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렘마스터] # 마계로 소환된 사람들[7]
리치. 언데드 계열 최강 마물인 리치는 사실 지상계에 쉽게
나타날 수 없는 존재였다. 현재 지상계에서 발견되는 리치 또
한 극소수일 뿐이다. 하지만 이곳 루이슨 산 정상에 자리잡고
성까지 지어 생활하는 리치는 어떻게 된 것일까.
그 해답은 바로 녀석이 쓰고 있다는 어둠의 왕관에서 찾을
수 있다. 어둠의 왕관이 지닌 신의 권능. 그것이라면 생명이
없는 리치의 힘조차 증폭시켜주기 때문에, 아무런 계약자나
소환자도 없이 녀석 혼자 지상계로 모습을 드러낼 수 있었던
것이다. 물론 리치 또한 지상계 존재들의 힘을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루이슨 산 정상에서 조용히 지상계 생활을 만끽할
뿐, 타인에게 피해를 주거나 한 적이 없었다. 덕분에 지금까지
도 평온한 생활을 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어둠의 왕관을 둘러
싸고 경쟁을 하고 있는 자들 때문에 그러한 오랜 평온이 깨질
판이었다.
"그루나시엘님. 검은 구름도 리치가 만들어놓은 마법 현상입
니다. 앞이 보이질 않으니, 성이 어디 있는지 알 수가 없습니
다."
퓨티아 기사단의 부단장인 얀이 거대한 대검을 어깨에 걸친
채, 말했다. 직접적은 아니지만 신성 마법으로 구름을 해결해
달라는 뜻이 담겨 있었기에, 그루나시엘은 고개를 끄덕이더
니 한쪽 손으로 이마에 그려진 빛의 신 샤이트리아의 디바인
을 살짝 짚었다.
"세상의 모든 빛을 뿌리는 존재, 그 위대하신 샤이트리아의
이름으로 명한다. 부정한 것들의 숨결은 지금 당장 물러가라!
퓨어 클리닝!"
그가 신성주문을 읊조리자, 주변을 가득 매워 시야를 가리던
검은 구름이 서서히 신성 마법이 발동됨으로 해서 뿜어지는
빛에 의해 밀려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구름이 물러가는 자리
는 눈으로 확인할 수 있을 정도로 깨끗해져갔다. 그루나시엘
은 효과가 있음을 확인하고는 계속 마법을 유지한 채, 천천히
앞으로 걸어나갔다.
검은 구름이 사라진 후, 드러난 상 정상의 모습은 사람들의
예상을 크게 뒤엎는 것이었다. 일단 푸르게 펼쳐지는 새싹들.
그리고 그것들이 옹기종기 모인 들판. 한쪽에는 이름은 없지
만, 아름다운 빛깔과 향기를 내는 꽃들이 물결을 이루고 있었
고, 다른 한쪽에선 작은 샘이 솟아 자연의 근원을 이루고 있었
다. 공기도 청정했고, 시야도 탁 트이는 것이 이런 곳이 또 있
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아름답고 굉장한 자연 광경이었
다. 기사 일행은 모두들 성을 찾아 걸으면서도 감탄을 금치 못
했다.
"헛! 그루나시엘님. 저길 보십시오. 저기 작은 성이 보입니
다."
스플리터가 한쪽 손을 들어올려 왼편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
루나시엘은 그의 손가락 끝으로 시선을 옮겼다.
"허어. 과연 성이로군. 하지만 생각과는 달리 상당히 아름답
고 멋진 성인걸?"
그루나시엘의 말 그대로였다. 리치의 성이라는 말을 들으면
일단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음침한 분위기. 그리고 이끼만
잔뜩 낀 성벽. 어두운 빛깔. 게다가 생긴 외관 자체가 기이하
다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지금 그루나시엘 일행의 눈앞에
펼쳐진 성의 모습은 그와는 정반대였다. 오히려 신성 제국의
수도 왕성인 홀리 캐슬과 그 이미지가 비슷하여 기사들의 호
감을 불러일으켰다. 상아빛을 띄고 있는 벽돌들. 그리고 완만
한 선을 이루는 아치형의 탑과 기둥. 개방된 문의 형상까지 모
두가 자유분방하면서도 일정한 규칙감이 느껴졌다.
"그루나시엘님. 함정일 수도 있습니다. 강력한 마법으로 우리
들의 시선을 가린 것일 지도 모릅니다."
얀이 약간은 억지성의 발언을 하면서 일행을 일깨웠다. 그루
나시엘은 가볍게 웃음을 띄면서 대꾸했다.
"그럴 일은 없을 것이네. 자랑은 아니지만, 신성 주문에 대해
어느 정도 경지에 오른 내가 그런 환상조차 구분 못할 리가 없
으니 말일세."
"그, 그렇군요."
얘기를 꺼냈던 얀은 멋쩍은 듯 뒤통수를 긁으며 뒤로 물러났
다. 창을 손에 쥐고 성의 주변을 눈을 굴려가며 살피던 티탄
이 한마디 덧붙였다.
"일단 성 주변에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보초를 서는 존재들
도 없고, 마물들 같은 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런 평
온함이 상당히 부담스럽습니다만."
"뭐 우리들을 기다렸을 지도 모르는 일이지. 마법을 통해 우
리들의 접근을 산 아래에서부터 지켜보고 있다가, 모든 준비
를 끝마치고, 여유를 부리며 기다리고 있을 지도…. 하하하.
하지만 괜찮네. 우리들은 절대로 지지 않을 테니. 자, 표정들
풀고 날 따라오게나."
그루나시엘은 전혀 긴장하거나 걱정스런 모습이 아니었다.
오히려 유쾌함이 묻어나는 표정으로 살짝 허리에 찬 검 손잡
이에 한쪽 손을 올려놓고는 태연한 척 걸음을 옮기기 시작하
였다. 티탄과 스플리터, 그리고 얀 등은 서로 눈빛을 교환하더
니 이내 그의 등뒤로 바짝 붙어 만일의 사태에 대비했다.
성안 또한 상당히 아름다운 형태였다. 일단 가운데 공터 부근
의 중심에는 커다란 분수대가 마련되어, 아직까지도 그 맑은
물이 뿜어지고 있었고, 분수대에서 뻗어 나온 수로가 성의 이
곳 저곳으로 이어져 통하고 있었다. 그 주변으로는 푸른빛을
띈 정원수가 그 왕성한 생명력을 이어갔고, 둥지를 틀고 조용
한 생활을 하고 있던 한 새의 가족이 이방인인 그루나시엘의
방문을 환영하는 듯 지저귀었다.
기사 일행은 그 중앙 광장에서도 한참을 걸어서야 성 내부로
통하는 입구를 찾을 수 있었다. 보기 좋게 펼쳐진 외관과는 달
리 구조 자체를 놓고 보자면 상당히 복잡했다. 만약 나 홀로
이곳에 들어오게 된다면 금방 길을 잃을 것이 뻔한, 그러한 곳
이었다. 그러나 기사 일행은 묘하게 성 내부에서 뿜어지는 마
기를 감지하고는 그 기운의 길을 따라 걸었다. 다들 일정 수준
을 넘어선 정식 기사들이기에 가능한 행동이었지만.
일단 성의 바깥과 내부는 그리 다를 바가 없었다. 전체적으
로 흰색의 빛깔을 띄고 있다는 것도 그러했고, 섬세하게 만들
어진 기둥이나, 벽. 그리고 각종 자질구레한 건축물에서까지
그러한 느낌이 절로 풍겨 나왔다. 창은 하나도 뚫려있지 않았
으나, 온통 흰색의 빛이 복도를 비추었다. 그루나시엘은 이상
한 구조를 보며 어리둥절해하면서도 계속 기운을 쫓아 붉은
융단을 밟고 안으로안으로 향했다. 그럴수록 온 몸을 자극하
는 마기가 더욱 짙어져갔다.
삐거덕.
앞서 걷고 있다가 커다란 문에 막혀 멈춰 섰던 그루나시엘이
양손을 뻗어 힘껏 문을 열었다. 거침없는 그의 태도에 당황한
다른 일행이 급히 무기를 손에 쥐고는 혹시나 튀어나올지 모
르는 마물이나 리치의 공격에 대비했지만, 다행히 별 일은 없
었다. 뒤를 돌아보며 왜 그리 호들갑이냐는 듯 어깨를 으쓱하
는 그루나시엘을 선두로 하여, 내심 안도한 일행이 뒤를 따랐
다.
『잘 오셨소. 제국의 기사들이여.』
놀랍게도 안은 칠흑 같은 어둠뿐이었다. 분명 문 바깥까지는
백색 광채가 넘쳐흘렀지만, 그 빛은 이곳 문 안쪽의 공간까지
새어 들어오지 못했다. 그리고 어둠의 한 켠에서 들려오는 음
성에 긴장한 기사 일행은 그루나시엘을 제외하고는 제각기 무
기를 뽑아들며 자세를 잡았다.
"당신이 이곳의 주인이자, 어둠의 왕이라 불리는 리치인가?"
그루나시엘은 대충 리치가 있을만한 곳을 바라보며 물었다.
하지만 어둠이 짙게 깔려 분간하기가 쉽지 않았다. 역시나 리
치의 음성은 전혀 다른 쪽에서 들려왔다.
『다들 그렇게 부르더군. 하지만 그냥 리치라고만 불러줬으
면 하는 바램이오.』
의외로 리치라는 존재는 공격적이지 않은 것 같았다. 목소리
에선 오히려 사교적인 느낌마저 묻어났다. 엄청난 싸움을 예
상했던 기사 일행으로선 맥이 빠지는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당신이 아무리 굉장한 존재라고 해도 내가 왜 이곳에 왔는지
는 알 수 없겠지?"
『흐음.』
백색 기사의 질문에 리치는 쉽게 대답하지 못하였다. 하지만
갑자기 어두웠던 공간이 환희 밝혀졌다. 그리고 어둠 속에 가
려졌던 깔끔한 실내의 모습이 드러났다. 아마도 손님을 접대
하는 곳으로 사용하는 곳인 마냥, 여러 명이 둘러앉을 수 있
는 테이블과 소파가 놓여져 있었다. 그리고 왼편으로 자리잡
은 진열장에는 값비싸고 귀한 술들이 잔뜩 진열되어 있었다.
전체적으로 심플한 느낌이 들었지만, 그렇다고 부족한 것은
없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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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중한 말투의 리치...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