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렘마스터] # 부활, 알 수 없는 내일[1]
부활, 알 수 없는 내일
다크 엘프족의 최고 수장 느비누, 냉철한 판단력으로 지금껏
어둠의 종족이라는 다크 엘프를 잘 이끌고 생활하던 그녀의
얼굴에 긴장된 빛이 떠올랐다. 그 어떤 일 앞에서도 당황하지
않고 여유를 가지던 그녀가 드디어 동요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녀는 은빛 머리칼을 싸움에 방해되지 않도록 뒤로 묶기 위
해 양손으로 머리를 뒤로 쓸어 넘겼다. 그리고는 가느다란 끈
으로 그것을 틀어 묶고는 다시 고개를 들어 앞을 바라보았다.
회색 빛으로 물든 대지. 크고 작은 바위들과 돌들이 해안가를
가득 메우고 섬 자체를 가득 메우고 있었지만, 지금 그녀의 옆
으로 보이는 것은 오로지 건강하게 자라난 굵은 기둥의 나무
들뿐이었다. 정령 마법으로 숨어있는 다크 엘프 군사들도 모
두 자신감에 가득 찬 표정이긴 했지만, 동시에 불안감도 내비
쳤다. 느비누는 서서히 땅으로 내려오는 거대한 드래곤들의
형체를 눈에 담으면서 자줏빛 단검을 쥔 손에 서서히 힘을 가
했다.
-느비누 수장님. 명령을 내려주십시오. 적들이 왔습니다.-
축축한 바닷바람을 타고 다크 엘프 동족의 전음이 느비누에
게 들려왔다. 그녀는 얼굴선을 따라 흐르는 땀을 대충 닦아내
면서 같은 전음을 흘렸다.
-아직 움직이지 마라. 우리들은 기습적인 공격에 능한 종족이
다. 일단 적은 의식이 행해지는 섬의 중앙까지 가기 위해 이
숲을 통과할 것이다. 그때를 노려 독을 바른 단검을 투척해
라. 그리고 재빨리 모습을 감춰 그들에게서 멀어진 뒤, 정령
마법으로 적을 상대해야 한다.-
-알겠습니다. 끝까지 살아남으십시오.-
그 다크 엘프는 진심 어린 한 마디 말을 전한 뒤, 전음을 끊었
다. 느비누는 홀로 고개를 끄덕이면서 적들이 다가오기만을
기다렸다.
탁탁탁.
지금껏 살아온 생애에서 이렇게 시간이 가지 않은 적은 처음
이었다. 마치 시간이 정지한 듯한 느낌을 받은 느비누는 그만
방심하여 모습을 드러낼 뻔했지만, 금세 능력을 발해 다시 꼼
꼼히 모습을 숨겼다.
"숲입니다. 적이 매복해있을 가능성이 있으니, 조심해야 합니
다."
"흥! 웃기지 마라. 하찮은 인간들이 일을 그르치려 하는구나.
매복 따위가 겁나면서 어찌 파괴신의 부활을 막으러 나선 용
사들이라 자처할 수가 있느냐. 무섭다면 지금 당장 돌아가라.
우리 드래곤 일족이 모두 해결할 테니."
"죄, 죄송합니다. 지금 즉시 전진하겠습니다. 전원 돌격 준비
를 갖춰라!"
'큭큭큭큭. 일이 꼬이는 줄 알았더니, 그 잘난 드래곤 덕분에
해결됐군.'
느비누는 잠시 졸였던 마음을 추스르고는 다시 자줏빛 단검
에 힘을 불어넣기 시작했다. 0.4베타 정도 길이의 검날이 웅웅
거리면서 그녀의 힘과 공명했다. 하지만 이미 바람의 정령으
로 모든 새어나가는 소리를 차단했기에 적들에게는 아무 소리
도 들리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진군하라!"
적장의 외침에 느비누를 비롯한 다크 엘프 군단은 속으로 쾌
재를 불렀다. 뜻대로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약간은 적은 듯
한 느낌의 기사단이 이제 곧 숲으로 들어올 것이고, 기습을 받
고 혼란에 빠지게 되면 정령 마법으로 마무리를 한다. 비록 상
대 적진에 드래곤이 있다는 것 때문에 부담이 되긴 했지만 애
초에 드래곤들은 자신들의 몫이 아니었다. 그 잘난 종족은 타
천사들에게 맡기면 그만이었다.
-이때다! 모두 독 묻은 단검을 모조리 투척하라!-
느비누는 딱 좋은 타이밍을 잡고는 전음술로 일족에게 신호
를 보냈다. 순간 모습을 감추고 숨을 죽이던 그들이 일순간 숲
에 나타나면서 손에 쥐고 있던 단검을 정확히 적의 몸을 향해
투척했다. 제 2, 제 3의 공격이 이어졌고 갑작스런 공격에 당
황하여 손도 쓰지 못한 적 기사단의 일부가 괴성과 신음을 흘
리면서 바닥에 쓰러져 마구 발버둥을 쳤다.
"매복이다! 적의 계략에 당했다!"
적들 기사단의 지휘관들이 혼란에 빠진 기사단을 급히 뒤로
빼려했지만, 이미 죽음을 눈앞에 둔 자들이 명령에 쉽게 따를
리가 없었다. 덕분에 다크 엘프들의 단검 투척에 의해 희생되
는 수가 늘어났다.
『머저리들! 뒤로 물러서라!』
막 신이 나서 단검을 연거푸 날리던 느비누의 이마가 찌푸려
졌다. 에상보다 적을 많이 잡기는 했지만, 갑자기 들려온 드래
곤 피어 때문에 정신을 차린 기사단이 뒤로 물러선 까닭이었
다. 이제 거리에 상당했기 때문에 단검을 던지는 것은 바보 같
은 짓이었다. 느비누는 단검을 바닥에 내려놓으며 다시 전음
으로 말했다.
-투척 중지! 일정 거리를 유지하면서 숲에 몸을 숨기고 가장
자신 있는 정령술과 정령마법을 발휘해라!-
-네!-
-예, 알겠습니다!-
다크 엘프들은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수장의 명이 떨어지
자마자 빠르게 진형을 바꾸어 뒤로 물러섰고, 그들 모두 극도
의 정령력을 발휘하여 각기 다른 속성, 그리고 각기 다른 수준
의 정령들을 불러내기 시작했다.
녹색 빛의 바람의 정령, 흙빛의 대지의 정령, 푸른빛의 물의
정령, 붉은 빛의 불의 정령이 동시에 발휘하는 그 자연의 힘
은 결코 작은 것이 아니었다. 다크 엘프 군단 천 여명을 훨씬
넘는 그들이 소환해낸 정령들의 수도 그들과 동일. 정령이 쏘
아낸 각 속성의 힘이 뒤로 물러서며 한 숨 돌리고 있는 기사단
을 향해 쇄도했다.
콰과과과광!
엄청난 폭음과 섬광 그리고 강렬한 충격파가 순식간에 기사
단을 덮쳐버렸다. 매복 지역에서 벗어났다고 생각하며 방심하
던 기사단은 다시 한번 그 정령 마법 공격으로 인해 호되게 당
하게 됐고, 사상자들이 순식간에 속출했다. 어찌 보면 이번 일
의 주범이라고도 할 수 있는 세 드래곤은 잠깐동안 절반이나
전투 불능이 되 버린 기사단 앞을 막아서면서 급히 힘을 끌어
올려 보호막을 쳤다.
-후후후후. 성공이다. 기사단의 피해를 최대화했다. 그런
데… 생각보다 그 수가 적구나. 뭔가 이상한데….-
느비누는 드래곤들조차 당황하여 쉽게 나서지 못하자 속으
로 쾌재를 부르면서도 이상하다는 생각에 고개를 갸우뚱했
다. 연합군은 대륙 각 국가의 정예 군사들만을 모았을 텐데,
왜 이런 일개 기사단 일부만이 보이는 것인가. 그때 느비누의
궁금증을 풀어주는 달갑지 않은 소식이 들려왔다.
-느비누 수장님. 이들은 그저 퓨티아 제국의 기사단일 뿐입니
다. 게다가 전방 배치되었던 자들은 그 중에서도 실력이 떨어
지는 자들인 것 같습니다. 약간 떨어진 거리에서 상당한 기를
내뿜으며 다가오는 기사가 약 100여명 정도 됩니다.-
-수장님. 지금 운디네와 실프에게 명하여 바다를 살펴본 결과
가 입수됐습니다. 현재 도착한 적은 드래곤들과 엔젤 나이트,
그리고 제국의 정예 병력뿐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두, 세시간
정도 떨어진 바다 위에 거대한 전함이 바다를 수놓으며 다가
오고 있다고 합니다. 연합군 본군이 실려있을 것으로 생각되
는 배들입니다.-
보고를 들은 느비누의 얼굴이 다시 딱딱히 굳었다. 지금 잠
깐 동안 벌인 싸움에서 승리한 것도 적이 드래곤의 말에 주눅
이 들어 대책 없이 전진하였기에 이룬 것이었으니, 다시 그런
어이없는 실수를 범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다크 엘프 군단이
비록 용맹하고 수장의 말에 절대 복종을 하는 성격을 지닌 존
재라고는 하지만, 연합군 본군까지 밀려와 섬에 상륙한다면
아주 힘들어질 거라는 게 느비누의 생각이었다.
-이제 어떻게 할까요, 수장님?-
-드래곤이 앞으로 나섰으니, 우리들의 힘으론 무리다. 물론
정령왕 정도를 소환할 수 있는 자가 두 명만 더 있더라도 어떻
게 해볼만하겠지만, 나 혼자 소환한 정령왕으로는 무리다. 일
단 타천사가 지원을 해줄 때까지는 어느 정도 간격을 유지하
고 뒤로 후퇴하라.-
느비누는 일단 사태를 정확히 판단하고는 그렇게 일족에게
명령을 내렸다. 동시에 고개를 끄덕인 다크 엘프 군단이 기사
단과 드래곤의 동태를 살피면서 뒤로 물러섰다. 그들로서는
드래곤이 본체로 현신하지 않고 있는 것이 그나마 다행스러웠
다.
'으음?'
순간 뒤로 물러서던 느비누의 얼굴에 희색이 돌았다. 붉게 물
든 하늘에서부터 약간은 어둡게 느껴지는 백색 광채에 둘러싸
인 타천사 무리들이 하강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들을 이끄는
루카엘은 아쉽게도 보이지 않았지만, 상대는 방금 전 성급함
을 보였던 왠지 어설퍼 보이는 드래곤 셋이었다. 그들과 상극
의 존재인 타천사들이 불리한 싸움은 아니었기에 느비누는 일
족의 후퇴를 잠시 멈추게 하고는 곧 무언가 일어날 싸움터에
시선을 고정했다.
그렇게 섬에 상륙한 신성 기사단과 로드의 명으로 그들을 돕
기 위해 나선 세 마리의 드래곤을 맞이하여 다크 엘프 느비누
와 타천사 일부가 힘겨운 싸움을 벌이고 있는 동안, 다이티는
그들이 벌어주는 시간으로 서서히 의식을 시작하고 있었다.
쿠르르 쾅!
요란한 천둥소리가, 고요하지만 으슥한 분위기의 하늘을 쩌
렁쩌렁하게 울려 진동시켰다. 하늘에 그려진 붉은 마법진 그
랜드 서클은 마치 점점 아래로 하강하는 듯한 느낌을 자아내
며 팽창하기 시작했다. 다켈리사 아일랜드를 둘러싸고 일종
의 막 같은 것까지 형성하던 파괴의 기운과 신성력은 이제 극
성에 달해 푸르스름한 빛깔을 띈 채, 빛의 입자로 화하여 이
미 시작한 의식의 장소로 모여들고 있었다.
"세상 모든 것들의 순수한 물로서 나의 악을 씻어내리라."
다이티는 타크니스에게 건네 받았던 서적을 머릿속으로 외우
고 있었다. 가장 첫 번째로 해야할 일은 순수한 신성력으로 물
든 성수로서 의식의 시전자의 몸을 씻어내는 것. 성지에서 알
아낸 바로는 어이없게도 성수는 세상을 포근하게 감싸고 있
는 바다 그 자체였다. 다이티는 제단 위에 미리 떠다놓은 바닷
물이 담긴 그릇을 두 손으로 조심스럽게 들고는 경건한 표정
으로 머리 위에서 그것을 쏟았다.
빛을 받아 반짝이던 바닷물. 즉 세상 모든 것들의 눈물이 정
화되어 존재하던 성수가 그의 머리를 따라 흘러내려 발끝까
지… 전신을 촉촉이 적셨다. 풍성하던 로브가 물을 머금어 약
간 무거워진 듯 했다. 하지만 다이티는 그런 것 따위에 굳이
개의치 않았다. 이제 곧 모든 것을 뛰어넘을 수 있는 존재, 신
이 되는 것만이 남았을 뿐이니 말이다.
'제기들을 정확한 순서에 따라 몸에 지닌다.'
다이티는 두 번째로 해야할 일을 속으로 한번 읊으면서 하얀
제단 위에 올려진 파괴의 조각들 중, 어둠의 왕관을 집어들었
다.
어둠의 왕관이라는 이름과는 다르게 왕관은 밝은 금색의 빛
을 띄고 있었다. 게다가 아름다운 빛깔의 보석들이 세공된
채, 왕관에 박혀 있어 그 영롱함을 더했다. 왕관은 일단 머리
에 딱 맞을 수 있도록 넓은 띠의 형식으로 원형을 그리고 있었
다. 그리고 그 띠 위에 황금 장식들이 세공되어 정교한 솜씨
로 부착된 형태였다. 왕관의 앞 부분에는 파괴의 인과 어둠의
인이 새겨져 엄청난 기운을 발했고, 왕관의 이마 부근에 박혀
진 커다란 흑빛의 보석에서는 그것을 쓴 자의 힘을 몇 배나 능
가할 수 있게 해주는 증폭 역할의 기가 뿜어졌다. 역시 다이티
가 조심스럽게 어둠의 왕관을 머리 위에 올리자 평소에 느낄
수 없었던 활력이 몸 깊은 곳에서부터 솟구쳤고, 뭐든 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더불어 강력한 힘이 생겨남이 느껴졌다.
'이, 이런 대단한 힘이 있다니…….'
솔직히 다이티는 타크니스에게서 신이 되는 방법을 얻었지
만, 그동안 석연치 않은 곳이 많았다. 일단 필요한 제기들이
모두 파괴의 힘과 관련된, 어둠의 힘과 관련된 것들이기에 신
관이었던 그의 의심은 커질 수밖에 없었다. 물론 타크니스는
서적을 넘기면서 그 제기들은 성스러운 힘과 반작용을 일으
켜 신이 될 수 있는 막대한 에너지를 발산케 하는 매개에 지나
지 않는다고 안심시켰지만, 다이티가 본능적으로 느끼는 불안
감마저는 지울 수가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지금 어둠의 왕관을 머리에 쓰고 난 다이티의 머릿속
에서는 그런 불안감과 불신감이 씻은 듯이 사라졌다. 오로지
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동시에 왕관에서 느껴지는 기운에게
동질감마저 느꼈다. 무언가 일치되는 듯한 그러한 기분…….
다이티는 감정을 숨기지 못하고 희색을 띄었지만, 과연 그게
좋은 일이 될 수 있을지…. 그는 아직 자신에게 일어날 일을
전혀 알지 못했다.
"파멸의 장갑……."
다이티는 흥분을 가라앉히며 다시 제단으로 손을 뻗어 은빛
물체를 집어들었다. 알 수 없는 재질의 금속으로 만들어진 투
박한 느낌의 장갑. 전체가 모두 금속으로 제작되어 있었지만,
그 무게감은 얼마 되지 않았다. 손가락 관절은 움직이기 쉽게
금속을 부분부분 나누어 연결해놓은 듯 했다. 게다가 장갑은
마치 다이티를 위해 만들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의
그의 손에 딱 맞았다.
"허어! 이런 힘이 지상에 존재했다니, 정말 믿을 수가 없군
요!"
장갑을 끼자마자 손으로 모여드는 강력한 힘. 그것은 분명 예
전에 다이티가 지닌 신성력과는 거리가 먼 물리적인 힘이었
다. 순간적으로 주먹을 불끈 쥐고 옆에 있던 바위를 노려본 그
의 손이 바람을 가르며 바위로 날아갔다.
콰과과과광!
굉음과 함께 바위 전체에 금이 가며 완전히 박살이 나버렸
다. 한창 시절에도 가질 수 없었던 물리적인 힘을 초로에 접어
들어 가지게 되다니. 다이티의 얼굴에는 깊은 감회가 서렸다.
하지만 그의 온화하면서도 차분하던 눈빛은 이제 불그스름한
빛을 띄고 있어 괴리감을 자아냈다.
파괴하라.
'다, 당신은 누구요? 내가 신이 되는 것을 시기하는 악마요?'
파괴하라. 나는 너이고, 너는 나이다. 나의 명에 따라 모든 것
을 파괴하라. 그리고 즐겨라.
'싫어요. 내가 신이 되려하는 것은 그저 무책임하게 지상계
를 방치하는 신들을 벌하기 위해서랍니다. 아무리 악마의 속
삭임이 나를 유혹하려 해도 나는 넘어가지 않아요.'
다이티는 마음 깊은 곳에부터 들려오는 기이한 목소리에 흠
칫했지만, 이내 평정을 되찾고 그런 목소리를 부정했다. 그리
고는 다시 제단으로 손을 뻗어 심연의 부츠를 가져다가 발에
신었다. 그림자의 로브마저 어깨에 두르니, 그에게서 풍겨지
는 엄청난 신성력은 신을 능가할 정도가 되어 있었다. 다이티
는 벌써부터 신이 된 듯한 착각 속에서 다시 한번 들려오는 마
음 속의 목소리를 듣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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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우. 시작됐습니다.
즐독하세요^^*
아, 잉글랜드 오늘 경기 아주 좋더군요. 16강의 꿈이 사라지
지는 않은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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