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렘마스터] # 진실 속에 또 다른 진실[2]
순간 거대한 뿔이 낮게 가라앉는 먼지를 뚫고 드러났다. 진홍
의 빛을 머금은 날카로운 그것은 일행의 시선을 사로잡기 충
분했고, 뿔을 위로 한 채 아래쪽에서 서서히 올라온 것 또한
역시나 붉은 기운을 머금은 형태였다.
날카로운 선들로 구성된 그 형체는 아래쪽으로 갈수록 점점
더 복잡한 형을 이루었다. 중간부분까지는 완만한 경사를 이
루며 굽어있었지만, 그 아래쪽은 가파르게 꺾여 그림자를 드
리웠다. 하지만 그림자가 드리워진 어두운 부분은 놀랍게도
밝은 광채가 뿜어졌고, 그 광채는 곧 아투 일행을 향해 움직였
다.
쿠구구구구궁!
다시 한번 거대한 진동이 일면서 먼지가 크게 일어나 삽시간
에 주변을 가려버렸다. 하지만 그 안에서 뿜어지는 진홍의 빛
과 밝은 광채는 쉽게 가려지지 않고 그 뿌연 먼지들을 뚫고 빠
져나왔다.
쿠어어어어!
드래곤 피어와 흡사할 정도로 강력한 음파 공격. 보호막을 가
동시킨 화이엘이 힘겨운 표정을 지을 정도의 그 소리의 진동
이 다시 한번 주변을 휩쓸고 지나갔다. 크게 일었던 먼지가
그 음파에 휘말려 저 먼 곳으로 사라졌고, 이제는 뿔과 작은
밑 부분만 보이던 테이란 스플랜. 진홍빛의 그것이 완전히 지
하에서 밖으로 모습을 드러내고 거대한 형태를 자랑했다.
"저, 저것이 테이란 스플랜. 신들조차 위협했다고 하는 그 전
설의 골렘!"
아투의 입에서 찬사가 흘러나왔다. 그의 눈동자는 아래쪽의
거대한 진홍빛 형체에 고정되어 움직일 줄을 몰랐다. 다른 일
행 역시 입을 떡 벌린 채 골렘의 거대한 크기에 압도되어 쉽
게 말을 꺼내지 못했지만, 화이엘만큼은 냉철하게 눈을 굴리
면서 테이란 스플랜 그 진홍빛 거대 골렘의 미세한 움직임 하
나 하나를 감시했다.
아투의 눈에 비쳐진 테이란 스플랜은 가의 경악에 가까웠다.
일단 100베타를 능가할 듯 보이는,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엄청
난 크기가 그러했다. 아투의 아버지인 아트란이 8서클 골렘술
사임에도 불구하고 그의 골렘이 15베타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
을 감안하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엄청난 차이였다. 물론 몇 베
타를 더 팽창시킬 수 있다고는 하지만 100베타를 넘길 수 있
는 힘을 가진 골렘술사는 존재할 수가 없다는 게 정설이다. 따
라서 테이란 스플랜이란 거대한 골렘은 도저히 인간의 힘으로
는 상상할 수 없다는 말이 된다.
게다가 테이란 스플랜의 외관을 살펴본다면 그 본 재질의 금
속임을 알 수 있다. 메탈. 그것도 철이나 보통 평범한 금속 재
질이 아닌, 특수한 힘을 지닌 희귀 금속 블러디 스톤. 타천사
의 피가 스며들어 알 수 없는 힘을 지니게 됐다는 말고 함께
현재까지 전해지는 고대의 금속. 테이란 스플랜의 전신은 그
강도 높은 금속이 뒤덮고 있어 연신 진홍의 빛을 발하며 음산
하게 반짝였다. 외관의 형태가 붉은 갑주를 멋지게 차려입은
기사를 연상시키는 것이었으니, 오히려 마도 병기라는 명칭
과 잘 어울리는 것도 같았다. 이제 백색의 금강 골렘이 된 가
이트리아와는 완전히 상반되는 기운이 풍기는 녀석의 거체를
확인하면서 아투는 마른침을 연신 삼켜댔다.
『어떤가? 고대 마도 제국. 인간들의 의해 탄생된 마도 병기
의 모습을 감상한 기분이.』
순간 테이란 스플랜의 왼쪽 진홍빛 어깨에서 검은 빛이 출렁
이는가 싶더니 어깨 보호대의 형태를 한 날카로운 세 줄의 갈
퀴 위에서 어둠의 존재. 마왕 타크니스가 모습을 드러냈다. 녀
석은 손에 길다란 스태프 하나를 꼭 쥔 채, 가볍게 손을 뻗어
거대한 골렘의 머리에 몸을 기대면서 여유 있는 모습으로 일
행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테이란 스플랜을 부활시켜서 뭘 어쩔 셈이지? 마족이 겨우
인간이 만들어낸 창조물 따위의 힘을 빌릴 생각을 하다니. 이
제 네 녀석들도 상황이 급박해진 모양이군."
마왕을 바라보던 아투가 짐짓 차갑게 웃으면서 녀석의 행동
을 비꼬았다. 그가 그렇게 시간을 끄는 동안 일행들은 나름대
로 공격 준비를 마치며 흩어지기 시작했다.
『시간을 끌 셈인가? 하지만 나와 이 골렘에게 그런 행동이
과연 무슨 의미가 있을까.』
"묻는 말에 대답이나 해라!"
백색 골렘의 어깨에 올라탄 아투는 기세를 꺽지 않고 강하게
밀어붙이면서 가이트리아에게 아래쪽으로 서서히 내려가 마
구 부셔지고 크게 내려앉은 지면을 밟으라고 명령했다. 화이
엘의 신성력 범위에서 벗어난 백색 골렘이 지상으로 자유 낙
하를 시작했고, 곧 간단한 깃털 마법으로 사뿐히 지면에 착지
한 골렘의 어깨에서 바주크가 뛰어내려 대검을 뽑아들었다.
하지만 거대한 파도에 맞서는 작은 물고기나 해초에 지나지
않을 뿐.
『테이란 스플랜. 이것으로 우리 마족과 어둠의 마신들의 계
획은 이루어졌다. 인간의 손으로 창조된 이것이 지상계를 파
괴한다고 해서 천상계 신들이 간섭을 할 수 는 없지. 물론 엔
젤들이 방해를 할 수는 있겠지만, 신들도 힘겨워했던 이 마도
병기를 고작 엔젤들이 어찌할 수 있을까? 크하하. 우리 마족
은 이것을 앞세워 지상계를 정복할 것이다. 마신들의 힘을 빌
리지 않고 우리 스스로의 힘으로, 그리고 인간들의 문명이 만
들어낸 바로 이 골렘으로 말이지.』
"역시 네 녀석은 테이란 스플랜이 파괴신의 힘으로 봉인되어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군. 그래서 파괴신을 부활시켜 우
리들로 하여금 녀석을 소멸하게 유도한 다음에 몰래 테이란
스플랜을 봉인에서 풀어낼 생각이었던 거야. 그렇지?"
방금 전의 대지가 산산조각 나던 그 무서운 장면은 찾아볼
수 없었다. 다만 아주 낮게 깔리는 적막감만이 주변을 휘감고
모든 것을 침묵으로 이끌었다. 머리끝이 쭈삣 설 정도의 긴장
감, 그리고 테이란 스플랜의 엄청난 존재감. 아투와 화이엘 바
주크와 가이트리아를 제외한 일행은 모두 긴장된 낯빛을 숨기
지 못했다.
『후후. 그렇게 낙담할 필요도, 또 실망할 필요도 없다. 어차
피 무슨 일이 있었더라도 우리 마족은 지금과 같은 상황을 만
들어냈을 테니까. 잘 생각해봐라. 모든 일은 이 세계가 창조
될 때는 그 순간부터 계획되어 있었다. 크하하하하.』
아투의 질문을 받고 잠시 머뭇거리던 타크니스가 아리송한
말을 흘리며 괴소를 터뜨렸다. 하지만 녀석의 말의 의미를 파
악한 존재는 오로지 화이엘밖에는 없는 마냥 다른 사람들은
멀뚱멀뚱한 표정을 지으며 서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게 무슨 소리지? 뭐가 세상이 창조될 때부터 계획됐다는
것이냐? 테이란 스플랜은 태초에서부터 엄청나게 오랜 세월
이 흐른 뒤에 창조된 물건인데. 게다가 파괴신의 힘으로 봉인
당할 거라는 것은 어떻게 예상했다는 거지? 그건 아무리 신이
나 마족이라 해도 예상할 수 없는 일이야! 지금 우리를 가지
고 장난이라도 하겠다는 거냐!"
무언가 농락 당하고 있다는 기분이 든 아투가 이상한 기분을
주체하지 못하고 가이트리아에게 명해 거대한 백색의 주먹을
날리도록 명했다. 순간 노란 광채를 내뿜은 골렘의 눈이 거대
하게 앞을 가로막은 진홍빛 벽면을 노려보았고, 동시에 바람
을 가르며 백색의 굵은 선이 쇄도해 부딪혔다.
콰광!
하지만 둔탁한 소리만 날 뿐, 아무런 변화도 없었다. 블러디
스톤으로 구성된 테이란 스플랜의 몸체는 결코 만만한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치잇. 다크 바스타드! 그거라면 무언가 피해를 줄 수 있을 거
야!"
아투는 오기가 치밀어 다시 한번 명을 내렸다. 가이트리아는
군말 없이 어깨에 지고 있던 흑검을 양손에 쥐고는 수직으로
치켜들었던 손을 수직으로 휘둘렀다.
후우웅!
바람을 가르며 허공에 검은 호선이 그어졌다. 하지만 기세 좋
았던 그 블랙홀 재질의 대검 또한 테이란 스플랜의 갑옷을 어
찌하지 못하고 퉁겨 나왔다. 타크니스는 그런 아투의 행동을
재미있다는 듯이 구경하면서 느긋하게 말했다.
『그 정도에 당한다면 마도 병기의 이름이 어울리지 않겠지.
그렇지 않을까, 골렘술사여?』
그러면서 녀석은 손에 쥔 스태프를 살짝 아래쪽으로 휘둘렀
다. 그러자 스태프가 지나간 자리에 강대한 마나가 뿌려지면
서 대지가 진동했다. 테이란 스플랜. 그 거대한 존재가 드디
어 무거운 침묵에서 깨어나 발을 지면에서 때었던 것이었다.
쿠구구궁.
꾸오오오오오!
순간적으로 테이란 스플랜이 들어올린 발이 가이트리아가 서
있던 땅을 노리고 떨어졌다. 발바닥의 길이와 폭만 해도 가이
트리아의 전신을 다 덮고도 남을 지경이었기에, 그대로 있다
간 납작하게 깔릴 수밖에 없다. 때문에 주인의 명령 없이 본능
적으로 몸을 보호하기 위해 옆쪽으로 몸을 날린 가이트리아
가 아직 남아있는 건물의 잔해와 부딪혀 돌무더기에 파묻혀
버렸다.
"아, 아투!"
슈우웅!
순간적으로 아투의 움직임을 놓치고 있던 화이엘이 퍼뜩 그
가 아찔한 상황에 치달은 것을 발견하고는 급히 하늘을 날아
그 무너진 잔해 쪽으로 다가갔다. 다른 일행들도 서로 시선을
교환하더니 급히 그녀의 뒤를 따랐다.
『크하하하. 눈물겨워 못 봐주겠군. 우리가 미리 짜놓은 운명
에 맞추어 움직여주는 미천한 꼭두각시 같은 인간들. 그리고
천상계 빛의 존재들아.』
쿠구궁.
테이란 스플랜은 몇 발자국 앞으로 걸어나가 다시 아투 일행
을 돌아보았다. 어깨에 올라가 있던 타크니스는 장난을 치는
듯 손에 든 스태프를 몇 차례 회전시키며 다시 일행들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콰과과과광!
굉음과 함께 골렘을 잔뜩 덮고 있던 거대한 돌덩이들이 허공
으로 치솟았다. 그리고 그 중앙에서 백색의 빛을 발하는 금강
골렘 가이트리아가 다크 바스타드를 꼬나 쥔 자세로 노란 안
광을 내뿜으며 타크니스를 노려보고 있었다. 아투 또한 어깨
에서 마나 보우를 뽑아들고는 매서운 눈초리로 녀석을 향했
다.
"진실이 뭐지? 도대체 어디서부터 일이 꼬이게 된 거지? 사실
을 말해 줘, 타크니스."
낮게 깔린 그의 음성에서 엄청난 위압감이 풍겼다. 그의 몸
을 살피러 날아가던 화이엘마처 흠칫하며 얼굴색이 변해 멈
출 정도였고, 제자를 항상 괴롭히던 실피스 역시 평소와 전혀
다른 아투의 모습에 넋이 나갔다.
아투의 태도와 성격이 갑자기 돌변하자 가이트리아 또한 속
으로는 당황하면서도 주변으로 전개되는 강력한 마나장을 감
지하고 그대로 침묵했다. 차라리 지금의 각성 상태가 오히려
더 좋은 상황으로 이끌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기대와 함께.
『알고 싶나? 듣고 나면 허무해질 텐데.』
"그래도 상관없다. 그러니 말해 줘."
타크니스의 물음에 아투는 다시 한번 강하게 자신의 의사를
표시했다. 화이엘이 급히 나사서 그를 저지하려 했지만, 이상
하게도 바주크가 그녀의 어깨를 지긋이 누르며 고개를 가로
저었다.
"바, 바주크. 왜……."
"지금은 아투를 그냥 내버려두는 것이 나을 것이다. 어린 나
이에 너무나도 커다란 일을 겪고 있는 그는 지금 잠시 혼란에
빠졌다. 그 스스로가 극복하지 못한다면 영원한 삶의 패배자
가 될 게 분명하니 지금은 그냥 홀로 해결하도록 놔두는 것이
중요하다."
평소의 말이 없던 바주크가 나서서 그렇게 말을 하니 믿지 않
을 수도 없었다. 게다가 키메라인 그의 말은 하나 틀린 곳이
없었다. 마치 오랜 세월을 살아온 듯한 대현자들이나 할 듯한
명언이 바주크의 입에서 흘러나오자, 적지 않게 놀란 화이엘
이 입을 벌리며 바주크를 새롭게 바라보았지만 그는 다시 무
표정한 얼굴로 돌아가 아투를 주시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얘기해주지. 뭐가 어떻게 된 건지를. 여기 골렘술
사를 제외한 다른 인간들도 모두 들어라. 아니, 이렇게 하는
것이 좋겠군. 내가 지금 어둠의 신의 힘까지 빌려 이 세계의
지상계 생명체 모두에게 나의 목소리를 흘리겠다. 빛과 어둠
의 창조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계획된 모든 일을 말이다. 크
하하하하』
타크니스의 괴소가 크게 울려 퍼졌다. 동시에 녀석을 중심으
로 엄청난 마기가 폭발해 주변으로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검
붉은 피를 연상시키는 그 기운은 곧 녀석의 양손으로 모여들
었고, 녀석은 의식을 집중하면서 천천히 손을 위로 들어올려
모았던 그 마기를 다시 하늘로 뿜어냈다.
『자, 그럼 잘 들어라. 모든 진신을 밝히겠다. 그리고 그 진실
이 모두 드러나는 순간 나는 테이란 스플랜과 함께 마족을 이
끌고 지상계의 신전부터 파괴할 것이다. 크하하하하하!』
드디어 시작되었다. 마왕 타크니스가 말하는 모든 것에 대한
진실. 그 진실의 시작과 끝. 모든 것이 드러나게 되는 순간이
서서히 다가오기 시작했다.
하늘에 갑자기 먹구름이 드리워졌다. 잔뜩 몰려든 시커먼 구
름 속에서 무언가 꾸물거리며 천둥과 벼락까지 치고 있었다.
마치 타크니스가 앞으로 꺼낼 무시무시한 말들을 예견이라도
하려는 듯이 그렇게 날씨는 점점 더 흐려만 갔다.
태초에 이 세계를 창조했던 코스모스는 다른 차원을 관리하
기 위해 이 세계를 스스로 관리할 수 있는 존재를 만들었다.
그들이 바로 신이라 불리는 절대 권능의 존재들이다.
그 중에서도 막강한 신성력으로 기적을 일으키는 존재들은
창조신이라 불리고 있다. 빛의 창조신으로는 샤이트리아, 브
레이브, 러브샤가 대표적이며 어둠의 창조신으로는 다크니스
와 디스페어, 데자이어가 가장 널리 알려져 있다. 예전에 그들
은 서로의 조약을 맺어 상대방에 대한 세력을 견제했으며, 에
이전트를 지상계로 파견하여 신의 힘이 곳곳에 미치도록 했
다.
하지만 그 때부터 어둠의 신인 다크니스는 먼 훗날을 예견하
면서 다른 신들과 마족들과 협력하여 무언가 일을 꾸몄다. 바
로 무한한 세월을 살아가는 그들의 특혜를 이용한 엄청난 계
획, 영원의 어둠이라 이름 붙인 그것이었다.
--- 모든 것은 다음 편에서 드러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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