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렘마스터] # 1급 어쌔신 루시노[4]
아투는 어쌔신들과 함께 층계를 빠져나와 햇빛이 드는 곳에
접어들어 주변을 둘러보았다. 곧 성벽과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작은 지하 물탱크. 물탱크로 위장하고 있던 지역의 뚜껑
을 통해 레전드 크로우의 본거지에서 빠져나왔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이미 성벽 쪽에선 기괴한 소리들과 함께 병사들의 함성소리
가 들려왔다. 베히모스들과 격렬한 전투가 한창인 것 같았다.
게다가 도시의 중앙에 주둔하고 있던 기사단까지 출동한 모양
인지, 곧 어쌔신들과 일행의 시야에 말을 탄 기사들이 급히 성
문으로 달려가는 것이 들어왔다. 대부분 길다란 마상용 창을
들고 기세 좋게 달려갔다.
"자, 아투. 이제 당신들의 실력을 한번 보여주세요. 물론 당신
들이 잡은 베히모스의 수대로 보석을 지급해드릴 예정입니
다. 그리고 레전드 크로우의 대원들이여! 우리 몫을 빼앗기지
않게 조심하면서 싸워주시길 바래요!"
그러면서 루시노는 보이지도 않을 정도의 속도로 성문을 향
해 빠르게 달려갔다. 대답조차 하지 못한 어쌔신들도 이미 그
녀의 돌발적인 행동에 익숙한 모양인지 곧 속도를 맞추어 사
라졌다.
꾸오오오오오!
『우리도 질 수 없지 않은가? 빨리 가도록 하자. 안 그래도
이 검을 한번 쓰고 싶어 몸이 근질근질하던 참인데.』
가이트리아가 오늘따라 상당히 기세가 등등했다. 아투는 골
렘의 포효소리에 정신을 바짝 차린 일행을 돌아보며 눈짓으
로 성문을 가리켰다. 그들 모두 이미 상급 마물과 싸울 준비
가 된 모양인지 눈빛이 빛났다.
"좋습니다. 그럼 바주크는 폐하를 보호해줘요. 나머지는 각
자의 행동을 허락합니다."
아투의 짧은 명령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바주크가 빠르게
미스티의 옆으로 붙어 호위했다.
"그럼 갑니다!"
아투는 가이트리아와 함께 성문을 향해 내달렸다. 그림자 보
법 없이 달려가는 골렘의 엄청난 발소리가 첼로바 시 전체를
쩌렁쩌렁하게 울리면서 사람들의 희망을 북돋아주는 듯 했다.
처음 어쌔신의 보고와는 달리 베히모스의 수는 엄청났다. 백
여 마리 정도라면 어떻게든 기사단과 병사들끼리 해결할 수
도 있을 정도의 전력이었지만, 다시 확인된 바로는 베히모스
의 수가 대략 팔백여 마리로 보고됐다. 루시노는 재확인된 마
물들의 숫자를 듣고는 약간 얼굴이 질리는 듯 싶었지만, 이내
평정을 되찾았다.
아투 일행도 마찬가지였다. 처음 예상했던 것과는 달리 마물
들의 수가 거의 여덟 배가 뛴 것이었지만, 그리 걱정스럽지도
않았다. 다만 시간이 조금 더 지체될 지도 모른다는 불평만 했
을 뿐이다.
성벽 밖으로 내다보이는 험난한 산맥. 그리고 그 산맥을 큰
굴곡으로 메우고 있는 존재들은 하나 같이 몸집이 거대했고,
눈에서는 살기를 내뿜었다. 네 발로 땅을 짚고 채찍 같은 꼬리
를 이용하여 대지를 부수는 마물. 상급 마물인 베히모스가 라
미트 왕국의 3대 국경 도시중 하나인 첼로바 시를 완벽히 둘러
쌌다. 앞 서 성문을 열고 녀석들을 저지하러 출동한 기사단과
병사들은 악전고투 끝에 간신히 성벽 안으로의 접근만을 막
고 있을 뿐이지, 더 이상의 진척은 없어 보였다. 게다가 꾸역
꾸역 보충되는 마물들의 수에 질린 듯 지친 기색들이 완연했
다.
"어쌔신 대원들이여! 우리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돈이 아니
라 자신과 동료들의 목숨입니다. 무모한 전투는 가급적 피하
고 최소한의 피해로 녀석들을 섬멸해야 합니다! 그럼 베히모
스들이 모두 사라졌을 때, 다시 성문으로 모이기로 하고 작전
개시!"
루시노는 성벽 위로 오른 대원들을 향해 소리쳤다. 그러자 가
벼운 로브와 가죽 갑옷으로 무장한 어쌔신 대원 이십 명이 하
나 같이 양손에 은빛 환도를 들고는 몇 십 베타 높이나 되는
성벽을 가볍게 뛰어내려 지면에 착지했다. 성벽 가까이를 어
슬렁거리던 베히모스들이 곧 생명의 움직임을 알아채고는 몰
려들었지만, 어쌔신들은 아주 능숙한 솜씨로 녀석들을 성벽에
서 최대한 떨어진 곳으로 유인하며 멀어졌다. 대원들의 만족
스런 솜씨에 살짝 미소지은 루시노가 아직 멍하니 움직이지
않는 아투 일행을 보고 말했다.
"지금부터 테스트는 시작입니다. 그림자 로브를 가질 정도의
실력이 있는 지를 한번 살펴보겠어요. 제가 전투 중이라고 해
서 당신들의 움직임을 놓치지는 않을 테니, 모두 분발하셔야
할 거예요. 그럼 저도 의뢰를 받았기 때문에, 먼저 실례."
그러면서 그녀도 먼저 작전에 임한 대원들을 쫓아 성벽 아래
로 뛰어내렸다. 그녀의 손에 들린 은빛 환도가 원래의 길이보
다 훨씬 더 길어 보였다. 검기가 실려있는 듯 했다.
"후우. 그럼 우리도 시작해볼까요? 베히모스들은 덩치와는 걸
맞지 않게 꼬리를 채찍처럼 사용하는 공격을 제외하고는 그
리 위협적인 것이 없으니,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닐 겁니다."
"그렇소.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지. 그럼 황제 폐하의 호위는
바주크씨에게 부탁하오."
그루나시엘도 눈앞에서 펼쳐지는 전투의 쾌감을 맛보고 싶
은 모양인지, 약간 흥분한 모습이었다. 신성 기사단의 단장답
지 않게 마음의 평정을 유지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누가 걱정
스럽게 말을 건네기도 전에 이미 그의 신형이 성벽의 벽면을
따라 빠르게 하강하고 있었다. 신성 주문 중 하나인 낙하 마법
인 듯 했다.
"그럼 저도 가서 싸우도록 하겠습니다. 루시노라는 인물과 내
지 못한 승부를 여기서라도 꼭 내고 싶습니다."
폰네스 후작은 가디언 나이트 아투. 즉 백작의 작위까지 지
닌 그를 살짝 흘겨보더니 이내 황제에게 고개를 돌려 말했다.
어마어마한 베히모스의 수에 질린 듯 말수가 적어진 미스티
가 반사적으로 고개를 끄덕이자, 이내 그의 신형도 그루나시
엘과 마찬가지로 빠르게 쏘아져 성벽 아래로 쇄도했다. 그는
바람의 정령의 힘을 빌린 것이었다.
"흐음. 다들 상당히 컨디션이 좋은 것 같은데?"
이제 시선을 의식해야하는 사람들이 모두 멀어지자 미스티
를 대하는 아투의 말투가 바뀌었다. 그들의 사정을 잘 알고 있
는 소울드는 그저 허허허 웃기만 할 뿐이었다.
"훗. 그런 것 같은데요? 하지만 너무 혈기 왕성한 기세가 잘못
되지 않으면 좋으련만."
미스티의 얼굴에는 약간 걱정하는 기색이 떠올랐다. 그런 그
녀의 옆으로 바주크가 대검을 뽑아들고 바짝 붙었다.
"흐흠. 어쨌든 미스티가 나서기에는 너무 전장이 혼전이라서
안되겠어. 일단 미스티는 여기서 바주크의 호위를 받으면서
상황을 지켜봐 줘. 그러다가 밀리는 일행이 있으면 그쪽을 팔
찌의 정령으로 지원해줬으면 해."
미스티에게 당부를 한 아투는 다시 고개를 돌려 가이트리아
를 바라보았다. 골렘은 벌써 양손으로 다크 바스타드를 손에
꼭 쥐고는 허공에다가 검을 휘두르며 손에 익히는 동작을 반
복하고 있었다. 그만큼 이번 전투가 자신 있다는 표현이기도
했다.
『오랜만에 몸이 간질간질하군. 몇 번 있었던 전투도 몸 상태
가 안 좋다는 이유로 잘 참여하지도 못한 것 같은데, 이번에
그런 것을 다 만회해 보이겠다.』
가이트리아는 그런 말로 은근히 아투에게 빨리 명령을 내려
달라고 재촉했다. 호전적인 성격을 가진 가이트리아의 평소
행동을 생각한다면 지금도 상당히 잘 참고 있었던 것이다. 아
투는 미스티를 향해 다시 한번 당부의 눈빛을 보내며 소울드
를 돌아보며 짧게 말했다.
"소울드님은 여기서 리치로 지원을 해주세요. 마법사가 너무
깊숙이 진입한다면 베히모스들이 마법사부터 노릴 수 있으니
까요."
"알겠네. 그럼 행운을 비네."
"하하. 감사합니다. 그럼 조금 있다가 뵙죠."
아투는 방대한 마나를 한꺼번에 분출시키며 주변에 강력하
고 넓은 범위의 마나장을 형성시켰다. 그러자 가이트리아가
오랜만에 노란 안광을 발하면서 아투를 한쪽 손으로 받쳐 어
깨 위로 올렸다.
"가자, 가이트리아!"
꾸오오오오!
기분 좋게 포효를 내지른 골렘의 몸이 순간 허공으로 솟구쳤
다가 이내 성벽 아래로 떨어져 내렸다. 하지만 이미 그림자 보
법을 사용하여 가벼워진 골렘의 발은 지면을 사뿐히 밟으며
순식간에 가까이 있던 베히모스 한 녀석과의 거리를 좁혔다.
켁켁켁켁.
골렘을 본 녀석의 징그러운 얼굴에 기괴한 미소가 피어났다.
아투와 골렘 둘 다 녀석의 웃음에 기분이 팍 상해버렸다.
『가이트리아. 저런 녀석한테는 일단 재미로 주먹 한 방 먹여
줘야 하는 거 아니야?』
『나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좋아, 그럼 가라! 가이트리아! 토네이도 펀치!』
급히 마나의 일부를 골렘의 손을 집중시키던 아투가 마인드
스피커로 명령을 내렸다. 순간 가이트리아가 검을 쥐지 않고
있는 왼쪽 손으로부터 녹색의 강렬한 기류가 생성됐고, 곧이
어 주먹을 완전히 감쌌다. 이에 골렘은 자신 있게 앞으로 크
게 한 발을 내딛으며 왼쪽 몸을 기울여 베히모스의 면상을 향
해 토네이도 주먹을 꽂아 넣었다.
후우우우웅! 퍼버벅!
강렬한 타격음과 함께 얼굴을 직격당한 녀석의 몸이 녹색 회
오리 기류에 휘말려 허공에 떠올라 몇 십 베타의 거리를 날아
가 버렸다. 단 한번의 공격으로 엄청난 힘을 선보인 골렘을 향
해 베히모스들의 경계 어린 시선이 쏟아졌다. 본능적으로 여
기 생명체들 중 가장 강한 존재를 감지한 것이 틀림없었다.
"후우. 이거 잠잠하던 벌집을 건드린 꼴이 돼버렸네."
수백의 부담스런 시선을 느끼면서도 아투의 태도는 오히려
태연했다. 그의 말투는 걱정스럽다기보다는 재미를 느끼며 장
난을 치고 있는 것으로 들렸다.
켁켁켁켁켁.
순식간에 골렘과 아투의 주변으로 수십 마리의 베히모스가
달려왔다. 골렘과 신장에서 별 차이가 없는 녀석들이 겹겹으
로 둘러쌌으니, 이제는 겁이 날만도 했지만 아투는 가볍게 코
웃음까지 치며 가이트리아의 어깨에 새로이 부착된 손잡이를
꽉 잡았다. 과격한 움직임으로 인해 추락사하는 일을 방지하
는 간이장치였다.
"가이트리아. 한번 시작해볼까?"
『이런 전투 중에 느끼는 쾌감. 정말 오랜만인 것 같군.』
아투와 가이트리아는 서로 마음이 통하고 있음을 느끼고 있
었다. 영혼으로 묶인 사이이니 만큼 그들의 결속력은 대단했
다. 지금만큼은. 이 순간만큼은 모든 걱정들을 잊어버리고 싸
움에만 집중하고 싶은 것이 두 존재의 똑같은 생각이었다.
콰과과광!
드디어 시작됐다. 베히모스들이 한꺼번에 골렘을 해치우기
로 한 모양인지 거칠게 땅을 박차며 달려들었다. 멀리서 꼬리
를 휘두르는 녀석들도 있었다. 거의 백여 마리의 베히모스들
이 동시에 가이트리아를 노린 것이다.
꾸오오오오오!
하지만 골렘은 살짝 안광을 발산하더니, 양손으로 검은 대검
을 머리 위로 들어올렸다. 그리고는 몸집과 어울리지 않게 그
림자 보법으로 순식간에 머물고 있던 자리에서 벗어났다. 목
표를 잃은 꼬리와 녀석들의 발톱, 이빨 등이 애꿎은 자연 지형
만을 박살냈고 공격은 실패로 돌아갔다. 가이트리아가 노리
던 때는 바로 이때였다.
후우우우웅!
특별히 골렘이 익힐 검술이 없기 때문에, 가이트리아는 아무
런 초식이나 기본기 없이 오로지 완력으로만 대검을 휘둘렀
다. 하지만 그 힘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였기에, 바람을 매섭
게 가르며 검은 색의 호선이 바로 옆에 있던 베히모스의 몸을
정확히 가르고 대지에 틀어박혔다. 일검. 그리고 죽음. 어깨
에 타고 있던 아투마저 놀랄 정도로 무서운 위력이었다.
케케케케케!
하지만 지능이 비교적 낮은 베히모스 녀석들은 이번 동족의
죽음이 그저 우연일 것이라 생각하는 모양이다. 포기하지 않
고 골렘을 얕보며 다시 한번 빠르게 달려들었다. 동시에 다크
바스타드가 허공을 가르며 무모하기 짝이 없는 베히모스의 목
을 노리고 쇄도했다.
후우우우웅!
턱!
푸쉭. 녀석의 목이 갈라지는 소리가 아니라 턱? 아투는 약간
놀란 모양인지 하마터면 골렘의 어깨에서 떨어질 뻔했다. 급
히 정신을 차린 그는 손잡이를 꼭 부여잡고는 놀랍게도 대검
을 입으로 꽉 물고 놓지 않고 있는 베히모스를 볼 수 있었다.
날카로운 이빨이 대검의 날카로움에 의해 마모되어 거의 부러
질 듯 했고 검에 베인 입안에서 체액이 흘렀지만, 녀석은 결
코 검을 놓지 않았다.
"크, 큰일이다!"
아투가 크게 당황할 새도 없이 틈을 노린 마물의 공격이 개시
됐다. 일단 멀리서 맹렬히 달려오던 베히모스 한 녀석이 몸을
날려 가이트리아의 가슴팍을 들이받았고, 한 녀석은 다리를
물고 마구 잡아당겼다. 저번보다 강도가 강해져서 파손되는
부위는 없었지만, 균형을 잃는 것까진 피하지 못해 곧 골렘의
몸이 왼쪽으로 쓰러졌다. 동시에 손에서 검마저 놓쳐버렸다.
"으아아아아악! 젠장! 에어 플라이!"
오랜만에 욕지기를 내뱉은 아투는 일단 비행 마법으로 날아
올라 마물들의 공격 범위 바깥까지 벗어났다. 하지만 골렘까
지 신경을 쓰지 못해 가이트리아는 베히모스들에게 둘러싸여
엄청난 공격을 받고 있었다.
"너무 방심했어. 쳇."
아투는 급히 마나 애로우를 허리에서 뽑아서는 대충 2서클 뇌
전 마법을 걸었다. 대형 몬스터에게는 웬만한 마법은 먹히지
않는다. 때문에 2서클이나 3서클 정도의 마법으론 어림도 없
다. 그 점을 잘 알고 있는 그가 노리고 있는 것은 바로 뇌전 마
법의 추가 효과인 마비. 바로 그것이었다.
"썬더 볼!"
푸른색의 뇌전이 시위를 떠나 대기를 갈랐다. 빠른 속도로 날
아간 뇌전 화살이 베히모스 한 녀석의 등에 정확히 박혀들었
고, 곧 빠지직 소리와 함께 스파크가 일었다. 동시에 마구 골
렘의 가슴팍을 발톱으로 할퀴고 있던 녀석의 몸이 빳빳이 굳
어졌다.
꾸오오오오오오!
약간 틈이 생기자 골렘이 분노에 찬 포효 소리를 내지르며 과
격하게 몸을 일으켰다. 엄청난 힘으로 인해 베히모스들 몇 마
리가 붕 떠오르며 퉁겨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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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 오늘은 야자를 띵가띵가~ 하고 왔기에...
조금 일찍 올렸습니다.
과연 내일 학교에서 어찌 될런지... 쿨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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