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골렘마스터-205화 (205/244)

[골렘마스터]  # 때가 임박하도다[2]

"후우. 하긴 루미니 공작의 말을 잘 따져보면 그를 제외하고

는 마땅한 인물이 없지. 바람의 힘을 사용하는 검을 든 자. 바

로 풍검술을 사용하는 사람을 칭하는 말과 다를 바가 없으니."

"그런데 왜 나이츠의 몸에 스며든 섀도우 나이트. 중급 마족

이 메션 왕국의 아크 스태프를 노리는 건지 모르겠어요. 이미

다이티를 속여 파괴의 신을 부활시키려는 계획이 순차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마당에 또 무슨 짓을 벌이려 하는 것인지….

행여 일을 벌인다고 해도 현재 상황에서는 마족의 또 다른 계

획을 막을 만한 여력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데 말이죠."

"흠. 어쨌든 아크 스태프라고 하는 물건은 특별한 능력이 있

다고 알려진 물건은 아니니, 더욱 더 마족들의 속셈을 알 수

없는 노릇이군. 아투 백작 자네가 아크 스태프에 대해선 더

잘 알지 않나?"

샤우드 백작의 얼굴에 옅은 미소가 떠올랐다. 항상 사리를 분

별하며 이치에 맞게 행동하는 그가 지금은 혈연 관계보다 더

중요하게 여겼던 사람의 부재로 인해 괴로워하고 있었지만,

지금은 아투와 대화를 나누면서 많이 마음을 정돈한 뒤였던

것이다.

"후. 뭐 제가 알기로도 별 힘은 없다고 하더군요. 제 아버지

인 아트란 백작에게서 들은 내용이니 아마 확실할 거예요."

"하하하하. 그렇게 따지고 보면 자네는 메션 왕국에서는 백작

의 아들. 즉 영애가 되는 거고 여기서는 미스티 황제 폐하와

연인 관계에다가 또한 가디언 나아트 백작의 칭호까지 받은

엄청난 사나이가 되는군. 자네는 참 복도 많네."

아투의 등을 툭툭 두드리던 백작의 얼굴은 다시 평상시의 시

원스런 표정이 떠올라 있었다. 이에 용기를 낸 아투가 결정적

인 곳을 찌르며 말했다.

"뭐 제가 생각하기에도…… 조금은 그런 것 같아요. 그리고

샤우드 백작님. 나이츠의 일. 아마도 잘 될 거예요. 그는 절대

로 마족에게 굴할 약한 존재가 아니라는 걸 백작님도 잘 알잖

아요. 힘내요."

"물론, 나 또한 나이츠가 꼭 우리에게 돌아와 줄 것이라고 믿

고 있네."

둘은 서로를 바라보며 모처럼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웃음을

흘리며 꽉 틀어 막혔던 마음을 열었다. 솔직히 아투는 샤우드

백작에 대해 그리 좋은 감정을 지닌 것은 아니었다. 예전 미스

티가 제국의 공주였다는 사실을 밝혔을 때, 그가 보였던 태

도. 물론 제국의 귀족 입장으로서는 당연한 일일지도 몰랐지

만 당사자인 아투에게는 조금 심한 감이 없이 않아 들었기 때

문이다. 하지만 나이츠를 주제로 한 이번 대화로 인해 둘은 겉

으로 드러나지 않는 일종의 묘한 끈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그럼 난 그만 내려가 보겠네. 영지의 일도 보고 받아야 하

고, 앞으로의 일도 조금 대비해야 하고. 그럼 푹 쉬고 나중에

보세나."

"네, 저도 내려가 보겠습니다."

샤우드 백작은 아투와 간단한 인사를 나눈 뒤, 반대편 계단

을 통해 성벽을 내려갔다. 그의 뒷모습을 잠시 바라보고 있던

아투도 곧 바주크를 대동한 채, 붉게 물든 으스스한 하늘을 뒤

로하고 아래로 향했다.

샤우드 백작과의 짧은 대화를 뒤로하고 아투가 급히 향한 곳

은 바로 그의 친구인 기스뮬의 연구실이었다. 그는 연구소에

서 먹는 것과 자는 것을 해결하기 때문에, 그곳을 제외하고는

황성을 돌아다니는 일이 거의 적었기 때문이다.

그의 연구실은 파괴된 황성 동쪽 지역을 조금 벗어나는 곳에

위치했다. 무엇보다도 안전성과 견고함을 살려 제작된 임시

가건물로서 여러 가지 마법 이론에 관련된 서적과 고대 마도

제국에서 전해지는 마법 과학의 이론이 담긴 서적들이 모여있

는 도서관과도 같은 곳이었고, 용량별로 나눠진 마나석과 투

명한 화이트 크리스탈이 연구하기에 충분할 정도로 쌓여있

어, 기스뮬이 가장 바라는 모든 것들을 충족시켜주는 곳이었

다.

똑똑똑.

비록 친구의 연구실이지만, 아투는 예의를 갖춰 문 앞에 멈춰

선 뒤 문을 두드렸다. 기스뮬 혼자 사용하는 연구실이 아닌,

마법 과학이라는 장르에 호기심을 느낀 여러 견습 마법사들

이 함께 연구를 하는 장소임을 의식한 까닭이었다.

"누구십니까?"

털털한 어조의 목소리가 노크 소리에 바로 뒤이어 들려왔다.

아주 익숙한 목소리였기에 아투는 대답도 없이 문을 벌컥 열

고 안으로 들어갔다.

"아투였군. 이렇게 바쁜 때에 웬 일이야? 빨리 준비하고 라미

트 왕국으로 갈 사신 채비를 해야 하는데."

연구실 안은 조용했다. 아마 다른 연구원들은 일찍 휴식을 취

하러 돌아간 모양이었다. 기스뮬은 이미 가방을 꺼내어 여러

가지 옷가지들과 간단한 여행용 물품을 챙기고 있었고, 지금

은 약간 부피가 큰 배낭에다가 마나석과 알 수 없는 금속 등등

을 꾸리고 있었다.

"뭐 그냥…… 지금 당장 해야할 일도 없고 기다려야 할 상황

이니까 와봤어. 아, 그리고 아까 미스티에게 존댓말을 쓰는

걸 보니까 되게 웃기던데?"

"크윽. 별 수 없는 일이지. 그녀는 잘 나가는 대륙 제국의 황

제인 입장이고 난 그저 그녀의 밑에서 지원을 받아가며 일하

는 말단 연구소장일 뿐인데."

기스뮬은 장난스럽게 웃고 있는 아투를 보며, 투덜거리면서

답했다. 막 커다란 배낭까지 가득 채운 그는 벽에 기대어놓았

던 전투용 도끼 배틀 액스를 손에 쥐고는 가방을 양쪽 어깨에

짊어졌다. 연구 소장이라는 말에 어울리게 차려입은 롱코트

의 벌어진 사이로 갈색의 가죽 갑옷이 불쑥 튀어나와 있었다.

"하하하. 준비는 단단히 하고 가는 것 같은데?"

"이제야 내가 원하는 일을 할 수 있게 되었는데, 고작 사신으

로 길을 가다가 마물들에게 죽을 순 없잖아? 뭐 기사까지 동행

한다고 하니 조금 안심은 되지만, 방심은 금물이지. 모든 일

에 있어서 말이야."

"방심이라……. 왠지 정곡을 찔린 기분인데? 크흠."

아투는 은근슬쩍 아픈 곳을 찔러오는 친구의 옆에 다가가 그

의 넓은 어깨에 손을 올렸다. 확실히 파괴의 조각을 빼앗기게

된 것은 다이티 세력을 얕잡아보고 방심을 했던 결과였기에,

그의 마음 한 구석이 아려왔다. 절로 분한 마음에 손에 힘이

들어가는 것을 어찌할 수가 없었다. 탄탄한 기스뮬의 어깨도

분노에 찬 그의 완력을 무시할 수는 없었던 모양인지 얼굴을

찡그리며 아투의 손을 거칠게 밀어냈다.

"이봐! 지금 누구 어깨를 박살내고 싶은 거야?"

"아, 미안. 나도 모르게 그만……. 어쨌든 이번 일 무사히 마

치고 돌아오길 바랄게."

"그런 말은 내가 너한테 해줘야 하는 얘기 같은데? 나야 그냥

미스티의 말을 라미트 왕국의 국왕에게 전하기만 하고 다시

황성으로 돌아와 연구에만 전념하면 되지만, 넌 아직 제대로

된 싸움도 시작하지 않았잖아?"

기스뮬은 아투를 향해 그렇게 말하면서 짐을 모두 챙겨들고

는 연구소 문으로 걸어갔다. 아투는 친구 녀석의 말을 곰곰이

되씹어보더니 결의를 다지는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거

렸다.

"하하. 아투.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는 마. 파괴의 신 따위에

게 지상계 사람들과 생명들이 질 리가 없잖아? 게다가 드래곤

들과 엔젤 나이트 등등 여러 강력한 존재들까지 나섰으니 별

문제는 없을 거야. 흠. 그럼 나는 라미트 왕국에 빠른 시일 내

로 다녀오지. 그동안 무사하길 빌어."

"그래, 기스뮬. 잘 다녀와. 우리 서로 모든 일이 잘 풀렸으면

좋겠다."

아투는 자신의 신장에 거의 절반밖에는 되지 않지만, 언제나

강인하고 굳센 정신력으로 생활하는 기스뮬을 존경 어린 눈빛

으로 바라보면서 그에게 잠시동안의 작별 인사를 했다. 곧 기

스뮬은 먼저 나가보겠다면서 연구소를 나섰고, 고요한 연구

소 안에는 아투만이 홀로 남겨졌다. 그는 텅 빈 연구실을 잠

시 돌아보면서 방금 전 친구와 대화를 나눌 때처럼 장난기 어

린 표정을 거두고 슬픈 표정을 지었다.

"그래, 모든 일이 잘 풀리겠지. 만약 우리가 다시 만날 수 있

게 된다면……."

그는 그렇게 알 수 없는 말을 혼자 중얼거리면서 연구실을 마

지막으로 빙 둘러보고는 쓸쓸한 뒷모습을 남긴 채, 방을 나섰

다.

*  *  *

파괴의 기를 발산하는 무시무시한 제기들. 예전 파괴의 신 디

스트로이어의 육체였다고 전해지는 그 다섯 개의 조각. 죽음

의 낫, 어둠의 왕관, 그림자 로브, 파멸의 장갑, 심연의 부츠.

한 곳에 모인다면 어떠한 일을 초래하게 될지 모르는 그 엄청

난 물건들이 지금은 현재 모든 베일을 벗은 채, 한 존재의 손

에 들어가 있었다. 그는 파괴의 조각들에서 뿜어지는 엄청난

신성력과 파괴의 기에 못지 않을 정도로 상당한 존재감을 내

뿜기 시작한 자였고, 지금은 세월과 함께 늙어버려 주름이 진

육체와는 달리 그의 눈동자는 괴기에 가깝게 빛나 주변을 압

도했다.

"다이티. 이제 모든 것이 너의 뜻대로 이루어졌다. 우리들에

게 약속한 것들은 잊지 않았겠지?"

은빛 머리를 허리까지 늘어뜨리고 가느다란 눈매를 매섭게

빛내던 다크 엘프족의 수장 느비누가 낮게 깔린 경고음에 가

까운 음성으로 물었다. 주변을 가득 채우고 있던 위압감 있는

분위기가 일순 그녀 쪽으로 넘어가는 듯 했다.

"이제 곧 때가 되지요. 그 때가 되면 모든 것이 이루어질 거예

요."

중성적인 어투와 음성으로 가볍게 물음에 대답한 다이티는

다시 한번 제단 위에 갖춰진 파괴의 조각들을 뚫어져라 쳐다

보았다. 순간 그의 온화하던 눈빛이 엄청난 살기와 이상한 빛

깔로 번뜩였지만, 그것을 알아보는 존재는 아무도 없었다. 다

만 그의 몸에서 언제부턴가 뿜어지는 파괴의 기. 그것을 느끼

고 섬뜩한 느낌을 본능적으로 받고 있을 뿐이었다.

"이제 곧 그랜드 서클에 의해 신이 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줄 거대 천공 마법진이 완성될 거예요. 그 때에 맞추어 의식

을 거행한다면 제가 원하는 것도, 그리고 그대들이 원하는 모

든 것도 이루어질 테니, 그때까지만 협조를 바래요."

다이티는 다시 이번 일의 협조를 해주고 있는 존재들을 돌아

보았다. 황성에 쳐들어가 파괴의 조각을 빼앗아오는데 가장

큰공을 세웠던 다크 엘프의 수장 느비누. 그리고 엄청난 괴력

으로 전력에 많은 보탬이 되고 있는 리자드 맨 족의 수장, 스

파이크. 타 종족과 비교할 수 없는 전투력으로 전장을 누비는

역전 용사 묘인족의 수장, 쟈드. 트롤의 지도자 빙설의 야수까

지. 그들을 돌아본 다이티의 눈에는 잠시 떠올랐던 파괴의 본

능과 살기가 사라지고, 신뢰감이 떠올라 있었다.

'아직까지는 그들을 져버릴 때가 아니다. 이제 곧 그랜드 서

클의 절정에 달하고 모든 조건이 충족되어 내가 신이 되는 그

순간, 지상계를 위협하고 불합리하게 행동했던 모든 존재들

을 정화시키고, 내가 새롭게 탄생시키겠다. 조금만 더 시간이

지나면…….'

다이티는 다시 고개를 돌려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이미 붉은

구름이 크게 소용돌이치며 엄청난 크기와 수의 마법진을 하늘

에 그려놓고 있었고, 이미 구름 사이로 드러난 행성들과 달,

그리고 알 수 없는 코스모스의 존재들이 마법진의 구석구석

을 차지하여 그 힘을 증폭시키는 것 같았다.

샤아아아앙!

그때였다. 갑자기 다이티의 시선이 향해있던 허공에서 성스

러움을 머금은 빛이 터지면서 그 빛이 파도쳐 어떠한 형태를

이루어갔다. 늘씬하면서도 아름다운 여체의 굴곡이 드러났

고, 곧 날카롭게 조각된 듯한 인상의 타천사 루카엘이 바닥에

발을 딛고 서있는 미개한 종족들을 바라보면서 담담하게 말했

다.

"지금 고룡급 실버 드래곤 한 녀석이 이곳을 확인하고 사라졌

다. 아마도 이곳을 들킨 것 같으니, 곧 들이닥칠 세력에 대비

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드래곤까지 나선 걸 보면 확실히 드래

곤 로드인 그라디우스가 인간의 편으로 돌아선 모양인 것 같

군."

"어차피 이미 시간은 우리에게 기울어져 있어요. 당황할 것

도 없고, 이제 더 이상 피할 이유도 없지요. 이제 딱 하루만 지

나면 그랜드 서클의 힘이 절정에 달하니, 그 때까지는 무슨 일

이 있어도 그대들이 연합군 세력의 접근을 막아주었으면 해

요. 의식이 끝나게 되면 그에 합당한 권한을 드리도록 하겠어

요."

다이티는 루카엘의 보고에도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미리 준

비라도 해둔 모양인지 막힘 없이 명령을 내렸다. 연합군 세력

이 아무리 각 국의 실력자들과 정예 군사들을 모았다고 해도

다이티 세력 또한 그에 못지 않은 실력과 숫자를 지니고 있었

다. 이제 하루만 버티면 모든 것이 끝나고 새로운 세상이 찾아

오게 된다는 생각에 각 종족의 수장들은 마지막으로 결의를

다지는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기사단과 용병, 그리고 신관들. 마물들도 배치를 마쳤습니

다. 이제 대기할까요?"

막스윈과 드레이크가 땀을 흘리며 다이티와 각 종족의 대표

들이 있는 곳으로 달려와 보고했다. 현재 그들이 머물고 있는

곳은 나무들과 여러 가지 지형들이 천형적인 요새를 형성하

고 있는 곳이기에, 소수의 병력만으로도 다수의 적을 막아낼

수 있는 구조였다. 물론 이곳이 가장 그랜드 서클의 힘을 아무

런 저항 없이 받아들일 수 있는 곳이기에 선택된 곳이긴 했지

만, 방어를 목적으로 한다면 유리한 고지임은 틀림이 없었다.

그 둘 붉은 화염 기사단 단장의 얼굴에는 희망의 빛이 잔뜩 떠

올랐다.

"대기하도록 해요. 그리고 연합군이 몰려와도 섣불리 나서지

말고, 그들의 움직임을 살펴가면서 소극적으로 적들이 다가오

지 못할 정도로만 방어를 해야 해요. 시간을 끌기만 하면 된다

는 얘기예요."

"네, 알겠습니다. 그럼 위치로 돌아가겠습니다."

그들은 다이티를 향해 깍듯이 고개를 숙이고는 다시 몸을 돌

려 왔던 길을 되돌아 아래로 내려갔다.

"그럼 우리들도 위치를 잡아야겠군. 함께 데려온 일족들도 배

치를 하도록 하겠다. 모든 일이 잘 풀리기를 간절히 바란다.

살아남을 수 있다면 살아남은 뒤에 보도록 하지. 후후후후."

느비누는 왠지 모르게 심금을 울리는 그 한 마디를 남기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뒤쪽으로 펼쳐진 어두운 숲을 향해 녹

아들 듯 사라져 버렸다. 리자드 맨족의 수장 스파이크도 곧 붉

은 화염 기사가 사라진 아래쪽으로 걸음을 옮기면서 가장 아

래에 펼쳐진 드넓은 바다를 바라보며 내려가기 시작했다.

---

오늘은 한국 : 폴란드 전이 있는 관계로 학교에서 일찍 보내

줬습니다. 따라서 글이 일찍 올라간 것이지 연재 시간이 변경

한  것은 아니랍니다. 즐독^^

122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