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골렘마스터-153화 (153/244)

[골렘마스터]  # 클라미디 대륙의 위기[5]

"도끼처럼 생긴 부리를 가진 마물도 있었나?"

아투는 어이가 없다는 듯 어깨를 으쓱하더니, 가이트리아에

게 명령하여 달려드는 한 녀석을 가격하게 했다. 하지만 놀라

운 몸 동작으로 주먹을 피해낸 녀석이 부리를 크게 흔들어 골

렘의 팔을 내리찍었다.

팟!

단단한 우드 골렘 재질의 표면이 새의 부리에 찍히자마자, 깊

은 흔적이 남았다. 예상보다 날카로운 공격에 당황한 아투가

급히 마나 애로우로 마나를 쏘아내 그 새를 떨쳐냈다.

"이건 엑스 비크라는 하급 마물입니다. 부리가 도끼처럼 생기

고 꽤나 공격적인 성향을 가졌기 때문에, 상대하기 까다로운

하급 마물 중 하나라고들 하더군요."

아이언 골렘을 타고 있던 골렘술사가 아투와 등을 맞대며 엑

스 비크의 접근을 차단했다. 다른 골렘술사들은 각기 우드, 스

톤, 아이언 골렘을 이끌어 녀석들을 궁지로 몰아넣었다. 한쪽

에서 가장 약한 마물로 분류되는 슬라임이 꿈틀거렸지만, 거

대한 골렘의 주먹 한 방에 박살이 나버렸다.

하급 마물들과의 싸움은 그래도 처음의 예상처럼 빠르게 결

말이 났다. 물론 아투가 이끄는 구원 부대의 승리. 하급 마물

들은 정예 부대로 편성된 그들을 절대 이길 수 없었다. 그나

마 살아남은 마물들은 뿔뿔이 흩어져버렸으니, 다시 뭉칠 것

에 대한 염려 따위도 필요 없었다.

"어째서 이런 마물들에게 선발대가 당한 걸까…."

아투는 옷에 뭍은 먼지를 털어 내며 혼자 중얼거렸다. 이 정

도 수준의 마물들이라면 혼자 상대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그 정도로 수월한 싸움이었던 것이다.

"글쎄요. 이 녀석들은 고작 하급이었을 뿐입니다. 평범한 야

생 동물들과 비교해도 큰 차이가 없을 정도로 말입니다. 하지

만 중급과 상급의 마물들은 지금까지완 차원이 다를 것입니

다. 방심하지 않는 게 중요하지요."

아이언 골렘을 조종하는 골렘술사는 수도를 떠나 올 때부터

은근히 아투를 무시하는 언행을 남발했다. 지금도 역시 아투

가 뭔가 모르고 있다는 듯이 그를 무시하고 있었다. 지금까지

잘 참고 있던 아투는 결국 사령관으로서의 입지를 세우기 위

해 강한 한 마디로 쏘아붙였다.

"나는 마족과도 싸워봤습니다. 마왕과도 만나보았고, 또 드래

곤 로드이신 그라디우스님도 만나봤습니다. 혹시 아실 지 모

르겠는데, 거인 기사단의 기사 단장이 나의 아버지입니다. 엔

젤 나이트의 수장과도 친구 사이로 지내고 있지요. 그리고 마

지막으로…."

아투가 뒤를 슬쩍 바라보았다. 그의 시선을 받은 누군가가 사

람들의 그림자 속에 감추고 있던 모습을 드러내며 불쑥 아이

언 골렘의 주인 앞으로 튀어나왔다. 온통 철갑 가시에 둘러싸

인 피부를 가진 거구의 존재. 바로 아투를 따르기로 결심하고

지금까지 함께 하고 있는 주인 없는 키메라. 바주크였다.

"키메라 바주크가 항상 저를 보호해주고 있습니다. 상급 마물

들은 저에겐 별 것도 아니지요. 그럼 이제 하실 말씀은 없는

것 같으니, 행군을 계속하도록 하겠습니다."

가볍게 냉소를 한 그는 이내 멋진 포즈로 몸을 획 돌리고는

뒤쪽에서 명령을 기다리며 대기 중인 기사들과 병사들을 향

해 행군하라는 손짓을 보냈다.

*  *  *

밤이 깊었다. 확실히 공기가 맑은 지방이라 그런지 밤하늘에

별이 총총히 빛났다. 대지를 은은하게 비춰주는 반달이 오늘

따라 유난히도 밝아 보였다.

하지만 지금 이곳에 감도는 분위기는 정말 한 마디로 절망감

그 자체였다. 몇 살아남지 않은 사람들의 얼굴에선 이미 희망

이란 단어를 찾기가 힘들었고, 힘이 쭉 빠진 듯, 완전히 넋이

나간 듯 멍하게 무기를 손에 쥐고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것

만 반복할 뿐이었다.

"대장님. 저희가 살아날 가망성은 얼마나 되는 것입니까?"

근육질 몸매를 가진 중년 초기의 사내가, 이미 나이가 지긋

이 든 사내에게 물었다. 둘 다 갑옷을 멋지게 차려입고 있었는

데, 지금은 먼지와 피, 그리고 이상한 액체들로 얼룩이 져 원

래의 빛깔을 추측하기가 힘들었다. 그 두 사람의 주변에는 그

들과 비슷한 형상을 한 기사 수십 명이 보였다.

"지금 상황에서 미래를 생각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차라

리 현실만 생각하고 그때 그때 판단되는 것에 따라라. 살아남

기 전까진 나를 상관이라고도 생각하지 마라. 그저 우린 살아

남기 위해 노력하는 같은 동료일 뿐이니까."

중년에서 노년기로 접어드는 나이로 보이는 기사 단장이 피

로 얼룩진 검날을 천으로 닦아내며 자조적으로 답했다. 질문

을 던졌던 거구의 기사는 푸우 한숨을 내쉬고는 손에 들린 창

에 힘을 주었다.

스스스슥.

"스플리터 단장님! 또 무언가 다가오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

번엔 꽤 많은 수입니다!"

개폐식 투구로 얼굴을 가린 기사 한 명이 잔뜩 긴장한 목소리

로 외쳤다. 다른 동료 기사들도 어둠에 몸을 숨긴 채, 접근해

오는 존재들을 파악한 모양인지 각기 손에 들린 무기에 힘을

주며 주변을 경계했다. 스플리터라 불린 기사 단장은 구부렸

던 몸을 일으키며, 잠시 기지개를 폈다. 몇 일 간을 밤낮으로

싸워 몸이 뻐근했고 쑤시지 않는 곳이 없었지만, 지금 쉬려 했

다간 목숨을 그냥 가져가시오 하는 것과 다름없는 짓이었다.

"자, 다들 힘내자! 케인이 원군을 요청하러 간지, 이미 나흘

이 지났으니, 이제 곧 원군이 도착할 것이다. 그 때까지만 참

으면 이 지옥에서 빠져나갈 수 있다!"

"그래! 우리 힘내자!"

거구의 기사가 스플리터의 말에 뒤이어 크게 소리쳤다. 그는

마물 토벌 선발대의 부단장으로 뽑혔던 얀이라는 힘 중시의

기사다.

스스스슥.

순간 어둠을 뚫고 거대한 무언가가 불쑥 튀어나왔다. 갈색과

검은색의 빛깔을 띈 거대한 존재의 얼굴 부근에서 날카롭고

살기 어린 안광이 쏘아졌다. 기사들은 흠칫하며 뒤로 몸을 피

했다.

파파파팟!

순간 기사들이 서있던 자리에 무언가 두꺼운 줄이 날아들어

바닥을 박살냈다. 잘 살펴보니 지금 나타난 마물의 꼬리인 것

같았다. 스플리터 단장은 심호흡을 크게 하고는 바닥에 꽂아

두었던 횃불을 녀석의 앞으로 던졌다.

켈켈켈켈켈.

순간 횃불의 빛이 기사들을 공격한 마물을 비추었다. 과연 어

떤 기사의 보고대로 그 거대한 녀석은 한 놈이 아니었다. 대부

분의 녀석들이 약간 떨어진 거리를 두고 기사들을 포위한 상

태였고, 한 놈이 기사들을 없애기로 작정을 한 모양이었다.

"이, 이것은… 중상급 마물로 분류되는 베히모스."

스플리터는 탄식에 가까운 말을 내뱉었다. 거대한 포유류를

연상시키는 몸체. 얼굴은 사자와 비슷했고, 일단 네 발로 서있

는 것이 2.5베타에 가까웠다. 또한 전체 길이로 따진다면 거

의 5베타는 될 것만 같았다. 게다가 베히모스의 가죽은 그 두

께만도 0.5베타가 넘어 보통의 무기로는 전혀 상처를 입힐 수

없다. 그 점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연륜 있는 고기사, 스플

리터는 더욱 더 깊은 절망감에 빠져들며 하마터면 손에 든 검

을 놓칠 뻔했다.

"한 녀석으로도 모자라, 이제는 수십 마리인가. 허허. 참 세

상 말세로다. 이런 괴물들이 지상계를 마구 휘젓고 다니니."

"단장님. 이제 어떡해야 합니까? 한 놈도 상대하기 힘든 판

에, 저런 녀석들이 수십 마리나 몰려왔으니 말입니다."

기사대의 일원들은 거의 체념한 듯 중얼거리며, 씁쓸하게 웃

었다. 스플리터도 잠깐 약해진 마음을 다잡고는 몇 일간 고생

했던 기억을 떠올렸다.

"기사대여, 들어라. 우리는 몇 일동안 수 백, 수 천. 수 만에

가까운 마물들 사이를 뚫고 여기까지 도망쳐왔다. 물론 우리

들이 마지막 생존자일 수도 있겠지. 하지만 나는 절대 포기하

지 않겠다. 내가 가진 능력을 모두 동원해서 꼭 살아남을 것이

다. 싸우기 힘들다면 도망쳐라. 일단 사는 것이 목표다!"

스플리터는 그렇게 외쳐놓고서는 떨리는 마음으로 가까이 서

있는 베히모스를 향해 달려나갔다. 어차피 여기 있는 기사들

모두가 도망갈 수는 없을 일. 그는 부하들에게 최소한의 시간

이라도 벌어주겠다는 생각인 것 같았다.

"쳇. 단장님에게만 멋있는 역할을 맡길 수야 없지. 기사들을

들어라! 모두 있는 힘껏 도망쳐야 한다!"

부단장인 얀도 단장의 뜻을 받들어 함께 달려나갔다. 스플리

터는 의외라는 듯 잠시 보좌관을 돌아보았지만, 이내 옅은 미

소와 함께, 베히모스를 향해 손에 들린 검을 힘껏 내질렀다.

---

하하...;; 팔 아프당...;;;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