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렘마스터] # 마계로 소환된 사람들[3]
"다, 당신과 함께 하겠습니다. 위대하신 마족, 섀도우님."
거한은 이미 그의 최면에 넘어가 흐릿해져버린 눈동자로 바
닥에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였다. 섀도우 나이트의 얼굴에는
어느새 만족스러운 빛이 가득 번져갔다.
텔레포트와 도보를 적절히 섞어가며 죽음의 신전으로의 여정
을 재촉한지 이제 막 나흘째로 접어든 날이었다. 아투 일행은
상당히 지친 기색이 역력한 모습으로 죽음의 신전 바로 그 입
구까지 도착해 있었다. 죽음의 신전에서 발산되는 어두운 기
운 때문에 주변의 환경은 차마 눈뜨고는 볼 수 없을 정도로 처
참했고, 도저히 생명체들이 접근할 곳이 되지 못하는 것 같았
다. 지금은 때가 때이니 만큼 맑은 햇살이 대지를 비춰야 했지
만, 오히려 하늘은 밤보다 더욱 짙은 어둠에 휩싸여 있었다.
검은 빛으로 바닥에 깔린 늪은 아투 일행이 내딛은 발을 서서
히 끌어당겨 완전히 집어삼키려 하고 있었는데, 특히 무게가
많이 나가는 가이트리아가 심각한 상황에 처한 상태였다.
"정말 이곳을 소울드님이 만드신 겁니까?"
아투는 자꾸 발을 빨아들이는 늪에 신경을 쓰며 눈앞에 펼쳐
진 최악의 자연 환경과 그 자연 한 가운데 자리잡은 거대한 신
전. 아니 거대한 유적과도 비슷한 죽음의 신전을 바라보았다.
지붕도 없었고, 벽도 없었으며, 기둥조차 없는 기이한 형태의
신전은 오직 몇 개의 거대한 석상과 바닥에 그려진 마법진이
전부였는데, 놀랍게도 석상과 마법진 근처에는 빼곡이 마법
의 문자가 쓰여져 있었다. 기하학적 도형까지 그려진 것으로
봐서는 죽음의 기운과 관련된 주문이나 진법의 일종인 듯 했
다.
소울드는 마법을 사용해 늪 위로 살짝 몸을 띄우며 자신이 예
전에 만들어놓았던 죽음의 신전을 확인했다. 예전과 그리 변
한 모습이 없는 신전의 횡 한 모습을 눈에 담은 그는 이내 회
상에 잠기는 듯 눈을 감았다.
"미안하지만, 아투. 이곳은 죽음의 신전이 아니야. 호호호."
갑자기 화이엘이 이상한 소리를 해댔다. 아투가 의아한 마음
에 입을 열려 하는데, 옆에 있던 미스티가 조심스럽게 작은 바
위 위로 올라서며 물었다.
"화이엘님. 소울드님이 안내한 곳이 여기가 확실한데, 어째
서 아니라고 하는 거죠?"
"호호호. 소울드. 직접 설명하는 게 좋지 않겠어?"
화이엘은 늙은 마법사의 가녀린 어깨를 툭툭 건드렸다. 알겠
다는 듯이 잠깐 헛기침을 해 보이던 그는 아투와 미스티, 그리
고 무표정한 얼굴로 일관하는 키메라 바주크를 돌아보며 진지
하게 말하기 시작하였다.
"사실 내가 이곳을 만들 때에 죽음의 신전이라는 이름을 붙
여 사람들을 헛갈리게 한 것은 사실이라네. 하지만 그 명칭 따
위는 상관없지. 이곳은 내가 발견한 죽음의 기운이 충만한 장
소. 바로 그곳으로 이동시켜주는 마법진이 그려진 곳이라네.
실질적인 죽음의 신전은 여기 마법진을 통해서 이동된 장소
에 존재하지."
"그렇다면 죽음의 신전이라는 말이 건물을 가리키는 것이 아
니라, 어떠한 공간을 가리킨다는 말씀입니까?"
비교적 마법의 이론에 박식하다고 할 수 있는 아투가 어렴풋
이 흑마법사의 설명을 이해하고는 질문을 던졌다. 소울드는
대견하다는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더니, 고개를 끄덕여 보였
다.
"그럼 빨리 가야하는 것이 아닌가? 무슨 상급 마족이 이러쿵
저러쿵 했던 것 같은데."
건조한 어조로 바주크가 일행을 일깨웠다. 잠시 스산한 주변
의 분위기와 커다란 마법진의 형상에 딴 생각을 하고 있던 아
투 일행은 즉시 석상과 도형으로 이루어진 대규모의 마법진
가운데로 걸어 들어갔다. 다행히 마법진의 유지를 염려해서인
지, 그곳의 땅만큼은 질퍽거리지 않고 단단했다.
"마법진의 발동은 어떻게 하는 겁니까?"
안전을 위해 미스티를 가이트리아의 어깨로 올라가게 받쳐주
던 아투가 말했다. 어느새 화이엘도 골렘의 다른 편 어깨에 올
라가 있었다.
"허험. 걱정 말게나. 죽음의 기운이 가장 강한 곳. 즉 어둠의
마기가 가장 강한 곳을 찾고 난 후, 다시는 고생하지 않게 하
기 위해 마법진 하나는 편리하게 만들어뒀으니까."
소울드는 마법진의 영향권 안에 일행이 모두 들어왔는지를
확인하고는 몇 발자국 걸아 나갔다. 그리고는 로브 속에서 무
언가를 뒤적거리더니 이내 손에 어떤 물체를 쥐고는 입을 들
썩거리며 주문을 읊기 시작했다.
"나의 의지. 그리고 나의 발자취를 따라 모습을 드러냈던 그
곳으로 지금 나와 나의 친구들을 인도하나니, 어둠의 공간이
여, 죽음의 영혼들이여. 우리들은 그대들의 공간으로 인도하
라. 다크 스페이스!"
주문을 완성시킨 소울드가 손에 들렸던 검은 수정구를 바닥
에 던져 깨뜨렸다. 동시에 깨진 수정구에서부터 엄청난 마기
가 뿜어져 일순 마법진을 휘감았다. 그리고 아투 일행의 전신
마저 휘감은 마기는 주변 마법진을 유지하던 석상까지 뻗어
가 힘을 발했다.
"역시 누군가가 먼저 사용했던 모양이네. 아무런 저항 없이
공간 텔레포트 마법진이 발동하기 시작했어."
소울드는 역시나 하는 표정으로 눈빛을 새로이 했다. 이곳 마
법진을 발동시키기 위한 조건 중 하나가 바로 흑마법사. 그곳
도 어느 정도 경지에 오른 사람만이 가능한 것이었다. 그런데
도 이렇게 누군가가 흔적을 남겼다는 얘기는 이미 뛰어난 흑
마법사 한 명이 이곳을 이용해 죽음의 신전으로 넘어갔다는
얘기였다. 역시 상급 마족 데스 크라이의 소환 의식이 한창일
것이라는 생각에 빠져든 소울드의 얼굴은 보기 좋게 일그러졌
다. 그리고 그의 걱정에 비례하기라도 하듯 크게 부푼 마기가
순간적으로 일행에게 아득한 느낌을 선사하며 낯선 곳으로 인
도하였다.
아투 일행이 이동한 곳은 방금 전 으슥한 느낌의 늪보다도 더
욱 기분 나쁜 기운을 풍기는 곳이었다. 사방은 온통 심연의 어
둠만이 가득했고, 어디가 하늘인지 어디가 땅인지조차 분간
이 어려웠다. 마치 허공에 떠있는 느낌을 받은 아투는 하마터
면 비명을 지르려 했지만, 이내 시야 안으로 들어오는 존재들
을 바라보면서 굳게 입을 다물었다.
"멈추게! 무모하게 상급 마족을 소환해서 뭘 어쩌겠다는 것인
가!"
소울드가 그들을 향해 외쳤다.
그들. 한 명은 아름답지만 싸늘한 느낌을 풍기는 다크 엘프였
다. 육감적인 몸매를 드러내는 옷은 화이엘과 비슷한 것 같았
지만, 굴곡으로 볼 때는 엘프가 어울리지 않게 훨씬 더 풍만했
다. 그리고 그 엘프의 옆쪽으로는 바주크와 비슷하게 후드와
망토를 두른 존재가 있었다. 덩치도 키메라인 바주크와 비슷
했지만, 외부로 드러나는 부분이 없기에 당장 식별은 불가능
해 보였다. 하지만 아투 일행의 관심은 그들이 아닌, 그들의
앞쪽에서 기괴한 마법진을 형성하고 힘든 표정으로 주문을 읊
조리는 흑색 로브 차림의 마기를 짙게 풍기는 흑마법사였다.
이미 의식은 그 종반을 치닫고 있는 듯 흘러나오는 주문의 소
리가 격해져갔고, 점점 더 커져 가는 엄청난 존재감에 방금 이
곳 이상한 세계로 이동해온 아투 일행이 숨을 죽이며 긴장했
다.
"이런 곳까지 쫓아오는 인간이 있을 줄이야. 정말이지, 다이
티가 말하던 것처럼 엄청난 녀석들이군."
이제 곧 소환의 의식이 완성될 것만 같은 흑마법사를 뒤로하
고, 다크 엘프가 몸을 돌려 새로이 나타난 이방인들을 마주했
다. 지저분한 천으로 전신을 가리고 있던 거구의 존재도 엘프
의 움직임을 쫓아 돌아섰다.
"아무래도 소환 의식은 막을 수 없게 된 것 같은데?"
화이엘의 표정이 딱딱히 굳어 있었다. 옷 밖으로 드러난 살갗
을 통해 기분 나쁜 마기의 움직임이 느껴졌다. 이것은 이미 소
환자의 뜻에 응한 마족의 기운을 넘어선 것이었다. 왠지 불길
한 예감이 그녀의 머리를 스쳐지나갔다.
"정말 큰일입니다. 이제 곧 저 흑마법사의 부름에 응한 데스
크라이가 모습을 드러낼 것입니다."
소울드는 탄식에 가깝게 엔젤을 향해 중얼거렸다. 화이엘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우리가 원하는 물건을 데스 크라이가 가져 나오기만을
기다리면 되니까, 거기 서서 편하게 기다리지 그래?"
다크 엘프가 일행을 향해 비아냥거렸다. 본능적으로 위협을
느낀 바주크가 대검을 양손에 쥐고는 누가 말릴 틈도 없이 달
려나갔다.
"어림없어!"
"가만. 내가 막겠다."
다크 엘프가 달려나오려 하는데, 상대편 망토와 후드를 두른
자가 먼저 나섰다. 순간적으로 힘을 가한 그의 몸이 약간 부푸
는가 싶더니 망토와 후드를 갈가리 찢어버렸는데, 이윽고 드
러난 형체는 키메라인 바주크만큼이나 기괴한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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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아~
다 잘 시간에 배가 고파졌다눈... ㅜ_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