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렘마스터] # 어둠을 가르는 빛[2]
허무한 죽음의 연속이었다. 사람들은 리치의 보호 아래 녀석
의 관심이 신들에게로 돌아가게 된 것에 대해 내심 안도의 한
숨을 내셨다. 이러면 안 되는데…. 모두들 그 점을 모르는 것
은 아니었지만, 죽음 앞에선 모두 나약한 인간일 뿐이다.
화이엘도 멍해졌다. 파괴신이 창조신들을 압박하며 파괴의 창을 뻗어가고 있었지만, 남은 엔젤들과 함께 그걸
막아서려
하질 않고 있었다. 멍한 눈동자 속에서 짙은 절망감이 묻어났
다.
슈슈슈슈슉!
드디어 수 만개의 파괴의 창이 비 오듯 쏟아지며 가장 먼저
분홍빛 안개로 향해 쇄도해갔다. 아무래도 파괴신의 입장으로
서는 창조 3대신 중 공격성이 가장 떨어지는 사랑의 신부터 제
압하고자 하는 심산인 것 같았다.
『브레이브. 러브샤를 도와주십시오.』
『알았네.』
브레이브는 그렇게 답하면서 파괴의 창이 날아갈 자리를 미
리 계산하여 거대한 바위 덩어리 일부를 그쪽으로 보내 막았
다. 러브샤도 분홍빛 안개를 서서히 물리화시켜 막을 형성하
여 파괴의 창을 막아보려 했다.
쿠구구구궁!
하지만 어이없게도 용기의 신의 힘이 응축된 그 바위 결계가
단 2초를 버티지 못하고 파괴되었다. 파괴의 힘을 잔뜩 머금
은 창들은 다시 하늘을 뒤덮으며 사랑의 신을 소멸시킬 기세
로 쇄도했다.
『허억…….』
순간 하늘에서 분홍빛의 섬광이 터져 나왔다. 그리고 그 섬광
이 사라지자, 파괴의 창들이 분홍빛 안개를 뚫고 빠져나오고
있는 광경이 눈에 펼쳐졌다. 수많은 창에 의해 꿰뚫린 러브샤
의 본체는 급격히 그 빛이 희미해져버렸고, 모든 것을 압도할
정도로 뿜어지던 존재감과 신성력도 아주 크게 줄어들었다.
『큰일이군!』
브레이브는 잠시 힘을 모와 거대한 바위들을 보충한 뒤, 다
시 한번 파괴의 창으로 러브샤를 공격하려 하는 녀석에게 접
근했다. 하지만 순간적으로 녀석의 본체로 보이는 창의 주변
으로 강한 돌풍이 일었고, 칼날 같은 기류가 뿜어져 브레이브
에게 날아들었다.
『브레이브! 피하십시오!』
샤이트리아가 범상치 않은 기운을 가장 먼저 감지하며 경고
의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나 그녀의 목소리가 브레이브에게
미처 전달되기도 전에 번개처럼 쇄도한 칼날 기류가 거대한
암석들로 둘러싸인 용기의 신 본체를 갈가리 찢어놓고 말았
다. 창에만 잔뜩 집중하던 찰라, 기습 공격을 당한 꼴이 되었
기에 러브샤와 마찬가지로 그의 힘도 극히 소진되었다.
『이런 이런…. 예전보다도 더 빨리 끝날 수 있겠는걸?』
상대를 비꼬는 듯한 파괴신의 말투. 그나마 가장 많은 힘을
비축한 상태인 샤이트리아는 빛의 영역을 확장시키며 말없이
파괴신이 형체화하고 있는 수많은 창들을 바라보았다. 가느다
랗지만 길다란 형태의 잿빛 창. 그리고 그 수많은 창들에게 둘
러싸인 길이 20베타 짜리 거대한 본체. 그 어떤 것이 되든 부
담되기는 마찬가지였다.
『과연 코스모스님의 잘못된 의지에 의해 탄생한 파괴신. 당
신은 정말 대단합니다. 창조신을 뛰어넘은 그 파괴의 힘과 본
능. 만약 그런 힘으로 창조신이 되었다면 지금보다 훨씬 더 좋
은 세상을 만들 수 있었을 텐데.』
『웃기지 마라. 그런 듣기 좋은 말 따위로 시간을 끌 생각은
아예 하지 말기를 바란다. 이미 용기와 사랑의 신은 힘이 극
히 떨어진 상태이다. 이곳에 온 드래곤들도 대부분 끝장났고,
마그마 속에서 몰래 숨어 기회를 엿보는 녀석들도 셋을 넘지
않는다. 게다가 날 귀찮게 하던 인간 능력자들은 모두 탈진한
상태이지. 이제 너만 끝장낸다면 날 막을 수 있는 자는 없다.
코스모스의 원칙에 따라 이 세계의 파괴 작업이 진행될 것이
다.』
파괴신은 샤이트리아의 말에 가볍게 대꾸하면서 서서히 자신
의 의지로 움직이는 수만 개의 창들을 조종하기 시작했다. 샤
이트리아 역시 마지막으로 파괴신을 회유하려 했지만, 그게
통하지 않자 빛의 범위를 계속 확장시키면서 숨을 죽였다.
"엔젤 나이트. 우리들의 임무는 중립에 앞서 신의 보호이다.
샤이닝 캐논 샷, 준비."
화이엘이 드디어 정신을 차리고 샤이트리아와 합류했다. 다
른 엔젤들의 광선검 끝 부분이 새하얀 빛에 둘러싸였다.
"저도 돕겠습니다."
"저희도 역시 돕겠습니다."
리치에 의해 허공에 떠있던 인간 능력자들이 어느 정도 힘을
회복하자, 스스로의 힘으로 날아올랐다. 실피스는 품속에서
작은 막대기를 꺼내더니 거기에 달린 스위치를 눌러 긴 지팡
이를 완성했고, 소울드는 리치를 앞세우고 흑마법을 준비했
다. 폰네스 후작은 다시 한번 정령왕을 소환하려 했지만, 기력
이 딸려 하는 수 없이 바람의 상급 정령으로 대체했다.
"바주크, 자네는 이쪽으로 오게."
아트란은 바주크를 와이더반의 반대편 어깨에 탑승시켰다.
그리고 서서히 작은 아공간을 열어 거대한 무기를 소환했다.
쿠궁.
와이더반의 신장에 못지 않은 크기의 할버드. 바로 골렘의 전
용 무기가 소환된 것이다. 무기를 양손에 쥐고 자세를 잡는 스
톤 골렘의 모습이 전에 없이 멋졌다.
『좋습니다. 이제 당신들의 도움을 바라지 않을 수가 없게 됐
습니다.』
샤이트리아는 오히려 홀가분한 마음으로 그들의 도움을 받아
들이기로 했다. 빛의 영역이 확장되면서 엔젤들과 사람들의
몸을 뒤덮었고, 빛에 휩싸인 그 존재들의 외상이 모두 치료됐
다. 창조신의 권능이 은연중에 발현된 것이었다.
『그럼 끝을 내보자!』
파괴신이 드디어 수만 개의 파괴의 창을 쏟아냈다. 하늘을 잿
빛으로 뒤덮으며 쇄도하는 엄청난 공격. 샤이트리아가 힘을
사용함에 앞서 가장 먼저 엔젤들이 샤이닝 캐논 샷을 쏘았다.
콰과과과광!
엄청난 폭음이 뒤이어졌고, 대기를 가르며 쇄도한 빛의 기둥
이 소멸했다. 하지만 역시 파괴의 창의 기세는 줄어들지 않았
고, 그 일부가 다른 갈래로 나뉘어져 엔젤 나이트들을 노리고
움직였다.
"저희는…… 최선을 다했습니다. 이제……."
화이엘의 입에서 하얀빛의 입자가 흘러내렸다. 동시에 세 개
의 창자루가 그녀의 가녀린 몸을 뚫고 빠져나왔다.
"다른 분들을 믿습니다."
그 말을 끝으로 그녀의 몸이 축 쳐졌고, 아래쪽으로 떨어지
기 시작했다. 지금껏 평정을 유지하려 노력하던 빛의 신도 이
번만큼은 참을 수 없는 모양인지 크게 분노하는 기색으로 빛
의 파장을 폭발시켰고, 누가 입을 열기도 전에 날아드는 파괴
신의 창을 정면으로 맞서 나갔다.
슈슈슈슈슈슉! 쿠구구구궁!
바람을 가르는 파공음. 그리고 빛의 신이 발하는 엄청난 진
동. 파괴의 창들과 빛의 무리가 한 군데에 만나 힘 겨루기를
시작했다. 힘을 보충하며 이 때를 기다린 빛의 신의 힘이 아
주 강렬했기에 파괴신이 크게 밀어붙이지는 못하고 있었지
만, 샤이트리아를 둘러싼 빛의 막이 조금씩 날카로운 창날에
의해 벗겨졌다. 기세는 좋지만 오래 버티지는 못한다는 증거
였다.
"와이더반. 비행 모드! 플라이 윙!"
그때였다. 바주크를 탑승시킨 채, 샤이트리아의 권능을 감상
하듯 바라보고 있던 아트란이 갑자기 두 손을 격렬히 움직이
며 간단한 시동어를 외쳤다. 그러자 반투명한 기운이 와이더
반의 거대한 몸체에 서리기 시작했고, 그것은 매직 아머로 화
하여 형체화된 채 장착됐다.
피슈우웅!
작은 틈으로 바람이 강하게 새어나오는 소리가 울리면서 반
투명한 매직 아머의 뒤쪽으로 날개로 보이는 것이 두 장 뻗어
났다. 겨우 아트란의 마법으로 공중에 떠있는 것만이 가능하
던 골렘이 공중전도 가능하게 되었다는 얘기다.
"어택 모드 오픈! 할버드 형식 제 1장!"
꾸오오오오!
아트란의 명에 따라 와이더반이 거대한 날개를 펼쳐 파괴신
의 창 무리들을 향해 날아가기 시작했다. 양손으로 감싸쥔 할
버드가 살짝 앞으로 기울어지면서 호전적인 자세로 바뀌었
다.
"리치. 공격해주게나!"
소울드도 흑마법 중 파괴력이 강하다고 알려진 퍼블릭 블라
스터를 사용하면서 마지막이 될지 모르는 일격에 참여했다.
폰네스 후작도 바람의 상급 정령을 몰아 칼날 같은 바람을 쏘
아내 파괴의 창을 저지시켰고, 실피스 또한 7서클의 강력한 빙
계 마법, 아이스 포그로 대기를 급속히 냉각시켰다.
『크하하하하하하하! 어림없다! 하찮은 힘으로 나의 본능을
어찌할 수 없단 말이다!』
파괴신은 거의 미친 듯이 소리를 질렀다. 그의 광기가 증폭됨
에 따라 파괴의 창들이 빛의 영역을 밀어붙이는 힘도 증가했
고, 다른 인간 능력자들의 힘도 밀리기 시작했다. 하나 하나
파괴신의 창을 상대하면서 할버드로 창날을 퉁겨내던 와이더
반, 아트란도 그 한계를 실감하면서 이미 절망에 빠진 상태였
다.
『가라, 디스트로이어 오브 스피어!』
슈아아아앙!
순간 수많은 잿빛 창에서부터 스멀스멀 파괴의 기가 피어올
라 빛의 영역을 잠식하기 시작했다. 샤이트리아가 예기치 못
한 상황을 맞이하여 크게 당황했고, 그 바람에 빛의 영역이 크
게 뒤로 밀리면서 주변 천공섬의 공간 모두가 파괴의 영역에
덮였다.
『큰일입니다. 이대로라면…』
뒤늦게 브레이브와 러브샤가 안간힘을 다하며 파괴의 영역
확장을 저지하기 시작했지만, 잠시 시간을 벌었을 뿐 소용이
없었다. 와이더반의 동작도 둔해졌고, 바람의 상급 정령과 리
치의 행동도 줄어들었다. 공간이 일그러지며 벌어지는 파괴의 전개. 천공섬은 그렇게 서서히 소멸을 맞이하고
있는 것이
다.
꾸오오오오오오!
골렘의 우렁찬 포효소리? 사람들의 시선은 모두 와이더반을
몰고 있는 아트란에게로 쏟아졌다. 하지만 그 역시 영문을 모
르겠다는 듯이 어깨를 으쓱하며 고개를 저었다.
꾸오오오오!
다시 한번 울려 퍼지는 골렘의 포효. 동시에 바닥에서부터 모
든 것을 씻어낼 듯한 맑은 백광이 뿜어지면서 잿빛으로 둘러
싸인 공간을 밝혔다. 게다가 강대하게 폭발하는 마나의 출렁
임이 사방으로 뻗어나가며 파괴신은 물론 샤이트리아와 다른
창조신들의 신성력까지 밀어냈다.
"서, 설마!"
아트란의 얼굴에선 기쁨이 묻어났다. 바주크 역시 지금껏 보
였던 감정 중에서도 가장 큰 기쁨을 표시하며 입 꼬리를 말아
올렸다. 소울드와 실피스, 폰네스 후작도 희망이 빛을 띄며 마
그마가 흐르는 붉고 검은 대지를 내려다보았다.
그때였다! 붉은 악마. 지옥을 연상시키는 마그마가 꾸역꾸역
지하에서 밀려나와 지상에 흐르고 있는 그 가운데에서 갑자
기 순수한 백색 섬광의 기둥이 하늘로 치솟았다. 하늘까지 이
어지게 된 그 기둥은 서서히 빛깔이 옅어지며 사라져갔고, 빛
에 휩싸여 마그마 속에서 빠져나온 존재가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전신에서 백색의 빛을 발산하는 존재였다. 그 크기는 스톤 골
렘 와이더반에게도 훨씬 못 미치는 5베타. 하지만 전체적인 풍
채에서 느껴지는 이미지는 훨씬 강렬했다. 외모는 전신 무장
을 한 백기사를 연상시켰고, 완전 개폐식 투구로 얼굴을 가린
모습. 등에서 일렁이는 하얀빛은 마치 정식 기사들의 망토를
떠올리게 했다.
어디선가 많이 보던 형태였지만, 재질은 완전히 다른……. 문
뜩 그런 생각에 빠져있던 아트란의 얼굴이 그 백색의 거인 골
렘의 어깨 쪽으로 향해짐과 동시에 경악과 환희의 빛이 떠올
랐다. 죽은 줄만 알았던 아들이 번 듯이 살아서 거기에 서있었
기 때문이다.
"지금은 아무 말도 말아요, 아빠. 나중에 모든 것이 끝나면 말
씀드릴게요."
아투는 그렇게 말하면서 살짝 손을 퉁겼다. 그러자 신호를 받
은 백색 골렘이 넓은 한쪽 손바닥을 들어올려 구부렸던 손가
락을 펼쳤다. 검을 쥔 반대편 손에 쥐어진 존재는 다름 아닌
큰 타격을 입고 마그마로 추락했던 엔젤 나이트의 수장 화이
엘이었다.
"일단 화이엘부터 받으세요."
"그, 그래."
아트란은 엉겁결에 그녀를 와이더반으로 받아 조심스럽게 어
깨로 올렸다. 그러자 지옥에서 살아 돌아온 듯한 형상의 아투
가 아버지에게서 멀어지며 대립 중인 파괴신과 창조신들의 사
이로 끼어 들었다.
『위험합니다. 피하십시오.』
샤이트리아가 단호히 말했다. 하지만 아투는 무언가를 강하
게 믿는 눈빛을 빛내며 그 눈빛만으로 창조신들을 안심시켰
다. 파괴신은 당돌한 인간의 모습이 못마땅한 모양이었는지
크게 힘을 몰아 거대한 자신의 본체 파괴의 창을 움직여 백색
골렘을 노리고 쇄도했다.
슈슈슈슈슉!
하지만 다른 수많은 파괴의 창들이 창조신들의 빛의 영역을
밀어내고 있는 상황에서 본체라고는 하지만 그리 큰 힘이 실
렸을 리가 없었다. 아투가 탑승한 백색 골렘이 손에 든 흑검
을 들어올려 그 파괴의 창을 퉁겨냈다.
『이, 이 느낌은… 나의 신성력이 빠져나가고 있다!』
파괴신은 급히 그 백색 골렘에게서 떨어졌다. 정확히 말하면
흑검에게서 최대한 멀어져 골렘을 살피고 있었다. 순간 검과
부딪히면서 느끼는 그 기분 나쁜 감촉. 신성력이 빨려나가는
그러한 섬뜩한 기분.
『이때입니다!』
파괴신이 동요함을 간파한 빛의 신 샤이트리아가 크게 힘을
몰아붙여 두 창조신의 힘과 함께 파괴의 창들을 소멸시키기
시작했다. 이제야 실수를 인정하며 다시 힘을 극으로 끌어올
리는 녀석이었지만, 이번에는 신들에게 집중함으로서 백색의
골렘을 놓치고 말았다.
"가이트리아!! 가라! 너의 힘을, 그리고 우리들의 믿음을 증명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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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라~ 백색 기사형 골렘 가이트리아!!
즐독 -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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