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렘마스터] # 흑마법사 소울드[2]
골렘의 다리 부근에 앉아서 무표정한 얼굴을 짓고 있는 존
재. 온 몸에 강철 가시를 달고 있는 키메라, 바주크. 이번에도
역시 아투의 뒤를 따라 나선 그가 아무 감정도 느껴지지 않는
표정으로 앞을 내다보고 있었다. 솔직히 그가 들으면 기분 나
빠할지도 모르지만, 미스티는 항상 그를 보면서 불길한 예감
에 젖어들곤 했다. 이번에도 그를 돌아보며 괜히 온 몸이 오싹
해짐을 느낀 그녀는 애써 미소지어 그에게 관심을 보인 뒤, 딱
딱한 자세로 되돌아 앉았다.
"후우…. 하긴 이쪽 지방으로 마물 토벌대의 주력을 파견해
서 거의 대부분의 마물들을 제압한 상태니까."
아투는 약간 이상해 보이는 미스티를 대신해 그렇게 답했다.
사실 이 근처에는 아투가 명령하여 지어진 임시 요새도 존재
했고, 메션 왕국에서 파견된 골렘술사들도 아직 머물고 있기
때문에 마물들이 나설 자리가 없었던 것이다. 게다가 수도에
서 보충된 군사들이 요새를 지키며 매일 토벌대의 그 세력 범
위를 넓혀나가, 지금 현재로서는 마물들이 거의 모습을 드러
내지 않고 있었다.
"저기 저 성벽이 긴프네 왕국과 퓨티아 제국의 국경선을 뜻하
는 거야?"
하늘을 유유히 날고 있던 화이엘이 한쪽 손을 들어올려 저 멀
리 펼쳐진 지평선 부근을 가리켰다. 미스티가 그녀의 질문에
눈을 가늘게 좁히며 그쪽으로 시선을 집중했고, 이내 간신히
확인된 모습에 고개를 끄덕였다.
"케레니아 국경 요새. 저곳을 사이에 두고 양 국가 군사가 국
경을 지키고 있어요. 함께 건설한 곳이니 만큼, 마찰도 적고
서로 상호 보완 관계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에 별 무리 없이 운
영되는 곳이죠."
"긴프네 왕국. 과연 어떤 곳일까? 어렸을 때 가본 기억이 얼
핏 들긴 하지만, 자세히 떠오르는 모습이 없어. 일단 듣기로
는 자연이 아름답고 드넓은 평야 지대가 펼쳐져 보리수가 고
개를 숙이고 있다고들 하던데 말이야."
다른 사람들과 같이 지평선 쪽으로 가늘게 보이는 성벽을 확
인한 아투가 상당히 기대한다는 눈빛으로 중얼거렸다.
"후훗. 하긴 저도 긴프네 왕국에 가본 적이 없어요. 그래서 이
렇게 가슴이 설레는 것 같아요."
"어이, 미스티. 지금 우리는 놀러 가는 게 아니야. 그런 마음
은 일단 다이티와 마왕의 행동을 저지하고 난 뒤에나 해줬으
면 해. 호호호호호."
화이엘은 마치 소풍이라도 가는 듯한 그녀의 행동에 대해 살
짝 질책하는 의도를 담아 장난스럽게 말했다. 비록 그녀가 웃
고 있긴 하지만, 의도를 정확히 파악한 미스티는 몇 번 고개
를 끄덕이고는 이내 입을 야무지게 다물었다.
휘이이이이이.
바람을 가르며 거대한 골렘 가이트리아와 화이엘이 국경 요
새의 제국 측 지역을 벗어났다. 그리고 눈부시게 빛나는 황금
물결. 아투는 그제야 자신의 눈을 비벼가면서 긴프네 왕국의
드넓은 평원 지대. 즉 제국의 영토를 벗어나 긴프네의 영토로
들어왔음을 깨달았다.
정말 다른 사람들에게 듣던 것처럼 굴곡 하나 없는 완만하고
평평한 들판이 저기 멀리 보이는 도시까지 뻗어 있었다. 게다
가 들판 위로는 황금 물결이 찬란히 빛났다. 바로 빵의 주원료
가 되는 밀. 그리고 긴프네 왕국의 자랑거리인 벼가 누렇게 익
어 수확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었다.
"우와! 저, 정말 대단한데? 이런 곡창 지대는 클라미디 대륙
그 어느 곳을. 아니 다른 대륙의 그 어느 곳을 뒤져봐도 쉽게
찾지 못할 것 같아. 그런데 긴프네 왕국은 이런 지역이 영토
를 이루고 있다니, 정말 축복 받은 나라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
아투는 광범위하게 펼쳐진 황금 들판을 눈에 담으며, 보며 느
낀 그대로의 감상을 말로 표현하였다. 미스티도 그저 말로만
들었던 긴프네 왕국의 곡창 지대를 눈으로 보고 실감함으로
서, 소규모 국가인 긴프네 왕국이 어떻게 아직까지도 대륙에
존재하는지를 까닭을 알 수 있었다.
"호호호호. 지상계에도 이런 곳이 있었네? 우리 천상계에 존
재하는 자연과 조금은 비슷한 점이 있어."
화이엘도 감탄을 금치 못할 정도로 정말 긴프네 왕국의 영토
는 대단했다. 과연 다른 나라들이 그곳의 비옥한 토지를 노리
고 전쟁을 일으킬 것이라는 소문이 돌만도 했다.
"…."
지금 이 시점에서 무표정한 표정을 짓고 뚱하게 있는 존재는
우드 골렘인 가이트리아와 키메라인 바주크 밖에는 없었다.
『거기 하늘을 날고 있는 마법사는 들으시오!』
한참 아투 일행이 긴프네 왕국의 비옥한 토지를 눈에 담으며
감탄사를 연발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아래쪽에서 음성 증폭
마법이 걸린 자의 목소리가 큼지막하게 들려왔다. 주변의 모
습에 정신이 팔렸던 일행들은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는 아래쪽
으로 시선을 떨구었다. 그 밑에는 긴프네 왕국에서 관리하는
요새가 존재했고, 성벽 위에는 아투 일행을 견제하듯 활을 겨
눈 궁수들이 보였다. 게다가 한쪽 부분에는 마법사 지팡이를
손에 쥔 마법사 일부도 눈에 띄었다.
『이곳은 긴프네 왕국이 영토요! 제국 사람들이라면 당장 아
래쪽으로 내려와 그 증거를 대고 지상으로 지나가시오! 요구
에 응하지 않으면 적으로 간주하고 공격하겠소!』
밑에 쪽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았다. 게다가 지금 당장 내려오
지 않으면 적으로 간주하고 공격하겠다고 말하는 마법사의 외
침에, 아투 일행은 괜한 싸움에 휘말릴 지도 모른다는 생각 하
에 서서히 고도를 낮추었다.
쿠구구구궁!
높은 상공을 날던 가이트리아의 몸이 지면에 닿자 상당한 울
림과 함께 굉음이 울려 퍼졌다. 내려오기 전 안전한 착지를 위
해 골렘의 어깨로 자리를 옮겼던 아투와 미스티, 그리고 바주
크가 주변을 둘러싸는 긴프네 왕국의 병사들을 둘러보며 천천
히 지면을 밟았다.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게 날개를 감추고 비
행 마법으로 지면에 내려온 화이엘도 아투의 옆으로 다가가
자세를 잡았다.
"당신들. 보아하니 마법사인 것 같은데, 어찌하여 이곳 영공
을 침범하는 것이오?"
아투 일행을 둘러쌌던 긴프네의 병사들 사이에서 나이가 지
긋이 들은 노년의 마법사 한 명이 지팡이로 몸을 의지하고는
천천히 걸어나왔다. 아투 일행의 시선을 일제히 그에게 쏟아
졌다.
"죄송합니다. 워낙에 급한 일이 있어서…. 이제부터 그냥 육
지로 이동하도록 하겠습니다."
아투가 급히 마법사의 말에 대꾸를 하며 중재에 나섰다. 하지
만 상대측 마법사는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은 모습으로 눈빛
을 빛내며 아투 일행에게 조금 더 다가와 말했다.
"일단 영공을 침범한 것은 봐줄 수 있으나, 당신들의 신분이
확실치가 못하다면 당장 감옥 행이 될 것이오. 어서 신분을 증
명할 수 있는 것들을 보여주시오."
법대로 하겠다는 얘기였다. 상당히 딱딱하게 나오는 마법사
를 보며 아투는 오히려 기분이 좋아졌다. 자신의 임무에 책임
을 다하는 모습. 요즘처럼 실속만을 차리는 세상에서는 찾아
보기 힘든 모습이니 말이다. 다른 사람들도 아투의 생각과 일
치하는 모양인지 밝게 웃고 있었다.
"신분을 증명할 것이 없다면 일단 이곳에 머물면서 당신들의
신분을 증명해줄 사람을 데려와야 할 것이오."
다시 한번 재촉하듯 말하는 마법사의 요구에 아투는 퍼뜩 딴
생각에서 벗어나며 잠시 기다리라고 말했다. 그리고는 저번
에 미스티의 황제 대관식 뒤에 받았던 가디언 나이트의 패를
찾기 시작했다.
'분명히 옷에다 잘 넣어뒀었는데….'
아투는 계속 몸을 더듬거리다가, 점점 더 곤란하다는 듯이 얼
굴색이 변해갔다. 하지만 그뿐만이 아니라 다른 일행 모두 지
금 자신의 입장을 밝히기에는 곤란함이 있었다. 일단 미스티
는 제국의 황제. 그녀가 갑자기 신분을 숨기고 긴프네 왕국 영
토 안으로 들어가려 했다는 것이 알려지면 정세와 대륙의 나
라간의 대세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 모르는 일이었고, 화이엘
또한 엔젤이라는 것 때문에 쉽게 정체를 밝힐 수 없는 노릇이
었다. 그렇다고 키메라 바주크가 특별히 신분을 밝힐 만한 것
을 가지고 있지도 못했다.
"허험. 아무래도 의심이 가는군. 당신들이 아직은 저지른 일
이 없으나, 신원이 확인될 때까지는 일단 여기에 머물러 줘야
겠소. 당신들이 속한 국가에 지금 당장 연락을 해서 당신들의
신분을 증명해줄 사람을 데려올 수 있도록 도움을 줄 수 있는
있소. 자, 어서 이들을 요새 안으로 정중히 모시도록 하게."
마법사는 아무 것도 꺼내지 못하고 서로 얼굴만 바라보고 있
는 아투 일행을 보며 획 고개를 돌렸다. 그가 가볍게 손짓을
하자 앞으로 달려나온 다섯 명의 병사들이 아투 일행을 둘러
쌌다. 정중하게 모시라는 말의 의미를 이제야 파악한 아투는
이마를 찌푸렸다.
"우리도 우리 나름대로의 사정이 있는데, 꼭 이렇게 번거롭
게 해야 합니까?"
아투는 억지인줄 알면서도 될 대로 되라는 심정으로 그렇게
말했다. 하지만 역시나 몸을 돌려버린 마법사의 반응은 없었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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깐깐한 경비소 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