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골렘마스터-215화 (215/244)

[골렘마스터]  # 신과 드래곤의 화합[2]

명령을 내리는 타크니스의 표정에 왠지 모를 의미심장한 미

소가 떠올랐다. 무언가 알 수 없는 만족감이 그의 눈빛에 서

려 있었지만, 섀도우 정도의 마족이 그의 본심을 간파할 정도

로 대단하지는 않았다. 다만 충실한 부하인 섀도우는 마왕의

명을 받들겠다는 마음가짐으로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왜 어

렵게 파괴신을 부활시켜놓고 또 파괴신을 궁지로 몰아넣으려

하는지…… 그러한 기본적인 질문도 무시한 채, 명령을 이행

하겠다는 말을 남기고 마계에서 모습을 감췄다.

"크하하하하하하. 이제 곧 시작이다. 아무도 이 일을 막지는

못할 것이다."

섀도우가 사라지자 갑자기 타크니스의 행동이 돌변했다. 광

기 어린 웃음을 터뜨린 그는 아크 스태프를 손에 꼭 쥐고는 이

리 저리 돌려보았다. 그러면서 그는 품속에 손을 넣어 무언가

낡은 서적을 하나 꺼내들었는데, 그것의 표지에는 고대어로

이러한 단어가 적혀 있었다.

'고대 마도 제국의 마법 과학의 집결체.'

어둠의 공간. 마계를 다시 나선 섀도우는 가벼운 발걸음으로

어둠의 터널을 빠져 나와 하늘로 날아올랐다. 불과 몇 일 전까

지만 해도 그랜드 서클의 영향으로 지상계의 기운이 심상치

않아 마기를 운용하는 것도 쉽지가 않았지만, 지금은 그런 현

상이 말끔히 사라져 몸이 날아갈 듯 가벼웠다. 게다가 마왕님

의 내린 명을 완벽히 수행했다는 사실이 그의 심정에 큰 변화

를 주고 있었다.

"크크크크. 이제 나도 마왕님의 눈에 든 모양이야. 이번 일만

잘 된다면 내가 마계의 한 지역을 관리하는 역할을 맡을 지도

모르겠군. 그렇게만 된다면 나도 편히 지낼 수 있을 텐데."

섀도우는 무서운 속도로 하늘을 날며 중얼거렸다. 주변의 배

경들은 그가 날고 있는 속도에 비례하여 빠르게 지나쳤다. 보

통 인간들이었다면 눈앞이 핑핑 돌겠지만, 마족인 섀도우 나

이트에게는 아무렇지도 않았다.

한참 기분 나쁘게 맑게 개인 하늘을 가르며 비행을 하던 섀도

우의 눈에 커다란 도시. 약간 부셔진 곳이 보이며, 한창 복구

작업이 한창인 대륙 최고 국가 퓨티아 제국의 수도, 에리아 시

가 들어왔다. 하지만 문뜩 머리 속을 파고드는 의문점 때문에

그는 잠시 속도를 늦추며 허공에 멈춰 섰다.

"그나저나…… 왜 파괴신이 힘을 완벽히 회복하지 못한 지금

시점에서 파괴신의 행방을 인간들에게 알리라고 하신 건지 모

르겠군."

공명심에 눈이 멀었던 그는 지금에서야 그런 의문점이 떠오

른 것이다. 한 가지의 의문점이 마음속에 자리하자 잠자고 있

던 다른 의문점도 무럭무럭 자라났다.

"또 아크 스태프는 어디에 쓰시려고 하는 것인지…. 그것은

상당한 마나를 지니긴 했지만, 우리 마족에게 있어 마나 따위

의 드래곤 발견물은 필요가 없는데…."

갑자기 혼란스런 감정이 찾아왔기 때문인지 섀도우의 얼굴

이 미세하게 구겨졌다. 시원하게 불어온 바람이 그의 머리칼

을 귀찮게 쓸어 올렸고, 섀도우의 짜증은 극으로 치달았다.

"크아아악! 모르겠군! 어쨌든 난 그 분의 명만 받들어 수행만

하면 되는 거니까!"

순간 모든 마음 속의 혼란을 쓸어 내려하는 모양인지 그가 내

민 손바닥에서부터 가느다란 흑색의 줄기가 바닥으로 뿜어졌

다. 그것은 마치 의지를 지닌 듯 허공을 기이한 도형으로 수놓

으며 지면까지 다다라 바닥과 부딪혀 폭발했고, 땅이 부셔지

며 흙이 하늘까지 치솟았다가 다시 비가 되어 떨어졌다.

땡땡땡땡.

그런데 갑자기 한 차례의 폭발이 있은 후, 에리아 시의 외각

성벽에서 요란한 종소리가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그 소리에

맞추어 성벽에 올라 일사불란하게 자리를 잡고 무장을 하고

난리법석을 떠는 인간들을 보며 섀도우는 씨익 입 꼬리를 치

켜올렸다.

"때가 때이다 보니, 이런 폭발 소리에도 민감하게 반응하는

군. 흠? 오, 이런이런. 아무래도 내 위치까지 들킨 모양인데?"

그를 향해 들어올려지는 화살의 끝을 확인한 섀도우는 재미

있다는 표정으로 실실 웃으면서 얇은 형태의 검. 마왕에게 선

물 받은 그 흑빛의 검을 부드럽게 뽑아 손에 쥐었다. 그가 검

을 뽑자 아래쪽 성벽의 병사들은 더욱 더 부산히 움직이며 섀

도우를 공격할 태세를 완벽히 했다.

"어쨌든 타크니스님의 명령만 수행하면 되는 거니까, 에리아

시에서 조금 장난을 치는 것은 별 상관없겠지? 크흐흐."

섀도우는 비릿한 웃음을 남기면서 순간 허공에서 떠있을 수

있게 작용하던 마기를 거두었다. 그러자 자연스레 중력이 그

의 몸을 아래쪽으로 빠르게 잡아당겼고, 그의 신형이 추락하

기 시작했다. 순간 당황한 제국의 병사들이 화살을 마구 쏘아

댔지만, 섀도우 주변으로 무형의 막이 형성되어 하나도 박혀

들지 않았다.

슈우우우욱! 탁.

그는 빠르게 쇄도하던 몸을 멋지게 공중에서 한번 접으며 사

뿐히 에리아 시의 외각 성벽 위를 밟았다. 그리고 반사적으로

달려드는 병사 몇 몇을 향해 한쪽 손을 내밀며 마기를 뿜어냈

다.

슈슈슈슈슉!

순간 다섯 손가락에서부터 뻗어나간 가느다란 검은 마기가

정확히 병사들의 가슴을 꿰뚫으며 지나갔다. 성벽 위에서 병

사들의 지휘를 맡고 있던 한 기사는 그 모습에 크게 당황하여

목에 걸고 있던 금색 나팔을 크게 불었다.

부우우우웅.

저음의 웅장한 음이 사방으로 퍼지면서 묘한 분위기를 만들

었다. 나팔 불기를 마친 기사는 조금 밝아진 표정을 하고는 용

기 있게 검을 빼들고 섀도우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크크크크. 이거 완전히 비어있던 거와 다름없던 메션 왕국

과 크게 다를 바가 없군, 그래."

막 창을 찔러 들어오던 병사의 목을 가볍게 내리친 섀도우는

나름대로 용기를 내어 다가오는 기사를 확인하고는 더욱 입가

에 조소를 띄웠다. 상대는 아직 앳된 얼굴이 남은 젊은 기사였

는데, 검을 쥔 자세를 봐서는 전투 경험이 적은 것 같았다. 섀

도우는 단번에 녀석의 목과 심장을 꿰뚫어볼까 생각하였지

만, 이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면서 생각을 고쳤다.

'젊은 나이인 것 같은데, 일찍 죽이면 너무 불쌍하잖아? 크크

크크. 나와 녀석의 차이를 확실히 알려준 뒤 죽이면 억울하지

는 않겠지. 수준 높은 자에게 죽는다는 걸 알게 된다면 아마

기뻐할 지도 모르고. 크크크크.'

그렇게 마음을 굳힌 그의 빈 손바닥이 병사들이 밀집해있던

한곳으로 향하는 순간, 검은빛의 광풍이 쏟아져 병사들을 휩

쓸고 지나갔다. 기사가 고개를 돌려 수하들의 생사를 확인했

지만, 이내 핏덩이가 된 그들을 보고는 더욱 더 분노한 표정으

로 섀도우에게 달려들었다.

"그래! 그런 표정이 난 정말 마음에 든다!"

섀도우는 지금 자신이 스며든 육체의 본래 주인. 나이츠의 힘

을 끌어올려 풍검술의 기본 초식으로 흑검에 녹색 기류를 맺

히게 했다. 날카로운 기류에 휩싸인 검날이 주변의 대기와 반

응하며 진동했다. 하지만 경험이 부족해 보이던 기사는 섀도

우의 그런 변화도 발견하지 못했는지, 겁도 없이 먼저 검을 뻗

어왔다.

슈슈슈슉!

훈련은 열심히 받은 모양이다. 꽤나 날카롭게 기세가 선 공격

이었다. 하지만 마족인 섀도우가 그런 공격에 놀랄 리가 없었

다. 가볍게 바람이 맺힌 검날로 찌르기 공격을 퉁겨낸 그의 검

이 일순 횡으로 허공을 가르며 반월의 기류를 쏘았다.

사사사사삭!

아무런 소리도 없이, 하지만 그 어떤 것보다도 날카롭게 날아

간 녹색 반월의 기류가 젊은 기사의 갑옷을 아찔하게 스쳐갔

다. 놀랍게도 기류가 스쳐간 자리는 단단한 금속 재질임에도

불구하고 깨끗하게 잘려져 있었다. 섀도우는 그와 동시에 아

연실색한 기사의 표정을 보고 킥킥댔다.

"이봐. 꼬마. 그 정도의 검술로 날 상대하겠다는 거냐?"

"당신이 누군 지는 모르겠으나, 자만하지 마시오! 난 고작 일

개 기사에 지나지 않으니 날 이겼다고 해서 여기 방어를 뚫을

수는 없소!"

어린놈이 꽤나 말은 잘한다고 생각했다. 섀도우는 검날을 허

공에 들어올려 그 끝을 빙빙 돌렸고, 기분 나쁜 웃음으로 기사

를 놀렸다. 하지만 이미 그의 막강한 힘을 실감한 젊은 기사

는 기세 좋게 외친 말과는 다르게 쉽게 움직이지 못하고 계속

그의 동작을 보고 뒷걸음질 칠 수밖에 없었다.

"크크크크. 이제 너의 한계를 알았느냐? 그렇다면 끝을 내주

지!"

순간 검을 쥐고 있던 섀도우의 손이 수직으로 올라갔다. 태양

빛을 머금은 흑검은 묘한 빛을 발하면서 반짝였고, 기사의 시

야를 교란시켰다.

"죽어라!"

후우우웅.

태양빛을 머금고 있다가 매섭게 쇄도하는 수직 하강의 검. 그

것은 반사적으로 검을 쥔 손을 들어올려 막으려 하던 기사의

흔해빠진 평범한 무기를 박살내버리고 그대로 떨어져 투구를

착용한 기사의 머리로 향했다. 하지만 갑자기 날아든 밝은 빛

의 줄기는 섀도우의 검을 완벽히 퉁겨내어 자칫 목숨을 잃을

뻔한 기사를 살렸다.

"뒤로 물러서시오! 저 자는 마족이오. 그것도 중급에 속하는

것 같소. 게다가…… 인간의 몸을 장악하여 마계에서 사용할

수 있는 본래의 힘의 대부분을 끌어낼 수 있으니, 그대의 힘으

로는 상대할 수 없을 것이오!"

몇 분 전 젊은 기사가 분 나팔 소리를 듣고 급히 달려온 프리

스트들 중 한 명의 목소리였다. 나이가 지긋이 들었지만, 수려

한 외모를 지닌 노인이었는데 이마에서 빛을 발하는 문양을

보아서는 용기의 신을 섬기는 자인 것 같았다. 게다가 입고 있

는 사제복 또한 신전에서 상당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자의

것이었기에, 젊은 기사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부러진 검을

수습하여 뒤로 물러섰다.

다행히 나팔 소리를 듣고 달려온 신관들의 수는 열 명 가량이

나 되었다. 근처 신전을 수리 중인 드워프들을 돕고 있던 신관

들이었다. 가장 나이가 든 용기의 신 프리스트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나이가 어려 불안해 보이기는 했지만, 지상계에 출현

한 마족 정도는 쉽게 제압할 수 있을 정도의 수였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제약을 받는 마족의 힘과 비교하

였을 때의 얘기이고, 섀도우는 인간의 몸을 빌어 거의 완벽한

마족의 힘을 구현할 수 있게 된 행운의 존재이니….

섀도우 나이트 또한 자신이 발현할 수 있는 마족의 권능을 속

으로 계산해보았다. 그리고 신관들의 신성력을 대강 가늠해보

니, 크게 신경 쓸 필요도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크크크크. 재미있어. 마족에게 호되게 당하는 신관들의 모

습. 정말 궁금한데?"

묘한 미소를 지은 섀도우 나이트. 그가 그렇게 풍검술의 녹

색 기류가 실린 검을 쥔 채, 신관들을 맞이하려 움직이기 시작

했다.

"폐, 폐하! 큰일입니다! 에리아 시의 남쪽 성곽으로 마족 한

명이 침입했다고 합니다! 지금 근처에 머물고 있던 신관들이

달려가 마족을 막고 있다고는 하지만, 오래 버티지는 못할 것

입니다. 게, 게다가……."

다급하게 황제의 개인 임시 천막으로 들이닥친 로얄 가드 티

탄. 검은색의 짧은 머리가 호전적인 이미지를 자아내고 있는

그의 얼굴에 땀이 잔뜩 흐르고 있었다. 막 잔뜩 쌓여있는 서류

를 살펴보기 시작하던 미스티는 무례하게 천막으로 들어온 그

를 짜증스럽게 노려보다가 마족이라는 단어에 크게 놀랐다.

"마족이라뇨? 감히 신성 제국의 수도에 마족이 나타났다는 건

가요? 혹시 타크니스. 어둠의 마계 마왕인 그인가요?"

"아닙니다. 그 자는 아니지만, 상대 마족은 샤우드 백작님의

가문에서 내려온다는 풍검술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두 달 전쯤, 마족에게 육체를 빼앗겼다고 했던 그 나이츠라는

샤우드 백작님의 아랫사람인 것 같습니다."

급히 무례를 용서하라는 듯이 무릎을 꿇은 티탄의 얼굴에는

곤란하다는 감정이 여실히 묻어났다. 미스티 역시 나이츠라

는 이름을 듣고는 잠시 몸이 굳은 듯 움직이질 못했다. 하지

만 그의 몸에 들어간 마족은 타크니스의 신임을 얻고 있는 중

급 마족 섀도우 나이트인 만큼 이렇게 멍하니 있을 수만은 없

다는 판단 하에, 미스티는 급히 의자에서 몸을 일으켰다.

"티탄. 사람들을 지켜서 빨리 가디언 나이트 아투와 궁중 마

법사 실피스. 그리고 샤우드 백작을 불러줘요. 지금 당장 마족

이 나타난 곳으로 가봐야겠어요."

"하, 하지만 황제 폐하! 마족은 위험한 존재입니다. 차라리 신

관들이 그를 완벽히 제압하고 난 뒤, 안전한 상황이 되면 가보

시는 게……."

"아니에요. 지금 가봐야겠어요. 정 불안하다면 내가 언급한

사람들을 제외하고 다른 사람들의 동행 또한 허락하겠어요.

어쨌든 지금 빨리 움직여줘요."

미스티는 단호하게 소리친 뒤, 마족을 만나러 갈 채비를 하였

다. 손목의 팔찌도 확인하고, 얇은 옷안에 받쳐입은 가죽 갑옷

도 확인했다. 검술은 사용할 수 없지만, 그래도 호신용으로 날

이 잘 든 단검까지 허리에 찼다.

"흐음."

티탄은 황제 폐하의 모습을 보고 그 분의 결정을 돌릴 수 없

음을 깨달았다. 작게 신음한 그는 하는 수 없이 명에 따르기

위해 천막을 나서 빠르게 발을 옮기기 시작했다.

"미스티. 정말이야? 나이츠가 나타났다는 게 정말이야?"

방금 전 미스티와 티탄에게 모든 말을 전해들은 아투였지만,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하고는 다시 한번 그녀에게 되물었다.

벌써 몇 번째 질문인지 모른다. 처음에는 가볍게 대답해주던

그녀도 이제는 참을성이 극에 달했는지 이마에 힘줄 하나를

달고 아투를 노려보았다.

"하, 하하하. 알았어. 알았다고. 하지만 믿어지지 않아서 말이

야."

"실피스님! 텔레포트로 이동할 순 없습니까?"

일행 모두 황급히 전력으로 달리고 있는 가운데, 가장 앞 서

달리고 있던 샤우드 백작이 조금 멀리 보이는 남쪽 성벽을 확

인하고는 급한 표정으로 뒤를 돌아보았다. 비교적 체력이 약

한 실피스는 일행 뒤에 쳐져 있다가 그의 말을 듣고 일행 모두

에게 손짓을 해 멈춰 서게 했다.

---

후우. 드디어... 마족에게 몸을 빼앗긴 나이츠가... 황성에 나

타났습니다. 즐독하세요.^^

134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