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골렘마스터-217화 (217/244)

[골렘마스터]  # 신과 드래곤의 화합[4]

'젠장! 속았다! 이대로 가면…….'

녀석은 순간 하나의 선택만을 남겨놓게 된 것이다. 지금껏

세 명의 존재들에게 품은 의혹들은 저 의식의 뒤편에 묻혀버

렸다. 지금은 오로지 도망쳐야겠다는 생각만, 그리고 소멸에

대한 공포만이 떠올라 섀도우를 혼란스럽게 했다.

*  *  *

천공섬 이카루스. 사실 지상계에 알려진 바에 의하면 그것은

가상 속에서만 존재하는 신화적 장소이다. 아주 오래된, 이제

는 이름도 전해지지 않고 그 글자 몇 귀만 남아 있는 책에 의

하면 천공섬이라는 곳은 천상계의 존재들이 유희 정도를 즐기

는 휴양지라고 밝혀져 있었다. 천공섬은 정말 지상 낙원이라

고 할 수 있는 그러한 모든 조건을 갖췄다고 알려지긴 했지

만, 사실 상 지도상에서 천공섬은 존재하지 않는다. 아니, 실

제로 천공섬이라 추측되는 섬은 찾을 수가 없었다. 때문에 사

람들은 모두 그것을 신화 속에서만 나오는 가상의 섬으로 생

각했고, 그렇게 사람들의 잘못된 인식 속에 묻혀 요즘에는 언

급조차 되지 않는 그런 비운의 장소가 되어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천공섬 이카루스에 대해서 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

는 존재가 현재 제국이 있지 않은가. 바로 천상계 존재인 엔

젤 나이트의 수장 화이엘과, 직접 이 세계를 창조하면서 이카

루스까지 만들어낸 존재들. 바로 6대 창조신 중, 빛의 3대 창

조신들이 그러했다.

빛의 신 샤이트리아는 천공섬 이카루스는 절대로 지상계 존

재들이 들락거릴 수 없는 곳, 바로 높은 상공에 떠있는 장소라

고 인간들에게 밝혔다. 그 얘기를 들은 인간들은 왜 지금까지

천공섬이 가상의 섬으로 여겨졌는지를 알 수 있었다. 하늘에

떠있는, 그것도 마법으로 결코 갈 수 없는 높이의 상공에 떠있

는 섬을 어떻게 발견할 수 있겠는가.

물론 천공섬은 천상계 존재와 그들이 허락한 존재들만이 출

입할 수 있도록 신성력으로 보호받고 있는 곳이라고 했다. 하

지만 거꾸로 생각하면 파괴신 디스트로이어 또한 천상계 존재

였고, 타천사들 또한 마찬가지였기에 천공섬의 출입이 가능하

다. 게다가 그들이 출입을 허락했을 어둠의 종족 역시 지금 위

대한 천상계 타락 존재들과 함께 천공섬에 머무르고 있을 것

이다.

이에 3대 창조신들은 퓨티아 제국의 황제인 미스티에게 명하

여 각 국가별로 대표 능력자 한 명씩을 뽑아 제국의 수도로 모

이게 하도록 하였다. 파괴신이 완벽한 힘을 회복하기 전에 빨

리 천공섬으로 향해야 했는데, 제국의 사람들만 천공섬을 공

개한다면 많은 반론이 따를 것이라는 사랑의 신 러브샤의 의

견 때문이었다.

물론 특별한 권한을 갖게 된 인물도 적지 않았다. 일단 메션

왕국과 퓨티아 제국 양쪽 모두의 작위를 가지고 있는 특별한

인물 아투는 신들의 배려로 함께 천공섬에 오르게 되었다. 게

다가 키메라 바주크 또한 이곳 클라미디 대륙의 존재가 아니

니, 속한 국가가 없어 함께 가게 됐다.

천공섬으로 오르는 날은 신들이 정했다. 이제 몇 일만 있으

면 완벽히 파괴신의 힘이 회복될 정도의 기간이 지나기 때문

에 최대한 빨리 움직일수록 상황은 좋아질 것이다. 신들은 그

렇게 말하면서 바로 내일 당장 출발하겠다고 하여 사람들과

관계자들을 놀라게 했지만, 위대하고 존귀한 그들의 결정은

바뀌지 않았다.

해가 지평선 아래로 모습을 감추고 있었다. 수줍은 듯 마지

막 붉은 빛을 발하는 태양 덕분에 하늘은 빨간 천으로 수놓아

진 듯 빛깔이 변했다. 구름들 역시 그러한 불그스름한 빛을 머

금고 바람을 따라 천천히 흘러갔다.

홀리 캐슬 안에 자리한 작은 1인용의 방. 그리 특별한 물건들

은 없지만, 소박하면서도 단아한 멋을 느끼게 하는 디자인의

그 방안에 측은한 존재가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그리고 잠

이 든 그를 내려다보며 침중한 표정을 짓고 있는 두 명의 사내

가 있었는데, 갈색 머리의 소년이 먼저 입을 열었다.

"솔직히 나이츠를 다시 볼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도 못 했습니

다. 그것도 이렇게 온전한 모습으로 말이죠. 후우. 어쨌든 정

말 다행이에요. 과연 창조신 분들의 힘은 감히 우리들이 상상

할 수 없을 정도였군요."

"흠. 나도 상당히 놀랐다네. 희망은 있었지만, 이렇게 빨리 나

이츠를 다시 만나게 될 줄은 몰랐지. 과연 자네 말대로 창조

신 분들이 아니었다면 다시 나이츠를 눈앞에서 놓쳐야만 했

을 걸세."

아투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던 샤우드 백작은 곤히 잠에 빠진

나이츠를 다시 한번 바라보더니 방안에 마련된 작은 의자에

철푸덕 주저앉았다. 아까 낮에 있었던 마족과의 싸움이 그에

게 상당히 벅찼던 모양이다.

"하하. 계속 나이츠의 일이 마음에 걸렸었는데, 이제는 조금

편한 마음으로 싸울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래, 창조신 분들이 내일 당장 천공섬으로 가시겠다고 하셨

다고 들었는데, 제국의 능력자 대표로는 당연히 실피스님이

가시겠지?"

"아마도 그럴 겁니다. 9서클 마도사를 능가할 수 있는 인물은

없을 테니까요."

아투도 백작이 앉은자리 반대편에 놓인 작은 의자에 앉으며

답했다. 그러자 백작은 잠시 무언가를 생각하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럼 힘을 빌려주기로 한 빛의 엘프들의 노력은 허무하게 끝

이 나게 되는 건가?"

"하하. 저도 처음에는 각 나라별로 단 한 명의 능력자만 뽑아

야 한다는 소리에 그런 걱정을 했었는데, 다행히 창조신 분들

께서는 인간과 다른 종족도 한 명씩 허가하겠다는 말을 하셨

습니다. 아마 빛의 엘프들 중에서는 정령왕까지 소환이 가능

한 인물들 중 한 명이 뽑힐 것 같더군요."

아투는 그렇게 웃음을 띄며 답한 뒤, 슬쩍 고개를 돌려 침대

쪽의 나이츠를 바라보았다. 치료를 담당한 신관의 말로는 그

의 영혼이 많은 타격을 입었지만, 한 달 정도 요양을 하면 다

시 좋은 상태가 될 수 있다고 했다. 마족에게 몸을 빼앗긴 사

람은 대부분 그 영혼이 소멸하는 것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나

이츠의 상태를 보며 신관이 되려 놀랄 정도였다. 물론 아투는

이 부분에서 창조신 분들이 능력을 써주셨음을 알 수 있었다.

죽어 가는 나이츠의 영혼을 그분들이 살렸음을 화이엘을 통해

서 들었기 때문이다.

"그건 그렇고, 가장 큰 문제였던 드래곤과 신들의 대립은 어

떻게 되었나?"

잠깐 다른 생각에 잠겼던 그의 귀에 백작의 다른 질문이 들려

왔다. 나이츠가 건강하게 회복될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하며 입

가에 미소를 띄고 있던 아투는 표정을 관리하면서 차분하게

답했다.

"지금 드래곤 로드이신 그라디우스님과 각 드래곤들의 수장

분들께서 성에 당도하셨습니다. 지금 미스티……. 아앗. 실

수. 지금 황제 폐하께서 창조신분들과 드래곤 사이의 중재를

하러 나섰기 때문에, 이미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던 드래곤들

도 곧 수락할 것으로 보이고 있습니다. 차질 없이 내일 천공섬

으로 오르기로 된 인물들은 모두 참석할 예정이에요."

"잘 되었군 그래. 흐음. 천공섬엔 오르지 못하지만, 나 또한

지상계에서 마물을 토벌하면서 한 몫하고 있겠네. 이대로 가

만히 기다리고 있는 건 성격에 맞지 않아서 말이지. 아마도 다

른 귀족들, 특히 빈츠 백작과 레브로스 공작님께선 나와 함께

해 주실 거네."

"하하하. 그 분들의 성격을 봐서는 아마도 그럴 것 같네요. 으

음. 저는 그럼 이만 가볼게요. 나이츠가 무사한 것도 확인했으

니 마음이 놓입니다."

아투는 그렇게 인사하며 의자에서 일어섰다. 잠시 나이츠가

몸을 뒤척였기 때문에, 그는 사뿐사뿐 발소리가 들리지 않게

고양이처럼 움직이면서 백작에게 다시 고개로 인사를 한 뒤

방을 나갔다.

'아투라는 인물…… 국가라는 개념을 넘어서 정말 영웅이나

용사라는 호칭이 어울리는 사람일지도 모르겠군.'

백작은 정말로 진지한 표정을 짓고 그렇게 속으로 중얼거리

면서 잠시 무언가를 생각했다. 곧 그의 표정에는 미소가 서렸

다. 어쨌든 아투라는 인물이 제국을 위해 있어준다는 사실,

또 황제 폐하의 곁에 머물 것이라는 사실을 생각하자 왠지 모

르게 웃음이 새어나왔다.

"흐흠. 이런 피로가 쌓인 몸으로 밤새 나이츠를 간호할 수 있

을 지가 의문이군."

백작은 그렇게 말하면서 의자에 앉은 자세를 편히 고쳤다.

밖으로 나온 아투는 차가운 밤바람을 좀 쐴 겸, 텅 빈 성안을

걸어다녔다. 처음에는 아무런 생각 없이 그저 발길이 가는 곳

으로 향했는데, 어느새 저 멀리서 홀로 앉아 있는 가이트리아

가 눈에 들어왔다. 예전에는 몰랐었는데, 혼자 있는 골렘의 모

습을 보니 왠지 쓸쓸한 분위기가 느껴져 아투의 마음까지 씁

쓸해졌다. 골렘을 처음 창조했을 때 친구처럼 함께 하겠다는

그 다짐은 사라지고 지금은 이렇게 골렘만 밖에 두고 그만 편

하게 지내는 상황이니 말이다.

"가이트리아."

천천히 골렘에게 다가간 아투는 어두운 밤하늘 아래 은은한

달빛을 받으며 고개를 푹 숙이고 목상처럼 굳은 골렘의 이름

을 조용히 불러보았다. 처음에는 그의 목소리를 듣고도 미동

도 하지 않던 가이트리아가 두 세 번 자신의 이름을 듣고는 마

지못해 눈을 뜨며 주인을 돌아보았다. 왠지 아무런 감정도 느

껴지지 않아야 할 골렘의 눈빛이 오늘따라 굉장히 쓸쓸해 보

여 안 그래도 가라앉은 아투의 마음을 더욱 어둡게 했다.

"후우. 눈빛이 왜 그래? 우리 화해한 거 아니었어?"

어깨를 으쓱하며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이 능청을 떤 그는 골

렘의 발에 엉덩이를 걸치며 몸을 기댔다. 가이트리아는 그의

움직임을 따라 고개를 돌리면서 마인드 스피커로 조용한 목소

리를 흘렸다.

『내 눈빛이 뭐가 어쨌다는 거지? 난 평상시와 다를 바가 없

다. 지금은 네 상태가 더 안 좋아 보이는군. 역시 내일 파괴신

과 싸우게 된다는 사실이 부담스러운 건가?』

"하하. 그럴 지도 모르지. 사실 파괴신은 인간의 힘으로 어찌

해볼 존재가 아니잖아? 무모한 짓이라는 생각 때문인지 계속

몸과 마음이 다 가라앉고 있어. 나이츠가 우리 곁으로 돌아와

줬다는 사실에 기뻐해야 정상이지만, 그것도 안 되고 말이야."

『난 오히려 드래곤 하트가 마구 요동치는 것만 같다. 그런

엄청난 존재와 싸워볼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나에겐 재미가 있

는 일이다.』

가이트리아는 어깨에 얹고 있던 다크 바스타드를 바닥에 내

리꽂으면서 호기롭게 말했다. 아투는 그런 용감한 골렘의 말

투와 행동에 절레절레 고개를 저으면서 그냥 말없이 하늘을

바라보았다. 유난히 많은 별들이 맑은 밤하늘을 수놓고 있었

는데, 오히려 밝아야할 초생달이 그런 별들의 빛에 묻힌 것 같

았다.

"어쨌든 이번 일만 끝나면 내가 하고 싶은 골렘술 연구나 마

음껏 하면서 지낼 수 있을까?"

아투는 다시 골렘을 돌아보며 스스로에게 묻는 듯한 질문을

중얼거렸다. 가이트리아는 반짝이는 눈동자로 주인을 향해 있

다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골렘답지 않게 장난스러운 말

로 답했다.

『과연 네가 원하는 것이 골렘술 연구인가? 미스티와 연애하

는 것이 아니고?』

"뭐, 뭐!? 웃기지 마! 난 원래부터 골렘술을 완벽히 연구해서

골렘마스터라는 칭호를 얻고 싶어했다고!"

골렘의 말에 아투는 진실을 들킨 사람 마냥 과민 반응을 보이

며 얼굴을 붉혔다. 그리고 더 이상 할 말이 없다는 듯이 옷자

락을 획 펼치며 몸을 일으켜 성으로 사라지려 하다가 뭔가 아

쉽다는 표정으로 뒤를 돌아보았다.

"오늘은 날씨도 따뜻한 것 같은데… 오랜만에 너랑 같이 자

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군."

그의 말에 골렘은 묵묵부답이었지만, 아투는 그냥 말없이 다

시 골렘에게 다가와 넓은 몸 위로 올라 편안하게 몸을 뉘였

다. 정말 이곳에서 잘 모양이지, 눈을 감고 있던 그의 입에서

얼마 지나지 않아 고른 숨소리가 새어나오기 시작했다. 가이

트리아는 약간 돌발적인 행동을 하고 있는 주인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자기 또한 눈을 감으며 허리를 굽혔다.

휘이이이.

그때 막 차가운 밤바람이 불어왔다. 골렘의 몸 위에서 잠이

든 듯한 아투가 새우처럼 몸을 웅크리며 잔기침을 해대자, 가

이트리아는 한심하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내일이 결전의 날인데, 감기나 걸리지 않으면 다행이겠

군.』

실체가 없는 듯이 흐물거리는 검은 빛이 힘겹게 장소를 이동

하며 천천히 움직이고 있었다. 주변의 다른 검은 공간에 자연

스럽게 흡수될 뻔한 위험이 수 차례나 있었지만, 그 움직이는

검은 빛은 아주 아슬아슬하게 그러한 동화 작용을 뿌리치며

한 걸음 한 걸음 앞으로 움직였다.

검은 동굴을 얼마나 그렇게 지나왔을까. 평소에는 짧기만 했

던 다크 터널이 오늘은 무한의 세월동안 지나온 것 마냥 길게

만 느껴지고 있었는데, 다행히 앞의 출구가 보이기 시작했다.

검은 빛은 이제야 살았다는 듯 더욱 활발한 움직임을 보이며

꾸물꾸물 앞으로 전진, 또 전진하였다.

터널의 끝이 드러나면서 커다란 검은 공간이 다시 한번 검은

빛의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그 위엄 있는 공간의 가장 끝 쪽

에 자리한 보랏빛 옥좌에 앉아있는 존재가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는 것도 느꼈다. 검은 빛은 마지막 모든 힘을 짜내는 듯

이 힘을 써 그 옥좌의 존재 앞까지 간신히 다가갔다. 거의 기

어갔다고 하는 편이 옳을 것이다.

"타, 타크니스 마왕님."

검은 빛이 드디어 실체화했다. 잠시 미약한 마기가 주변으로

퍼져 나오며 형체가 없던 검은 빛이 인간의 형태로 변해갔다.

멋진 모습으로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던 타크니스. 어둠의 마

계의 지배자인 그는 엉망이 되어 돌아온 중급 마족 섀도우 나

이트를 보면서도 표정의 변화가 없었다.

"내가 시킨 일은 수행했느냐?"

타크니스가 차갑게 물었다. 하지만 섀도우는 마왕의 목소리

가 하루 전 명령을 내릴 때의 것과는 완전히 달라져있음을 느

끼지 못할 정도로 많은 힘을 소진한 상태였다. 다만 마왕의 힘

을 빌어 다시 상태를 회복할 수 있다는 기대에 부풀어 기어 들

어가는 목소리로 간신히 답했다.

"완벽히 수행했습니다. 다만 제국에 알 수 없는 존재들이 등

장했습니다. 강력한 신성력을 소유한 걸로 봐서는 천상계 존

재들이 확실합니다. 아마도 엔젤들 중 고위급 정도로 생각되

는 자들이었습니다. 그 존재들의 힘에 의해 저는 애써 얻었던

인간의 육체를 잃었고, 또 이 지경이 되어버렸습니다."

"새로운 존재들이라…. 크허허허허. 역시 내 예상과 딱딱 맞

아 떨어져가는구나. 그럼 됐다. 천공섬에 파괴신이 숨어있다

는 소식만 전해졌으면 이제 기다리는 일만 남았다. 모든 것이

순리대로 돌아갈 것이다."

타크니스는 그의 심복인 섀도우조차 알아들을 수 없는 의미

심장한 말을 내뱉으면서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어느새 붉게

변한 그의 광기 어린 눈이 그나마 간신히 형태를 유지하고 있

는 섀도우를 강하게 압박해왔다.

지금 섀도우는 마지막으로 희망을 걸고 있던 존재의 무관심

함에 솔직히 당황하고 있었다. 신성력에 의해 몸이 엉망진창

이 되었지만, 그래도 마왕님만 만나면 완벽히 회복될 수 있으

리라는 희망을 가지고 있었는데, 지금 주군이 보이고 있는 태

도는 너무나도 차가웠다. 마족이라는 존재가 원래 그렇다고

해도 이건 너무한 처사였다. 섀도우는 하는 수 없이 직접 요구

해야겠다고 생각하면서 바짝 긴장한 채 입을 열었다.

"마왕님. 이번 일을 해결하면서 신성력에 의해 너무나 큰 타

격을 입어 지금 거의 소멸 직전의 단계까지 이르렀습니다. 하

지만 마왕님께서는 저를 완벽히 소생시켜주실 힘을 갖고 계시

지 않습니까. 부디 저의 이 가련한 영혼을 생각해서라도 그 방

대한 힘 중 일부를 저를 위해 사용해주시면……."

"아, 이런이런. 깜빡하고 있었군. 좋다. 너의 요구는 안 그래

도 내가 생각하고 있던 일이다. 네가 그만큼 노력했으니 너에

게도 주어지는 게 있어야겠지."

타크니스가 곧 섀도우의 말을 알아들었다는 듯이 고개를 끄

덕이더니, 옥좌에서 몸을 일으켜 단상 아래로 내려와 처참한

모습의 부하에게로 다가갔다. 그가 층계를 하나하나 밟을 때

마다 허리에 매여진 악마형의 장검이 망토 속에 받쳐입은 갑

옷과 부딪히며 금속마찰음을 냈다. 그 청아하면서도 차가운

소리는 어둠의 공간 멀리까지 울려 퍼졌다.

"감사합니다. 마왕님."

섀도우는 이제 곧 몸이 완벽히 회복될 것이라는 사실 하나에

기뻐했다. 인간들 앞에서는 그렇게 강하고 살벌한 모습을 보

이던 녀석이었지만, 자신보다 강한 능력자. 그것도 주군 앞에

서는 고양이 앞의 쥐를 연상시키기에 충분했다. 타크니스는

그런 부하를 묘한 눈빛으로 내려다보면서 천천히 손을 뻗었

다. 그의 손바닥에 아주 강렬한 마기의 구가 맺혔다.

우우우웅.

주변을 진동시키며 마기의 구가 공명했다. 상당한 힘. 웬만

한 도시 하나 정도를 쉽게 날려버릴 수 있는 그러한 마기임을

간파한 섀도우 나이트는 갑자기 크게 당황하면서 뒤로 몸을

날렸다. 하지만 몸을 멀리 빼내려해도 이미 힘을 모두 소진한

상태였기에 쉽지가 않았다. 어느새 그가 물러선 자리까지 재

빨리 당도한 타크니스는 다시 손바닥을 쫙 오므리며 모았던

마기를 흩었다.

"바보 같으니라고. 내가 아끼는 수하인 너를 이런 마기로 소

멸시킬 것 같았느냐? 네 녀석은 날 그리도 모르느냐?"

타크니스는 겁먹은 부하를 마치 안심시키기라도 하려는 듯

했다. 어쨌든 강력한 마기가 사라지자 어느 정도 안심을 하고

자신이 잘못 생각했다고 여긴 섀도우는 정말로 마왕에게 미안

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조아렸다.

후우우웅!

그런데 그때! 갑자기 목을 길게 늘어뜨리고 고개를 조아리던

섀도우의 긴 목 언저리로 보랏빛의 호선이 그어지면서 녀석

의 몸과 머리가 분리되어 바닥에 떨어졌다. 검은색의 피가 사

방으로 뿜어졌지만, 이내 주변의 마계와 동화하여 사라져버렸

다. 바닥에 떨어진, 억울하다는 듯 눈을 부릅뜬 섀도우의 머리

도 마계의 바닥과 동화되어 사라졌고, 머리를 잃은 몸 또한 뒤

로 쓰러지더니 이내 마계의 대기에 흡수되어 그 모습을 감췄

다. 지금껏 타크니스의 명을 받아 모든 것을 수행하던 중요 마

족 한 명이 허무하게 소멸을 맞이한 것이다.

하지만 녀석을 직접 검으로 내려친 타크니스는 아무런 감흥

도 없는 표정으로 전광석화처럼 뽑아들었던 검을 다시 검집

에 넣으며 옥좌로 올랐다. 이제 곧 모든 계획은 끝이 났고, 천

상 대전 시절에서부터 준비된 그것이 완료될 것이다. 마왕은

그런 생각을 하면서 옥좌 옆에 공간의 문을 열어 알 수 없는

곳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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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강 전 기념으로 분량을 조금 늘려서 올렸답니다.

우리 나라 3:1로 승리! 제발 이리 되었으면 하네요.

즐독, 열혈응원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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