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골렘마스터-232화 (232/244)

[골렘마스터]  # 테이란 스플랜[2]

'후우. 정말 피곤해.'

이제 눈앞까지 침침해진다. 아무래도 내일부터 또다시 시작

될 여정을 위해서는 아쉽지만 잠을 청해야할 것 같았다. 계속

잠의 마수를 거부하던 아투는 그제야 편안한 마음으로 눈을

감으면서 자연스럽게 귀여운 모자를 쓰고 찾아든, 요정 같은

잠의 마수를 몸으로 받아들였다.

몇 시간이나 잔 것일까. 역시 피로가 몰려 있었기 때문인지

온 몸이 뻐근했다. 게다가 이불을 몸에 말고 잔 탓에 등까지

쑤셔왔다. 후우. 개운한 기분으로 아침을 맞이하고 새롭게 출

발하려고 했는데. 어제의 계획이 처음부터 무참히 무산됐음

을 깨달은 아투의 얼굴이 밝을 리가 없었다. 침대의 이불을 박

차고 몸을 일으키는 그의 행동에선 불만이 가득 느껴졌다.

"하하. 그래도 날씨는 좋군 그래."

내키지 않는다는 듯 일그러진 표정이었던 아투의 얼굴이 창

문을 여는 것과 동시에 조금은 밝아지며 미소가 서렸다. 근래

에 들어 보기 힘든 깨끗한 날씨. 바람 한 점 없는, 그렇다고 온

도나 습도도 높지 않은 딱 좋은 기후. 새로운 여정의 출발일로

서는 딱 좋은 날씨였다.

"자, 그럼 옷을 입고 나가볼까?"

아투는 주섬주섬 벗어두었던 야외복과 로브로 갈아입은 뒤,

서둘러 일행이 기다리고 있을 시청의 식당으로 향했다. 시청

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필요할 때마다 들려서 음식을 먹을 수

있는 무료 음식점의 역할을 하는 곳이다.

이미 식당에는 아투를 제외한 모든 일행이 한쪽 테이블을 차

지하고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잠시 평범하지만 깨끗한 인테

리어의 실내를 둘러보던 아투도 일행을 발견하고 그쪽으로 발

걸음을 옮겼다.

'어떤 바닥재를 쓴 거지? 발소리가 하나도 나질 않네.'

지금 그가 신고 있는 신발은 구두처럼 뒷굽이 달린 마법사용

부츠였다. 바닥은 맨들맨들하면서 딱딱한 재질의 것이었으니

굽과 딱딱한 바닥이 부딪혀 소리가 나야하는 것이 당연했다.

하지만 의외로 발소리는 전혀 울리지 않았다. 오히려 푹신푹

신한 카펫을 밟는 느낌이 들어 아투를 당황시켰다.

"허허허. 아투님. 이건 왕실에서 하사 받은 바닥재입니다. 드

워프들에게서 시공을 받은 물건이니, 놀라실 만도 하지요. 어

쨌든 벌써 다른 일행분들께서 기다리고 있으니, 어서 가보십

시오."

신기한 듯이 바닥을 내려다보며 눈을 초롱이 빛내는 아투에

게 어제 식당의 관리자라 자신을 소개했던 고우룬이란 중년

남성이 다가와 말을 걸었다. 깔끔한 검은 정장을 차려입고 붉

은 리본 넥타이를 목에 멘 전형적인 식당 지배인 스타일의 남

자였다.

"네, 알겠습니다. 그럼."

아투는 친절한 태도를 보이는 그에게 살짝 눈을 찡끗하며 고

마움을 표시한 뒤, 궁금증을 거두고 일행이 모여 앉은 테이블

로 다가갔다.

"하아. 죄송해요. 제가 조금 늦은 모양이죠?"

"이 녀석. 일행 중 가장 어린 네 놈이 우릴 기다리게 하다니.

만약 여기서 군대였다면 넌 당장에 몽둥이 찜질이니라."

역시 가장 먼저 투덜거리면서 아투를 닦달한 것은 스승인 실

피스였다. 그래도 화이엘의 도움으로 체력을 많이 회복한 모

양인지 다 죽어가던 몰골은 사라진 것 같았다. 물론 못 먹고

자라온 사람처럼 삐적 마른 몸은 쉽게 변화하지 못했지만 말

이다. 어쨌든 건강하고 혈기 왕성한 모습이었기에 아투는 속

으로 안도했다.

"뭐 우리가 그리 오래 기다리는 것은 아니지. 너무 신경 쓰지

말고 일단 앉게나. 길을 떠나려면 배를 든든히 해두어야 하

니."

"흥! 게으른 놈은 먹지도 말라는 말도 있는데, 이 녀석은 정

말 운이 좋군."

소울드가 아투를 두둔하려 했지만, 실피스의 성격상 그걸 지

켜만 보고 있질 않았다. 다시 한번 따끔한 한 마디와 눈치를

받은 아투의 얼굴은 기가 죽어 바닥을 향해 수그러들었다.

"너무 몰아붙이는 것도 좋지 않다. 그리고 내가 항상 아투의

입장을 배려해준다는 사실을 잊으면 안되겠지?"

아트란이 어젯밤 급히 메션 왕국의 수도로 돌아가고 난 뒤,

화이엘이 돌아왔는데 그녀의 말투는 다시 사람들을 모두 하대

하는 투로 바뀌어있었다. 아투를 생각하여 그의 부모인 아트

란이 함께 있을 때는 조심스럽게 말을 가려했지만, 그가 사라

지자 다시 천성으로 타고난 말투가 튀어나오게 된 것이다. 물

론 그렇다고 해서 불쾌한 표정을 짓는 사람들은 없었다. 다들

그저 보통의 사실로 받아들이는 눈치였다. 그녀의 한 마디에

기가 죽은 실피스는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입을 삐죽거리며

물 컵을 입으로 가져갔고, 화이엘은 환한 미소와 함께 아투의

옆자리로 옮겨 앉았다.

"그럼 일단 빨리 배를 채우고 수도 유적지로 출발해야겠군.

웨이트리스?"

이제는 형식상으로 따져 일행 중 가장 높은 귀족이라 할 수

있는 폰네스 후작이-물론 궁중 마법사 실피스는 특별히 신분

에 구애받지 않는 몸이다.- 대표로 나서서 카운터 쪽에 서있

는 제복 차림의 여성을 불렀다. 부름을 받은 여성은 잠시 알

수 없이 얼굴을 붉히더니 허겁지겁 메뉴판을 챙겨들고 테이

블 쪽으로 다가왔다.

"아, 죄송합니다. 워낙 일이 바쁘다보니. 여기 메뉴판입니다.

주문하세요."

하얀색과 검은색이 섞인 단정한 빛깔의 제복 차림인 여성 종

업원은 금빛 머리칼의 젊은 남성 쪽으로 갈색의 작은판을 건

네면서 다시 얼굴을 붉혔다. 자세히 보니 손끝과 목소리도 떨

리고 있었다.

"흠흠. 내 얼굴에 뭐라도 묻었나?"

"아, 아닙니다. 그냥 날씨가 더워서……."

폰네스 후작의 순진한 물음에 여성은 더욱 당황하면서 한쪽

손으로 자기도 모르게 땀을 닦았다. 오늘처럼 시원한 날에 덥

다니. 게다가 건물 안이라 기온이 더울 정도로 높지 않은 것

이 사실이었다. 아투는 여성의 태도를 이해하지 못하고 고개

를 갸우뚱거렸지만, 실피스와 소울드 그리고 화이엘은 까닭

을 알겠다는 듯이 입을 막으며 웃음을 참는 듯 보였다.

"흐음. 나는 간단하게 과일과 야채 샐러드, 그리고 오렌지 주

스를 한잔 갖다주게. 흐음. 실피스님은 뭐로 드시겠습니까?"

종업원의 태도가 이상하긴 했지만, 그냥 신경 쓰지 않기로

한 폰네스 후작은 손가락으로 메뉴판을 짚더니 머뭇거림 없

이 먹을 음식을 시켰다. 과연 숲의 종족이라는 말에 걸맞은 음

식들이 그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물론 종업원은 여성도 아닌

남성이 그런 음식을 먹는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듯 다시

한번 땀을 흘렸지만.

메뉴판을 건네 받은 실피스는 잠시 눈빛을 빛내면서 찬찬히

메뉴판을 살피기 시작했다.

"흐음. 나이가 드니까 힘이 달리는 군. 역시 고기류를 먹어줘

야겠어. 종업원 레이번 스테이크와 트라제 산 와인 한 병……

아니지. 출발이 중요하니 그냥 한 잔만 갖다주게나."

주문을 마친 그는 메뉴판을 옆에 있는 검은 로브 차림의 소울

드에게 건넸다. 역시 흑마법사를 유독 드러내는 복장이었다.

"나 또한 이분과 같은 걸로 갖다주시오. 자, 바주크. 자네는

뭘 먹을 텐가?"

"양이 가장 많은 걸로 갖고 와라."

바주크는 소울드가 건네는 메뉴판을 받을 생각도 하지 않고

그냥 건조하고 싸늘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메뉴판을 건네려

하다가 괜히 민망해진 소울드는 반대편에 앉은 아투와 화이엘

쪽으로 그것을 돌렸다. 그러면서 종업원을 슬쩍 돌아보니 키

메라 바주크를 보고 겁을 먹은 표정을 하고 있는 게 보였다.

"으음. 화이엘. 넌 뭐로 할래?"

레이디 퍼스트. 역시 귀족 가문의 자제답게 그러한 자세가 몸

에 베인 것일까. 아투는 메뉴판을 먼저 그녀에게 건네면서 물

을 한 모금 들이켰다. 화이엘은 환한 미소로 친절한 그의 태도

에 답례하며 메뉴판을 받아들고 눈을 아래위로 움직였다. 하

지만 실피스는 그런 두 존재의 모습이 마음이 들지 않은 모양

이다.

"아투, 이 녀석아. 화이엘님과 다정한 모습을 연출하다가 황

제 폐하에게 발각되기라도 하면 아주 피곤해질 텐데 괜찮은

모양이지?"

은근히 협박이 담긴 말이었다. 화이엘은 그냥 못 들은 척 메

뉴판을 연신 훑어봤고, 아투만이 당황하면서 급히 양손을 내

저었다.

"아, 나는 애플 파이와 애플 주스 한잔. 갑자기 사과로 만든

음식이 먹고 싶어졌어."

"으음. 저는 여기 두 마법사분들과 같은 걸로 가져다 주세요.

여기 메뉴판이요."

마지막으로 주문을 마친 아투는 스승님의 폭탄 선언으로 인

해 흐르게 된 땀을 연신 닦아내면서 종업원에게 메뉴판을 건

넸다. 그때까지도 멍하게 폰네스 후작의 얼굴을 바라보고 있

던 여성 종업원은 황급히 그것을 받아들고는 얼굴이 새빨개져

서 인사도 하는 둥 마는 둥 하여 카운터로 달려가 버렸다.

"저 종업원이 왜 저래요? 폰네스 후작님. 혹시 두 사람이 아

는 사이에요?"

종업원이 멀어지자 그때까지 참고 있던 궁금증의 보따리를

풀어낸 아투가 눈치도 없이 물어보았다. 하지만 눈치가 없는

것은 순진한 소년 아투나, 인간의 나이로 따져서 몇 백살씩이

나 먹은 엘프 폰네스나 다를 바가 없었다. 그의 입에서 흘러나

온 대답이 가관이었기 때문이다.

"나도 모르는 사람이네. 왜 저런 행동을 보이는 것인지, 나도

정말 궁금하군. 그렇다고 앞에 대놓고 물어볼 수도 없는 노릇

이고 답답하기만 하지."

"두 사람 정말 이유를 몰라?"

반말 모드의 그녀. 엔젤 나이트의 수장 화이엘이 머리를  좌

우로 약하게 흔들자 풍성한 붉은 머리칼이 아름답게 찰랑였

다.

끄덕.

아투와 폰네스 후작의 고개가 약속이라도 한 듯이 동시에 힘

차게 아래위로 움직였다. 이 정도까지 말하면 이제는 눈치 챌

만도 한데……. 하지만 두 사람의 눈빛은 전혀 그런 것 같지

가 않았다. 두 사람의 둔감에 정말 감탄을(?) 하게 된 화이엘

은 하는 수 없이 그 이유를 말해주려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허허. 내가 말해주지."

갑자기 화이엘의 말을 과감히 끊으며 실피스가 대화에 끼어

들었다. 노인의 얼굴답지 않게 장난기가 서린 그의 표정을 본

화이엘은 엄지손가락을 세우며 그에게 모든 것을 맡겼다.

"그건 말이지. 둘 다 몰라도 돼."

둔한 두 존재의 기대 어린 시선 속에서 어이없게 이어진 그

한 마디에 시청 내부의 식당 공기가 갑자기 차가워지기 시작

한 것은 왜인지……. 그 한 마디의 위력은 대단했기에 식사가

끝날 때까지 분위기가 펴지지는 않게 되었다.

*  *  *

고대 마도 제국은 최초로 전 대륙을 통합하여 평화의 한 황

제 시대로 이끈 역사적으로 길이 남을 국가였다. 그 시절에는

제국의 국민들 모두가 마법을 사용할 줄 알았고, 또한 마나도

충만하여 드래곤들과 힘을 겨루고 신들에게 도전할 정도의 힘

을 지녔다고 전해진다. 천상계로 통하는 길을 만들기 위해 세

워진 '헤븐 브릿지'는 지금도 그 터가 남아있어 그런 역사적

인 일을 사실로 증명하고 있으며, 그 시절부터 현재까지 존재

하는 드래곤들의 말 또한 고대 마도 제국의 강성했던 힘을 증

명하고 있다.

특히 고대 마도 대 제국에서 발달했던 마법 분야는 신과 동등

한 권능. 즉 생명을 창조하는 힘에 대한 것이었는데 그 대표적

인 것이 거대한 마법 생물체 골렘이었다. 현재 실존하는 골렘

들은 대부분 몬스터 형태로 만들어진 것이 그 후세에 이어져

전해진 것이지만, 사실 과거에는 그 크기나 형태가 다양했다

고 하며 강한 자아를 지녀 마법까지 스스로 사용할 수 있을 정

도였다는 말이 현재로서는 가장 유력한 설이 됐다. doll. 도어

의 존재 또한 과거 마도 제국 시절의 골렘술에서 파생되어 새

로이 전파된 생명 제작의 일부라는 것이다.

물론 골렘술을 비롯하여 갖가지 마법들이 모두 발전한 시기

가 고대 마도 제국 시절이었다. 속성별 원소 마법. 천상계 신

성 마법. 마계의 흑마법. 그리고 진법과 마법 스크롤. 마법 물

품 등에 이르기까지 마도 제국 시절에 존재하던 것들 중 마나

를 지니지 않는 것은 없었다.

하지만 고대 마도 제국. 그 완벽한 것만 같았던 국가도 결국

에는 내부적 권력다툼에 의해 무너졌고, 그들의 강대한 마나

도 시간이 지나면서 대부분 사라져버렸다. 거대 통일 국가의

면모는 온데간데없이 소멸하고, 각 권력을 지닌 존재들이 일

부 영토를 자신의 소유로 선포하면서 작은 여러 국가들이 생

겨났다. 물론 정통 황실의 피를 이은 존재는 메션 왕국이라는

마도 제국의 뜻을 잇는 국가를 건국하긴 하였지만, 현재로서

는 대륙의 극히 일부분을 장식할 뿐이다. 고대 마도 제국은 그

저 강성했던 역사의 한 나라로서 인식될 뿐, 그 이상도 그 이

하도 아닌 것으로 타락하게 된 것이다.

사실 슬픈 일이었다. 사람들이 고대 마도 제국의 유적지와

그 때부터 전해지는 물품, 이론, 서적 등에만 관심을 가졌어

도 불과 몇 일 전과 같은 지상계 소멸의 위협 따위는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고대 마도 제국의 유산들은 시간이 흐르면서

소실됐고, 또 기억 속에서도 사라졌다. 관심이 없어지면서 관

리 또한 소홀하게 됐고, 거대한 제국 영토 내에 존재하던 유적

지는 모두 사라졌다. 그나마 메션 왕국의 영토 내에만 몇 개

의 커다란 유적지가 남아 그 강성했던 제국 시절의 모습을 쓸

쓸히 비출 뿐이었다.

테이란 스플랜.

그래도 여전히 사람들의 입에서 오르락내리락하는 고대 마

도 제국 시절의 것은 그것을 제외하곤 없다고 단정지을 수 있

다. 그 정도로 테이란 스플랜이란 이름은 위대하면서도 대단

한 것이다. 드래곤들도 그 존재를 알고 있으며, 신들 역시 그

존재에 대해 알고 있다. 신들에게 도전하기 위해 제작된 거대

한 마법 생명체, 전설의 골렘 테이란 스플랜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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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책이 깔릴 줄 알았더니, 아직이군요.

때문에 1,2권 삭제 날짜는 연장됐습니다.

아마 책이 출시되는 그 날, 삭제될 겁니다.

즐독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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