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골렘마스터-228화 (228/244)

[골렘마스터]  # 어둠을 가르는 빛[1]

어둠을 가르는 빛

대지가 불타고 있었다. 붉고 검은 암석들의 강으로 인해 뒤덮

인 상처 입은 대지가 이제는 모든 아픔의 흔적들을 잃어버리

며 죽어가고 있었다. 하얀 연기가 솟으며 참혹한 광경을 가리

려고 했지만, 고작 연기 정도로 대지의 아픔을 그리고 그 고통

을 가리지는 못했다. '웅웅'거리는 대기의 울림도 슬프게 들려

왔고, 파괴신이 이루고 있는 잿빛의 회오리조차 측은하게 여

겨졌다.

"하……."

긴 한숨을 내쉰 아트란의 얼굴빛은 이미 산 사람의 것이 아니

었다. 새하얗게 질려버린 그의 얼굴이 미세한 경련을 일으켰

다. 평소와 달리 멍해져버린 눈빛은 이미 모든 생명을 빼앗겨

버린 껍데기를 연상시키기에 충분했다. 그 정도로 그는 지금

큰 충격에서 빠져서 헤어 나오질 못하고 있는 것이다.

"아들아……."

초점을 잃은 그의 눈빛이 기계적으로 움직여 마그마로 향했

다. 파괴신의 날카로운 기류에 휘말려 우드 골렘과 함께 '붉

은 악마'가 강처럼 흐르는 대지로 떨어져버린 그의 아들 아투

가 자꾸 눈에 밟혔다.

"이건 꿈이야! 아투처럼 강한 아이가 저런 마그마 따위에게

굴복할 리가 없다!"

조용히 입을 다물고 망연자실한 태도로 마그마를 내려다보

고 있던 아트란이 갑자기 마구 소리를 내지르면서 비행 마법

에 의해 공중에 떠있는 와이더반을 몰아 아래쪽으로 내려가

려 했다. 누가 봐도 무모한 행동이었기에, 리치의 도움으로 마

그마를 피한 사람들이 그를 말리려 했지만, 이미 이성을 잃어

버린 그를 막기란 쉽지가 않았다.

"아트란! 잠깐 기다려요!"

갑자기 백색의 존재가 날아와 거대한 15베타의 스톤 골렘을

막아섰다. 지친 기색이 역력하지만 아직 표정은 살아있는 천

상계 존재. 바로 백색의 엔젤 화이엘이었다. 비록 인간에게는

항상 반말을 사용하는 그녀였지만, 아투의 부모라는 것을 감

안해 최대한 예를 갖추고 있었다.

"비키십시오! 엔젤이라고 해도 내 아들을 구하는 일을 방해한

다면 용서하지 않겠습니다!"

아트란은 급히 마나 보우를 뽑아들고 손에 쥐었다. 강렬한 마

나의 기운이 응축되면서 불그스름한 빛이 피어올라 화염의 구

가 끝에 맺혀갔다. 그 뜨거운 열기에 화이엘이 잠시 주춤하는

사이, 와이더반의 거대한 형체가 지상으로 쇄도했다.

『목숨을 헛되이 하지 마시길. 파괴신에 의해 죽은 영혼은 코

스모스께 부탁하여 다시 소생시킬 가능성도 있습니다.』

다시 와이더반은 어떠한 존재에 의해 가로막혔다. 경건한 목

소리가 아트란의 조급하고 절망적이던 마음을 가라앉혀 주었

다.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은 크게 일렁이는 백색의 빛의 덩어

리. 아주 거대하여 파괴신의 소용돌이에도 대항할 수 있을 정

도의 기운을 소유한 빛의 신 샤이트리아의 본체였다.

"샤이트리아님. 크흐윽. 제 아들 녀석 정말로 살아날 수 있겠

습니까?"

절규에서 분노로, 분노에서 슬픔으로 뒤바뀐 아트란의 얼굴

에서 눈물이 흘렀다. 무모하게 마그마 속으로 뛰어들어 아들

의 뒤를 따르려하던 행동은 저지됐지만, 그래도 바로 옆에서

아들을 잃었다는 것에 대한 충격이 가시질 않는 모양이었다.

창조신 샤이트리아는 진심으로 그를 동정했지만, 지금 당장

해줄 수 있는 일은 없었기에 다시 파괴신을 견제하면서 자리

를 잡았다.

『아쉽군. 다른 인간들도 한꺼번에 쓸어주려 했는데, 일이 이

렇게 됐으니. 하지만 이번 공격도 방금 전처럼 운 좋게 피할

수 있나 한번 볼까?』

파괴신이 다시 신들이 형성한 저지선을 가볍게 통과한 뒤, 드

래곤들이 형성한 바깥 저지선까지 뚫고 나왔다. 아투가 마그

마 속으로 빠져들 때 아트란과 마찬가지로 멍해졌던 그라디우

스 때문에 다른 드래곤들의 저지선 역시 크게 약해져있었던

것이다.

잿빛 폭풍이 그렇게 쉽게 이동하여 다시 리치가 있는 곳까지

쇄도해왔다. 실피스, 소울드, 바주크, 폰네스. 이렇게 네 명을

공중에 띄우기 위해 힘을 사용하던 리치는 한쪽 손을 다시 파

괴신의 폭풍 쪽으로 뻗어내 반사적으로 녀석의 이동을 저지하

려 했다.

콰과과과광!

순간 강한 어둠의 마력이 그 자체적으로 뿜어져 파괴신의 잿

빛 폭풍의 바깥 기류와 부딪혔다. 하지만 모든 것을 분쇄하는

힘 앞에서 리치의 그런 기운도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강렬한

바람이 리치의 몸뚱이를 날려버릴 듯한 기세로 다가왔고, 검

은 로브가 마구 휘날리면서 앙상한 뼈의 형체가 드러났다.

"엔젤 나이트! 모두 저 사람들을 보호해라!"

화이엘이 급히 그 광경을 보고 소리쳤다. 명령을 받은 엔젤

나이트 대원들이 백색의 날개를 활짝 펼쳐 그곳으로 날아가

사람들을 지키려 앞을 막아섰고, 파괴신은 더욱 힘을 끌어올

려 거의 극한의 점까지 다다랐다.

잿빛 폭풍이 이제는 공간을 일그러뜨리는 힘으로 바뀌었다.

모든 것을 집어삼킨 소용돌이. 그 소용돌이의 중심은 알 수 없

는 아공간과 연결되어 그 심연의 어둠으로 모든 것을 보내버

렸고, 잿빛 폭풍이 지나간 자리는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이 평

온을 되찾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무의 공간. 천공섬은 그렇게

무의 공간으로 바뀌어갔고, 황폐라는 말이 아까울 정도로 상

황이 심각하게 전개됐다.

"샤이닝 캐논 샷!"

모든 엔젤들의 입에서 똑같은 단어가 터져 나왔다. 동시에 그

녀들이 앞으로 내지른 손에 들린 광선검에서부터 굵은 빛의

기둥이 형성되어 쏘아졌다. 하나 하나 모여든 빛의 기둥은 파

괴신의 잿빛 폭풍을 향해 일직선으로 모아져 쇄도했고 주변

의 날카로운 기류들을 소멸시키며 지금껏 보여주었던 공격

중 가장 시원스런 장면을 연출시켰다.

『파괴신. 이미 우리들의 신성력은 서서히 바닥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순간적으로 힘을 폭발시켜 공격한다면 당신

도 견디지 못할 것입니다.』

샤이트리아가 빛의 무리를 이끌어 잿빛 폭풍으로 다가갔다.

돌무더기의 형상을 한 브레이브도 그녀의 뒤를 따랐고, 러브

샤 또한 소극적인 전투 형상을 띄던 분홍빛 안개를 거두어 뒤

쫓았다.

『그라디우스. 이제 드래곤들의 힘도 하나로 합칠 때입니다.

비록 본체로 폴리모프하여 싸우고 있지만, 신의 본체를 소멸

시킬 정도의 강한 힘은 끌어낼 수 없을 것입니다. 차라리 우

리 창조 3대신들과 힘을 합쳐 파괴신을 끝장내도록 합시다.』

샤이트리아의 일리 있는 말에, 아투의 죽음에 당황하고 있던

그라디우스가 퍼뜩 정신을 차리며 드래곤 각 속성 별 수장들

에게 명령하여 최고의 브레스를 쏠 준비를 하라고 일렀다. 거

대한 드래곤들이 드래곤 하트까지 깊게 숨을 들이마시기 시작

했고, 주변의 대기가 잠시 진공상태에 이르기까지 했다.

휘이이이잉!

이미 엔젤 나이트들의 엄청난 빛의 기둥 공격에 약간의 타격

을 입은 파괴신은 자신의 본체에 타격을 준 그녀들에게로 타

켓을 돌렸고, 이내 거대한 잿빛의 폭풍 그 바람의 형태를 거대

한 창의 모습으로 바꾸었다. 하지만 잠깐의 섬광이 다시 한번

폭발하자, 그 거대한 창은 보통 인간들에게 적절할 정도의 크

기로 화하면서 그 수가 수 천 수 만개로 늘어났다.

『모두 힘을 합친다고? 어림없다. 예전에 나를 한번 소멸시키

려 했을 때도 코스모스가 나섬으로 해서 간신히 정리가 됐었

지. 그런데 지금은 고작 세 명의 신밖에 없는 상황. 게다가 엔

젤 나이트들 전원이 참석한 것도 아닌 이 때에 날 어찌해보겠

다고? 차례차례 죽여주겠다. 아니 파괴해주겠다.』

의미심장한 녀석의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수 만개의 창이 일

사불란하게 움직였다. 바람을 가르며 수 만개의 창이 각각 의

지를 지닌 듯 현란하게 허공을 날았고, 그 하나 하나가 모두

엔젤 나이트들의 중심. 바로 심장 부근을 노리고 있었다.

슈슈슈슈슉!

전광석화처럼 사방에서 날아드는 파괴신의 창을 보며 엔젤들

은 당황한 기색을 역력히 드러낸 채, 허둥거리며 몸을 움직였

다. 아슬아슬한 타이밍으로 한 차례의 무수히 많은 창 공격을

피해내긴 했지만 엔젤들이라 해도 수 만개의 창. 비가 내리듯

쏟아지는 그 신성력의 집합체들을 모두 피할 수는 없는 노릇

이었다. 한번의 공격이 무산되면서 동시에 쏟아지는 두 번째

의 파괴신 창 공격은 그대로 엔젤들의 절반 가량 되는 수의 심

장을 꿰뚫으며 다시 파괴신에게로 돌아갔다.

"이, 이럴 수가! 엔젤 정도가 되는 존재들이 이렇게 허무하게

소멸하다니."

하얀빛의 입자에 휩싸여 잿빛 하늘로 사라지는 엔젤 대원들

을 바라보며 화이엘은 분노에 찬 목소리를 흘렸다. 그 창 공

격 단 두 차례로 인해 희생된 대원들의 수는 정확히 절반. 그

것도 파괴신이 많이 사정을 봐주며 펼친 공격이라는 생각이

들자 온 몸에 소름이 돋는 그녀였다.

힘을 극으로 끌어올려 파괴신에게 결정적인 타격을 입히려

준비하던 창조신, 그리고 드래곤들도 적지 않게 당황한 듯 하

였으나 역시 권능이 막강한 존재들답게 준비하던 일을 마무리

하며 파괴신에게로 접근했다. 능력자의 자격으로 참가한 인간

들 역시 그들을 돕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았지만, 마음만 앞설

뿐 여건이 따라주질 않았다.

『이제 도마뱀과 어쭙잖은 신들의 힘이냐?』

파괴신은 자신을 제외한 모든 존재들을 무시하고 있었다. 녀

석의 화한 무수히 많은 창들은 이내 엔젤에게서 멀어져 신들

과 드래곤들을 향해 쏟아졌다.

슈슈슈슈슝!

바람을 가르며 하늘을 뒤덮은 그 강한 힘이 담긴 잿빛의 창들

은 가장 가까이 날고 있는 드래곤들을 목표로 쇄도하였다. 잔

뜩 호흡을 가다듬고 때를 기다리던 그들은 그라디우스의 한

차례 신호에 맞추어 속성별 최강 브레스를 한참 동안이나 내

뿜었다.

쿠아아아아아앙!

붉은, 푸른, 그리고 흑색과 백색, 심지어 녹색의 빛을 띈 강렬

한 드래곤의 숨결이 파괴신의 창들을 집어삼켰다. 그것들은

빛에 휩싸여 소멸하는 듯 싶었고, 브레스의 집합체는 끝까지

이어져 파괴신의 본체로 추측되는 가장 커다란 잿빛 창을 노

리고 쏟아졌다.

하지만 갑자기 기세 좋게 이어지던 브레스의 기운들이 크게

수축하면서 설 자리를 잃기 시작했다. 하늘 전체를 집어삼켰

던 브레스의 기둥은 이미 소멸한 줄만 알았던 파괴신들의 창

에 의해 힘이 미약해졌고, 그 틈을 뚫은 파괴의 창들이 매섭

게 드래곤의 숨결과 대기를 가르며 드래곤들의 입으로 이어져

갔다.

"크아아아아아아악!"

"드, 드래곤인 내가…… 속성 드래곤의 수장인 내가!"

"로드 그라디우스님!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크아악!"

사방에서 비명이 끊이질 않았다. 파괴의 창에 의해 목이 뚫

린 드래곤들의 수장은 그래도 축 늘어져 마그마가 흐르는 대

지로 떨어져 내렸다. 마나의 원천. 그것을 다스리는 법을 가

장 먼저 발견했던 위대한 지상계 종족 드래곤이라는 그들이

맞이한… 허무한 소멸. 그리고 죽음. 황금빛 거체 신룡급 드래

곤 그라디우스만이 허공을 날며 그런 의미들을 되새겼다. 드

래곤 일족은 원래 종족의 연결된 의식이 강하지 않기에 눈앞

에서 많은 드래곤들이 죽어가도 별 다른 감흥이 일진 않았다.

다만 자신들 종족의 힘이 무시당했다는 사실에 분노할 뿐.

『파괴시이이이이인!』

쿠아아아앙!

다시 한번 숨을 크게 들이마신 그라디우스가 황금빛의 브레

스를 크게 쏘아냈다. 하지만 파괴신의 창은 가볍게 그 기세 좋

은 브레스를 가르며 다른 드래곤들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목구

멍을 노리고 날아들고 있었다.

"그, 그라디우스!!"

아트란은 순간 보았다. 아들의 죽임에 이어… 또 하나의 중요

한 존재가 눈앞에서 사라지는 광경을. 그는 그라디우스의 거

체를 뚫고 나온 파괴신의 창이 아주 혐오스러웠다. 드래곤의

체액이 끈적하게 묻어있는 그 창의 날이 눈에 들어오자 슬픔

에 앞서 눈에 불똥이 튀었다.

사실 드래곤 친구인 그의 죽음은 왠지 실감이 나질 않았다.

하지만 황금빛 거체는 계속해서 마그마를 향해 추락했고 활

짝 펼쳐질 것만 같은 황금 피막은 결국 펴지지 않았다.

『이런 이런. 드래곤도 결국은 바보 같은 도마뱀일 뿐이었

군. 그럼 이번엔 신들을 상대해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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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엔 분량이 반 페이지 정도 적습니다.

-ㅁ-; 어제 이 전편에 내용을 추가하다보니 그렇게 됐군요.

어쨌든 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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