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골렘마스터-188화 (188/244)

[골렘마스터]  # 모두 드러난 파괴의 조각들[2]

슈우우우웅!

그런 뜨거운 대지와 하늘을 사이에 두고 유유히 날아가는 거

대한 비행체가 있었다. 황금빛의 비대한 광선이 붉은 하늘을

잠시 아름다운 황금으로 수놓았고, 그 황금으로 이어진 유려

한 곡선은 붉은 토사 대지 위로 우뚝 선 산. 바로 화염을 머금

고 세상에서 가장 뜨거운 물질을 간직한 화산의 정상으로 향

했다.

'크흠. 대단한 열기군.'

골드 드래곤. 이미 신룡급에 접어든 드래곤 로드 그라디우스

가 막 뿌연 수증기와 뜨거운 열기가 뿜어지는 화산의 정상을

통해 내부로 진입했다. 오로지 보이는 것이라고는 산 안으로

자리잡은 뜨거운 대지, 용암뿐이었고, 그 외에는 아무것도 보

이질 않았다. 다른 것이 존재할 만한 환경이 아닌 것이다.

그라디우스는 빠르게 산 중심부를 통하여 아래로 하강했다.

뜨거운 열기가 점점 더 짙어졌지만, 드래곤. 그것도 신룡급에

접어든 그에게는 별 다른 피해를 줄 수 없었다. 다만 강하게

풍기는 유황 냄새는 그의 코를 자극해 반사적으로 얼굴을 찌

푸리게 만들었다.

'저기가 봉인의 장소인가 보군. 하긴… 그 정도로 세상을 혼

란에 빠뜨렸으면, 이런 벌을 받아도 마땅하지.'

그는 고개를 살짝 들어 산의 한쪽 벽면으로 뚫린 작은 동굴

의 입구를 보았다. 멀리서 보아도 입구 위쪽으로 쓰여진 고대

신성어가 뚜렷이 들어왔다.

슈우우우우웅!

황금빛의 거체가 한쪽으로 크게 선회하여 동굴의 입구로 향

했다. 하지만 입구의 크기는 그가 출입할 수 있을 정도로 커다

랗지 않았기에, 하는 수 없이 마나를 운용해 폴리모프를 해야

만 했다.

황금빛이 한번 그의 몸을 휩쓸고 지나가자, 거대하고 위엄 있

는 드래곤의 모습은 사라지고 유려하고 멋진 외모를 소유한

20대의 청년이 나타났다. 낙하의 속도를 그대로 유지한 채, 동

굴 앞으로 튀어나온 지면을 살짝 밟은 그라디우스는 일단 고

개를 들어 고대 신성어를 바라보았다.

'상당한 봉인이군. 하지만… 이 녀석보다 더 골치 아픈 녀석

이 나타나게 될 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머뭇거릴 시간이 없지.'

그라디우스는 그렇게 자기의 행동을 합리화하며 한쪽 손을

들어올려 마나를 방출했다. 그러자 황금빛이 마나가 퍼져나

가 동굴 입구에 쓰인 신성어를 휘감았다.

펑!

작은 폭음과 함께 신성어가 쓰인 동굴 입구의 벽이 살짝 부셔

졌다. 동시에 입구에 가득 찼던 신성력이 일순 사라져버렸다.

만족스런 표정으로 자기의 작품을 감상한 그라디우스의 걸음

이 여유롭게 이어져 동굴 안으로 향했다.

"킥킥킥킥. 생명. 거의 천 년만에 맡게 되는 생명의 냄새다.

킥킥킥킥."

동굴 안으로 들어선 그의 귀에 기분 나쁜 음성이 들려왔다.

그라디우스가 손을 살짝 퉁기자, 황금빛 구체가 허공으로 떠

올라 동굴 안의 어둠을 몰아냈다.

"크아아아아악! 빛! 빛이다!"

천 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빛을 못 본 존재인지라, 녀석은 마

구 발광을 하며 날뛰었다. 그라디우스는 차갑게 웃으면서 녀

석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실버그래이. 묘인족의 제 2대 수장이 바로 너냐?"

"킥킥. 어떻게 날 알고 있지? 하긴… 이곳에 온 것을 보면 무

언가 아는 놈이겠지. 게다가 나보다도 더 강한 놈인 것 같고

말이야. 킥킥킥."

그라디우스의 얼굴이 찌푸려졌다. 하지만 녀석을 담은 눈을

돌리지는 않았다.

은회색의 갈퀴. 지금은 많이 헝클어져 있긴 하지만, 한 때는

잘 나가던 존재였다. 차갑게 식은 눈동자도 이제는 초점을 거

의 잃어버렸고 예전에는 강인했을 육체도 지금은 비쩍 말라있

지만, 그래도 과거에는 대륙을 카오스로 몰고 갈 뻔 한 위험

인물 다섯 명 중 하나였던 녀석이다.

"킥킥킥킥. 뭘 원하지? 모든 힘을 빼앗기고 그저 힘없는 괴물

의 모습이 되어 이곳에 봉인된 나에게. 시간조차 압류 당해 죽

지도 못하고 이런 생활을 영원히 해야하는 나에게 뭘 바라고

온 거냐?"

실버그래이가 천천히 앞으로 걸어나왔다. 하지만 이내 무형

의 장막에 부딪혀 뒤로 넘어졌다. 동굴의 벽에는 알아볼 수 없

을 정도로 빼곡이 신성어가 쓰여져 있었다.

"네 녀석에게 바라는 것은 딱 한 가지다. 파멸의 장갑을 내놔

라. 지금 네 녀석으로선 그걸 소유해도 의미가 없다."

그라디우스는 말을 돌리지 않고 직설적으로 말했다. 순간 실

버그래이의 표정이 무너졌다.

"이, 이 녀석! 파멸의 장갑은 내 힘과 권위의 상징이다! 지금

은 비록 신들의 횡포로 인해 이런 신세가 되어 있다고 해도 언

젠가 나는 다시 대륙으로 돌아갈 것이란 말이다!"

"물론 빼앗아갈 생각은 없다. 아니, 빼앗아가지 못한다. 이곳

은 신들의 힘으로 봉인된 장소이니 무모하게 힘을 쓸 생각도

없고. 다만 너와 거래를 하고 싶어서 왔다."

"거래? 킥킥킥킥. 제법 머리는 돌아가는 모양이군. 그래, 어

떤 조건으로 나의 파멸의 장갑을 원하는 거냐?"

실버그래이는 그라디우스의 정체를 아직도 파악하지 못했

다. 만약 신룡급의 드래곤이라는 사실을 알았다면 벌써 공포

에 휩싸여 말도 제대로 하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모든 힘을

빼앗기고 평범한 생명들보다도 더 못한 존재가 된 녀석이 그

사실을 알 리가 만무했기에 크나큰 잘못을 저지르고 있다는

것도 알지 못했다.

묘인족의 말투가 상당히 기분 나빴지만, 그라디우스는 일단

꾹 감정을 누르고 말을 꺼냈다.

"네 녀석이 봉인된 이유는 예전 대륙을 휩쓸며 피의 바람을

일으켰기 때문이지. 게다가 색마라는 악명까지 떨치고 말이

다. 자, 그럼 잘 봐라."

금빛 청년의 손이 잠시 허공을 갈랐다. 그러자 황금빛의 마나

가 뿜어져 공간을 가르고 틈을 만들어냈다.

"헉!"

실버그래이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공간의 틈새로 마치 조각

이라도 한 듯한 아름다운 여성이 걸어나왔기 때문이다. 비록

눈빛이 흐리고 무언가 행동도 이상하긴 했으나, 색마였던 실

버그래이가 천 년만에 보는 상대였다. 흥분할 수밖에 없었다.

"크아아아아악! 여자다! 여자!"

녀석이 갑자기 힘을 내며 밖으로 달려나오려 했다. 하지만 무

형의 장막에 호되게 부딪히고 나서야 정신을 차렸다. 그라디

우스는 일이 거의 성사된 것이라 여기며 여유롭게 말했다.

"파멸의 장갑과 이 인형. 교환을 하는 것은 어떤가? 참고로

이 인형은 네가 원하는 것은 뭐든 하도록 내가 특별히 제작했

다. 그리고 하루에 한번씩 스스로 소유한 마나로 체형과 얼굴

도 바꿀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이런 인형과 파멸의 장갑과의

교환이라면 그리 나쁘지 않을 것이라 보는데."

"크으……."

실버그래이는 금빛 청년과 인형. 아니 아름다운 여성을 번갈

아 바라보았다. 그나마 눈빛 속에 숨어 있던 묘인족 수장의 자

부심도 사라진 뒤였다. 오로지 눈앞에 있는 여성을 가지고 싶

다는 욕망이 강렬하게 솟구쳤다.

"클클클클. 나의 약점을 가지고 교환을 요구하다니."

휙!

갑자기 녀석이 무언가를 그라디우스쪽으로 던졌다. 금빛 청

년은 황금빛 마나로 그것을 받아들고 살폈다. 파괴의 룬이 새

겨진 검은색의 글러브. 파멸의 장갑이 확실했다. 만족스런 미

소를 띄게 된 그라디우스는 손가락으로 실버그래이를 가리켰

다. 그러자 그의 옆에 서있던 백옥 같은 피부의 인형이 가식적

인 미소를 머금고는 묘인족에게로 다가갔다. 그리고는 말했

다.

"당신을 위해 모든 걸 바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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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모든 걸 바치다니...

저게 뭔 소릴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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