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렘마스터] # 추억이 깃든 곳[2]
미스티는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투는
그녀의 표정을 보고 살짝 웃으면서 답하였다.
"아무리 봐도 이 함정들은 사람의 접근에 대비하여 만들어진
것이 아니야. 무언가 사람들보다는 몸집이 크고 힘이 센 존
재. 즉 마물들을 잡겠다는 생각으로 설치한 것 같아. 흠. 그럼
이제 생각해봐. 마물들이 멍청하게 이런 큰길로 다니겠어? 이
미 내 말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위를 올려다보면 알 수 있어."
"위라뇨?"
미스티는 아직도 아투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 모양인지 고개
를 연신 갸웃거리며 고개를 뒤로 젖혔다. 곧 그녀의 시야에 아
름드리 나무에서 뻗어진 나뭇가지들과… 로프와 자그마한 도
르래로 이루어진 작은 함정 장치가 보였다. 방금 전까지 아투
와 미스티를 골탕 먹였던 장치는 이미 끈이 잘려져 밑으로 축
쳐져 있었다.
"잘 봐. 우리를 제외하고는 다른 생명체들이 매달린 흔적이
없지? 그건 이런 큰길로는 마물들이 다니지 않는다는 것을 증
명하고 있는 셈이지. 물론 오랫동안 설치해두면 가끔 걸리는
놈들도 있겠지만, 아주 미약한 확률일 뿐이야. 그래서 내가 이
걸 설치한 존재가 덜렁거리면서 깊게 생각하지 않은 것 같다
고 말한 거고."
"아, 그랬군요. 훗. 아투의 추리력이 그 정도일 줄은 몰랐는데
요?"
미스티는 살짝 그의 가슴을 손가락으로 푹 찌르면서 꺄르르
웃었다. 약간은 비꼬는 듯한 장난기 어린 그녀의 목소리에 아
투는 잠깐 심술 맞은 표정으로 그녀의 머리를 살짝 쥐어박은
뒤, 가이트리아를 돌아보았다.
"가이트리아. 이런 함정이 계속 있으면 다른 사람들까지 피해
를 볼 수도 있으니까 치워버려야겠어. 저기 나무 위에 설치된
것들을 모두 떼어내."
『명령인가?』
순간 말문이 막혔다. 하지만 아투는 이내 가볍게 고개를 끄덕
였다. 골렘의 말투가 조금 싸늘하긴 했지만, 악의는 없었음을
느낀 까닭이었다.
꾸오오오.
낮게 포효한 골렘이 다시 어깨에서 검을 내려 허공에 휘둘렀
다. 검은 호선을 그리던 다크 바스타드가 함정이 설치된 나무
들의 가지를 모두 베어버렸고, 이내 잘려진 가지들이 아투와
미스티의 머리 위로 비처럼 쏟아졌다. 특히 금속과 나무의 조
합으로 제작된 도르래에 머리를 한 대씩 얻어맞은 그들은 노
골적으로 골렘을 노려보았다.
하지만 아투가 막 화를 내려던 순간에 어디선가 바람을 가르
는 소리가 들려왔다. 분명 골렘의 행동은 아니었다. 아투 등뒤
에서부터 들려오는 날카로운 파공음이 확실했기에, 흠칫한 표
정이 된 그가 미스티의 허리를 끌어안으며 몸을 숙였다.
후우우우웅!
순간 아투의 머리칼을 스치고 지나간 은빛 물건이 저만치나
날아가다가 갑자기 크게 선회하여 다시 그에게 날아가기 시작
했다. 손잡이와 연결된 부분 양쪽에 도끼 날이 달린 배틀 액
스. 전투용으로 제작된 무기였다.
"치잇. 놀라자빠지겠군. 하지만 이런 공격은 이미 예전에 마
스터했어!"
아투는 날아드는 도끼를 확인하고는 가볍게 코웃음을 쳤다.
그리고는 잽싸게 마나 애로우를 뽑아들고는 양손에 힘을 주
어 회전하고 있는 도끼의 날 부분을 미끄러지는 듯한 동작으
로 후려쳤다. 놀랍게도 가벼운 공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도끼
의 회전 방향이 반대로 바뀌면서 바닥으로 크게 하강하여 처
박혀버렸다. 미스티는 아투의 놀라운 솜씨에 그저 입을 딱 벌
릴 뿐 뭐라 말을 꺼내지 못했다. 그저 뛰어난 골렘술사인 것
만 알았지, 그 정도로 근접전에도 뛰어날 줄은 몰랐던 것이
다.
"아투……."
미스티가 새로운 눈초리로 그를 바라보며 몸을 일으켰다. 하
지만 아투는 꽤나 진지한 눈빛으로 바닥에 박힌 도끼를 내려
다보더니, 이내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그것이 날아든 방향으
로 고개를 돌렸다.
"어떤 녀석이 내가 설치한 함정을 부수는 거냐!"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깊은 숲의 안쪽에서부터 달려나오
는 짤막한 존재가 보이기 시작했다. 키는 작지만, 근육질의 몸
매에 배도 조금 튀어나오고 수염도 덥수룩하게 자라있는 드워
프 일족이 틀림없었다. 게다가 그 드워프를 바라보고 있던 아
투의 표정이 정말 오랜만에 환희 밝아지고 있었다.
"기, 기스뮬!"
아투가 드워프의 이름을 불렀다. 그러자 상대편에서도 반응
이 왔다.
"이, 이 목소리는! 설마 아투인가!?"
짧은 다리와는 어울리지 않게 재빨리 나무 사이로 달려온 드
워프 기스뮬이 숲의 방문객의 모습을 살폈다. 몇 개월이 지나
모습이 조금 달라지긴 했지만, 분명 1년 동안 진한 우정을 나
눴던 골렘술사 지망생 아투가 분명했다.
"기스뮬. 너 기스뮬 맞지?"
아투는 와락 드워프의 두꺼운 몸을 끌어안았다. 감정의 변화
가 가장 적다고 알려진 드워프 종족의 기스뮬도 반가운 기색
을 감추지 못하고 그의 품에 안겨 있다가 이내, 이곳을 방문
한 존재가 그 혼자만이 아님을 보고는 헛기침을 하며 아투를
밀어냈다.
"자식. 능력도 좋다. 그 몇 달 동안 애인을 만들어서 소개시켜
주러 온 모양이지?"
"하하하하. 원래는 급한 일 때문에 첼로바 시에 잠깐 들렸다
가 이곳 생각이 나서 잠깐 들린 거야. 시간이 별로 없어서 빨
리 장로 어르신들을 만나 뵙고 가봐야 돼."
"그래? 흠. 오랜만에 왔는데 아쉽게 됐군. 좋아, 사실 나도 조
금 바쁘긴 하지만, 친구가 마을을 방문했으니 하루쯤 쉬는 것
도 좋겠지. 내가 장로 어르신들에게 안내해줄게. 따라와."
기스뮬은 시원스런 태도로 친구인 아투를 대하다가 문뜩 자
신에게로 향해있는 다른 두 존재의 시선을 의식하고는 머쓱하
게 뒤통수를 긁적였다. 친구만 생각했지, 다른 존재에게는 신
경을 쓰지 못한 것이다.
"저기 뒤에 있는 골렘 이름은 가이트리아라고 했지? 후. 떠날
때와는 사뭇 다른 느낌이군. 게다가 이제는 골렘 전용의 검까
지 가지고 있고 말이야."
"뭐 그때와 비교하지만, 하늘과 땅 차이라고 할까나? 하하하
하. 아, 그리고 이쪽은 미스티. 으음……. 여행 도중에 만난 사
이야."
미스티를 어떻게 소개해야 할까 고민하던 아투는 그냥 대충
얼버무리면서 넘어가려 했다. 다행히 기스뮬은 당황하는 그
의 모습을 눈치채지 못한 모양인지, 소녀에게 가볍게 인사를
건네면서 앞장 서 숲을 걷기 시작했다.
똑똑똑.
기스뮬이 마을로 들어선 지 한참만에 다다른, 커다란 고목 모
양의 집 앞에 멈춰 서서는 예의 바르게 문을 두드렸다. 곧 집
안에서 부드러운 음성이 들려왔다.
"누구지요?"
"네, 테미로 어르신. 기스뮬입니다. 반가운 손님을 데리고 왔
습니다."
기스뮬이 정중하게 답했다. 그러자 들어오라는 허락이 떨어
졌다. 아투는 미스티를 살짝 옆으로 끌어당기며 가이트리아에
게 바깥에서 잠깐 대기하고 있으라고 마인드 스피커로 의사
를 전달했다. 어느새 골렘술사 아투가 돌아왔다는 소문을 듣
고 그를 보기 위해 몰려든 드워프들이 집 주변을 까맣게 메우
고 있었는데, 아투와 아름다운 인간 소녀, 그리고 기스뮬이 장
로의 집으로 들어가자 그들의 관심은 자연스레 홀로 남겨진
골렘에게로 쏟아졌다.
『귀찮군.』
골렘은 드워프들의 관심에도 불구하고 스르르 눈을 감았다.
그리고는 마치 죽은 시체, 아니 딱딱한 돌상처럼 굳어져서는
움직이지 않았다.
그리고 건물 안에서는 아투와 드워프 일족의 장로 부부와의
재회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강인하고 고집스런 인상의 남성
드워프 레프티. 온화하고 자상한 인상의 여성 드워프 테미르.
이 둘 부부는 제법 성장해서 돌아온 아투를 대견스럽게 바라
보았다.
"떠날 때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구나. 그래, 원하는 바를 이루
고 다시 세상으로 돌아간 후, 모든 일이 잘 되어가니?"
테미르가 아투를 향해 붙임성 있게 물었다.
"네, 관심과 염려 덕분에 현재는 만족스런 경지까지 올랐어
요. 물론 훨씬 더 발전하기 위해 노력할 거예요."
"다행이구나. 음. 그래, 잠깐 근처에 들렀다가 생각이 나서
온 거라고 했니?"
테미르의 두 번째 질문에 가볍게 고개를 끄덕인 아투는 말없
이 대화를 지켜보고 있는 미스티를 소개시키기 위해 말을 꺼
냈다.
"여기는 여행 중 만난 미스티에요. 미스티. 이 분들은 내가 여
기서 생활할 때 많은 도움을 주신 테미르, 레프티 장로님이
셔."
"안녕하세요? 미스티라고 합니다. 아투의 말대로 여행 동료예
요."
소개를 받은 미스티가 먼저 나서며 예의범절을 갖춰 고개를
숙였다. 테미르는 그녀의 깍듯한 인사가 오히려 부담스러운
모양인지, 빨리 고개를 들라고 했다.
"흠. 그래도 우리를 잊지 않고 찾아줘서 고맙다. 험한 산길을
걸어오느라 많이 피곤할 텐데, 가서 푹 쉬거라. 아직도 네가
살던 그 집이 남아 있으니, 오늘은 그곳에서 자면 될 거란다."
우직한 표정의 레프티도 어울리지 않게 아투를 걱정하면서
말을 꺼냈다. 사실 오랜만에 드워프 일족의 마을을 방문하여
그들과 나누고 싶은 이야기들이 산더미 같았지만, 험한 산을
직접 걸어오느라 피로가 쌓인 것이 사실이었다. 미스티와 함
께 장로 부부에게 다시 인사를 하고 집을 나선 아투는 기스뮬
과 함께 예전에 아투가 생활하던 집으로 걷기 시작했다.
* * *
"루시노 대장님. 전에 왔던 붉은 화염 기사단의 단장 둘이 기
사단을 대동하고는 당장 대장님을 만나겠다고 난리를 치고 있
습니다."
"흠. 내가 분명히 그들에 대한 최대한의 정보를 수집해보라
고 했었는데, 자료는 어떻게 됐죠?"
"조사는 완료되었습니다. 이게 그 결과입니다. 보십시오."
"으음…. 원래는 제국에 전 교황이 직접 창설하여 사적으로
소유하던 기사단이군요. 기사단 전체가 화검술을 수업 받아
상당한 전력이 된다고 적혀있는데 사실입니까?"
"정확히 확인되지는 않지만, 일단 지금 들이닥친 기사들을 놓
고 따져보자면 사실인 것 같습니다."
"흐흠. 현재는 교황이 실종된 상태이고, 그가 실종되면서 기
사단 전체가 사라졌다고 되어 있는데 이렇게 돌아다니고 있
는 걸 보면 교황과 함께 무슨 일을 꾸미고 있는 모양인 것 같
군요. 후후후."
"어떡할까요? 그림자 로브는 이미 제국에게 넘겼으니 물러가
라고 정중하게 말해야 합니까?"
"흠. 일단 그들의 속셈부터 좀 알고 싶습니다. 일단 다른 기사
들은 제외하고 막스윈과 드레이크라고 하는 기사 단장만을 들
어오게 허락하세요. 만약 우리들의 요구에 따르지 않겠다면,
당장 돌아가라고 하면 될 겁니다. 그리고 막스윈과 드레이크
또한 무장을 해제해야만 한다고 전하세요."
"만약 그렇게 요구한다면 지금이라도 당장 레전드 크로우의
본거지를 공격하고 들어올지 모릅니다. 물론 대원들이 잘 막
아내겠지만, 자칫 잘못했다간 이곳의 정체가 들통나버리게
될 수도 있습니다. 게다가 기사들에게 무기는 생명과 다름없
습니다. 아마도 따르지 않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아마 제가 그
들이라도 따르지 않을 것입니다."
"후후후. 지금 저에게 대한 도전입니까?"
"그, 그런 게 아니라……."
"좋습니다. 그럼 방금 전 내 말은 못 들은 걸로 하고, 가서 그
들에게 이렇게 전하세요. 기사대원들을 제외한 두 사람만의
출입을 허락한다고. 그리고 무력으로 맞설 생각은 추호도 하
지 말라고 말입니다."
"네, 알겠습니다."
* * *
전에 아투가 생활하던 아담한 집에서 하루를 묵은 아투와 미
스티. 그리고 우드 골렘인 가이트리아. 간단한 식사로 아침을
해결한 아투와 미스티는 다시 장로의 집을 방문해 아침나절동
안 그들과 이런 저런 정겨운 대화를 나누었다. 파괴의 신이 언
제 부활할지 모르는 이 시점에서 따져보면 그들로서는 상당
한 시간을 할애한 것과 마찬가지였다.
점심때가 되어서야 그들은 장로의 집에서 나와 바람을 쐬었
다. 드워프들이 워낙에 그 둘에게 잘 대해주었기 때문에 불편
한 점은 없었다. 아니, 오히려 그들의 지나친 친절 때문에 거
북할 정도였다.
잠시 할 일이 없어진 아투는 미스티에게 점심 식사나 하자는
제의를 했다. 그리고 그녀의 대답을 얻어낸 그가 안내한 곳은
바로 다 무너져 가는 외관의 건물. 바로 아투의 절친한 친구
인 기스뮬의 집이었다. 처음에는 왠지 불안한 건물의 모습을
보고 들어가기를 꺼려하던 미스티였지만, 이내 안에서 풍겨오
는 맛있는 냄새에 그만 정신을 빼앗겨 아투의 손에 이끌려 들
어가고야 말았다.
"어? 마침 잘들 왔어. 안 그래도 점심 식사에 초대하려고 미
리 음식을 만들고 있던 참인데. 역시 아투가 먹는 거에 대한
눈치는 빠르단 말이야?"
기스뮬은 예상치도 못한 손님을 맞이하면서도 연신 히죽거렸
다. 그와 마찬가지로 미스티의 얼굴에도 집안에 들어서자마
자 연신 웃음이 떠올랐는데, 아마 그 이유를 기스뮬이 알게 된
다면 길길이 날뛰게 될 것이다.
'풋. 드워프가 앞치마라니. 너무 웃겨.'
그녀는 하마터면 그런 말을 밖으로 내뱉을 뻔했지만, 이내 간
신히 마음을 진정시키며 고개를 돌렸다. 계속 기스뮬을 바라
보고 있다가는 무슨 일이라도 낼 것만 같아서였다.
"자, 그럼 일단 앉아서 기다리시라. 곧 멋진 음식들을 선보일
테니."
기스뮬은 콧노래까지 흥얼거려가면서 아투와 미스티를 반 강
제로 이끌어서는 거의 다 부셔져 가는 식탁에 그들을 앉혔다.
그리고는 한참을 부엌에서 달그락거리는 소리를 내며 한참의
시간을 보내고 나서야, 무언가를 쟁반 가득히 올려서 식탁으
로 가지고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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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우. 하루에 한편 연재가 목표이지만, 열심히 써서 한 편 더
올리게 됐습니다. 하지만 제가 고3입니다. 수험생이라는 얘기
죠. 하루 한편 이상 강요하시면 곤란해져요ㅜ_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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