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골렘마스터-198화 (198/244)

[골렘마스터]  # 추억이 깃든 곳[4]

"음?"

아투는 축 쳐진 새싹을 발견하고는 그곳으로 다가갔다. 잎의

색깔이 약간 옅은 빛깔을 띄고 있는 걸로 보아, 다른 것들에

가려져 햇빛을 잘 받지 못하는 모양이었다. 옆을 둘러보던 아

투는 마침 딱 좋은 크기의 나무 막대를 발견하고는 그것을 집

었다. 말없이 그의 행동을 지켜보던 미스티가 궁금한 듯 질문

했다.

"아투, 뭐 하는 거예요?"

"으음? 아, 이게 햇빛을 잘 받지 못하는 것 같아서 굽어진 줄

기라도 조금 펴주면 나아지지 않을까 해서 말이야."

아투는 섬세한 손길로 처진 줄기를 받친 뒤, 나무 막대를 세

워 거기에 살짝 기대게 했다. 그리고는 호주머니에서 손수건

을 하나 꺼내어 줄기와 막대를 서로 단단하게 묶어 고정했다.

"아투. 빨리 시작하자. 너만 열심히 해주면 오늘 안으로 큰 수

확을 얻을 수 있을 지도 모른다고."

기스뮬은 한가하게 작은 새싹 하나에 신경을 쏟고 있는 친구

를 보며 그를 재촉한 뒤, 집에서 준비해온 커다란 가방을 바닥

에 내려놓았다. 곧 가방 속에서는 각 각 아름다운 빛깔로 빛

을 발하는 자그마한 돌. 즉 보석들이 쏟아져 나왔다. 기스뮬

이 가방 위에 깔렸던 보석들을 다 꺼낸 뒤에는, 원형의 작은

기둥이 금속성의 빛을 발하며 드러났다.

막 새싹을 보살피고 고개를 돌리던 아투가 그 금속 원통을 보

고는 흥미롭다는 듯이 말을 꺼냈다.

"이봐, 기스뮬. 그게 뭐야? 보석들은 마나가 스며있는 마나석

인 것을 알겠는데, 그 금속 원통은 처음 보는 물건인데… 이

번 연구와 관련이 있는 거야?"

"당연하지! 내가 쓸 때 없는 걸 가지고 다니겠어? 이게 바로

이번 연구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거야."

열변을 토하며 답을 한 기스뮬이 조심스럽게 가방에서 원통

을 꺼내어 평평한 땅위로 올려놓았다. 보기와는 다르게 무게

가 상당히 나가는 모양인지, 완력이 좋다고 불리는 드워프인

그조차 힘겨워할 정도였다.

"흠. 이제 말 좀 해봐. 도대체 무슨 연구를 하는 건데?"

아투는 기스뮬에게 다가가며 그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다.

"사실…… 마나석을 원동력으로 하는 마법 발동 기기를 만들

어볼 생각이야. 이 원형 기둥이 마나석을 탑재한 뒤, 마법을

뿜어낼 모체가 되는 거지. 이건 마나의 운용을 원할하게 할

수 있는 오르하르콘으로 제작되어 있어."

"마법 발동 기기라니? 설마 마법사의 마법 캐스팅 없이도 그

냥 물건에서 마법이 나가는 마법검이나, 마법 호구. 뭐 이런

걸 만들겠다는 거야?"

"아니지. 그런 건 마법사들이나 만들 수 있고, 또 만들려면 엄

청난 마나와 노력이 소비되잖아. 나는 마나석과 어떤 매개 기

기만 있으면 마법이 가능하도록 하는 그런 걸 만들어볼 생각

이야."

기스뮬은 가슴을 퉁퉁 두드리며 자신 있어 했다. 하지만 그

의 말을 들은 아투는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비록 말이 쉽긴

하지만, 그게 가당키나 한 말인가? 만약 그런 것이 가능하다

면 획기적인 발전을 이룩할 지도 모르지만, 전혀 상상이 가질

않는 일이었다. 아투는 이번만큼은 기스뮬의 시도가 전혀 소

득이 없는 일이 될 것 같아 씁쓸하진 마음을 겨우 달래면서 원

형 기둥에 살짝 기대기 위해 손을 뻗었다. 그런데.

"으, 으악!"

쿠당.

어이없이 그의 몸이 옆으로 쓰러졌다. 미스티가 천천히 걸어

와 그의 손을 잡고 일으켜주며 키득거렸다.

"후훗. 무슨 남자가 그렇게 힘이 없어요?"

"아니, 그게 아니란 말이야. 난 이 원형 기둥이 아주 무거운

줄 알고 기대려고 한 건데."

눈물을 찔끔한 아투가 엉덩이를 문지르며 기스뮬을 바라보았

다. 바보 같은 친구의 모습에 그는 허허 웃으면서 아투에게 말

을 했다.

"쯧쯧. 내가 말했지? 오르하르콘으로 만들어진 원형 기둥이라

고. 신의 금속이라 불리는 것 중 하나인 그것이 설마 무겁겠

어?"

그의 해설에 바보 같은 행동이었음을 깨달은 아투는 머쓱한

표정으로 뒤통수를 마구 긁적였다. 그러면서 급히 화제를 돌

리기 위해 기스뮬이 현재 가장 관심 있어 하는 부분을 노리며

질문을 던졌다.

"그래, 그럼 지금부터 내가 뭘 어떻게 도와야 하는데? 설마 나

보고 마나석과 이 원형 기둥을 놓고 모든 걸 해결하라는 건 아

니겠지?"

"당연하지. 자, 그럼 잘 봐."

기스뮬이 아투의 몸을 끌어당기며 넘어진 기둥을 다시 반듯

하게 세웠다. 아무래도 시간이 꽤 걸릴 것 같다는 생각에 뒤

를 돌아본 아투는 가이트리아에게 눈빛으로 대기할 것을 명령

하고는 미스티에게도 미안하다는 신호를 주었다.

"그러니까……."

그때부터 기스뮬의 열 띈 강의가 시작되었다. 일단 준비된 마

나석에는 대충 2, 3서클 정도의 마나가 봉인되어 있다는 것을

시작으로 그는 열변을 토해냈다. 그리고 오르하르콘 재질의

원형 기둥에서는 마나석을 원동력으로 하는 마법이 발동 되

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미 마법 캐스팅을 대신해 그 마법을 상

징하는 3서클 바람 계열 공격 마법인 에어 캐논의 마법진이 원

형 기둥 안쪽에 작게 그려져 있어, 마나석만 그 원리대로 발동

해준다면 원형 기둥에서 에어 캐논. 즉 공기포가 발사될 것이

분명하다는 설명이었다.

대충 얘기를 들은 아투는 기스뮬의 발상이 어느 정도 가능성

은 있다고 판단했다. 일단 마법의 캐스팅을 대신할 마법진을

미리 그려두었다면, 원형 기둥이 일종의 매개물 역할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마법진술사와 같이 마법진의 심오한

뜻을 이해하지 않고, 또 그런 마나의 운용 없이는 절대 마법

이 발동될 리가 없었다. 게다가 원동력을 제공할 줄 마나석과

원형 기둥을 어떻게 연결해야 하는가가 관건이었다. 이건 발

명 천재 기스뮬. 그가 해결할 수 있는 범위를 훨씬 넘어선, 결

국은 마법사인 아투가 해결해야만 하는 일이 되 버린 것이다.

어쩌면 기스뮬 그는 아투의 방문을 그의 연구 성과와 관련지

어 기뻐한 것일지도 모른다.

한참 친구의 설명을 듣고 있던 아투가 잔뜩 긴장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기스뮬. 이런 건 만들어서 뭘 어쩌려고? 이건 완전히 마법사

의 범위 안에 속하는 일 같은데, 너는 그런 쪽으론 문외한이잖

아?"

"물론 그렇지만, 꼭 마나석을 가지고 할 수 있는 일이 마법을

발동시키는 것만은 아니잖아. 어떤 에너지 공급원이 될 수 있

다고. 지금은 그냥 간단히 싸구려 보석의 값을 높이는 용도로

사용하고 있지만, 난 무궁무진한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했어.

일단 너와 내가 머리를 맞대고 과학적, 그리고 마법적 사고를

동원해서 마나석을 어딘가에 동력원으로서 연결할 수 있는 획

기적인 방안을 생각해낸다면, 그 다음부터는 나의 천재적인

머리로 여러 가지 물건을 개발할 수 있다는 말이지."

결국 아투는 그의 말에 못 이긴 척하며, 머리끝까지 차 오른

호기심으로 인해 기스뮬과 머리를 맞대고 의논을 하기 시작했

다. 아직 점심때가 조금 지난 시각 밖에 되지 않았으니, 시간

은 어느 정도 있었다. 조금 시간이 지나며 그들의 침묵이 계속

되자, 상황을 지켜보다가 지루해진 미스티도 그들과 머리를

맞대고 방안 모색에 합류했고, 드래곤 하트를 지녀 방대한 기

억 자료를 소유한 가이트리아도 석상처럼 굳은 몸을 풀고는

마지막으로 연구 일원으로 참여했다.

'어떻게 해야 되지?'

아투는 미르하르콘 재질의 원형 기둥을 품에 끼고는 텅 빈 안

을 유심히 관찰했다. 통의 두께는 마법진이 발동할 때 생겨나

는 임팩트 현상을 염려해서인지, 조금 두꺼웠다. 게다가 밑은

막혀 있었고, 위쪽에서만 무언가를 집어넣을 수 있는 구조였

다.

'으음…….'

아투는 보기보다 가벼운 원통을 들어 햇빛에 살짝 안쪽을 비

추어보았다. 그러자 어두워 보이지 않던 내부의 모습이 밝은

햇살을 머금고 부끄러운 듯 살짝 드러났다. 과연 기스뮬의 설

명대로 안쪽에는 3서클 공격 마법 중 하나인 에어 캐논. 그 원

리를 바탕으로 하여 창조된 마법진이 아주 작게 그려져 있었

다. 그 정도 크기라면 보통 마법의 위력에 절반 밖에는 발휘되

지 못할 것 같았지만, 일단 마나석의 연결 방법만 알아낸다면

더 큰 위력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희망이 계속 머리

를 굴리며 이것저것 생각을 하고 있는 아투의 머릿속에 가득

들어찼다.

'마나석과 마나가 잘 통하는 오르하르콘의 조합. 그리고 마나

석의 들어있는 마나를 마법진으로 연결하여 유통시켜야 하는

데. 후우. 솔직히 어렵겠어.'

아무래도 마나석의 마나와 마법진을 연결하는 것이 최대의

관건이었다. 하지만 가장 어렵고 손대기 힘든 부분이기도 했

다.

"후우."

아투는 한숨을 내쉬며 골똘히 생각에 잠겨있는 기스뮬을 바

라보았다. 하지만 드워프족 발명 천재인 그에게 마법에 대한

지식까지 기대하는 것은 욕심이 너무도 과한 것이었다. 물론

미스티도 그동안의 여행과 일어난 일들로 인해 약간의 지식

이 생겼다고는 할 수 있지만, 이렇게 전문가적 지식이 필요할

때에는 큰 도움이 될 수 없었다. 결국은 아투 그와 가이트리아

의 드래곤 하트 기록 내용을 이용해서 해결해야만 했다.

『가이트리아. 드래곤 하트에서 검색되는 무언가 도움이 될

만한 내용 같은 건 아직 없는 거야?』

『기다려봐라. 워낙 방대한 양이기 때문에 찾기가 힘들다.』

짜증나는 가이트리아의 목소리가 아투의 마음속으로 들려왔

다. 그래도 관련 자료가 없다는 말은 아니었기에 아투는 어느

정도 기대를 가지고 다시 혼자만의 생각에 잠겼다.

'흐음. 마나석에는 3서클의 마나가 봉인되어 있지. 그걸 어떻

게 운용시켜서 서서히 마법진을 발동시키게 할까? 만약 된다

고 해도 일순 마나가 모두 빠져나가면 일회용이 되 버릴 텐

데.'

그러면서 그는 손에 들린 원통을 다시 살펴 작은 마법진이 그

려진 바깥을 짚었다. 그리고는 천천히 마나를 운용하여 원통

의 표면에 마나를 주입했다. 푸른빛의 마나가 곧 원통을 둘러

싸며 완전히 얇은 막을 형성했고, 은빛을 띄고 있던 표면으로

안쪽에 그려진 마법진의 형성이 희미하게 모습을 드러냈다.

'자체에 마나를 주입한 뒤, 내가 마법을 사용할 때처럼 시동

어를 외운다면?'

순간 좋은 생각이라는 느낌을 받은 아투는 그대로 실행이 옮

겨보았다. 왠지 한번에 성공할 지도. 그는 입을 크게 벌리며

마법진의 시동어를 외쳤다.

"에어 캐논!"

……. 순간 아투를 향해 시선이 집중되었지만,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원통에 스며든 마나도 그대로였고, 마법진

도 발동되지 않았던 것이다. 기스뮬은 실망의 빛을 역력히 띄

우며 다시 고개를 푹 숙였고, 미스티는 피식 웃으면서 그런 기

스뮬을 달래었다.

'하긴 이런 방법이 먹힌다면, 골렘술사도 그냥 마법진이 새겨

진 이런 물건만 있으면 공격 마법을 펑펑 쏠 수 있게 되겠는

데 아직까지 상용화가 되지 않을 리가 없지.'

약간은 어이없는 생각이었음을 깨달은 아투는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다시 머릿속을 비웠다. 이번에는 약간 생각의 구조

를 틀어 다른 쪽으로 생각해보기로 했다.

'마나를 원통에 흘려 마법진에 공급하지 말고, 무언가를 매개

로 하여 직접 마나석과 마법진을 연결하면서 마법진의 발동

문양을 자극한다면 어떻게 될까?'

왠지 실없는 생각인 것 같았지만, 아투는 호기심을 이기지 못

하고 다시 원통을 들어 안쪽에 그려진 마법진에 살짝 손가락

을 가져갔다. 그리고는 천천히 몸 내부로 마나를 잔뜩 끌어올

려 운용을 시작하며 손끝으로 모든 의식을 집중시켰다.

우우우우웅.

강력한 마나와 반응한 마법진이 원통을 미세하게 진동시켰

다. 가능성이 있다. 일순 폭발적으로 마나를 공급하면 잠들어

있는 마법진이 자극을 받아 발동할 지도 모른다. 큰 기대에 부

푼 아투가 운용하던 마나를 최대한으로 빠르게 손끝으로 모

아 닿아있는 마법진으로 크게 내뿜었다.

우우우우우웅!

순간 엄청난 떨림으로 인해 아투는 잡고 있던 원통을 놓쳐버

렸다. 그의 손에서 떠난 원통은 대책 없이 바닥을 뒹굴면서 부

셔질 듯 진동했다. 전보다 겉으로 비춰지는 마법진의 형상도

더 뚜렷했지만, 이러다간 마법진에 봉인된 기운이 폭주하여

폭발할 수도 있었다.

『바보 같긴. 그런 식으로 마법진을 막 다루다간 사용자가 먼

저 죽어나겠다.』

다행히 가이트리아가 원통을 잡아 진동을 멈추게 했다. 엄청

난 골렘의 완력에는 마법진도 힘을 쓰지 못하는 모양이다. 일

순 이상한 반응을 보이는 원통 때문에 당황했던 기스뮬과 미

스티는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며 아투를 흘겨보았지만, 당사자

인 아투는 어느새 시선을 멀리하며 딴 전을 피고 있었다.

"아투. 아무래도 무리일까?"

기스뮬이 그때 진지한 어조로 물어왔다. 아투도 그에 덩달아

진지한 표정을 짓고는 그를 빤히 쳐다보았다.

솔직히 아무래도 마나석과 마법진이 새겨진 원통을 연결하

여 공격 마법을 발동하는 것 자체가 엉뚱한 상상일 지도 모른

다. 게다가 이건 단기간에 이룩해낼 수 있는 발상도 아니었

다. 엄청난 노력과 투자가 필요한 분야였던 것이다. 그리고 무

엇보다도 기스뮬에게는 이런 마법과 관련된 장르가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한 아투는 미안한 일이긴 했지만, 별 수 없다는

뜻으로 고개를 가로 저으려고 했다.

꾸오오오오오!

막 아투가 고개를 힘겹게 돌리려는 그때였다. 가이트리아가

아투의 생각을 읽은 모양인지 갑자기 커다랗게 포효하며 그

를 저지했다. 그리고는 급히 마인드 스피커로 아투에게 의사

를 전달시켰다.

『한 가지 쓸만한 방법이 있다. 포기하긴 이른 듯 하다.』

『뭔데? 빨리 설명해봐. 괜히 기스뮬에게 기대감만 심어주게

된다면 나중에 수습하기가 힘들어지니까.』

아투가 골렘을 재촉하자 곧 차분하게 가라앉은 음성이 그의

머릿속으로 전달되기 시작했다.

『사람이 마나를 운용하는 것과 똑같이 생각을 하면 안 된

다. 마나석에 봉인되는 마나는 약간 그 성질이 달라지게 된다

고 한다. 즉 골렘을 만들 때처럼 그러한 성격의 내부 봉인 마

나의 형태가 되는 거지. 그렇게 봉인된 마나석의 마나를 다시

꺼내어 마법을 발동하는데 사용하려면 어떤 여과 장치가 필요

하다. 그 여과 장치만 사용하면 최소 두, 세 차례에 걸쳐 소모

성 마나를 제공할 수 있지. 게다가 여과 장치가 제어 장치의

역할도 함께 해주기 때문에 방금 전처럼 폭주하는 일도 없을

것이며, 안정적으로 개발이 가능하게 되리라는 것이 내 생

각……은 아닌 드래곤 하트의 기억 정보를 바탕으로 추론한

내용들이다.』

『그 여과 장치는 어떻게 만드는데?』

『마나는 모든 것들이 지닌 기를 드래곤들이 가공하여 사용

한 형태가 지금까지 전해 내려오는 것이다. 하지만 그 근본 성

질은 모든 생명들이 가진 생명력과 연관이 있지. 따라서 인위

적으로 만드는 여과 장치는 제 구실을 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

다. 내가 말하는 여과 장치. 아니 드래곤 하트의 내용을 살펴

말하자면 그 여과 장치는 바로 순수 원석 크리스탈이다.』

순간 가이트리아의 말을 듣고 난 아투의 머릿속에 광명이 찾

아드는 듯 했다. 지금에서야 아투도 조금이나마 알고 있던 크

리스탈의 능력이 떠오른 것이다.

크리스탈. 백색의 광택을 띄며 유리와도 비슷한 투명성을 지

닌 보석류. 게다가 구하기도 쉬워 서민들의 보석이라고까지

불릴 정도로 값이 싸다. 가격 대 보석의 광택이나 질 정도를

따져본다면 구입 시 손해볼 게 없다고 알려져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그건 보석으로서의 가치이고, 아투가 알고 있던 것은

마법의 도구에 첨가되는 물질로서의 효용이었다. 물론 자세히

는 몰랐지만, 마나의 정화. 분명 그 부분은 어느 정도 알고 있

었다. 고대 마도 제국에서는 특이하게도 마법뿐이 아니라 마

법 과학도 함께 발전했었는데, 그 때에는 크리스탈이 아주 유

용한 장치로 쓰였다고 전해지는 서적도 많았다. 그만큼 마나

와 관련된 것으로는 으뜸 가는 것임은 틀림이 없었다.

"아투. 지금 가이트리아가 뭐라고 말을 한 거예요?"

막 무언가 실마리를 찾게된 아투에게 미스티가 호기심 어린

눈빛을 빛내며 물어왔다. 이에 정신을 차리고 그녀의 얼굴을

바라본 아투는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기스뮬의 어깨를 툭툭

치며 차분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마나석의 마나를 제어하면서 순수하게 바꿔줄 매

개물이 필요하다는 얘기였어. 즉 중간 다리 역할을 하여 마나

의 흐름을 조절해줄 것이 필요하다는 거지. 그것과 마나석을

잘 연결한 뒤, 마법진의 중심 문양과 최종적으로 연결한다면

최소 두 세 번 정도의 마법은 발동시킬 수 있다는 게 이론적

인 결론이야."

"자, 잠깐! 그 말은 내가 연구하고 있는 것이 결코 바보 같은

상상은 아니었다는 말이지? 그렇지?"

희망이 있다는 말에 기스뮬은 벌써부터 흥분을 한 모양이다.

거칠게 아투의 양손을 부여잡고는 그의 몸을 마구 흔들며 재

차 확언을 요구했다. 안 그래도 머리가 부셔질 듯한 두통을 느

끼던 아투는 친구 녀석이 몸을 흔드는 바람에 별 수 없이 크

게 고개를 끄덕이며 그 위기에서 벗어날 수밖에 없었다.

"좋아. 여기 있다! 자, 이 정도 크기의 크리스탈이면 어떨까?

마나를 봉인할 보석이 너무 비싸서 몇 개는 크리스탈로 준비

해두었는데, 어제는 돈이 없어서 이것까지 마나를 봉인해오

지 못했어. 뭐 지금은 차라리 잘 됐군."

싸들고 온 가방을 뒤적이던 기스뮬이 방실거리며 육각 원뿔

모양의 투명한 보석을 건넸다. 그의 준비성에 질렸다는 듯이

고개를 가로젓던 아투는 피식 웃으며 크리스탈을 받아들고는

준비된 마나석 중 적당한 크기의 것을 하나 골라 크리스탈과

맞대었다. 미약하긴 하지만, 분명 마나석에 봉인된 마나가 자

연스럽게 크리스탈과 마나석을 오가며 유통되고 있는 게 느껴

졌다. 아투는 그 느낌을 유지하며 원통으로 손을 넣어 그 두

개의 조각을 안에 그려진 마법진과 닿게 잘 조절한 뒤, 고정시

켰다.

우우우웅.

"오오오오!"

안정적으로 반응하는 원통을 보며 기스뮬이 환호성을 질렀

다. 미스티도 은근히 기대하는 눈빛이었다. 아투는 천천히 그

들을 원통에서 물러서게 한 뒤, 계속 상황을 지켜보았다.

우우우우웅.

순간 원통의 주변으로 작은 기류가 형성되어 회오리쳤다. 그

리고 그 기류는 이내 원통 안으로 빨려 들어가듯 사라졌고, 원

통 바깥으로 마법진의 모습이 뚜렷이 드러나 녹색의 빛을 발

했다.

파아아아앙!

그때였다! 모두가 기대 어린 시선을 모으고 있던 원통에서 강

렬한 파공음과 함께 마법진이 비춰지던 그 부근에서 녹색의

강한 바람이 뿜어져 나갔다. 은은한 녹색 빛을 띄고 있었기 때

문에 그 뚜렷한 형상이 눈으로 직접 확인된 것이다.

"아, 아투. 지, 지금 성공한 거지?"

기스뮬이 떨리는 목소리로 감격에 겨워 말조차 제대로 하지

못했다.

"아, 아무래도 성공인 것 같지? 고대 마도 제국의 문명의 전파

가 끊긴 이래로 우리가 처음 크리스탈과 마나석을 이용해 마

법 기기를 만든 거야. 이건 마법 아이템이 아니라 정확히 말

해 마법 기기. 확실해."

"그래, 우린 해낸 거야! 아자자자! 우린 해냈다고! 크하하하하

하!"

호탕한 성격의 드워프 기스뮬이 드디어 자신들의 성공을 깨

닫고는 가방을 하늘로 집어던지며 기쁨에 겨워 소리를 마구

질러댔다. 미스티는 묘한 미소를 머금은 채 눈웃음을 쳤고, 아

투도 기스뮬과 마찬가지로 상당히 기뻐하며 함께 그 기분을

만끽했다.

『흠. 과연 고대 마도 제국 시절의 마법 과학이 재현될 수 있

을지……. 기스뮬이란 드워프 정도의 열정이라면 해낼 지도

모르겠군.』

가이트리아는 서로 손을 맞잡고 기쁨을 나누는 그들을 바라

보며 무언가 의미 있는 낮은 포효소리를 흘렸다.

*  *  *

아투, 그리고 가이트리아의 합작으로 성공된 마나석의 마나

활용 기술. 아직은 아주 미미한 초기 단계에 불과했지만, 마법

사의 캐스팅 없이도 그 원리만 봉인된 마법진을 사용하여 특

별한 능력이 없는 존재들도 마법을 사용 가능하게 하는 것은

마법이나, 마법 과학사에 있어서 획기적인 일이 아닐 수 없었

다. 미스티는 특히 기스뮬이 생각하고 있는 여러 가지 뛰어난

발상들에 관심이 많아 결국 그에게 매력적인 제안을 했다. 자

신을 제국의 황제라고 밝히며 제국의 황성에서 그 능력을 한

번 마음껏 발휘해볼 생각은 없는지.

기스뮬로서는 거절할 이유가 절대로 없는 제안이었다. 물론

미스티의 정체를 알게 된 후, 약간의 패닉 상태에 접어들긴 했

지만 뛰어난 드워프의 정신력으로 금세 이겨냈다. 아투 또한

제국에서 상당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가디언 나이트라는 소

리에 그는 꼭 황성으로 가서 친구인 그를 돕고 싶다고 자진할

정도였다.

이에 황제인 미스티는 그에게 적극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것이라 약조하며 드워프 마을의 촌장에게 모든 사실을 털어

넣고 양해를 구했다. 물론 아투를 끔찍이 여기는 그들은 오히

려 기스뮬을 부추겼고, 이로서 그는 황성에서 연구하게 되는

것이 확실시되었다.

그리고 허락을 얻은 그 날 밤. 아투는 미스티, 기스뮬, 그리

고 가이트리아와 함께 첼로바 시에 있는 제국 송환 마법진을

사용해 새롭게 제국으로 향하는 그 첫 걸음을 내딛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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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아. 이번 편은 분량이 조금 많습니다.

늦게 올린 것에 대한 사죄이자, 팬 서비스라고 할까요?

어쨌든 즐독하세요^^

아, 가끔 올리는 시간이 십 여분 정도 늦어질 수도 있습니다.

기억해두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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