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골렘마스터-157화 (157/244)

[골렘마스터]  # 두 가지의 사실을 알게 되다[3]

"자, 그럼 일단 실피스의 용건은 끝난 것 같으니, 내 얘기를

좀 해볼까?"

잠자코 실피스의 모든 얘기를 들어주던 화이엘이 어울리지

않는 진지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이에 미스티와 아투는 눈

을 동그랗게 뜨고 그녀를 향했고, 위대한 엔젤의 앞에서 그만

실수를 해버렸다고 판단한 실피스도 예의 바른 자세로 돌아앉

았다.

"호호호. 일단 전에 내가 맡기로 했던 그 파괴 전설에 관한 해

석은 완료됐어. 상당히 흥미롭고, 또 위험한 내용이더라?"

모두의 시선을 받은 그녀의 말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파괴의 신, 디스트로이어.

대우주의 법칙. 모든 세계를 모아놓은 더 큰 의미의 세계. 그

세계가 창조 6대 신을 탄생시킬 때, 크나큰 실수를 한 부분이

있었다고 한다. 바로 창조와 파괴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탄생

시켰다는 파괴 본능만으로 살아가는 절대신 디스트로이어였

다. 창조 6대 신이 나름대로의 능력으로 현 세상을 창조하고,

또 여러 생명들을 만드는 동안, 파괴의 신은 그들이 만들어놓

은 것들을 모두 파괴하고, 심지어는 창조신들마저 위협할 정

도였다. 그래서 창조 6대 신은 서로 힘을 합치기로 했다. 애써

창조해낸 세상이 녀석의 손에 파괴되자, 도저히 창조 6대 신

은 참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파괴의 신의 권능은 창조 6대 신들의 모든 힘을 합친

것을 능가할 정도로 강하고 위대하였다. 빛의 신, 용기의 신,

사랑의 신. 그리고 어둠의 신, 절망의 신, 욕망의 신. 그들의

모든 능력을 합해 파괴의 신에 대항했지만, 결코 녀석을 잠재

울 수 없었다. 그리고 결국 세상은 파멸의 위기를 맞게 되고,

동시에 파괴의 신을 탄생시키는 잘못을 저질렀던 대우주의 법

칙 속에 코스모스 또한 녀석에게 소멸 당할 위기를 맞게 되었

다.

이에 코스모스는 창조 6대 신을 도와 녀석을 영원히 잠재우기

로 마음을 먹게 되었다. 원래는 모든 일에 관여하지 않고 항

상 탄생과 균형을 맞추는 역할이었던 코스모스였지만, 만약

이번에 힘을 사용하지 않아 파괴의 신을 내버려둔다면 탄생이

고, 균형이고 모두 끝장이 날 판이었다.

코스모스는 결국 거대한 마법진을 형성하여, 그 안으로 파괴

의 신을 소환해 가두었다. 파괴의 본능을 흡수하여 정화하는

마법진은 그 기능을 충실히 수행했고, 다른 창조 6대 신들도

스스로의 권능과 신성력을 사용하여 파괴의 신을 소멸시키려

노력했다. 파괴의 신은 끝까지 엄청난 힘으로 그들에게 대항

했지만, 대우주의 법칙 그 자체인 코스모스를 상대로는 그리

쉽지 않은 싸움이었다. 오히려 파괴의 신이 점점 더 힘을 잃

고, 급기야는 영혼마저 소멸 당할 위기에 처해버렸다.

이에 파괴의 신은 자신이 한계를 처음으로 깨달았다. 그리고

파괴의 본능말고도 스스로 무언가를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을

터득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그래서 파괴의 신은 때가 좋지 않

음을 파악하고는 한 수 굽히기로 마음먹었다. 비록 형체는 소

멸할 지라도 영혼만 살아남으면 되는 것이었다.

결국 파괴의 신, 디스트로이어는 자신이 지닌 모든 파괴의 신

성력을 동원하여 영혼을 멀리 창조신들이 만들어 놓은 세계

중에 중간 단계. 즉 신들의 힘도 미치지 않게 설정된 지상계라

는 곳으로 이동시켜, 그곳의 생명체의 몸에 깃들게 했다. 그리

고 피를 이어받은 존재들에게 이어지도록 저주를 걸어놓았

다. 물론 때가 되어 파괴의 본능이 되살아나 부활의 준비를 하

게 하는 자의식을 심어놓는 것도 잊지 않았다.

영혼이 빠져나간 파괴의 신의 형상은 그냥 허수아비에 불과

했다. 코스모스의 위력 앞에 맥없이 무너진 파괴신의 껍데기

는 창조신들이 마지막 공격 앞에 완전 소멸되어 버렸다. 물론

코스모스와 신들 역시 녀석의 영혼이 온전히 빠져나갔음을 알

고 있었다. 그렇지만 지금 당장 대처할 수 있는 일은 아무 것

도 없었다. 파괴의 신이 설정한 그 날이 되어 녀석이 부활하

지 않는 이상은, 완벽한 소멸은 무리였다.

"이렇게 해서 결국 파괴의 신은 완전 소멸되지 않았다고 해.

지금도 지상계 어디선가 부활을 꿈꾸며 때를 기다리고 있겠

지. 그런데 이 얘기와 연관지어 생각할 수 있는 아주 중대한

사실이 또 한 가지 있어. 바로 파괴 전설. 녀석이 마지막으로

예언했던 그 글귀. 내가 여기 해석을 해 왔거든. 하나 하나씩

따져보자."

화이엘은 그렇게 말하면서 옷자락을 펼쳐 가슴속으로 손을

넣었다. 조금은 민망한 모습에 아투는 얼굴을 돌렸고, 실피스

는 무표정하게 시선을 멀리 했다.

"으음. 자, 보자…. 그래, 이 부분. [세상의 모든 것들의 순수

한 물로 나의 죄가 씻어지고.] 파괴 전설의 첫 단락 첫 문장이

야. 세상 모든 것들의 순수한 물. 뭔가 짚이는 게 있지 않아?"

어느새 품속에서 작은 종이 두루마리를 꺼내 펼쳐 쥔 화이엘

이 빽빽이 들어선 글자들을 조금 읽어 내렸다. 그녀가 읊은 부

분을 곰곰이 생각해보던 아투가 반신반의하는 마음으로 조심

스럽게 입을 열었다.

"전에 금단의 지역에서 제우스라는 존재가 했던 말과 비슷한

것 같은데?"

"아, 그러고 보니, 저도 기억이 나요. 분명 그 분께서 성수를

세상 모든 것들의 순수한 눈물이라고 말씀하셨어요."

미스티가 이제야 생각이 났다는 듯이 손뼉을 탁 치고는, 아투

를 거들었다. 물론 실피스는 금단의 지역에서 벌어졌던 일을

거의 모르고 있던 상태였기에, 그저 젊은이들의 대화를 지켜

보았다.

"호호호호. 역시 내가 좋아하는 사람다운걸? 정답은 바로 성

수. 즉 파괴 전설의 첫 부분은 성수를 뜻하고 있었어. 내가 해

석을 하면서도 놀랐을 정도였다니까."

화이엘은 조금은 자랑을 하듯이 가슴을 앞으로 쭉 내밀었다.

평소라면 당연히 그녀의 행동을 걸고 넘어갈 아투였지만, 어

쨌든 고신성문자를 해독한 그녀였다. 게다가 파괴의 전설에

서 성수를 언급하고 있음을 알게 된 그로서는 그녀의 사소한

부분까지 간섭을 할 처지가 아니었다.

"그렇다면 성수로 뭘 어떻게 하겠다는 거지…."

"흐음. 화이엘님. 혹시 파괴의 전설. 그 파괴의 신 디스트로이

어가 남겼다는 예언이 부활의 시기와 방법을 밝힌 것이 아닙

니까?"

가만히 짧은 얘기를 듣고 있던 실피스가 조심스럽게 사실을

넘겨짚었다. 순간 아투와 미스티의 얼굴은 무언가에 얻어맞

아 충격이라도 받은 듯 경직되어졌고, 질문을 받은 화이엘의

얼굴에도 잠깐 감탄의 빛이 스쳐지나갔다.

끄덕끄덕.

화이엘이 다시 표정을 엄중하게 고치고 고개를 아래위로 흔

들었다. 확답을 들은 실피스의 입에선 탄식의 한숨이 새어나

왔고, 어느 정도 사태를 파악한 아투와 미스티도 숨소리조차

내지 못하고 심각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실피스의 말처럼 파괴의 전설. 파괴의 신이 남긴 말을 적어

놓은 이 전설은… 그 신이 다시 부활 할 때와 그 부활의 조건

그 자체를 설명하고 있어."

"그렇다면 파괴의 신이 부활할 수 있는 가장 첫 째 조건이 성

수라는 얘기가 되는 건데…."

아투는 머리 속으로 다이티를 떠올렸다. 그는 자신이 신이 되

는 방법인 줄만 알고 있는 파괴의 전설, 즉 마왕이 다르게 바

꾸어 건네준 그 서적만 믿고서 꼭두각시 노릇이나 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도 평생에 걸쳐 이루어낸 모든 자리와 권한을 버

리고, 심지어는 자신의 생명까지 걸고서…. 아투는 왠지 다이

티라는 사람도 참 안 됐다는 측은한 생각에 빠졌다.

"그럼 내가 해석한 내용을 바탕으로 또다시 우리가, 아니 인

간들이 이해하기 쉽도록 더욱 자세히 풀어놓은 것을 가져왔

어. 물론 이것도 내가 직접 자필로 쓴 거니까, 감사히 여기고

보라고."

화이엘이 허공에 한쪽 손가락을 세우며 잠시 입을 들썩였다.

그러자 밝은 백색의 섬광이 잠깐 터져 나옴과 동시에, 뻗어 나

왔던 밝은 빛의 줄기가 각각 실피스, 미스티, 아투의 앞으로

흩어져 날아가 변화했다. 화이엘이 손에 쥔 두루마리와 비슷

한 크기의 종이였는데, 빽빽이 적힌 대륙 공용 문자가 눈을 어

지럽혔다.

아투는 일단 종이를 가까이 끌어당겼다. 그리고 찬찬히 그 두

루마리 종이에 적힌 내용을 읽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성수는 일단 의식의 시작에 사용할 제물이라는 소

리구나. 으음. 어둠으로 가득 찬 검은 하늘에 죽음의 진이 나

타나는 그 때. 이것은 그랜트 서클. 즉 여러 세계를 연결하고

있는 코스모스 대법칙의 아공간 우주에 존재하는 행성들의 배

열이 일정한 규칙에 따라 늘어서는 날을 말하는 것이고, 흩어

진 파괴의 조각들은 예전 파괴의 신의 형체를 이루던 것을 뜻

한다….'

대현자 헤르테미스에게서 들었던 내용과 고대 서적의 사본

을 해석하여 나온 중요 내용과는 별 차이가 없었다. 하지만 화

이엘이 직접 풀이해온 전설의 내용은 정말 충격적이었다. 파

괴의 신이 부활할 수 있는 조건이 명확히 제시되어 있는 글이

기 때문이다. 하지만 더욱 놀라운 것은 이런 수수깨끼 같은 말

들을 풀이해낸 화이엘의 능력이었다. 아무리 엔젤 나이트의

수장격인 상급 존재라고는 하지만, 이 정도까지 될 줄은 상상

도 하지 못했던 아투는 그녀를 존경의 눈빛으로 바라보게 됐

다.

"이 내용대로라면 과연 파괴의 신의 부활을 가능할 것도 같습

니다. 마왕 타크니스가 그런 것을 노리고 일을 벌일 만 하다

는 생각이 드는군요."

어두운 표정을 지은 실피스가 무겁게 고개를 끄덕이며 중얼

거렸다. 평소답지 않게 진지해진 화이엘과 스승님을 번갈아

바라본 아투의 얼굴도 썩 좋지 않아 보였다. 미스티는 낮게 가

라앉은 분위기를 어떻게 무마시켜보기 위해 애써 밝은 표정

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후훗. 그래도 조금씩 실마리가 풀리고 있네요. 일단 마왕의

음모는 역시 파괴의 신의 부활이라는 것을 알게 됐고, 두 번째

로는 그 역할의 수행자로서 다이티라는 존재가 선택되어졌

고, 게다가 이렇게 시간이 흘러가고 있는 순간에도 파괴의 신

이 부활할 수 있는 조건이 천천히, 하나 하나씩 갖춰지고 있다

는 것 말이죠."

표정과는 달리 그녀의 말의 내용은 상당히 심각한 것이었다.

일단 분위기만 바꿔놓자는 생각에 말을 내뱉던 그녀가 앗 하

며 급히 입을 다물었지만, 벌써 다른 사람들은 그녀의 말을

다 듣고 난 뒤였다.

"다이티는 성수를 얻었으니, 이제 자신이 신이 되기 위해선

분명 무언가 다른 제물이 있어야한다고 생각할 거야. 아마도

흩어진 조각이라는 부분을 마왕은 신이 되기 위한 조건이라

고 조작한 뒤, 다이티에게 넘겼을 테니 말이야."

화이엘은 천상계에서부터 생각해놓은 대안이 있는 모양인

지, 차근차근 의견을 말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일단 파괴 전설

의 내용은 해석이 되었지만, 아직 무엇부터 시작해야 될 지를

모르는 그들이었다. 게다가 가장 중요한 흩어진 파괴의 조각

들. 그것들에 대해 자세히 아는 것이 없으니 말이다.

"하지만 우리들은 그들보다 소유한 정보가 너무 적은 것 같

아. 무엇부터 시작해야 할 지도 정하지 못할 정도야. 그러니

까… 으음…."

아투는 여러 가지 현재 자신들이 처한 상황들을 예로 들어 화

이엘에게 하소연을 하듯 푸념을 늘어놓았다. 그러나 오히려

아투를 보는 그녀의 표정을 어둡지도 않고, 그렇다고 밝지도

않은 묘한 표정이 되어 있었다.

"그럼 내가 이제부터 아주 중대한 사실을 몇 가지 더 발표할

게. 사실은 이번에 천상계에서 간 것이 신들의 부름을 받고

간 거였거든. 그런데 아주 반가운 소식 몇 가지를 듣게 됐지.

게다가 내가 가져갔던 그 파괴 전설의 사본을 보신 신들께서

아주 협조적으로 나와주셨어. 자, 잘 들어봐."

말문이 시원스럽게 트인 화이엘이 천상계에 가서 빛의 3대 신

께 직접 들은 내용을 파괴 전설이 가리키는 것들과 하나 하나

연관지어 설명을 시작하였다. 실피스와 미스티, 그리고 아투

는 그녀의 주위로 점점 더 가까이 다가가서는 옛날 이야기를

기다리는 아이들의 심정으로 귀를 기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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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아~~

팔 아프넹...;;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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