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렘마스터] # 1급 어쌔신 루시노[2]
"바로 여기가 레전드 크로우의 진정한 본거지. 이곳에 오게
된 당신들을 환영하오."
아투가 이런 저런 걱정 때문에 어두운 얼굴 표정을 짓고 걸음
을 옮긴지 얼마 지나지 않아 회색의 사내가 멈춰 서며 그렇게
말했다. 딴 생각에 빠져 앞도 보지 않고 있던 아투는 그제야
제 정신으로 돌아와 고개를 들었다.
지금까지 걸어왔던 음침하고 축축하고 지저분한 느낌의 하수
로와는 전혀 다른 광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안이 환희 들여다
보이는 유리막을 사이에 두고 반대편의 광경은 정말 아투를
비롯한 일행 모두를 놀라게 할 정도였다.
깔끔하게 정돈된 붉은 벽돌 내부. 무슨 대 상인의 본점 사무
실과도 같은 분위기를 풍기는 사무적인 장소. 그리고 책상의
앉아서 무언가를 연신 뒤적거리며 조사를 하고 또 무언가를
적고 있는 사람들. 일행 모두 이런 모습은 처음 보는 듯 새로
운 물건을 보고 놀라는 어린 아이의 표정을 지은 채, 회색의
사내의 도움으로 유리막의 거대한 비밀 문을 열고 안으로 들
어설 수 있었다.
"저, 정말 대단하군."
지금껏 한 마디도 하지 않고 무게를 잡고 있던 소울드가 결국
에는 그 놀란 감정을 주체하지 못해 감탄사를 내뱉었다. 어지
간해서는 절대 동요를 보이지 않을 듯한 신성 기사단의 단장
인 그루나시엘도 작게나마 감탄성을 흘렸고, 폰네스 후작도
마찬가지였다.
쿵.
가이트리아가 안쪽으로 들어서면서 일부러 발소리를 크게 냈
다. 순간 책상 앞에 앉아 있던 존재들 모두가 살기 어린 눈빛
으로 골렘을 노려보았다. 어떤 자는 반사적으로 환도를 꼬나
쥐고 공격 자세까지 잡고 흉흉한 분위기를 만들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분위기도 곧 회색 사내에 의해 정리됐다. 어쌔신
들은 다시 맡은 일을 해결하기 위해 책상 앞에 자리를 잡았
고, 일행은 사내의 안내를 받으며 그들을 지나 어떤 문 앞까
지 다다랐다.
"이 방이 대장의 방이오. 나는 다시 의뢰를 받으러 돌아가야
하니, 당신들이 들어가 보시오. 일단 들어가면 당장 당신들의
정체부터 밝혀야 신상에 좋을 것이라 충고하오만은 그거야 당
신들 자유이니 현명하게 판단하는 게 좋을 거요."
그렇게 한 마디 충고의 말을 남긴 회색의 사내는 믿을 수 없
을 정도의 속도로 일행에게서 멀어져 사라졌다. 일행의 리더
격 존재인 아투는 잠시 주변을 둘러보더니 무의식적으로 침
을 한번 크게 삼켰다. 그리고는 비정상적으로 커다란 문을 열
고 모두와 함께 안으로 들어갔다.
슈슈슈슈슉!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무언가 바람을 가르는 소리와 함께 은
빛 물체가 아투의 목에 드리워졌다. 일행 중에서 비교적 그런
것에 대한 반응이 빠를 수밖에 없는 그루나시엘과 폰네스, 바
주크가 검을 뽑아들며 앞으로 나섰지만, 이내 그들의 목도 순
식간에 은빛 물체가 드리워졌다.
"노크도 없이 들어오다니 실례가 아닌가요?"
이곳 레전드 크로우의 주인인 자의 음성이 일행의 귀에 들려
왔다. 하지만 예상과는 다르게 그 음성은 딱딱하고 차갑고 위
엄이 서린 남성의 것이 아닌, 부드러운 고음의 것이었다. 목
에 살짝 닿아 살기를 내뿜는 환도 때문에 숨조차 쉬기 힘들 정
도로 바짝 긴장하던 아투는 '딱' 손가락을 퉁기는 소리와 함
께 느슨해지는 검을 밀치고 목덜미를 매만졌다.
"어쨌든 이곳에 온 것을 환영합니다. 저는 레전드 크로우의
대장이자, 1급 어쌔신이라 불리는 루시노라고 해요."
사사삭.
형체도 없이 다가온 바람이 어느새 자그마한 인간의 체구로
변해 있었다. 보랏빛의 어깨까지 내려오는 머리칼. 활동성을
고려해 입고 있는 짧고 타이트한 전투복. 그리고 부드러운 눈
매와 뽀얀 목덜미가 확실한 여성임을 증명하듯, 아투의 시선
을 빼앗았다. 아투 일행에게 은빛 환도를 겨누었던 어쌔신들
도 어느새 그녀의 옆으로 자리를 옮긴 뒤였다.
"저희들은 퓨티아 제국의 사람들입니다. 현 황제인 미스티 폐
하의 명령으로 급히 레전드 크로우의 대장을 만나러 온 것입
니다."
아투는 아직도 느껴지는 목덜미 부근의 살기 때문에 얼굴이
하얗게 질려 있었다. 일행들 중, 검을 사용하는 사람들은 언제
라도 상대의 도발에 대응하기 위해 검의 손잡이에서 손을 때
지 않았다. 소울드도 이미 소환 주문을 대부분 읊어놓고 시동
어만 준비해둔 상태였고, 일부러 얼굴을 알리지 않기 위해 앞
으로 나서지 않고 있는 미스티도 팔찌를 만지작거렸다.
하지만 루시노는 그런 일행을 보고도 별 관심이 없는 듯, 아
투 일행의 가장 뒤쪽에 서있는 골렘에게로 다가갔다. 그녀의
얼굴이나 외모로 봐서는 대략 나이가 이십대 중반 정도는 되
어 보였는데, 어울리지 않게 골렘을 바라보는 표정이 아이 같
았다.
꾸오오오오오!
루시노의 손바닥이 골렘의 다리 부근에 닿자마자, 기괴한 포
효소리가 터져 나왔다. 대장을 수행하는 경호 어쌔신들이 급
히 그녀를 둘러싸며 환도를 고쳐 쥐었지만, 가이트리아는 가
볍게 속으로 코웃음을 치며 침묵했다. 오히려 루시노의 얼굴
에는 재미있다는 표정이 떠올랐다.
"제국에서 오신 분들이라고요?"
"네, 그렇습니다."
아투는 공손히 답했다. 하지만 속으로는 여자답지 않은 그녀
의 이름 때문에 간신히 웃음을 참고 있었다.
"흐음. 제국의 사람들이 왜 여기까지 오셨을까요……."
그녀는 귀엽게 보조개가 파이는 웃음을 보이면서 고개를 갸
웃거렸다. 대륙 최강의 암살 집단을 이끄는 인물로는 전혀 상
상할 수 없는, 그런 살기 어린 대장의 이미지를 완전히 상실
케 하는 정반대의 모습 때문에 일행 모두 약간 당혹스러운 표
정을 지었다.
"훗. 저희들의 방문 목적은 간단해요. 황제 폐하께서 직접 써
주신 공식 요청장도 있어요. 자, 여기… 한번 읽어보세요."
얼떨떨한 표정으로 말문이 막힌 듯 멀뚱하게 서있는 아투를
대신해 미스티가 친절한 미소를 머금고 나섰다. 루시노는 그
녀를 향해 답례의 미소를 지어 보인 뒤, 품속에서 꺼내어 건네
는 종이를 살짝 받아들었다.
천천히 종이를 받아 읽어 내려가는 루시노 그녀의 표정이 굳
어졌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천진난만한 소녀의 모습을 보이
던 그녀였지만, 굳은 얼굴에서는 살기가 뿜어졌다. 주변의 어
쌔신들은 이미 그런 변화에 익숙한 듯, 말도 꺼내지 않았는데
스스로 진형을 갖췄다.
"후후후. 그랬군요? 그림자의 로브……. 그것을 원했던 거였
군요."
루시노가 싸늘하게 중얼거렸다. 동시에 그녀의 한쪽 손이 옆
으로 뻗어짐과 동시에 등에서부터 보이지 않던 보랏빛의 망토
가 촤르르 펼쳐졌다. 그것은 마치 생명을 가진 것처럼 허공에
서 꿈틀거리기 시작했고, 풍겨지는 기운에 의해 일행 모두가
흠칫했다.
"이것이 그림자 로브. 레전드 크로우의 대장에게만 주어지는
명예로운 망토입니다. 이걸 당신들에게 넘겨달라니……, 너
무 무례한 것 아닌가요?"
"제국에서 원하는 모든 것을 제공할 용의가 있습니다. 파격적
인 조건인데도 그림자 로브를 넘겨줄 수 없다면, 저희도 무력
을 행사할 수밖에 없습니다. 민간인에게 직접 말할 수는 없으
나, 대륙. 아니 전 세계의 존망이 걸린 아주 커다란 문제입니
다. 한번만 저희를 믿어주십시오."
그루나시엘의 백작의 위엄을 살려 루시노를 설득해보려 했
다. 하지만 레전드 크로우의 대장까지 오른 그녀가 그 정도의
압력에 굴복하리라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불안한 아투의 시선
이 그녀의 보랏빛 눈동자에 머물렀다.
"후우. 하긴 제국에서 이런 곳까지 와서 암살자인 저를 만나
는 당신들을 보니, 무언가 심상치 않은 일이 있는 것도 같군
요. 게다가 들려오는 소문에 의하면 이번에 황제로 등극한 미
스티 폐하의 직속 부하가… 골렘술사였다는 얘기도 있고 말이
죠. 후후후."
그녀는 얼굴에 가득 했던 살기를 풀고 아투를 바라보았다. 대
충 일행의 정체를 파악한 듯, 장난기가 가득한 표정의 그녀였
다. 왠지 기대하는 말이 나올 듯도 한데…. 일행은 그녀의 얼
굴을 빤히 쳐다봤다.
똑똑똑.
막 루시노가 입을 열려하는데, 누군가가 노크를 했다. 동시
에 루시노를 수행하는 어쌔신들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르
게 움직여 모습을 감췄고, 곧이어 문이 열리며 누군가가 들어
왔다.
"오늘은 방문객들이 많군요."
1급 어쌔신 루시노는 환도를 든 손을 등뒤로 감추면서 천진난
만한 미소를 머금었다. 일행은 하는 수 없이 새로운 손님에게
도 자리를 내어주기 위해 일단 벽으로 붙어 섰다. 하지만 이
내 손님들의 얼굴을 확인하고는 흠칫하여 각자 공격 자세를
잡았다. 바로 다이티의 직속 기사단인 붉은 화염의 기사단. 그
것도 제 1, 제2 기사단장 막스윈과 드레이크가 들어왔기 때문
이다.
"헛!"
그들도 아투 일행을 보고는 적지 않게 놀라며 허리에 찬 붉
은 검을 빼들었다. 하지만 모습을 감추고 있던 경호 어쌔신들
이 그들 두 기사의 목에 은빛 환도를 들이밀며 나타나자 순식
간에 상황은 정리되었다.
"역시 다이티 쪽의 행동도 빠릅니다. 자칫 잘못했으면, 그림
자의 로브를 빼앗겼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루나시엘은 붉은 화염의 기사들을 노려보며 으르렁거렸
다. 예전 교황이 황성에 자리하고 있을 때부터 신성 기사단과
붉은 화염 기사단 사이는 항상 좋지 않았었다. 붉은 화염 기사
단은 항상 살생을 즐기며 파괴를 일삼았던 그다지 질이 좋지
않은 녀석들이기 때문이다. 예전의 기억을 떠올린 미스티의
고개가 수긍한다는 듯이 끄덕여졌다.
"제국의 일행이 먼저 도착해 있었군. 흐흠."
막스윈은 차분한 그의 성격처럼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의 한쪽 손은 드레이크가 아투를 보고 덤벼들려 하는 것을
간신히 막고 있었다.
"오늘따라 외부인의 출입이 너무 잦군요. 블랙. 대원들에게
레전드 크로우의 이방인 출입을 엄격히 제한하라고 이르세
요. 만약 명을 어기고 내부로 타지 사람들을 데리고 들어온다
면 내가 용서하지 않겠다고 말해두세요."
루시노는 기사를 경계하고 있는 어쌔신에게 말을 했다. 그러
자 환도를 거둔 어쌔신은 그녀를 향해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
더니, 경호 대원들을 데리고 다시 모습을 감췄다. 정신 없이
바뀌는 주변 상황에 당황하는 건 아투 일행만이 아니라, 붉은
화염 기사들도 마찬가지였다.
"거기 기사 두 분도 혹시 그림자 로브 때문에 온 건가요?"
어색한 분위기를 깨고 루시노가 물었다. 얼굴에는 생글생글
거부할 수 없는 상큼한 미소를 지은 채.
드레이크가 거칠게 입을 열려하자 막스윈이 그의 입을 막으
며 가볍게 고개만 끄덕였다. 그러자 루시노는 잠시 어두운 표
정으로 방문객들을 찬찬히 둘러보더니, 이내 한숨을 푹 내쉬
었다.
"그림자 로브를 쉽게 내드릴 순 없어요. 이건 레전드 크로우
에서 인정하는 실력자에게만 내려지는 뜻 깊은 물건. 게다가
강력한 마법 아이템이라서 그 가치를 따질 수 없는 물건이죠.
하지만…."
"하지만?"
아투 일행과 붉은 화염 기사가 동시에 기대 어린 눈빛으로 되
물었다. 어찌 보면 부담스럽기까지 한 그들이 시선 때문에 슬
쩍 고개를 숙인 루시노는 무언가 결심을 한 듯한 결의 어린 목
소리로 확실하게 말했다.
"하지만! 레전드 크로우에서 인정하는 1급 어쌔신인 나, 루시
노와 겨루어 이긴다면 그 증거로 그림자 로브를 가져가도 좋
아요. 대신 각 각 한 명씩을 뽑아 나에게 도전해야 합니다. 합
동 공격이라면 저도 대원들과 함께 할 수밖에 없어요."
한 명씩이라…. 그녀의 말을 들은 사람들은 모두 다행이라는
표정이었다. 1급 어쌔신을 상대로, 게다가 그녀가 이끄는 어쌔
신들을 상대로 무모한 싸움을 벌일 생각은 애초에 없었기 때
문이다. 그나마 승부를 가려 그림자 로브를 내어주겠다고 하
는 그녀의 관대함에 감사하는 마음까지 가졌다. 그런 마음은
붉은 화염 기사라고 해서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들도 레전드
어쌔신의 소문은 익히 들어 잘 알고 있으므로.
"후음. 그림자 로브를 가져다가 어디에 쓰려는 생각들인
지……."
루시노는 벌써부터 누구를 결투 상대로 선택해야 하는지에
대해 상의를 시작한 방문객들을 바라보면서 피식 웃음을 터뜨
렸다. 과연 그녀가 1급 어쌔신의 실력을 가지고는 있을까 하
는 의문이 들 정도로 그녀의 미소는 해맑았고, 천진난만했다.
결코 살인이라고는 해보지 않았을 듯한. 절대로 그런 장면도
보지 못할 듯한…. 하지만 그녀의 실체를 아는 자는 그리 많
지 않다는 사실을 생각해볼 때 그러한 것은 모르는 일이었다.
"당신인가요? 붉은 화염 기사단 대표로 나서는 사람이?"
루시노는 여유로운 미소를 머금은 채, 붉은 기사 두 명 중 앞
으로 나서는 지적 스타일의 인물을 확인했다. 안절부절 하지
못하고 감정 표출을 심하다할 정도로 뚜렷이 보이는 뒤쪽의
기사보다는 실력이 상당히 있어 보였다. 게다가 그 기사의 손
에 들린 붉은 검의 검날에는 아직은 미약하지만, 절정에 달했
을 때 무시무시한 위력을 발할 화염의 마나. 즉 검기가 실려
있었다.
"그렇소. 나는 붉은 화염 기사단의 제 2 기사단장인 막스윈이
라 하오. 미약한 실력이지만, 한번 그대와 겨뤄보고 싶소."
막스윈은 깔끔하게 자신을 소개하며 루시노와 일정 거리를
유지했다. 실제 나이보다 상당히 어려보이는 여성. 천진난만
한 미소를 머금고 있는 그녀라고는 하지만, 막스윈에게는 오
로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고지를 가로막고 있는 장애물 정
도로 밖에는 보이지 않았다.
"그럼 시작입니다."
그렇게 고음의 루시노의 목소리를 기준으로 막스윈과 그녀
의 대결이 시작되었다. 그와 동료인 드레이크는 아투 일행을
견제하면서 둘의 모습을 계속 관찰했고, 아투 일행은 편한 마
음으로 대결이 끝나기만을 기다리기로 했다. 막스윈이 비록
기사 단장이고 뛰어난 실력을 가졌다고는 하지만, 루시노의
상대는 될 수 없다고 그루나시엘과 폰네스 후작, 그리고 바주
카 그 셋이 모두 똑같이 예상을 했기 때문이다.
"흐아아아앗!"
막스윈은 아투 일행의 그러한 예상을 아는지 모르는지 묵묵
히 검을 휘둘렀다. 옅게 맺힌 붉은 검기가 대기를 스치자, 화
르르 소리가 나며 불꽃이 일었다. 루시노는 양손에 나눠든 환
도로 검기를 일일이 막아낸 뒤, 허리를 숙이고 빠르게 쇄도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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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으. 엄청난 피로가 한꺼번에 몰려오고 있습니다.
거의 몇 달 동안 쌓인 피로...
풀 수 있는 좋은 방법 아시는 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