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렘마스터] # 테이란 스플랜[1]
테이란 스플랜
파괴의 신은 결국 뜻하지 않는 존재의 등장으로 인해 허무한
죽음, 신의 입장으로서 굳이 말하자면 소멸을 맞이했다. 빛의
신 샤이트리아. 용기의 신 브레이브. 사랑의 신 러브샤. 그들
의 힘으로도 어찌하지 못하고 소멸의 위기까지 몰고 갔던 최
고 천상계 존재 파괴신 디스트로이어. 드래곤들의 총 공격에
도 굴하지 않고 인간 능력자들의 귀찮은 공격에도 끄떡하지
않던 그 위대한 존재가 결국은 마그마 속에서 기사회생하여
돌아온 자, 금강 골렘 가이트리아와 그의 주인인 아투에게 당
해버린 것이다.
파괴신이 소멸함으로서 발생한 엄청난 폭발의 파장은 지상계
에까지 미쳤다. 하늘은 지금까지 그 폭발의 여운이 가시질 않
아 붉게 물들어 활활 타오르며 뜨거운 열기가 식을 줄을 몰랐
고, 엄청난 파장에 휘말린 죄 없는 슬픈 바다는 여태껏 크게
일은 파도가 마음을 진정시키지 못했는지 여전히 몇 베타의
높이로 출렁였다. 대지 또한 그 엄청난 존재의 소멸로 발생한
파장을 피하지는 못해 대규모의 지진이 전 세계를 휩쓸고 말
았다.
하지만 그렇게 뒤따른 재앙이 위험한 존재였던 파괴신의 소
멸 뒤에 이어진 기쁨을 넘어서진 못했다. 천공섬. 신의 대지
로 향하여 되돌아온 최후의 빛의 사도들이 메션 왕국의 영토
에 나타남과 동시에 전 대륙에 퍼진 승전보는 모든 전 세계의
사람들을 축제의 분위기로 만들었고, 그동안 마물들에게 겪었
던 고통도, 그랜드 서클에 의해 당했던 고통도 모두 잊게 해주
었다.
그러나… 그러한 분위기 속에서도 빛의 사도들은 알고 있었
다. 타천사 루카엘의 말처럼 마왕 타크니스가 무언가 파괴신
의 부활을 가지고 꾸미는 일이 있다는 것을.
* * *
메션 왕국의 남쪽 대도시 트라제.
그곳 역시 파괴신의 소멸로 인한 기쁨으로 가득 차 축제 분위
기가 한창이었다. 게다가 그런 분위기에 맞추어 시에서 주최
를 한 작은 축제 한 마당. 사람들은 시에서 마련한 음식과 술
로 그 기쁨을 더했고, 작은 폭죽놀이와 마법사들의 화려한 마
법 시범 등으로 그 분위기가 고조되어갔다. 시간이 흐를수록
그 열기는 더해져 도시 전체가 후끈후끈 달아오를 정도였고,
해가 저물고 밤이 되어 공기가 차갑게 식고 분위기가 어느 정
도 차분하게 가라앉아도 열기마저 쉽게 내려가는 것은 아니었
다.
축제의 마지막은 작은 야외 무도회로 이어졌다. 사교 생활을
즐기는 귀족들만이 참여하는 그러한 권위 있는 행사가 아니었
기에 시민들 모두가 참여하여 소박한 의상으로 소박한 춤을
추며 서로 기쁨을 나누었다. 바쁜 일상에 찌든 사람들의 얼굴
은 조용히 흐르는 관현악단의 노래와 어우러져 부드러움을 되
찾았고, 사람들은 축제의 마지막 분위기를 즐기면서 마음에
드는 상대에게로 다가가 춤을 청했다. 이 때만큼은 그 누구의
얼굴에서도 고민과 걱정 따위는 찾아볼 수 없을 정도였다.
하지만 화려하게 치장된 도시의 번화가 한쪽에 마련된 테이
블의 사람들은 그런 도시 시민들과는 정반대 되는 표정을 지
은 채, 고개를 떨구고 있었다. 무슨 대단한 일을 겪기라도 한
것 마냥 얼굴에는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지만 그들의 눈빛만
을 살아있어 관심을 가져오는 다른 사람들의 접근을 거부했
다.
"내일부터 당장 고대 메션 왕국의 수도였던 유적지로 향해야
할 것 같군요. 루카엘의 말이 정말로 사실이라면 일이 또 복잡
해질 겁니다."
갈색의 머리칼을 제멋대로 자라게 한 소년. 얇은 로브로 자신
이 마법사임을 드러내고 있는 아투가 꽤나 진지한 말투로 입
을 열면서 테이블 위에 한쪽 손을 올렸다. 파괴신과의 전투
때 입은 화상이 아직 완전히 치료되지 않아 손등에 흉터가 남
아있는 게 확연히 드러났다.
"흐음. 왕국에 도움을 청하여 기사단이나 마법사단과 함께 가
면 좋을 듯 한데, 그라디우스 자네의 생각은 어떤가?"
아들의 말에 가볍게 고개를 끄덕인 아트란이 황금빛 청년 그
라디우스를 바라보면서 물었다.
"험. 그건 별로 좋은 방법이 아닌 듯 하군. 정작 중요한 것은
실력이지 수가 아니야. 마왕이란 존재를 병사 수만으로 밀어
붙여도 소용없다는 건 마법사인 자네가 더 잘 알지 않는가?
아, 그리고 난 내일 수도 유적지에 함께 갈 수 없을 것 같네.
파괴신이라는 최강의 존재가 이미 쓰러진 이상 나도 드래곤
회의를 열어서 새로운 수장을 추대해 균형을 잡아야 하니까.
이러다간 각 속성별 드래곤 간의 분쟁이 발생하여 우리 드래
곤 일족끼리 싸움이 벌어질 지도 모르네. 파고신 따위에게 우
리 드래곤 일족의 자랑스런 수장들이 대부분 전사하다니. 흐
음."
시원스럽게 답을 하는 그였지만, 역시 일족의 죽음 앞에선 얼
굴을 일그러뜨리며 분노와 슬픔을 표현할 수밖에 없었다. 더
이상 말을 걸어봤자 소용이 없다는 걸 누구보다도 먼저 깨달
은 아트란은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드래곤 로드
인 그가 내일 동행하지 못한다는 사실에 조금은 불안한 심정
이 되 버렸다. 파괴신보다야 덜 하겠지만, 그래도 마계 최강이
라는 마왕과 관련된 일이니 강한 능력자가 일행에 있어야 하
기 때문이다.
"화이엘님. 화이엘님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일단 이 인원
그대로 움직이도록 할까요?"
아트란은 다시 고개를 돌려 붉은 머리 소녀를 향했다. 그녀
역시 파괴신의 창에 찔려 몸이 만신창이가 되었지만, 현재는
신성력으로 대부분 치료가 완료된 상태였다. 물론 정신적인
피로는 어찌할 수 없는 것이기에 그녀 역시 얼굴에는 피곤한
기색이 가시질 않았다.
"후우. 이번에는 신들도 힘을 빌려주실 수 없어요. 저번에는
천상계 존재인 파괴신이 지상계에 등장하여 파괴의 행동을 일
삼았기에 신들께서 직접 행차하신 거였지만, 이번엔 지상계
존재인 마왕과 관련된 일입니다. 현재 마족의 동태를 감시하
도록 허락을 맡은 엔젤 나이트만이 협조할 수 있어요. 파괴신
과 대적할 때와 비교하자면 전력의 반이 깎이는 셈이 되겠군
요."
"하지만 우리에겐 새로운 존재가 있다. 파괴신과의 전투 때
극적으로 승리를 이끈 존재. 가이트리아."
항상 말이 없던 바주크가 정말 오랜만에 입을 열어 사람들의
시선을 모았다. 하지만 정작 당사자인 그는 그런 많은 시선이
여전히 어색하기만 한 모양인지 테이블 위에 올려진 주스 컵
을 입으로 가져가며 딴청을 피웠다.
꾸오오오오!
가이트리아가 자신 있다는 듯이 두 손을 하늘로 치켜올리며
포효했다. 덕분에 골렘 가까이 앉아있던 실피스와 소울드, 그
리고 폰네스 후작은 본의 아니게 귀가 떨어져 나가는 고통을
느끼면서 반사적으로 양손을 귀로 가져갔다. 골렘의 주인인
아투에게로 따가운 시선이 쏟아지는 것도 당연했다.
"하하. 다들 알잖아요. 가이트리아는 아무도 못 말린다는 거."
어색한 웃음으로 무마하려 했지만, 다른 이들의 따가운 시선
은 쉽게 사그라들지 않았다. 안되겠다 싶은 아투는 급히 중요
한 화제를 꺼내 말하면서 상황을 수습하려 했다.
"자자, 어쨌든 그럼 내일은 수도 유적지로 향하는 거죠?"
"난 지금 당장 천상계로 올라 신들을 찾아뵙고, 남은 엔젤 나
이트의 출동 허가까지 받아와야겠어. 유적지 주변으로 마족
의 움직임을 차단하는 신성력의 막까지 펼칠 정도의 숫자만
확보된다면 마왕이라 해도 자기 뜻대로 할 순 없을 테니까."
그나마 현재 상황으로선 가장 반가운 말이었기에 모든 이들
의 고개가 시원스럽게 끄덕여졌다. 화이엘은 작은 미소로 여
운을 남기면서 곧 밝은 섬광을 일으켜 순식간에 일행의 앞에
서 모습을 감췄다. 언제나 그렇듯이 인사도 없이 사라지는 그
녀였다.
"하아. 그럼 정해졌군요. 일단 저와 가이트리아는 당연히 내
일 수도 유적지로 향합니다. 바주크도, 실피스 스승님도, 소울
드님도, 폰네스 후작님도 함께 가신다고 했는데 아빠는 어떻
게 할 거예요? 일단 국왕 폐하께 보고부터 올릴 건가요?"
아투는 손가락까지 동원하여 숫자를 세면서 마지막으로 아트
란을 돌아보았다. 역시 그는 메션 왕국 사람이었기에 제국 사
람들의 결정 사항을 강요하는 것은 무리가 따르기 때문이다.
질문을 받은 아트란 역시 그 점을 상기시켰는지 잠시 고민 어
린 표정을 짓다가 조금 시간이 흐른 뒤 약간 굳은 얼굴로 답했
다.
"그렇겠구나. 역시 폐하를 알현하고 마족의 움직임을 보고해
야겠다. 보고를 마치면 곧장 거인기사단을 이끌고 따라 갈 테
니, 미안하지만 아투 네가 먼저 가서 상황을 파악해주겠니?"
"하하. 안 그래도 먼저 떠나려고 했어요. 계속 시간을 지체하
면 손해보는 건 우리뿐이잖아요. 화이엘과 엔젤 나이트까지
함께 한다고 하니 위험하진 않을 거예요. 걱정말고 아빠가 해
야할 일들 다 마치고 오세요."
"하하하. 역시 넌 내 아들이다. 그런 시원스런 성격까지 딱 닮
았어."
아트란은 어울리지 않게 호탕하게 웃으며 과장된 동작으로
아들의 등을 툭툭 두드렸다. 아투는 워낙 강하게 등을 강타하
는 아버지의 손바닥 공격 때문에 잔기침을 해댔다.
'역시…… 나이를 먹어도 변한 게 없다네, 자네는 말이야.'
입 밖으로 빠져나오려 하는 말을 간신히 참은 그라디우스는
최대한 표정을 관리하면서 고개를 딴 쪽으로 돌렸다. 하지만
드래곤인 그의 얼굴에도 결국 한 부자의 행동을 보고 참아내
지 못한 웃음이 번지고 말았다. 소울드나 실피스, 폰네스 후
작 등은 위대한 권능의 존재 그라디우스의 새로운 모습을 보
게 됐다는 생각을 하면서 똑같이 이러한 말을 머릿속에 떠올
렸다.
'드래곤의 웃음. 호의적이라고는 하지만, 그래도 섬뜩하군.'
아투를 비롯한 빛의 사도라 불리는 일행은 특별히 트라제 시
의 시장의 배려로 인해 고위급 인물들만이 머문다는 시청의
특별 객실에 묵게 되었다. 축제의 한 편에서 심각한 대화를 나
눠 내일의 할 일을 의논하고 회의를 끝낸 그들은 고단한 몸을
이끌고 시청의 각자 방으로 돌아와 지금은 아주 깊은 꿈나라
에 빠져 있었다.
흐릿한 붉은 등불이 방안을 은은히 비추었다. 등불에 비춰진
가구들은 상당히 고가의 물건들인 듯 황금 처리되어 있었고,
작은 기구들마저도 귀티가 흘러 넘쳤다. 창가의 커텐. 바닥에
깔린 카펫 등도 고급의 원단을 사용한 듯 빛을 반사하지 않고
은은하게 머금으며 묘한 빛을 발산했다. 객실에서 가장 중요
한 침대 또한 푹신한 시트가 잘 정돈되어 편안함을 강조한 형
태였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침대에 몸을 맡긴 채 천장을 뚫
어져라 바라보는 아투의 얼굴은 짙은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
다.
'후우. 금강 골렘…. 가이트리아가 금강 골렘이 될 줄이야, 누
가 알았겠어.'
백색의 아름답고 위엄 있는 자태를 뽐내게 된 가이트리아. 골
렘들 중 최강이라는 금강석 재질로 변화한 자신의 골렘을 떠
올린 아투는 마그마 속에서 겪었던 신비로운 체험을 여전히
잊지 못했다. 믿음이라는 하나의 단어만으로 죽음에서 벗어
나 이제는 위대한 진화까지 이뤄내다니. 솔직히 기적이라는
말을 제외하고는 설명할 수 있는 단어가 없었다. 아무리 드래
곤 하트의 힘이 암암리에 작용했다고는 하지만, 나무에서 금
강석으로 변할 확률은 극히 저조했기에 그때 생각만 하면 아
찔한 생각이 먼저 들었다.
'그러고 보면 난 역시 행운아인 것 같아. 드래곤 하트를 지닌
골렘의 주인. 그리고 제국의 황제와…….'
사랑하는 사이라고 하기에는 아직 쑥스러운 게 사실이다. 절
로 얼굴을 붉힌 아투는 잠시 천장을 응시하더니 슬쩍 고개만
돌려 창 밖으로 시선을 향했다.
지금은 모든 축제까지 끝나 거리에 불빛 하나 없어 온통 어둠
만이 짙게 깔려있어야 하지만, 이상하게도 아투의 객실 바깥
창가는 등불이 밝혀진 실내보다도 더 밝아 보였다. 아투가 이
상하게 생각하며 관심을 가질 만도 했다.
'가이트리아. 내 말 들려?'
하지만 이내 그는 다시 천장을 바라보면서 몸을 바로 뉘였
다. 푹신한 시트의 감촉이 등으로 전해지면서 잠이 서서히 쏟
아졌다. 하지만 아직은 잠에 들고 싶지 않았다. 피곤한 육체
는 강력히 잠의 마수를 붙잡으려 했지만, 정신적인 면에서는
말짱한 정신으로 좀 더 깨어있고 싶은 게 사실이었다.
꾸오오.
작은 포효소리가 끝나자 아투의 의식 속으로 남성다움이 느
껴지는 목소리가 흘러들었다.
『듣고 있다. 말해라, 주인이여.』
'솔직히 우리가 마그마에서 살아 나올 수 있었던 거. 그리고
네가 이렇게 금강 골렘이 되어 있는 거. 모두 운이 좋았던 거
지?'
『운이라고 생각하고 싶다면 그리 생각해라. 나도 딱히 설명
할 수 있는 그게 없으니까. 하지만 드래곤 하트의 강력한 힘
이 적절한 때에 작용하여 마그마의 열기와 파괴신의 압력을
잘 융합시켰다고 말하고 싶은 게 내 마음이자 의지이다.』
'역시 드래곤 하트의 힘이었다는 소리네?'
똑바로 누워있던 아투가 다시 옆으로 몸을 틀면서 베개를 정
돈했다. 이제는 정신력으로 버틸 수 없을 만큼 강한 잠의 마수
가 손을 뻗어와 비몽사몽 상태로 접어든 그였다. 지금도 간신
히 강한 의지로 버티면서 무의식중에 골렘과 대화를 나누는
것뿐이다.
『피곤한 것 같다. 이만 자라. 내일은 또다시 어려운 상황 속
으로 빠져들어야 하니.』
'하하. 웬일로 내 걱정을 다해주지? 어쨌든 고마워. 항상 내
곁을 지켜줘서.'
『그런 말을 보고 인간들은 닭살이라고 하더군. 그만큼 유치
하다는 말이다. 평소에 하지 않던 행동을 하면 곧 죽는다고들
하던데, 너도 어디가 아픈 건 아니냐?』
영락없는 드래곤의 말투였다. 하지만 아투는 전혀 거부감이
일지 않음을 느꼈다. 오히려 강한 친근감이 일면서 가이트리
아가 더욱 좋아졌다. 그런 녀석의 퉁명스러움이 매력이 되어
발산되는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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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아~ 드디어 잠시간의 평온이...
하지만 곧 엄청난 일이...;;; 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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