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골렘마스터-234화 (234/244)

[골렘마스터]  # 테이란 스플랜[4]

하지만 더욱 놀라운 일은 그런 단순한 것이 아니었다. 갑자

기 아투가 딛고 있던 바닥 전체가 무슨 기관 장치에 의해 움직

이는 것처럼 한쪽으로 밀려났고, 아주 거대한 지하 통로가 일

행의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층계로 이어진 통로였는데, 아래

쪽은 어둠으로 가득 차 있어 식별이 불가능했다.

"이, 이건?"

아투는 놀란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자신의 손바닥을 내려다

보며 중얼거렸다. 그저 의기양양한 얼굴을 한 화이엘은 묘한

미소를 머금고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은 채, 그 지하 층계를 향

해 걸음을 옮겼다.

"내려가는 겁니까?"

폰네스 후작이 그녀의 뒤를 천천히 따르면서 물었다. 그렇다

는 듯 고개를 끄덕이는 그녀의 행동에 멍해져있던 소울드도

뒤를 따랐고, 실피스는 강한 호기심을 표현하면서 재빨리 걸

음을 옮겼다.

"아투. 거기 하루 종일 서있기만 할 거야? 빨리 가지 않으면

정말 위험한 상황까지 가게 될 수도 있어."

"아, 알았어. 갈게. 바주크, 자 내려가요. 가이트리아 너도 잘

따라와."

층계의 첫 발을 내딛는 화이엘이 재촉을 해대는 바람에 아투

는 말까지 더듬으면서 당황했다. 하지만 위험한 상황까지 갈

수도 있다는 말에 다시 정신이 바짝 들었다. 엔젤인 그녀가 그

렇게까지 말한다는 것은 정말로 사태의 심각성을 드러내는 것

이기 때문이다.

층계는 비교적 완만한 경사였다. 계단이 유리와 비슷한 재질

로 되어있어 약간 미끄러웠지만, 크게 신경 쓰며 걸어야 할 정

도는 아니었다. 처음에는 유리인 줄 알고 가이트리아의 접근

을 막기도 했지만, 이내 유리와는 차원이 다른 고강도의 물질

임이 밝혀졌기에 일행 모두가 낙오자 없이 함께 할 수 있었다.

신기하게도 층계가 쭈욱 이어진 복도는 칠흑 같은 어둠에 싸

여있었으나, 일행이 지나가는 곳은 자동적으로 영구 라이트

마법이 걸린 횃불이 밝혀지면서 주변이 밝아졌다. 노란 불빛

덕분에 눈에 들어온 복도의 벽. 순간 거대한 형상이 일행 모두

의 시선에 들어왔고, 가장 앞장서서 걷고 있던 화이엘도 흠칫

하며 뒤로 몇 발자국 물러섰다.

"호호호호. 괜히 올랐네. 자자, 다들 괜찮아. 이건 그냥 평범

한 그림일 뿐이니까."

그녀는 허겁지겁 전투 준비를 끝낸 일행을 돌아보며 손을 훠

이훠이 저었다.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보고 놀란다고 누

가 그랬더냐. 일행들도 괜히 마음을 졸였다는 사실이 민망한

모양인지 얼굴을 살짝 붉혔다. 하지만 곧 그들의 관심사는 복

도 벽에 그려진 거대한 형상의 그림에게로 쏠렸다.

"이건 테이란 스플랜이에요!"

벽을 짚으며 먼지가 묻어 흐릿해진 부분을 닦아내던 아투가

갑자기 목이 터져라 소리쳤다. 사람들은 일단 거대한 형상이

무엇을 그린 것인지는 알 수 있었지만, 그의 입에서 흘러나

온 '테이란 스플랜'이란 단어를 듣고는 놀라고야 말았다.

"테이란 스플랜이라면 고대 마도 제국 시절에 신과 드래곤에

게 도전하기 위해 만들어졌다고 하는 그 마도 병기 테이란 스

플랜을 말하는 거냐?

실피스가 놀란 얼굴색을 띄었다.

"마도 병기라고도 불리지만 사실은 골렘이에요. 레젠드 골

렘. 전설의 골렘이라 불리는 엄청난 존재죠. 골렘술사 사이에

서는 거의 교과서 같은, 아니 그 이상의 호평을 들어도 상관

이 없을 정도로 굉장한 존재예요. 저도 예전에 테이란 스플랜

의 간단한 설명과 함께 사진이 실린 서적을 통해 알게 된 거

죠. 하지만 그런 그림이 왜 이런 지하실에…."

"이곳은 수도 유적지지. 당연히 고대 마도 제국과 관련된 것

이 있는 것이 정상이 아닐까 싶은데."

폰네스 후작이 별 것 아니라는 듯이 말을 했다. 하지만 의외

로 화이엘은 그의 말을 강하게 부정하며 고개를 좌우로 흔들

었다.

"그렇지 않아. 이 테이란 스플랜의 그림은 결코 평범한 것이

아니야. 자, 잘 살펴보면 저 아래쪽까지 벽을 따라 그림이 길

게 이어져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거야. 그럼 최대한 빨리 내

려가면서 내 설명을 잘 들어봐."

아이에게 말을 하는 것인지, 친구에게 말을 하는 것인지, 그

것도 아니면 자신보다 윗사람이나, 우위의 존재에게 말을 하

는 것인지 전혀 분간이 가질 않았다. 하지만 모두들 그런 말투

에 너무나도 익숙해진 상태이기에 그녀를 따라 벽에 그려진

여러 그림들을 살피며 아래쪽으로 빠르게 내려갔다.

그림들은 무슨 일정한 순서대로 놓여져 있는 듯 보였다. 일

단 처음에 그려져 있던 테이란 스플랜. 그 다음으로 이어진 드

래곤. 그리고 천상계 룬 표시가 함께 쓰여있던 빛의 일렁임.

빛의 일렁이는 장면에 삽입된 거대한 골렘의 형상. 골렘의 손

에 들린 길다란 창 같은 것이 빛을 가르고… 두 갈래로 갈라

진 빛이 거대한 골렘의 몸체를 휘감는 그림. 그리고 마지막으

로 칠흑 같은 어둠만이 존재하는 벽화를 끝으로 층계 역시 바

닥을 드러냈다.

층계의 끝. 유직지의 드러나지 않았던 지하 공간은 예상외로

공기도 텁텁하지 않고 상쾌했다. 게다가 골렘의 크기에 맞게

제작된 듯한 높은 천장에 뚫린 구멍에서는 자연의 빛, 태양광

이 직접 통하여 내려와 어두운 지하 공간을 지상과도 같이 비

추었다.

햇살로 드러난 지하 공간은 굉장히 넓었다. 어중간한 도시의

중앙 광장 정도의 크기는 되어 보이는 규모. 천장까지 높았기

에, 마치 지하나 건물 안이 아닌 듯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바

닥이 차가운 돌로 만들어졌다는 것을 제외하고는 평범한 지상

의 대지와 다를 바 없는 그러한 광경 말이다. 그러나 황량하

고 썰렁하게 빈 공간만이 존재하는 것도 아니었다. 넓은 공간

의 중심 부분에는 높게 솟은 천장을 받치는 거대한 사각의 기

둥이 세워져 있었는데, 그 주변은 마치 울타리를 둘러놓은 듯

이 오렌지 빛 낮은 막에 싸여 있었다. 일종의 결계로 생각되었

는데, 기둥에 새겨진 양각 문양들이 그 힘의 원천인 듯 했다.

"굉장하군. 이 정도의 지하 규모라면 드워프들조차 건설하기

힘들 것 같군."

소울드는 스스로에게 사실을 각인시키려 하는 듯 작은 목소

리로 중얼거렸다.

쿠궁!

마지막으로 층계에서 내려서던 가이트리아가 그만 발을 헛

딛는 실수를 하여 커다란 소리를 냈다. 방심한 틈을 탄 마족

의 공격이 시작된 줄 알고 뒤를 급히 돌아보던 일행들은 다시

마음을 가라앉히며 거대한 기둥을 주시했다.

"허허허. 엄청난 마나량이야. 저 정도의 마나가 이곳에서 폭

발한다면 우리들과 이 지하는 물론 이곳 유적지 전체가 날아

갈 수도 있겠군."

실피스가 로브 자락을 살짝 뒤로 넘기면서 주머니에 넣어두

었던 작은 수정구를 손에 쥐었다. 어중간한 자리에 껴있던 폰

네스 후작도 허리에 찬 장검을 뽑아들고는 한쪽 손에 마나를

모으기 시작했다.

"화이엘. 이곳이 어디지? 도대체 뭘 하는 곳이야? 아까부터

말해준다고 해놓고선 지금까지 말하지 않는 건 또 뭐고."

강대한 마나를 머금은 기둥을 신경 쓰면서 조금씩 마나를 개

방하여 마나장을 펼치던 아투가 문뜩 생각나는 게 있어 그녀

를 돌아보았다. 그제야 이곳 지하의 풍경에 모든 정신을 빼앗

겼던 일행들이 그녀에게 추궁하는 시선을 던졌다.

일행의 시선을 졸지에 한 몸에 받게 된 그녀는 어울리지 않

게 수줍은 듯 얼굴을 붉혀 사람들을 당혹스럽게 했다. 반말을

사용하며 당당함을 잃지 않는 그녀가 왜 갑지기 인간 소녀의

흉내를? 하지만 오랜 기간동안 그녀와 함께 이곳저곳을 다녀

보았던 아투는 그리 생소한 모습도 아니었다. 도무지 갈피를

잡을 수 없어, 엔젤은. 그의 머릿속엔 항상 그런 문장이 새겨

져 있기에.

"호호호호. 다들 잘 들어봐. 이곳은 고대 마도 제국의 수도였

던 곳이야. 게다가 어마어마한 규모의 지하 비밀 공간이지. 아

까 층계를 통해 내려오면 보았던 그림 기억나? 무언가를 순서

대로 그려놓은 듯한 거 말이야.

으음, 고개를 끄덕이는 것 보니 이해했다는 것으로 해석하고

말하겠어. 사실 그 그림들은 실제로 있었던 일들을 기록해놓

은 거야. 서적으로 남겼다간 소실될 지도 모르기에 비밀리에

만들어진 이곳과 함께 수도 지하에 매장된 거였지. 그 그림들

을 아주 간단하게 해석해보면 이렇게 돼.

-마도 병기, 골렘 테이란 스플랜은 인간들이 만들어낸 최고

의 창조물이다. 사람들은 그것을 이용하여 지상계에서 횡포

를 부리던 드래곤들에게 도전했고, 그 어마어마한 힘을 증명

하며 차례차례 드래곤들의 실력자들을 물리쳤다. 또한 인간들

은 그 골렘이 가진 힘을 썩혀두려 하질 않았다. 그들은 자신들

을 창조해준 신들에게 반기를 들었고 마도 병기 테이란 스플

랜을 이용하여 천상계까지 진입하는데 성공하였다. 하지만 신

들은 어마어마한 신성력과 권능을 발현하여 전체 힘의 절반

가량을 낭비해가면서 녀석을 봉인하는데 성공했고, 그때를 기

점으로 하여 신들의 저주를 받은 고대 마도 제국은 붕괴하기

시작했다.-

뭐 이런 내용이지. 어쨌든 여기서 가장 중요시 여겨야 할 점

은 테이란 스플랜. 그 위협적인 존재가 아직 소멸하지 않고 지

상 어딘가에 봉인이 되어 있다는 점이야. 자아 여기까지 들었

다면 내가 왜 갑자기 이런 얘기를 하는지 알겠지?"

"서, 설마 신들의 힘에 의해 봉인된 전설의 거대 골렘 테이란

스플랜이 이곳 지하에 봉인되어있다는 소리는 아니겠지?"

끝까지 말을 듣고 있던 아투가 하얗게 질린 표정을 하고는 되

물었다. 하지만 그와 다르게 여유있는 미소와 함께 고개를 끄

덕이던 그녀는 다시 짤막하게 입을 열어 단언했다.

"이곳에 테이란 스플랜이 봉인되어 있어. 감히 신에게까지 도

전할 용기를 불어 넣어준 엄청난 마법 생명체. 그 녀석이 말이

지……."

*  *  *

빛도 없다. 그렇다고 그 반대에 존재해야 할 어둠 또한 없다.

세상에 존재해야할 대기도 없고, 대지도 없는 그러한 완벽한

무의 공간만이 펼쳐져 있을 뿐이다. 뭐라 필설로 밝힐 수 없

을 정도의 허무한 광경. 하지만 갑자기 그러한 무의 공간의 어

딘가에서 백색이라는 순수한 빛깔을 띈 섬광이 조금씩 커지

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작은 백색의 점에서부터 시작된 팽창이 시간이 지

날수록 배가 되어 확장됐고, 결국은 무의 공간 전역을 자신의

광채로 뒤덮어버렸다. 무의 공간은 순식간에 빛의 공간으로

바뀌었고, 온 세상이 찬란하게 빛났다.

구구구궁!

그러나 빛의 승리도 잠시, 무의 공간을 뒤덮은 빛의 공간 일

부분이 갑자기 크게 일그러지면서 어두운 칠흑의 빛깔로 변화

했다. 마치 음양의 기운이 조화를 이루는 듯한 광경이 펼쳐지

며 어둠으로 일렁이는 기운이 빛의 공간을 절반까지 잠식해버

렸다. 한쪽은 완벽한 어둠, 그리고 반대쪽은 완전한 빛. 그러

한 조화로운 공간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빛과 사랑과 용기, 그리고 어둠과 절망과 욕망의 세계.』

빛도 어둠도 아닌, 회색 빛의 지역에서 그 어떤 것도 압도할

수 있는 음성이 흘러나왔다. 평범한 음성이 아닌 그 목소리의

파장이 공간을 여유롭게 흐르면서 새로운 무언가를 창조해냈

다. 한쪽 회색의 공간이 갈라지면서 늘어진 원형의 영상이 비

춰지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 영상이 비춘 것은 어두운 존재였다. 수려한 외모의 검은

존재를 중심으로 엄청난 마기가 넘실대는 것이 이곳 무의 공

간의 주인인 코스모스에게는 보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어둠

의 존재의 손에 들린 길다란 막대기. 스태프라 불릴 만한 굉장

한 물건에서 역시 강한 힘이 발산되는 게 보였다.

『운명과 역사의 흐름은 정해지지 않았다. 하지만 어둠과 절

망, 그리고 욕망은 결국 인위적으로 그 흐름을 정해버렸다. 게

다가 스스로가 직접 나서는 게 아니라 뒤에서 마족을 조종하

여 모든 것을 이루어냈기 때문에, 빛과 용기와 어둠도 지상계

의 일에 관여하지 못할 것이다. 테이란 스플랜이라는 존재가

봉인에서 풀려난다면 그쪽 세계에 어떠한 일이 생길지 장담

할 수 없으니….』

대우주 그 자체라 불리는 코스모스. 창조신들과 차원이라는

단어의 주인공들을 탄생시킨 그 위대한 존재의 음성이 무의

공간을 가득 매웠다. 일정한 형태가 없이 그저 무의 공간에 동

화되어 있는 그 존재는 그 어떤 이도 느끼지 못할 시선으로 계

속 원형의 영상 속을 주시했다.

영상 속의 검은 존재는 천천히 앞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하

지만 몇 발자국 걸음을 옮긴 그 자의 신형이 흐릿해짐과 동시

에 순시간에 코스모스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절대적존재의 신안!』

간단한 외침과 함께 코스모스의 시야에 다시 어두운 존재의

모습이 잡혔다. 방금 그 장소에서 다른 곳으로 사라진 것이 아

니라, 그저 간단하게 몸을 감춘 것뿐이었다. 검은 존재는 마

치 크스모스가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느끼기라도

하듯이 차가운 눈빛으로 주변을 두리번거리다가 다시 걸음을

옮겼다.

검은 존재가 걸어 들어간 곳은 놀랍게도 지하 몇 백 베타 아

래쪽에 존재하는 지하 공간이었다. 때문에 자연 채광이 될 리

가 없었지만, 지하 공간은 밝은 태양광에 의해 굉장히 밝아 눈

이 부실 지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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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량이 약간 적습니다. 양해구하구요,

+_+ 드디에 제게도 책이 왔습니다.

손으로 만질 수 있게 된 저의 소설... ㅜ_ㅜ 감격이더군요.

하지만 다시 글빨을 잃었다눈...;; 역시 시험의 여파가 컸나?

어쨌든 즐독하시구요, --;; 책으로도 많이 봐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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