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골렘마스터-236화 (236/244)

[골렘마스터]  # 진실 속에 또 다른 진실[1]

진실 속에 또 다른 진실

쏴아아아.

바닷바람이 그 특유의 향과 함께 부드럽게 밀려왔다. 바람에

이끌린 작은 파도는 하얀 거품을 물고 해안에 올랐다가 다시

밀려나 그 품으로 돌아갔다. 하얀 구름이 뭉게뭉게 피어오른

하늘에는 먹이를 찾으러 몰려든 갈매기들이 날아다녔고, 저

멀리에서는 작은 고깃배가 몇 명의 뱃사람들을 태운 채 유유

히 바다로 향했다.

온통 바위뿐이다. 모래도, 풀도 존재하지 않는 그저 시커먼

바위만이 존재하는 곳. 이곳은 자그마한 바위섬이었다. 가끔

씩 작고 커다란 파도가 밀려와 하얀 거품과 함께 바위를 때렸

지만, 그에 굴하지 않고 꿋꿋이 해안 바다위로 불쑥 솟아 있

는 바위섬. 그 바위섬의 가장 위쪽에 푸른 존재가 걸려 있었

다.

얼굴은 창백했다. 바위에 부딪힐 때 생긴 상처인지는 모르겠

지만, 작은 상처들이 얼굴과 피부를 붉은 혈선으로 물들여놓

았다. 바위섬 위에 아찔하게 걸쳐진 몸은 한 차례 기이하게 꺾

여 구부러져 있었고 손과 발이 아래를 향해 축 쳐져 있었다.

머리와 옷 이곳저곳에서는 따사한 햇살 아래 증발하여 나타

난 하얀 소금들이 반짝였다.

꿈틀. 살아있다. 죽은 게 아니었다. 죽은 듯이 올려져 있던 창

백한 그의 손가락이 잠시 움직였다. 힘이 빠진 듯 끝이 덜덜

덜 떨렸지만, 그래도 움직이고 있었다. 자신이 살아있음을 증

명이라도 하겠다는 듯이 그렇게 무리하게 몸을 움직이고 있었

다.

"으으으……. 내가 살아…있긴 하나…보군."

그 존재가 눈을 떴다. 얼굴도 피부도 모두 물에 불어 쭈글거

렸지만, 아직도 눈빛만큼은 살아있어 푸른 하늘과 갈매기들

을 눈에 담았다.

그는 단 한 마디를 중얼거린 뒤, 몸을 움직여보려 했다. 다행

히 감각은 살아있었다. 가장 먼저 손가락을 움직이고 그 다음

으로 손목을 끄덕여보았다. 다행히 그 동작까지는 원하는 대

로 움직임이 가능했고 그의 얼굴에 희망이 비쳤다.

"살아있는 건 확실하고, 죽을 정도는 아닌 것 같군. 치료 주문

으로 몸을 치료하면 괜찮겠어."

정신을 차리고 조금의 시간이 흘렀기에 그의 목소리에서는

조금의 여유를 찾을 수 있었다. 하지만 곧 허리 부근이 바위

와 부딪힐 때 큰 충격을 받아 움직일 수 없게 됐다는 사실과

지금 이곳이 바다 연안 부근의 바위섬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는 씁쓸한 표정이 됐다.

"마족. 역시 그 녀석들을 믿은 아버지의 잘못이야. 파괴신 따

위가 부활하다니. 이건 정말……."

무덤덤한 어조와는 달리 그의 눈에서는 눈물이 흘렀다. 아직

도 기억이 생생했다. 아버지가 신이 되려고 의식을 치르던 장

면이, 그리고 파괴신이라는 엄청난 존재가 아버지의 몸 속에

강림하던 장면이.

파괴신은 부활하고 난 뒤, 어둠의 종족들을 이끌고 사라졌

다. 자유 전투의 임무를 띄었던 미사엘과 몇 몇의 신관. 그리

고 화염 기사단의 두 단장과 대원들은 그 뒤 드래곤들의 공격

을 받고 뿔뿔이 흩어졌다. 아마도 모두들 죽거나 사로잡혔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을 굳힌 미사엘은 오히려 마음이 편해졌

다.

아버지는 분명 자신이 신이 됐다는 기쁨에 가득 찬 상태에서

영혼이 소멸했을 것이니, 오히려 그 분에게는 잘된 일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리고 신에 반하는 행동을 하는 미사엘 자신

도 이제는 드디어 속죄할 수 있는 상황이 됐다고 생각했다. 희

생된 존재도 많았고, 희생한 존재도 많았다. 어차피 이렇게 살

아남게 된 이상… 미사엘은 용기의 신의 사제답게 삶을 소중

히 여기고 싶었다. 그리고 지금껏 저질렀던 악행을 씻고 속죄

하리라 다짐했다.

"다시 시작하는 거야. 나는 아직 젊고 씻어내야 할 죄는 많으

니까."

미사엘은 그렇게 중얼거리며 다시 한쪽 손에 남은 힘을 모두

전달했다. 뼈가 부셔지는 듯한 엄청난 고통 속에서도 멀어지

는 의식을 간신히 붙잡으며 거의 바닥이 난 신성력으로 치료

주문을 읊었다.

샤아앙.

작은 빛이 그의 몸에 스며들었다. 남아있던 신성력이 빠져나

가면서 극도의 피로가 몰려왔지만, 그래도 허리의 골절상과

온 몸의 작은 상처들은 치유가 되었기에 고통은 덜게 됐다.

"으으으윽."

편안한 마음으로 잠시 휴식을 취한 뒤 일어나야겠다고 생각

한 그가 막 눈을 감으려는 순간, 갑자기 자신의 것이 아닌 다

른 사람의 신음소리가 들려왔다. 고통에 찬 목소리, 그것에는

생기가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솔직히 쉬고 싶은 마음에 간절하던 미사엘이었지만, 죽음의

문턱에서 선택한 속죄의 길을 떠올리고는 간신히 몸을 돌려

소리가 나는 쪽을 향했다. 자칫 잘못하다가는 바위섬에서 아

래로 굴러 떨어질 수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다른 사람의 안위

가 중요했다.

"다, 당신은…… 막스윈?"

눈에 비춰진 존재는 얼굴에 선혈이 낭자한 강인한 인상의 남

성. 붉은 화염 갑주와 용형의 검을 착용한 붉은 화염 기사단

의 제 2 기사단장 막스윈이 확실했다. 그러고 보니, 분명 디클

레샤 섬에서 드래곤들의 손길을 피해 도망치려고 텔레포트 주

문을 사용할 때 그까지 그 파장에 휘말렸었다는 사실이 떠올

랐다. 아마도 중간에 차단 당한 텔레포트 때문에 이곳 바위섬

까지 날아온 것 같았고, 같은 범위에 있던 막스윈도 딸려온

것 같았다.

"지금 곧 내려가겠습니다."

목소리를 듣기나 했을까? 하지만 상관없다는 듯 미사엘은 무

겁게 느껴지는 몸을 이끌고 바위섬 위를 기었다. 치유의 힘으

로 회복된 피부 위로 돌에 긁힌 날카로운 작은 상처들이 또다

시 생겼지만, 그래도 그는 굴하지 않고 몸을 움직여 아슬아슬

한 고비를 넘기며 막스윈의 옆까지 내려갈 수 있었다.

"미, 미사…엘. 우리 주군…은 어떻게 되셨나……."

그는 반쯤 감긴 눈으로 미사엘을 알아보고 그렇게 물었다. 성

격 파탄자에 가깝던 드레이크와는 달리 역시 충성심이 강한

그의 모습에 미사엘은 울컥 솟아오른 눈물을 참지 못하고 자

연스럽게 흘렸다.

"그 분은…… 돌아가셨습니다. 하지만 아마도 행복하실 겁니

다. 원하신 대로 신이 되는 기쁨에 찬 순간 영원의 나락으로

향하셨으니. 그 분에게 보답하는 일은 이제 우리가 살아남는

일일 겁니다. 그리고 그 분이 쌓은 업보를 우리가 천천히 남

은 생을 살며 씻어내야 합니다."

"살아남…을 수 있다…면 주군의 아…드님이신 당신을 따…

르겠습니다. 새로…운 주…군이시여."

막스윈은 힘겹게 말을 잇고는 결국 눈을 감고 정신을 잃었

다. 하지만 상반신이 들썩이는 걸로 봐서 죽지는 않은 듯 했

고 더 이상 지체하다간 정말 큰일이 나겠다고 생각한 미사엘

의 한쪽 손이 그 기사의 가슴위로 올라갔다.

"모든 이들의 마음속에 자리하신 브레이브님의 힘을 빌어, 용

기로 인해 상처 입은 자들을 치유할 수 있는 힘을 발하리라!"

용기의 신 치유 주문을 강하게 읊은 그의 손에서 상당한 신성

력과 빛이 뿜어졌고, 스르르 막스윈의 몸 속으로 빨려 들어갔

다. 미사엘은 마지막으로 붉은 화염 기사단장의 상처가 서서

히 치유되는 것을 확인하고는 편안한 마음으로 눈을 감았다.

그랜드 서클의 그 어마어마한 영향력을 떠올리게 할 정도의

대규모의 진동. 대지가 울부짖으며 크게 흔들거렸고, 그 여파

로 인해 대지 위에 건설된 모든 건물들이 무너져 내렸다. 크

고 낮음, 그리고 건물의 강도에 상관없이 커다란 지진은 모든

것을 허무하게 쓰러뜨리고도 만족하지 못했는지 끝날 줄을 모

르고 계속됐다. 수도 유적지. 역사적인 현장을 직접 체험하게

해주는 메션 왕국의 명문지가 완전히 지도상에서 사라지는 순

간이었다.

샤아아아앙!

건물이 무너지면서 일어난 먼지 등으로 인해 뿌옇게 가려진

하늘 위로 밝은 빛이 출렁이며 순간 공간을 뚫고 백색의 깃털

날개와 함께 무형의 백색 섬광이 뿜어졌다. 그리고 빛이 갈무

리되어 서서히 잦아듦과 동시에 그것에 가려진 신형들의 드러

났다.

"이런……. 메션 왕국의 입장으로서는 엄청난 손실이겠어. 어

때, 아투? 메션 왕국의 귀족가 자제로서 무슨 생각이 들어?"

빛에서 모습을 드러낸 화이엘이 입을 가리며 묘한 미소를 지

었다. 하지만 망연자실한 표정의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그  또한 얼굴을 일그러뜨린 채, 붕괴되고 있는 유적지로 고개

를 떨궜다.

쿠구구구구궁!

순간 아투의 눈이 고정된 아래의 대지가 움푹 꺼지면서 무섭

게 붕괴됐다. 거대하게 자리한 지하 공간이 한꺼번에 파괴되

면서 지상의 유적지를 받치고 있던 지반이 붕괴된 듯 싶었다.

방대한 지형이 무너지면서 일은 먼지 구름이 위쪽으로 치솟았

고, 커다란 흙 기둥도 함께 솟아올랐기에 화이엘은 일행을 휘

감은 신성력을 운용하여 더 높은 상공으로 상승했다.

"콜록콜록. 테이란 스플랜. 파괴신에 이어 전설의 존재가 또

등장하게 되는 건가? 정말 암담하군."

폰네스 후작이 먼지를 뒤집어 쓴 채, 콜록거렸다. 입을 막고

숨을 고르던 실피스가 지상을 주시하며 먼지가 가라앉자 입

을 열었다.

"신이 봉인한 것을 어떻게 마족이 저렇게 쉽게 풀 수 있지? 화

이엘님. 이건 정말 이상합니다. 들어야하겠습니다."

"나도 마찬가지야, 화이엘. 뭔가 이상해. 진실을 알아야 싸움

을 하던지 말던지 하지."

아투도 스승님의 말에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으으음. 아무래도 이건 모두 계획된 일인 것 같아. 만약 이

런 것이 모두 우연이라면 정말이지 세상은 불공평한 것이 되

지."

"그게 무슨 소리야? 알아들을 수 있게 말을 좀 해봐."

아투가 짜증난다는 듯이 말을 계속 돌리려 하는 그녀를 닦달

했다.

"좋아, 말할 테니 잘 들어. 과거 역사 속에는 테이란 스플랜이

라는 골렘이 존재했고 신에게 도전하여 결국 그들에게 봉인

당했지. 이 정도는 그리 감출 일이 아니었기에 크게 알려진

채 후세에게 전달됐어. 하지만 그 봉인의 성격은 아무도 알지

못했지.

사실 테이란 스플랜을 봉인했던 힘은 파괴신의 신성력이었

어. 현존하는 신들의 힘으로 봉인을 한다면 인간들이나 다른

종족들의 신관이 신의 힘을 빌려 그것을 풀 수 있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었지. 하지만 그때는 파괴신이 본체를 잃고 거의

소멸한 것처럼 여겨지는 시기였어. 때문에 신들은 인간들이

나 지상계 존재들이 힘을 빌려올 수 없는 그 파괴신의 강력한

힘으로 테이란 스플랜을 고대 마도 제국의 깊숙한 지하에 묻

고 봉인하게 된 거야.

물론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그 봉인에 이상이 생길 줄은

천상계에서도 예상하지 못했어. 파괴신은 이제 모두에게 잊혀

진 그런 가상의 존재가 됐고, 고대 마도 제국도 지도상에서 사

라져 모든 문명을 잃었으니까. 하지만 일은 교황 다이티 라무

스, 파괴신의 영혼을 간직한 그에 의해 벌어지게 됐어. 결국

마족과 손을 잡고 파괴신이 부활하게 됐지. 그리고 파괴신은

빛의 사도들에게 소멸했고."

"자, 잠깐. 그렇다면 파괴신이 소멸했기에 테이란 스플랜을

봉인하고 있던 힘이 사라지게 됐다는 거야? 신들은 그렇게 한

단계의 봉인 밖에 해두질 않았다는 말이야?"

아투가 어이가 없다는 듯 물었다.

"그 때만 해도 파괴신의 힘은 창조신들을 뛰어넘는 절대적인

것이었어. 게다가 테이란 스플랜의 봉인이 해제된다고 해도

그것은 특별한 조건이 갖춰지지 않는다면, 즉 그것을 조종할

수 있는 힘이 부여된 물건을 갖고 있지 않다면 움직일 수 없었

지. 물론 그 물건은 따로 다른 지역에 봉인됐어.

허나, 우연히 그 물건이 발견되어 메션 왕국의 국왕에게로 입

수됐고 지금까지 국보, 왕가에게 전해지는 가보가 되어 이어

져 내려왔어. 그런데 몇 일전 마족에 의해 그것이 도난 당했

고 지금은 타크니스가 소유하고 있지. 그가 가진 마의 힘이라

면 충분히 테이란 스플랜의 의지를 굴복시키고 자기의 힘으

로 만들 수 있을 거야."

화이엘의 긴 말이 거기서 끝이 났다. 하지만 사람들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들로 가득했다. 그녀의 말이 전부 사실이라면

파괴신을 부활시킨 마족의 목적도 그 봉인의 실질적인 성질

을 알고 테이란 스플랜의 봉인을 깨기 위해서였다는 말인가?

그렇다면 원래 초기의 목적은 테이란 스플랜의 봉인 해제를

통한 마족의 힘 증강? 그럴 싸한 말 같았지만 무언가 오류가

있는 듯한 찜찜한 기분이 아투의 머릿속을 가득 메웠다.

"물론 나도 무언가 이상하다고 생각해. 모든 것이 마족이 바

라는 대로 잘 이루어진 것 같아. 파괴신이 소멸 직전까지 치달

은 것은 세월과 세월을 뛰어넘은 엄청난 옛 일이지. 물론 고

대 마도 제국이 인간들의 역사로 따지면 상당히 오래 된 나라

라고 하지만, 그래봤자 천상계 존재들에겐 세월로 여겨지지

도 않아. 그렇게 어마어마한 시간과 세월을 뛰어 넘어 맺어진

두 관계를 어떻게 마족들은 사전에 파악하고 파괴신을 부활시

킬 생각을 한 것일까 의심스럽단 말이야."

쿠어어어어어!

화이엘 역시 무언가 알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

는데 크게 무너지고 있던 아래쪽 유적에서부터 기괴한 포효.

드래곤을 능가할 정도의 그 엄청난 포효 소리가 믿을 수 없는

파장과 함께 터져 나왔다. 본능적으로 위험을 감지한 화이엘

이 보호막을 쳐 일행을 보호했기에 망정이지 자칫 잘못했다

면 청력을 잃을 뻔한 상황이었다.

"온다. 모든 사실은 테이란 스플랜과 함께 등장하는 마왕에

게 물어보면 돼!"

아투는 모두가 들으라는 듯 강하게 소리를 지르며 가이트리

아의 어깨 위로 올라가 손잡을 잡았다. 반대편 어깨로 바주크

가 올라탔고, 소울드와 실피스 폰네스 후작 등은 마법으로 화

이엘의 도움에서 벗어나 날아올랐다.

쿠어어어어어!

다시 한번 울리는 테이란 스플랜의 포효. 동시에 먼지가 가득

한 푹 꺼진 대지 위로 불쑥 어떠한 그림자가 솟아올랐다. 서서

히 위쪽으로 올라오는 그 거체, 빛깔은 아주 붉었다. 피보다

도 더 붉게 타오르는 빛깔이 주변을 온통 붉게 물들이며 장악

해갔다.

---

후아~ 저는 요즘 포립에 빠져 산답니다.

후훗. ^^*

즐독하세요. 아, 그리고 주변에 골렘마스터 홍보 아시죠?

157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