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골렘마스터-199화 (199/244)

[골렘마스터]  # 그랜드 서클, 그 파멸의 징조[1]

그랜드 서클, 그 파멸의 징조

쿠르르릉.

갑자기 맑게 개인 하늘에서 요란한 소리가 울려 퍼지기 시작

했다. 구름 한 점 없이 맑던 하늘은 순식간에 몰려든 검은 구

름. 그것도 선홍색의 핏빛이 도는 검은 구름으로 가득 찼고,

스산한 분위기로 변모한 하늘에서는 엄청난 섬광과 함께 낙뢰

가 떨어져 대지에 내리꽂혔다.

후우우우웅!

서서히 불던 바람도 이제는 미친 듯이 대기를 휘저으며 나약

한 모든 것들을 쓸어버리고 있었다. 하늘로 모여든 핏빛의 검

은 구름은 그 광풍에 휩쓸려 서서히 형태를 달리했고, 이내 소

용돌이의 형상으로 변하며 무수히 많은 원들을 하늘에 그려놓

았다. 그런데 순간, 핏빛의 두터운 구름이 갈라지며 부분부분

이상한 것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하였다.

심연의 어둠. 모든 빛을 흡수한다는 대우주의 존재 중 하나

로 불리는 블랙홀. 그리고 아주 푸른빛을 띄어 시리도록 차갑

게 비치는 초신성 워터 아이. 아름답고 웅장하고 심오한 뜻을

담은 그것들이 하늘의 핏빛 구름을 가르며 드러났고, 이내 구

름으로 형성된 원을 중심으로 하여 그 반대편에서는 아주 커

다란 크기의 은색 빛을 띄고 있는 거대한 행성이 마치 달처럼

비춰지며 나타났다. 게다가 그것들 사이에는 은은한 보라색

의 빛의 실이 엉켜져 연결되어 있었는데, 원형으로 소용돌이

치는 핏빛 구름과 절묘한 조화를 이루어 하늘 전체에 커다란

마법진을 그려놓은 듯 보이게 했다.

그랜드 서클. 무수한 세월을 보낸 다음에서야 한번씩 세상을

정화한다고 하는 대우주 코스모스의 법칙. 바로 정화의 마법

진이 드디어 오랜 세월의 침묵을 깨고 때가 되어 그 모습을 드

러내고 있었던 것이었다.

쿠르르르르르릉!

그랜드 서클의 영향으로 대지가 크게 진동했다. 순식간에 바

닥이 쩍쩍 갈라지며 그 틈으로 용암이 솟구쳤고, 차갑게 식어

버렸던 생명의 터전을 아주 뜨겁게, 모든 것을 태워버릴 듯한

기세로 달구며 용암이 강이 되어 흘러 넘쳤다. 용암은 흘러흘

러 숲을 불태웠고, 생명의 불꽃을 꺼트렸으며 녹색의 실록이

우거졌던 토양을 죽음의 땅으로 바꾸어버렸다. 붉은 악마라

는 별칭이 전혀 어색하지 않을 정도였다.

물론 그 용암은 커다란 강을 이루어 대지 위를 흐르면서 퓨티

아 제국의 수도인 에리아 시까지 도착했다. 애써 재건해놓은

시의 외각 외성이 서서히 그 뜨거운 열기에 의해 녹아 내리기

시작했고, 근처에 생활하던 시민들은 아수라장이 된 집을 버

리고는 수도 중심인 홀리 캐슬로 꾸역꾸역 몰려가, 황제가 속

히 조치를 취해주기만을 기다리며 섬기는 신에게 기도를 올렸

다. 항상 고요하고 넉넉하기만 하던 황성은 순식간에 사람들

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다.

탁탁탁탁탁.

황성 홀리 캐슬의 복도를 궁정 예절도 지키지 않고 헐레벌떡

뛰어가는 존재가 있었다. 바로 드워프 마을에서의 잠깐 휴식

을 마치고 돌아와 스승님인 실피스에게 하루 종일 잔소리를

듣다가 겨우 밤늦게 잠이 들어 아직까지도 자고 있던 아투였

다. 하지만 남자치고는 예민한 감각을 가지고 있는 그가 성 바

깥에서부터 들려오는 사람들의 웅성거림과 비명 소리 등을 무

시하고 잘 처지가 못 되었다. 게다가 저 멀리 보이는 외각 외

성 바깥에서 솟구치는 거대한 붉은 기둥들. 원견 마법으로 그

것의 정체를 확인한 그는 지금 거의 경악한 얼굴을 하고 급히

황제의 집무실로 달려가는 것이었다.

거의 나는 듯이 복도를 달린 아투가 순식간에 황제의 집무실

앞까지 다다랐다. 급한 일이긴 했으나, 그는 이미 소집됐을 회

의를 예견하고는 옷매무새를 가다듬었다. 얼굴에 흐르는 땀

도 대충 닦아내고, 머리 모양도 대충 손으로 정돈하고 나서야

그는 집무실의 살짝 열려진 문을 밀고 안으로 들어갔다.

과연 그의 예상대로 이미 꽤 많은 사람들이 집무실의 의자를

채우고 있었다. 일단 황제인 미스티가 가장 상석에 앉아 심각

한 표정을 짓고 있었고, 미스티와 아투보다 훨씬 더 일을 빨

리 끝내고 도착했다는 드래곤 로드 그라디우스도 그녀의 동등

한 위치를 상징하는 자리에 앉아 침묵하고 있는 상태였다. 그

리고 그 밑으로는 아직도 영지에 돌아가지 않고 제국의 정사

를 돌보고 있던 루미니 공작과 레브로스 공작, 샤우드 백작과

빈츠 백작이 자리했고, 폰네스 후작도 보였다.

"이놈아. 왔으면 이리 와서 어서 앉아라."

마땅히 앉을 자리를 찾지 못해 집무실 안을 두리번거리던 아

투의 귀에 낯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돌려 목소리의

주인공을 확인하니, 아니나 다를까 스승님인 실피스였다. 그

의 옆에 앉아 있던 소울드도 아투를 향해 손짓을 했다.

"느, 늦어서 죄송합니다."

아투는 고개를 연신 꾸벅이며 황급히 스승님의 옆으로 다가

가 의자에 앉고는 살짝 얼굴을 붉혔다. 미스티는 그를 향해 그

윽한 시선을 한번 던진 후, 이내 엄숙한 표정으로 사람들을 돌

아보며 입을 열었다.

"갑자기 땅이 갈라지고 붉은 악마라고 불리는 용암이 솟구쳤

습니다. 게다가 하늘을 뒤덮기 시작한 기분 나쁜 핏빛 구름.

그리고 그 구름들 사이로 나타난 거대한 마법진. 그것에 대해

그라디우스님께서 자세히 설명해드릴 것입니다."

"흠흠."

그라디우스가 잠시 목을 가다듬었다. 사람들의 시선이 그의

얼굴로 쏟아졌고, 이내 그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말을 경청하

기 위해 신경을 곤두세웠다.

"그랜드 서클. 다들 들어는 봤을 것이다. 무한의 세월을 지나

한 차례씩 발동한다는 정화 마법진. 대우주 코스모스의 법칙

에 따라 나타나는 현상들 중 하나인 그랜드 서클이 지금 그 때

를 맞이하여 서서히 형성되고 있다. 불필요한 것들을 쓸어버

리기 위해 이제 대지를 가르고 대기를 찢어놓으며 모든 생명

들을 심판하겠지. 과거 만 년 전에도 그랜드 서클이 나타나

그 시절 강성했던 모든 국가가 멸망의 길을 걸었고, 드래곤들

도 레어에 숨기에만 급급할 정도였다. 그 정도로 그랜드 서클

일 때의 발산되는 기운은 엄청나다. 게다가 그랜드 서클의 힘

자체가 파괴의 힘이기 때문에, 파괴의 신 디스크로이어가 부

활할 수 있을 때로는 가장 적당하지."

"그렇다면 역시 타크니스는 다이티를 속이면서 이 때에만 신

이 될 수 있다고 했겠군요?"

가장 늦게 참여했다는 것을 계속 마음에 두고 신경을 쓰고 있

던 아투가, 무언가 실질적인 질문을 하기 위해 귀를 쫑긋 세우

고 있다가 드디어 기회를 얻어 물었다.

"아마도 그럴 것으로 예상된다. 지금 현재 파괴의 조각들 중,

세 가지가 우리에게 있다. 어둠의 왕관과 파멸의 장갑, 그리

고 그림자 로브이지. 다이티 세력은 분명히 그것을 빼앗아가

려 할 것이다. 그랜드 서클은 대략 2주정도 유지되기 때문에

무슨 일이 있어도 그 기간 안에 황성을 공격해오겠지."

"그렇다면 저희들이 확보한 파괴의 조각들만 완벽히 지키면

되는 거 아닙니까?"

루미니 공작이 그라디우스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며 의견을

제시했다. 하지만 황금빛 청년은 무겁게 고개를 가로 저으며

그의 말에 반론을 제기하였다.

"파괴의 조각들이 다 모인다면 파괴의 신이 완벽히 부활할

수 있게 되지. 하지만 그 중 몇 개만 있어도 부분적으로 힘이

부활할 수는 있다. 반 정도의 힘을 가지고 부활한 파괴의 신

이 그대로 이곳으로 쳐들어와 남은 조각들까지 빼앗아간다면

그 때는 정말로 끝장이지. 별 수 없이 대륙 모든 국가들이 연

합하여 빨리 다이티 세력의 근거지를 찾아내는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의 말이 끝나자 사람들 모두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이 넓

은 대륙에서 어떻게 그들의 근거지를 찾아낼 것인가. 물론 대

륙 연합 체제를 앞세워 모든 국가들의 협조 약속을 얻어냈지

만, 아직 확실히 된 일은 아무 것도 없었기에 모두들 힘들겠다

는 생각을 했다.

쿠르르르릉!

그때 또다시 그랜드 서클의 영향으로 지진이 일어났다. 다행

히 특수한 건축 방식으로 지어져 최강의 강도를 자랑하는 황

성 홀리 캐슬 정도라면 무너질 걱정 따위는 없었지만, 정작 걱

정되는 것은 에리아 시의 시민들이었다. 실피스는 불안한 표

정으로 바깥을 바라보고 있다가 다시 한번 외각 외성을 덮치

는 커다란 용암의 기둥을 보고는 황제에게 말했다.

"그건 그렇다고 쳐도 일단은 제국의 일이 먼저일 듯 싶습니

다. 이대로 가다간 홀리 캐슬은 괜찮아도 에리아 시가, 그리

고 시민들이 큰 피해를 입게 됩니다. 빨리 대책을 마련하지 않

는다면……."

"실피스님과 함께 제가 힘을 합쳐 도시 전체에 커다란 결계

를 치는 것은 어떠하겠습니까?"

잠자코 얘기를 듣던 소울드가 가장 좋은 방법이라 생각되는

것을 입 밖으로 꺼냈다. 약간은 그 둘에게 무리가 가는 방법이

긴 했지만, 그것 이외에 더 좋은 방법은 없었다. 실피스가 황

제를 바라보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거리며 소울드와 함께 몸

을 일으켰다.

"폐하. 저희가 도시 주변에 결계를 형성하여 그랜드 서클의

기간 동안 이곳을 보호하겠습니다. 약간 무리가 가긴 하겠지

만, 별 방도가 없습니다."

"그런가요? 후움. 그라디우스님. 무언가 좋은 방법은 없을까

요?"

미스티는 마지막으로 그에게 희망을 걸며 물었다. 하지만 드

래곤 로드인 그조차도 그랜드 서클의 힘 앞에선 별 수 없다는

듯이 차분한 어조로 답했다.

"그랜드 서클을 직접적으로 막아낼 수 있는 존재는 대우주

그 자체인 코스모스 그 분밖엔 없다. 다만 간접적으로 그 영향

을 막아내는 방법으론 인위적으로 결계를 형성하는 것이 최고

지. 아무래도 제국 전체에 공포를 하여 각 영지의 마법사들에

게 지역을 나눠 결계를 형성하며 대기하라고 명하는 게 가장

좋을 듯 하다."

"그럼 저희는 수도를 맡겠습니다."

실피스는 황제에게 인사를 한 뒤, 결의를 다진 표정으로 입

을 굳게 다물고 소울드를 대동한 채 집무실을 나섰다. 그들이

사라지자 영지를 소유한 귀족 모두가 몸을 일으키며 자신들

의 영지로 돌아가 그곳을 관리해야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물

론 미스티는 그들을 막을 이유가 없었다. 귀족의 영지가 곧 제

국의 영토이니 말이다.

그녀의 허락이 떨어지자 기다렸다는 듯이 귀족들이 집무실

을 나섰다. 이제 집무실에 남은 사람은 황제인 미스티 그녀와

가디언 나이트 아투, 그리고 그라디우스와 어느새 아투의 뒤

를 쫓아왔던 바주크뿐이었다.

"파멸의 장갑을 얻으러 가셨을 때 큰 상처를 입으셨다고 하던

데, 이제 괜찮으신 건가요?"

사람들이 빠져나가고 묘한 침묵이 감돌자, 분위기를 쇄신하

려고 아투가 먼저 입을 열었다. 미스티도 그에 맞장구를 쳤다.

"맞아요. 그라디우스님께서 상당한 상처를 입고 돌아오셨다

는 얘기는 들었는데, 이제 괜찮으신 거예요?"

"흠. 그깟 상처 따위가 나를 어찌할 수 있을 것 같더냐? 물

론…… 약간 신경이 쓰일 정도이긴 하다. 한 때 천사장까지 올

랐던 타천사와 그녀가 이끄는 타천사 몇과 싸웠으니."

"타, 타천사라뇨?"

안부 차원에서 말을 꺼냈다가 뜻밖의 엄청난 존재를 듣게 된

아투가 크게 놀라 되물었다. 그라디우스는 그게 뭐가 놀라운

일이냐는 식으로 피식 웃으면서 감정 없는 어조로 답했다.

"그래, 타천사였다. 신성력을 잔뜩 머금은 엔젤들이었지. 게

다가 천상계를 증오하는 마음을 나에게 분출한 것인지 대단

한 힘으로 날 압박했었다. 내가 본체로 싸웠음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시간을 끌었을 정도였으니. 하지만 그녀들은 패배의

쓴맛을 맛본 뒤 돌아갔지."

"후우. 다이티가 결국은 타천사까지 끌어들였나? 정말 능력

은 좋은 사람이군."

푸욱 한숨을 내쉬며 아투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이미 확

인된 바로도 다이티가 확보한 세력이 다크 엘프, 묘인족, 리자

드 맨, 트롤이었는데, 거기다가 타천사 무리들까지 추가를 해

야할 판이었다.

"정말 힘들군요. 어쨌든 빨리 다이티 세력이 머무는 은신처

를 찾아야 할 텐데."

미스티가 걱정스럽게 화제를 돌렸다. 그녀가 짧은 한 마디를

하는 동안에도 계속 지진이 일어나 성이 흔들거렸고, 바깥에

선 기도 소리와 함께 비명 소리가 끊이지 않고 들려왔다.

"오늘까지 각 나라에서 연락이 오지 않으면 우리 드래곤 일족

의 힘으로 녀석들을 찾아보도록 하겠다. 타천사까지 개입한

이상 쉽지는 않겠지만, 인간들보다야 훨씬 빠르겠지."

그라디우스도 창가로 시선을 향하며 낮게 중얼거렸다. 드래

곤도 협력하겠다는 뜻과 동일한 말이었기에 아투와 미스티의

표정이 한없이 밝아졌다.

"아투."

침묵을 신념으로 삼고 생활하는 바주크가 아투를 향해 무언

가를 말하려고 입을 열었다. 그런데 순간 집무실 전체가 밝은

백광으로 환해지며 강렬한 섬광이 한 차례 작렬했다.

샤아아앙!

"호호호호호."

이 웃음소리는…… 아투의 얼굴에 두 가지 감정이 교차하며

비춰졌다. 반가움과 동시에 떠오른 불길함. 굳어진 그의 목이

조금씩 섬광이 폭발한 장소로 돌아갔고, 이내 붉은 머리 정열

의 소녀를 발견하고는 입을 딱 벌렸다.

"화이엘! 돌아왔구나!"

"호호호호. 많이 기다렸나봐. 되게 반가워하네?"

그녀는 나타나자마자 상황도 파악하지 못하고 발랄함을 보이

며 아투에게 다가와 앉아있는 그의 무릎에 엉덩이를 걸쳤다.

순간적으로 미스티의 얼굴이 구겨졌지만 대놓고 뭐라 할 수

있는 존재가… 적어도 이제는 아니었다. 예전처럼 평범한 인

간으로 알았을 때라면 몰라도 말이다.

"천상계로 가서 무언가 알아낸 것은 있나?"

그라디우스가 시큰둥한 목소리로 물었다. 반가워하는 기색

은 전혀 아니었다.

"호호호호. 당연하죠. 다이티가 타천사의 봉인을 풀어 그녀들

과 손을 잡았다는 정보를 입수했어요. 아, 방금 그 얘기를 하

던 중이었죠? 훔. 그렇다면 내가 조금은 늦은 모양이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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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아... 서서히 결말로 치닫고 있는 듯.

하지만 과연 그게 끝일지... 후후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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