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골렘마스터-179화 (179/244)

[골렘마스터]  # 엘프 후작 폰네스[2]

소울드는 불안에 떠는 남은 기사들을 애써 격려하며 급히 계

약자의 주문을 읊기 시작했다. 리치와의 계약은 이미 끝났지

만, 리치를 황성에 남겨두고 왔기 때문에 급한 소환이 필요했

던 것이다. 주문에 따라 완성되는 마법진을 바라보며 만족스

런 표정을 지은 소울드는 자신감 있게 '소환! ' 이라는 단어를

외치며 발록과의 싸움에 돌입했다.

폰네스 후작은 절망감에 빠져 주변을 둘러보았다. 온통 검은

거구의 괴물들이 보일 뿐이었다. 수도에서 상당히 가까운 거

리임에도 불구하고 원군이 보이질 않는다. 몇 시간 전 잠깐 원

군이 왔었던 것 같았지만, 오히려 그들이 먼저 패해 돌아간 뒤

였다. 애써 이곳까지 도망쳐 왔건만. 후작의 머릿속은 이런 저

런 복잡한 생각으로 뒤죽박죽이 되어갔다. 어떻게든 살아남아

야 했다. 이런 마물들. 더러운 것들에게 죽는 것은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다행히 아직은 후작의 주변에 유능한 기사들과 마법사들이

대거 생존해 있었다. 후작의 직속 기사단인 파이커 기사대의

일원들 대부분이 아직도 살아남아 발록을 상대했고, 또한 기

본적으로 5서클의 마법을 마스터한 마법사들도 총 열 다섯 명

에서 현재 열 명 남짓 살아남아 최후까지 싸우려는 의지를 불

태웠다. 후작은 그들을 돌아보며 그들과 끝까지 함께 하리라

다짐하였다.

'영지 안의 사람들을 대피시키느라 너무 많은 힘을 소모했으

니.'

후작은 굵은 채찍이 날아드는 것을 보고는 날렵하게 몸을 날렸다. 그의 귀를 덮으며 둘러진 헤어 밴드가 유난

히 돋보였

다. 유려한 그의 신형이 하늘로 떠올랐다가 바닥으로 내려앉

자 발록들의 목표가 되어버린 모양이다. 거의 열 마리 정도의

발록들이 날린 채찍의 그의 몸을 박살낼 듯한 기세로 쇄도했

다.

폰네스 후작은 급히 오른쪽으로 몸을 날렸다. 한 바퀴를 허공

에서 회전하며 채찍 하나를 피해낸 그의 왼쪽 손바닥에서 푸

른 뇌전이 뿜어져 다른 하나의 채찍을 퉁겨냈다. 하지만 아직

도 남은 채찍은 여덟 개나 되었다. 평소의 체력과 마력을 유지

했다면 충분히 막아낼 수 있었을 테지만, 현재는 극도의 정신

력으로만 간신히 버티고 있을 뿐이었다. 반사적으로 손에 들

린 중검을 휘둘러보긴 했지만, 소용없음을 알고 눈을 질끈 감

았다.

콰과과과과광!

그런데 시간이 지나도 아무런 고통이 없었다. 오히려 이상한

굉음이 후작의 귀를 울려댔다. 일단 안도의 한숨이 절로 나왔

지만, 급히 정신을 차린 후작은 눈을 뜨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리 바뀐 광경은 없는 듯 했다. 수많은 발록들이 주변을 둘

러싸고 있었고, 파이커 기사들이 녀석들과 혈투를 벌였다. 마

법사들이 간혹 견제 마법을 난사하는 것도 변함이 없었다.

하지만…… 거대한 거인이 갑자기 눈에 띄었다. 발록들의 기

괴한 모습과는 다른 무언가 웅장하면서도 위엄이 서린 체구.

그 거대한 존재의 주먹이 방금 전까지 후작을 압박하던 발록

열 마리를 상대로 싸우고 있었는데, 전혀 밀리지 않았다.

"저, 저것은!"

후작이 상황을 아직 눈치 채지 못하자 그를 수행하던 기사가

다행이라는 표정으로 다가와 보고를 했다.

"폰네스 후작님! 지금 수도에서 원군이 도착했습니다! 궁중

마법사이신 실피스님께서 텔레포트를 사용해 기사단을 이끌

고 오신 것입니다!"

"후우. 지금에서야 오다니. 어쨌든 정말 다행이군. 이 상황이

계속 지속되었다면 우리의 패배가 분명했을 터."

후작은 애써 여유를 가지며 땀을 닦았다. 잡티 하나 없는 깨

끗한 우윳빛 피부는 웬만한 여인들이 먼저 부러워 할 정도로

뽀얗게 빛났다. 에메랄드빛의 남자답지 않은 풍성한 머릿결

또한 그를 중성적 이미지의 미소년 스타일로 만드는 데 큰 공

헌을 하였다.

"흐음."

후작은 어느 정도 긴장을 풀며 텔레포트로 나타났다는 원군

의 움직임을 살폈다. 어깨에 그려진 문양을 봐서는 제국 수도

에 창설된 기사단 중, 전력이 비교적 약하다고 알려진 퓨티아

기사단 기사들인 것 같았다. 역시 발록과의 전투가 상당히 버

거워 보였지만, 현재 최악의 체력 상태로 싸우고 있는 파이커

기사들보다야 나은 듯 했다. 폰네스 공작은 옆에 서있던 수행

기사를 시켜 급히 기사단을 정렬하고 후방으로 빠지라고 명령

했다.

"허허허허. 이거 오랜만이군. 폰네스 후작."

검을 쥔 손에서 아직 힘을 빼지 못하고 머뭇거리는 후작을 향

해 누군가가 말을 걸었다. 폰네스 후작은 고개를 돌려 친근하

게 말을 걸어오는 존재를 확인했고, 얼굴이 옅은 미소를 띄었

다. 오래 전 황성에서 자주 뵈었던 괴팍한 성격의 마법사, 실

피스였기 때문이다.

"절묘한 순간에 원군을 와주셔서 정말 다행입니다. 하마터면

큰일을 당할 뻔했습니다."

"허허허허. 항상 생각하는 거지만, 나보다 나이 많은 사람. 아

니 존재에게 존대를 받는 것도 어색하군."

실피스의 나이는 이미 백 살을 넘어섰다. 하지만 폰네스 후

작. 미소년의 외모를 가진 그에게 나이가 많다고 하다니. 그런

데도 주변에서 그를 수행하는 기사들은 모두 무언가를 알고

있는 듯 동요가 없었고, 발록을 상대하며 후작을 보호하던 골

렘술사 아투만이 퍼뜩 놀라 눈길을 건넸다.

"이 녀석아. 조금 있으면 다 알게 될 내용이니 발록들이나 제

대로 상대해!"

후웅!

지팡이가 아슬아슬 몸을 숙인 아투의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

다. 오랜만에 스승님의 공격을 피한 것에 대해 자부심이 생긴

아투가 후작을 향해 잠깐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한 뒤, 다시 가

이트리아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발록들의 위력은 대단했다. 퓨티아 기사단 소속의 기사들. 비

교적 전력이 약하다 평가되는 기사단이긴 하지만, 그래도 명

색이 검술 훈련을 받고 시험까지 통과한 기사들이었다. 그런

그들을 발록은 별 무리 없이 밀어붙였다. 처음에는 대등한 상

태를 유지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사상자가 속출하기 시작했

다. 루미니, 레브로스 공작과 샤우드, 빈츠 백작 모두 잘 싸우

고 있었고, 창술의 달인이라 불리는 티탄도 자신의 몇 배나 되

는 괴물을 상대로 여유를 부리고 있었지만, 기사단이 밀리기

시작하니 점점 더 수적인 열세를 면하기가 어렵게 되어갔다.

골렘인 가이트리아가 한꺼번에 여럿을 상대할 수 있다고는 해

도 수백을 혼자서 상대하는 것은 무리이니, 기세 좋던 원군의

등장에도 불구하고 다시 사람들은 위험에 빠졌다.

"이럴 줄 알았으면 파손된 부위에 대한 복구를 서둘렀어야 했

는데. 정말 낭패야."

아투는 가이트리아의 몸에 난 상처를 바라보았다. 그동안 고

된 싸움 끝에 얻었던 흉터가 가이트리아의 몸에 남아 있었다.

저번 데스 크라이의 싸움에서 얻은 큰 상처 때문에 복구를 해

주려 했지만, 시간이 없다는 핑계로 골렘에게 신경을 쓰지 못

한 아투였다. 가이트리아는 게으른 주인의 행동을 질책하면서

도 급히 그림자 보법으로 발록이 휘두르는 채찍을 피했다.

『어쨌든 이곳에서 벗어나면 최대한 빨리 복구를 해줬으면

한다. 다행히 멀리서 그루나시엘이라고 하던 그 신성 기사가

기사단을 이끌고 다가오는 기운이 느껴진다. 게다가 우리들

중 가장 대단한 존재가 움직이려 하고 있다.』

가이트리아는 그렇게 말하며 토네이도 펀치로 발록의 면상

을 갈겼다. 퍽, 하는 소리와 함께 녀석의 목이 뒤로 완전히 넘

어가며 두두둑, 목이 부러지는 소리가 났다. 하지만 잠깐 방심

한 사이 두 갈래 방향에서 채찍 두 가닥이 날아와 골렘의 팔

과 다리를 후려쳤다. 나무 재질의 파편이 사방으로 튀며 다시

한번 상처가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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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이트리아~~ 가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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