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골렘마스터-230화 (230/244)

[골렘마스터]  # 어둠을 가르는 빛[3]

놀랍게도 백색의 골렘은 아무런 마법의 도움 없이 하늘을 날

고 있었다. 흑검을 앞으로 내밀어 몸을 보호하듯 자세를 잡은

가이트리아는 파괴신의 본체로 접근하자마자 머뭇거림 없이

강한 베기 공격을 날렸다. 모든 것을 판가름하게 될 최후의

그 일격을….

빛의 무리가 크게 일렁이며 주변으로 펴져 나갔다. 잿빛의 어

둠은 그 빛에 밀려 흩어지더니 이내 거대한 폭발에 휩싸여 자

취를 감췄다. 폭발로 인해 발생한 빛의 입자들이 사방으로 분

산되어 쏟아졌고, 하늘과 대지 모두가 구슬피 울며 그 폭발의

여파를 감당해야했다. 시야를 자극하는 강렬한 백색의 섬광

과 그 섬광을 어떻게든 잠재우려고 노력하는 잿빛의 폭풍. 하

지만 그 지루한 싸움의 끝은 빛의 승리를 향해 치닫고 있는

듯 보였다.

천공섬에서부터 어느 정도 떨어진 거리를 유지하며 신성력

의 파장 바깥에서 계속 그곳의 상황을 주시하던 어둠의 마왕,

타크니스는 가볍게 머리를 쓸어 넘기며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

었다. 그의 손에는 아크 스태프가 들려 강한 마력을 발산했

다.

"계획은 올바르게 이루어졌다. 문이 열릴 조건은 완벽히 갖춰

졌고, 이제 문을 통해 꺼내질 그 존재를 막을 사람은 없다."

그의 목소리에는 짙은 마기가 베여있었다. 주변으로 모여든

강한 신성력을 흩어버리며 마계와 비슷한 공간을 형성하는

그 마기는 사방으로 퍼져가면서 하늘을 아예 어둠으로 물들였

다. 하지만 그런 어둠과는 달리 그의 눈은 어울리지 않게 밝

게 빛났다. 아크 스태프를 쥔 손에 힘을 주자 자연스럽게 마기

가 흘러 들어갔지만, 놀랍게도 그 지팡이는 본체에 지닌 강력

한 마나로 마기에 저항하면서 스스로를 보호했다. 역시 굉장

한 물건임에는 틀림이 없는 것이다.

"으음, 저건?"

붕괴를 일으키는 천공섬을 만족스럽게 바라보던 타크니스는

갑자기 회색의 빛을 뿌리며 급속도로 그곳을 빠져나오는 존재

들을 볼 수 있었다. 완만한 구체에 둘러싸인 존재들의 수도

꽤 되었고, 그들을 선두로 하여 황금빛 드래곤과 다른 빛깔의

드래곤들이 천공섬을 아슬아슬한 차이로 빠져나오고 있었다.

동시에 밝은 백색의 섬광, 그리고 무수한 돌무더기들. 분홍빛

안개가 하늘의 최고봉, 천상계로 승천했고 모든 존재들이 천

공섬을 벗어나는 순간 크게 붕괴하며 분열을 일으키던 섬 자

체가 거대한 폭발에 휘말려 가루가 되어 사라졌다.

"확대!"

가볍게 자신의 의지를 표명하는 단어를 외치자, 멀리 떨어져

잘 보이지 않던 광경이 확대되어 시야에 들어왔다. 회색의 날

개를 펄럭이는 아름답지만 차갑게 보이는 여성. 힘겹게 그녀

가 다른 존재들을 인도하여 천공섬을 탈출하고 있는 것이 확

인됐다. 그녀의 뒤를 따르는 드래곤들도 지친 기색이 역력했

고, 그 단단하다는 드래곤의 비늘도 벗겨진 곳이 많아 흉측스

러웠다.

"타천사? 파괴신을 돕던 타천사는 그 모든 영혼을 빼앗겨버리

지 않았었나?"

이것은 예상하지 못한 모양인지 타크니스의 얼굴이 미세하

게 일그러졌다. 하지만 이내 평온을 되찾으면서 손가락으로

아크 스태프를 빙그르 돌리는 여유를 보여줬다. 타천사가 이

끄는 무리들은 지상으로 향하고 있었기에, 특별히 몸을 감출

이유도 없었다.

"흐음. 그렇군. 루카엘 정도의 엔젤이라면 파괴신의 그러한

힘을 거부할 수도 있었겠군. 어쨌든 놀라워. 신의 힘을 거부

할 정도로 강한 그 힘이…."

타크니스는 그렇게 말하면서 고개를 슬쩍 돌렸고 이내 무언

가를 결심한 듯 입을 다물면서 몸까지 반대쪽으로 돌렸다. 아

직도 뒤쪽에서는 천공섬이 폭발하면서 울려 퍼지는 엄청난 굉

음과 섬광이 전해지고 있었지만, 마기에 둘러싸인 마왕을 어

찌하지는 못했다.

"그렇다면 나도 슬슬 작업을 시작해보도록 할까?"

그의 얼굴에는 다시 의미심장이 미소가 떠올랐다. 이제 태초

때부터 준비된 그 작업이……. 엄청난 예지력과 지상계 역사

의 관여함으로 해서 이뤄진 지금의 결말. 타크니스는 그동안

의 고생을 생각하면서 주신인 어둠의 마신 다크니스를 생각했

다. 그리고 특별히 계획에 동참해주신 다른 절망과 욕망의 마

신 생각도 났다. 그들에게까지 생각을 미치자 한편으론 불쌍

한 결말을 맞게 될 절망와 욕망의 마왕 티스페어와 테자이어

도 떠올라 타크니스를 즐겁게 했다.

"그대들에겐 솔직히 조금은 미안하지만, 우리 마의 존재들의

번영을 위해선 별 수 없다."

그는 그런 말을 허공에 남기면서 공간에 녹아들었다.

『정신을 차려라.』

가이트리아의 목소리가 의식 속으로 전해진다. 파괴신과 싸

우던 도중 엄청난 폭발에 휘말려 정신을 잃었던 아투는 온 몸

이 쑤시는 고통을 느끼면서 찌푸려진 얼굴로 눈을 떴다. 눈을

뜸과 동시에 갑자기 밝은 빛이 얼굴로 쏟아지는 것을 알 수 있

었다.

"으아아앗!"

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간신히 몸을 일으킨 그는 하마터면 발

을 헛디뎌 바닥으로 떨어질 뻔했다. 잊고 있었던 것이다. 현

재 가이트리아의 어깨 위라는 것을. 5베타 높이에서 떨어지면

죽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골절상은 피할 수 없기에 반사적으

로 몸을 사린 그였다.

"여, 여기는?"

아투는 정신을 대충 수습하고는 주변 상황을 관찰하기 위해

고개를 돌려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폐허로 변해버린 천공섬

은 일단 아닌 듯 했다. 따사로운 햇살이 내려 쬐는… 푸르름

과 싱그러움을 동시에 간직한 평범한 구릉이었다.

"아, 아빠!"

가장 먼저 풀밭에 죽은 듯이 누워있는 아트란을 발견할 수 있

었다. 처음에는 죽은 줄만 알고 눈물까지 글썽이며 골렘의 어

깨에서 뛰어내려 그에게 다가간 아투는 다행히 가슴이 위 아

래로 움직인다는 사실을 감사히 여기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

다.

"윽. 정말 사람을 놀라게 한다니까."

왠지 속은 기분이 든 그는 형식적으로 얼굴을 찌푸렸고, 다

시 주변을 둘러보았다. 아트란의 옆쪽으론 날개를 접은 듯이

보이는 화이엘이 가녀린 몸을 구부린 채, 잠들어 있었다. 다행

히 그녀도 별 이상은 없는 듯 했다.

실피스, 소울드, 폰네스 후작, 그리고 바주크. 모두 무사했

다. 정신을 잃고 있는 것은 마찬가지였지만 그래도 목숨을 구

했다는 사실이 중요했기에 아투는 밝게 웃었다. 그 지옥불 속

에서 탈출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았지만, 그래도 그들은 승

리한 것이다. 물론 가이트리아의 활약이 대단했기에 망정이었

다.

"하하. 가이트리아. 정말 넌 대단한 것 같아. 주인인 나도 놀

라게 한다니까."

아투는 뒤를 돌아보며 거대한 백색의 몸체로 팔짱을 끼고 아

래쪽으로 고개를 떨군 골렘을 바라보았다. 햇빛을 받아 더욱

이 밝은 백색으로 빛나는 것 같았다. 바닥에 꽂아놓은 블랙홀

재질의 검 다크 바스타드 또한 전에 없이 광채를 머금어 예기

를 띄었다.

『드래곤 하트와 믿음이 이뤄낸 결과다. 결코 내가 강해서가

아니라, 운이 좋았을 뿐이지.』

자기 자랑을 할 만한 상황인데도 골렘이 겸손을 떨다니. 아투

는 새삼 '드디어 이 녀석도 철이 들었구나' 하는 심정으로 감

격에 겨워 몸을 떨면서 문뜩 이상한 기분이 들어 오른쪽 하늘

을 바라보았다.

"헛! 그라디우스님! 무사하셨군요!"

그랬다. 황금빛 거체 그라디우스. 그 신룡급에 다라는 거대

한 본체를 유지한 채, 그가 오른쪽 상공에 떠있었다. 이미 모

든 상황은 정리됐고, 긴장을 풀을 때도 되었지만 이상하게도

그는 날카롭게 눈빛을 빛내며 반대쪽 하늘을 노려보고 있었

다. 그의 뒤쪽에 자리한 다른 드래곤들의 수장들 역시 잔뜩 긴

장한 눈초리로 입을 벌려 숨을 들이마셨다.

"왜 그러……."

'왜 그러세요.'라는 말과 함께 고개를 돌리던 아투는 뒷말을

마치지 못하고 눈에 들어온 어떠한 존재를 확인하고는 반사적

으로 가이트리아에게 달려가 골렘의 어깨 탑승석으로 올랐

다. 회색빛 존재, 파괴신의 신성력을 연상시키는 그러한 힘을

머금은 아름다운 존재가 그를 내려다보고 있었기에.

하지만 회색빛 존재는 전과 달리 아주 차분한 눈빛으로 빛의

사도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싸울 의지는 전혀 느껴지지 않는,

이제는 그 끝을 맞이하고 있다는 느낌이 강한 그러한 눈빛이

었다. 왠지 그녀의 눈을 보며 측은한 감정을 느낀 아투는 한

차례 경계를 풀면서 말을 걸어보려 했다.

"루카엘. 당신이 우리를 구했군요?"

비교적 친근한 어조로 입을 연 아투였다. 루카엘은 왠지 모

를 우수에 젖은 눈빛으로 말없이 그를 바라보다가 날개를 접

고 지면으로 내려섰다. 등에서부터 뿜어지던 광채는 사라졌지

만, 동그란 눈. 오똑한 코. 살구빛 피부와 어우러지는 깨끗한

이미지는 사라지지 않았다.

"신들은 우리를 버렸어. 고작 지상계의 생활을 즐긴다는 죄

로 말이지. 그래서 난 파괴신에게 힘을 주어 우리 엔젤들을 파

한 창조신들에게 대항하려 했다. 그런데… 믿었던 파괴신마

저 우리를 배신하고 나의 동료인 타천사들을 모조리 소멸시켰

어. 때문에 내 손으로 파괴신을 없애버리고 싶었는데, 뜻대로

몸이 움직여주질 않더군. 결국 간신히 파괴신과 함께 사라질

뻔한 너희들을 구하는 걸로 파괴신에 대한 복수를 대신했다.

이제 미련은 없어. 이미 모든 힘을 소진했으니까. 하긴 파괴신

의 힘에 대항하며 지금까지 버틴 것도 정말 대단한 거지. 내

가 스스로 생각해도 정말 잘 싸웠어."

"루카엘……."

그녀의 이름을 넌지시 불러보았지만, 더 이상 할 말은 없었

다. 이미 그녀의 가녀린 몸은 빛의 입자에 휩싸이며 소멸을 맞

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타천사가 별다른 행동 없이 아주 차

분하게 소멸을 받아들이자 그라디우스도 긴장을 풀고 인간형

으로 폴리모프하여 땅으로 내려섰다. 지친 기색이 역력한 다

른 드래곤 수장들도 각각의 취향대로 폴리모프하여 지면을 밟

았다.

"아, 편히 가기 전에 한 가지 너희들에게 알려줘야 할 사실이

있는 것 같군. 지금 마족의 우두머리인 마왕 타크니스가 움직

이고 있다. 그 장소는 옛 고대 마도 제국의 수도. 현재는 유적

이 되어버린 그곳이지. '어떻게 알았냐'고 묻지는 마. 우리 타

천사들도 나름대로 사방에 인원을 두고 있었으니까. 어쨌든

아크 스태프와 연관된 무슨 일을 꾸미는 것 같으니 빨리 대처

하는 게 좋을 거야."

이제는 하얀 입자밖에 보이지 않게 된 루카엘이 마지막으로

유용한 정보를 흘리며 최후를 맞이했다. 아투는 자신도 모르

게 그녀에게로 다가가 빛의 입자를 손에 쥐려 팔을 뻗었지만,

허공을 허무하게 스치고 돌아올 뿐이었다.

"크윽. 파괴신 녀석 정말 대단하더군."

천사의 소멸을 바라보는 아투에게 위엄 있는 음성이 들려왔

다. 왠지 우울한 기분이 되어있던 아투는 고개를 돌려 그 음성

의 주인공이 황금빛 청년의 모습, 그라디우스라는 것을 확인

하고는 말없이 고개만 끄덕거렸다.

"그나저나 너는 어떻게 마그마에서 살아 나올 수가 있었지?

게다가 가이트리아의 모습이 어떻게 저런 금강골렘으로 변형

을 한 건지 도무지 이해가 안 되는군. 비록 마그마와 파괴신

의 신성력 압박으로 인해 고열, 고압의 조건이 갖춰졌다고는

하지만, 나무가 금강석으로 바뀔 확률은 극히 저조한데 말이

다."

"하하. 그냥 믿음이죠. 골렘을 믿고 나 자신을 믿고, 내가 절

대 죽지 않으리라는 확신이 있었어요. 물론 실질적으론 가이

트리아의 몸 안에서 뛰고 있는 그라디우스님의 드래곤 하트

가 많은 위력을 발휘했겠죠."

아투는 그냥 생각나는 대로 상황을 설명했다. 마그마 속에서

받았던 그 느낌은 솔직히 말로 설명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

기에, 대충 얼버무리려 하는 것이다.

어쨌든 결과적으로 가이트리아의 나무 재질. 즉 우드 골렘의

형태는 완전히 바뀌어 백색을 띄는 금강석으로 변해 있었다.

금강석은 그 튼튼함에 있어 따를 자가 없기에 스톤 골렘으로

분류하지 않는다. 게다가 자체적으로 마나를 받아들이지를 못

해 원칙적으로 따진다면 금강석을 가지고 골렘을 만들지도 못

한다. 하지만 우드 골렘의 상태에서 가끔 금강 골렘으로 변하

는 경우도 있다는 게 역사 속의 얘기이다. 극히 적은 확률을

뚫고 만들어지는 금강 골렘의 힘은 거의 전설의 골렘 '테이란

스플랜'에 필적할 정도라고 하니 그 위력을 실감할 수 있는 것

이다.

물론 가이트리아의 지금 상태는 그리 안정적이지 못했다. 몇

년이 지난다면 뛰어난 금강 골렘으로서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할 존재가 될 수도 있지만, 아직은 잘 다듬어지지 않은 원

석에 불과했다.

"그나저나…… 루카엘의 말이 사실일까요? 마왕이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거요."

"흐음. 파괴신의 부활을 노리던 마왕이 그 존재가 소멸할 때

까지 등장하지 않은 걸로 봐서는 녀석의 목적 그 자체가 파괴

신 부활에 있다는 게 아닌 게 되지. 루카엘의 말이 사실이든

사실이 아니든 확인해볼 필요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상태로는 메션 왕국까지 아무도 움직이지 못

할 것 같은데요? 게다가 루카엘이 우리를 인도한 이곳이 어디

인지도 알 수 없고."

"허허. 그건 별 문제가 되지 않을 것 같다. 현재는 우리 드래

곤들의 힘과 엔젤 나이트의 수장 화이엘의 힘도 빌릴 수 없는

상황이지만, 다행히 저길 봐라."

그라디우스가 호탕하게 웃으며 아투를 안심시켰다. 손을 들

어올린 그가 손가락으로 가리킨 방향으로 고개를 돌려보니 정

말이지 구릉 아래쪽에서 뽀얀 먼지가 일어나고 있었다. 꽤나

많은 수의 무리들이 달려오고 있다는 증거였다.

"신분이 분명치 않은 앞쪽의 무리는 들으시오! 우리는 메션

왕국의 동쪽 지역 수비대 소속 기사단이오. 무기를 버리고 신

원을 밝혀주시길 바라오. 따르지 않겠다면 무력 행사에 들어

가겠소!"

가장 앞쪽에서 말을 타고 오는 존재의 목소리인 것 같았다.

상당히 강압적인 말투였기에 그라디우스가 적지 않게 기분이

상할 만도 했지만, 지금은 그런 사소한 것보다는 더욱 큰 기쁨

이 따르고 있었다. 저들이 메션 왕국 소속이라면… 당연히 이

곳은….

"루카엘이 정말 많은 배려를 해주었군요. 파괴신을 도왔던 타

천사라고는 생각되지 않을 정도로 말이죠."

아투 또한 기쁘긴 했지만, 소멸을 맞이하여 존재하지 않는 루

카엘을 떠올리며 슬몃 고개를 떨궜다. 하지만 그의 맘을 아는

지 모르는지 정신을 잃고 있던 일행들이 하나둘씩 정신을 차

리며 파괴신 격퇴의 기쁨을 행복한 비명으로서 표현하기 시작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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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아~

드디어 파괴신의 소멸.

하지만 이게 끝이 아니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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