곳에서 도망친다

하더라도 마왕 타크니스가 테이란 스플랜을 이끌고 어디로 갈

지 장담할 수 없다. 지금 당장 퓨티아 제국의 영토로 날아가

그곳을 쑥대밭으로 만들어 놓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러한 알

수 없는 일들까지 걱정하면서 여기서 시간을 끌다간 정말 테

이란 스플랜의 엄청난 힘에 당하게 됨은 불을 보듯 뻔했다.

"후작님. 그리고 스승님. 어떡하죠? 바주크의 말처럼 이곳에

남아 싸움을 계속하는 것은 무의미한 것 같습니다. 차라리 자

리를 피해 녀석에 대한 자료를 수집하여 만반의 준비를 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요?"

"바람의 상급 정령 소환! 나 또한 아투 백작의 말에 동의하

네. 실피스님. 지금은 자존심 따위를 내세워 목숨을 하찮게 여

길 때가 아닙니다. 차라리 이곳을 벗어나 아투 백작의 말대로

정보를 수집하는 게 좋겠습니다."

폰네스 후작은 격한 목소리로 반투명한 거대한 매의 모습을

한 바람의 상급 정령을 몇 마리 소환하면서 실피스를 바라보

았다. 막 마나를 운용하여 주변에 강력한 베리어를 형성시킨

실피스는 대답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나 또한 그렇게 생각합니다."

리치를 소환하여 앞으로 내세운 소울드도 아래위로 고개를

흔들며 동의했다. 일행 모두가 서로 눈빛을 교환하면서 씁쓸

한 마음을 달래었다.

『도망칠 생각인가? 하지만 테이란 스플랜이 나의 손에 들어

온 이상, 어디로 가던 쓸 데 없는 짓이라는 걸 모르나보지?』

타크니스가 일행의 말을 들은 모양인지 비꼬는 듯한 말을 내

뱉었다. 녀석이 작전을 눈치 챈 이상 더 이상 시간을 끌 필요

도 없다고 생각한 아투 일행은 머뭇거림 없이 다시 서로에게

눈짓을 보내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지금 도망친다고 해도 내가 당장에 퓨티아 제국으로 간다

면 어쩔 셈이지? 과연 날 막을 수 있을까? 천하무적. 신에게

반하는 존재 테이란 스플랜과 함께 하는 나를?』

쿠구구궁.

붉은 피의 물결. 그 중심이 되는 붉은 골렘이 다시 몸을 틀어

아투 일행을 정면으로 바라보았다. 눈빛조차 붉었기에 그 엄

청난 살기와 스산한 기운에 모두들 잠시 압도되었지만, 급히

이곳을 빠져나갈 준비를 했다.

"엔젤 나이트. 일단 돌아가서 나의 명령을 기다려라. 부단장,

부단장은 천상계로 가서 현재의 상황을 파악하여 나에게 보고

하라. 이상이다. 엔젤 나이트, 해산."

화이엘은 일단 불러냈던 그녀들을 대기 장소로 돌려보냈다.

테이란 스플랜의 붉은 피바람이 순간적으로 그녀들이 떠있던

상공을 갈랐지만, 다행히 희생자 없이 깨끗이 사라졌다.

"내가 다시 인도하겠어! 자, 내 주변으로 모두들 모일 수 있도

록!"

카랑카랑한 맑은 여성의 음성이 테이란 스플랜의 압도적인

힘조차 잠시 억누르면서 주변을 제압했다. 아투는 가이트리아

의 어깨에 올라탄 자세로 그녀의 옆에 붙었고, 바주크도 반대

편 어깨에 올랐다. 실피스와 소울드 폰네스 후작은 각기 효율

적인 방어진형을 구축하여 타크니스의 눈치를 살피며 다가와

화이엘의 옆에 붙었다.

『크하하하하. 굳이 쫓지는 않겠다. 다급한 건 너희들이지 내

가 아니니까. 너희들에게 시간적 여유를 주겠다. 그때까지 마

도 병기 테이란 스플랜을 쓰러뜨릴 수 있는 방법을 찾아 내가

갈 때까지 기다려라.』

타크니스는 잠시 테이란 스플랜의 거대한 팔을 들어올리게

했지만, 끝내 휘두르지는 않았다. 그가 마음만 먹는다면 테이

란 스플랜의 무용을 더욱 향상시킬 수 있는 전용 무기를 소환

하여 당장에라도 모든 것을 쓸어내고 후한을 없앨 수 있지만,

그는 결국 강자의 여유를 보이고 만 것이다.

샤아아아앙!

순간 밝은 신성력이 빛이 일면서 잠시동안 허락된 공간의 문

이 열렸고, 그 틈으로 아투 일행이 모습을 감추었다. 타크니스

는 짐짓 흥분된 표정을 지으며 녀석들이 일으킨 빛이 사라질

때까지 기다렸고, 완전히 그들의 힘이 사라지고 난 뒤에야 얼

굴을 풀고 무표정하게 변했다.

쿠어어어어어!

오랜 시간동안 봉인되어 있었던 탓일까. 테이란 스플랜은 자

발적으로 양손을 허공에 휘저으면서 안달을 했다. 그 바람에

양손에서 뿜어진 피바람, 바로 적살풍이 양방향으로 뿜어져

잿빛 세상을 만들었다.

『이런 이런. 너무 흥분하지 말거라. 나의 의지를 이어받은

마도 병기 테이란 스플랜.』

마도 병기 테이란 스플랜. 그것은 인간들이 창조해낸 존재는

틀림이 없다. 하지만 그것이 만들어지기까지의 과정과 성공

의 요인을 따져보면 마족이 깊이 관여해 있었다. 그것도 일개

하급이나 중급 마족이 아닌, 상급의 마왕 타크니스의 힘이 깊

게 파고들었으니 자세히 말하지 않아도 녀석이 지금 내뱉은

의미심장한 말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쿠어어.

아크 스태프의 제어력. 그리고 마왕 타크니스의 의지가 지고

한 테이란 스플랜의 본성을 다스렸다. 녀석은 뜨겁게 달아오

른 눈빛을 삭이며 그렇게 대기 중의 상태로 돌아갔다.

『흐음. 그나저나… 지상계의 다른 생명들이 마족에게 모두

굴복하기까지는 시간 문제라 해도 아직 마계의 정리가 문제

로 남아있군.』

타크니스는 잿빛의 무덤으로 변해버린 옛 고대 마도 제국의

수도를 내려다보면서 그렇게 중얼거렸다. 여유로움이 가득한

녀석의 얼굴은 고혹적이면서도 날카로웠기에 상반된 이미지

를 만들어냈다. 하지만 마계의 정리라니, 과연 그것은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타크니스의 표정에선 그 말의 진정한 의미를 읽을 수 없었

다. 목소리에 담긴 의지 또한 철저하게 가려져 있어 섣불리 짐

작할 수 없다.

『테이란 스플랜이 봉인에서 풀려나고 이제는 절정으로 치달

은 상황에서 그들이 필요하진 않다. 그러니 이제는 미리 예정

되었던 일을 벌이면 되는 거겠지. 그건 녀석들의 창조주들이

결정해놨던 일이니 나를 원망해도 소용없을 것이다. 크하하하

하.』

괴소로 끝맺은 녀석의 결론. 잠시 고민하던 눈치였으나 이내

평정을 되찾았다. 녀석은 테이란 스플랜의 핏빛 표면을 애뜻

하게 쓰다듬으면서 살짝 등을 기댔다. 무한한 마나. 본질적으

로 어둠의 힘을 간직한 녀석의 본체에는 전혀 거부감이 일지

않았다.

『그럼 이제 절대자를 인식시키고, 마계의 역사를 종식시킬

때가 왔군. 크하하하. 나를 지켜보고 있는 절망의 마왕 티스페

어. 그리고 욕망의 마왕 테자이어여. 곧 내가 갈 테니 기다려

라. 그동안 나를 감시하고 있었다는 것은 예전부터 알고 있었

다. 물론 상관없다. 같은 마왕으로서 관대하고 너그럽게 이해

할 수 있다. 다만… 태초부터 계획된 일에 따라 너희들은 이

제… 그 분의 의지에 의해 멸하게 될 것이다. 지상계의 바보

같은 저항자들보다 먼저. 크하하하하!』

그의 괴소가 무언가를 타고 다른 곳에 전해졌다. 순간 살기

가 느껴지는 타크니스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으슥한 두 공간

이 일그러지면서 몸을 감추고 있던 어떠한 존재들이 급히 사

라졌다.

『블러디 로즈인가? 하지만 다른 한 명은?』

타크니스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한 명은 분명 어둠의 종족,

뱀파이어 일족의 수장 블러디 로즈가 확실했다. 그 색정적인

기운을 감지하는 순간 그의 생각은 그렇게 굳었지만, 다른 한

존재의 기운은 조금 생소하기도 했고, 의외로 강력했기에 신

경이 쓰였다.

허나…. 그래봤자 그들은 마족일 뿐이다. 강해봤자 상급 마족

의 힘. 조금 더 노력하여 마왕급의 힘을 낼 수 있을 뿐 테이란

스플랜 바로 인간과 마족이 합작해낸 마도 병기 붉은 골렘만

있다면 모든 것은 끝난 것과 다름없었다.

『그래. 기다려라. 누구든 상관없으니. 크하하하하. 마계를

시점으로 나의 공포를 일깨우겠다!』

타크니스는 그렇게 미친 듯이 웃어넘기더니 이내 테이란 스

플랜의 거대한 몸체와 함께 잿빛의 유적지에서 모습을 감춰버

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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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워 하느라 늦었습니다. -ㅁ- 죄송하구요, 즐독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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