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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렘마스터-152화 (152/244)

[골렘마스터]  # 클라미디 대륙의 위기[4]

"너는 뭐지?"

아직 시력을 회복하지 못한 그녀가 여전히 눈을 감은 채, 물

었다. 빛과 함께 나타난 존재는 기분 나쁜 존재감을 계속 뿜어

내면서 천천히 다가오는 것 같았다.

"저는 다이티라고 하는 사람이랍니다. 현재 빛의 신, 샤이트

리아를 섬기고 있지요. 물론 현재는 현재 일뿐, 미래를 장담

할 순 없겠지만…."

간신히 눈을 뜬 루카엘은 대담하게 엔젤들의 유배지. 심연으

로 둘러싸인 석회석 동굴에 들어온 자들을 눈에 담았다. 말을

건네고 있는 자는 늙은 노인이었고, 그 노인을 앞세우고 뒤에

서 날카롭게 눈알을 굴리고 있는 자들은 검을 사용하는 자들

로 보였다.

"여기가 어디인 줄 알고나 온 것이냐?"

"당연하지요. 바로 그 때문에 이곳을 찾은 것이랍니다."

다이티는 루카엘과 눈을 마주했다. 코발트로 빛나는 그녀의

눈빛이 다이티의 눈을 파고들며 마음 속까지 꿰뚫을 듯 쏘아

졌지만, 무언가 알 수 없는 기운에 가로 막혀 중간에서 멈춰버

렸다. 루카엘의 얼굴에 묘한 미소와 기대감이 떠올랐다.

"저와 함께 가시겠어요? 저는 엔젤님을 구해드릴 수 있답니

다. 또한 앞날을 보장해드릴 수도 있지요."

다이티 스스로도 자신이 무얼 믿고 이렇게 위대한 천상계 존

재를 대등한 모습으로 대하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전

혀 이런 말이 어색하지 않았다. 엔젤이나 마족 따위도 두렵지

않았다. 마음만 먹으면 다 죽여버리면 되니까. 그런 섬뜩한 기

분이 그의 마음을 가득 채웠지만, 이내 언제 그랬냐는 듯이 그

의 기억에서 사라졌다. 파괴의 충동. 그 뒤의 백지 상태…….

"네가 지닌 그 힘은…, 네가 꿈꾸고 바라는 그것은…. 과연 나

를 무시할 수 있을 정도의 존재로군."

"어떻게 하시겠어요? 저의 제안을 받아들이실 건 가요? 천사

장의 자리에까지 올랐던 위대한 엔젤이여."

루카엘이 이상한 말을 늘어놓으며 기괴한 눈빛을 번뜩였지

만, 다이티는 그저 오랜 권태로 인한 정신 장애라 여기며 되물

었다.

"알고 있어? 지상계 존재만이 이 빛의 사슬을 끊을 수 있다는

얘기."

그녀는 대답대신 그렇게 말했다. 다이트의 표정이 밝아짐과

동시에 뒤쪽에서 시립하고 있던 기사들에게 신호를 보냈다.

기사 한 명이 주군의 시선을 받고는 앞으로 잽싸게 튀어나와

루카엘의 손목과 발목을 휘감고 있는 빛의 사슬을 노렸다.

슈슈슈슉!

순간 붉은 기운이 서린 기사의 장검이 빛의 사슬을 잘라버렸

다. 사슬에 묶여 허공에 떠올라있던 루카엘의 몸이 아래쪽으

로 빠르게 하강했다.

"치잇. 몇 만년만에 다리라는 것을 써보게 되는군."

그녀는 재빨리 지상에 닿기 전에 균형을 잡고 두 발로 착지

를 시도했다. 하지만 오랫동안 허공에 매달려 다리를 사용하

지 않아 금세 적응을 할 수 없는 모양인지, 뒤로 획 넘어져 버

렸다.

"천상계에서 존망 받던 엔젤인 나 루카엘. 이런 꼴마저 당하

는구나."

혼자 스스로를 탓하는 말을 중얼거린 그녀가 간신히 몸을 일

으켰다. 일단 날개를 펴고 그것을 중심으로 균형을 잡으니, 훨

씬 더 수월했다. 다이티는 그녀의 날개가 이미 날개의 개념을

떠난 극상의 것임을 알아보고는 흐뭇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럼 가시지요. 누추하지만, 저의 작은 성으로 안내해드리겠

어요."

다이티가 한쪽 손으로 저 멀리 떨어진 동굴의 출구를 가리켰

다. 하지만 루카엘은 잠시 다른 엔젤들을 바라보다가 무언가

결심을 한 듯, 노인을 돌아보며 부탁 아닌 부탁을 하였다.

"저 싹수없는 꼬마 엔젤들도 함께 갔으면 하는데, 괜찮겠어?"

그녀의 질문의 뜻을 이해한 다른 엔젤들의 얼굴에 순간 존경

의 빛이 떠올랐다.

쿠구구구구구.

드넓게 펼쳐진 대지 한곳에서부터 뿌연 먼지 바람이 피어올

랐다. 지평선을 사이에 두고 붉게 물들어 넘어가는 태양은 하

늘을 붉은 비단으로 수놓았고, 대지는 서서히 암흑에 휩싸여

갔다. 가이트리아를 타고 천천히 밤이 찾아드는 대지를 힘차

게 내달리던 아투는 저 멀리 보이는 엄청난 무리들을 확인하

고는, 한쪽 손을 위로 번쩍 들어올렸다. 그러자 아투를 따르

던 다른 골렘술사들과 와이번 나이트. 그리고 기사단 일원들

과 보병 부대가 일제히 걸음을 멈추고 아투의 명령을 기다렸

다.

"디트. 저기 보이는 게 마물들의 무리 같지?"

아투는 하늘에서 크게 선회를 하며 부대의 주변을 정찰하는

와이번 나이트를 올려다보며 외쳤다.

"아마도 그런 것 같습니다. 하지만 하급 마물들이 주를 이루

고 있습니다. 지금 돌파하여 저 무리부터 흩어버리는 게 좋겠

습니다."

디트는 아투의 이번 구원 부대의 사령관을 맡았음을 염두에

두고는 상관을 대하는 듯이 말했다. 아투는 딱딱한 그의 말에

피식 웃음을 터뜨릴 뻔했지만, 주변 다른 수하들의 시선을 생

각하고는 무표정한 얼굴을 유지하였다.

"이제 어떡하실 생각이십니까? 저 하급 마물 무리들부터 공격

할 건가요?"

메션 왕국에서 파견되어, 제국의 황제의 부탁으로 구원군에

참가하게된 아이언 골렘술사가 의견을 물어왔다. 그 또한 아

투처럼 골렘의 어깨에 올라타 있었는데, 가이트리아보다는 약

간 신장이 작은 골렘이어서 아투가 내려다보는 처지였다.

"일단 마물들은 제국의 입장으로도 상당한 골칫거리인 존재

이니, 지금 우리들이 먼저 해결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입

니다. 공격하도록 합시다."

아투가 확실한 말을 전하자, 아이언 골렘술사가 뒤를 돌아보

며 함께 메션 왕국에서 건너온 동료들을 향해 눈짓했다. 사실

그들은 제국의 사람들이 아니라, 단독 행동을 해도 괜찮은 존

재들이었지만, 지금은 황제의 말이 있어 아투의 의견을 존중

해주는 모습이었다.

"자, 기사들이여. 보병들을 정돈시켜라. 지금 저기 보이는 하

급 마족들의 한 무리를 공격하도록 하겠다!"

아투가 가이트리아의 어깨에서 자리를 확실히 잡고는 한쪽

손을 크게 들어올렸다. 말을 타고 보병 부대를 이끌던 기사들

이 그의 신호에 따라 병력을 배치하고는 공격 신호를 기다렸

다.

"좋아! 신의 가호가 함께 하기를! 공격하라!"

번쩍 들어올려졌던 그의 손이 마물의 무리들 쪽으로 떨어졌

다. 동시에 가이트리아를 움직여 그곳으로 가장 먼저 달려나

가기 시작했다.

우아아아아아아!

보병 부대도 기사들의 움직임을 쫓아 힘찬 기세로 돌격하였

다. 아투의 뒤를 쫓고 있는 골렘술사들과 각종 골렘들의 기세

도 대지를 뒤흔들 정도로 대단했다. 땅거미가 짙게 깔린 대지

위로 가라앉았던 먼지들이 다시 피어올라 시야가 뿌옇게 흐려

졌다.

제일 먼저 하급 마물들 무리들에게 접근하여 공격을 퍼부은

것은, 당연 와이번 나이트들이었다. 높은 상공에서 쏟아지는

그들의 강궁이 바닥을 기고 있는 하급 마물들의 머리 위로 떨

어져 내렸다.

슈슈슈슈슈슉!

꾸에에에엑!

순식간에 한쪽의 상당수 마물이 비명을 지르며 고슴도치가

되어 쓰러졌다. 하지만 그 대부분이 엔트 자이언트들이었기

때문에 큰 소득은 없다고 할 수 있었다.

쿠구구구궁!

이윽고 아투와 그를 따르는 골렘술사들. 그리고 기사들과 보

병 부대가 마물들 한쪽을 파고들기 시작했다. 가이트리아의

거대한 주먹이 한쪽에서 꾸물대던 엔트 자이언트 무리 속으

로 날아가, 녀석들을 박살냈다. 다른 골렘술사들도 대범한 공

격으로 마물들을 피해 없이 잡아냈다.

하루루루루룩!

그때였다. 갑자기 마물들의 무리 속에서 불쑥 도끼가 튀어나

왔다.

"저, 저게 뭐지?"

아투는 골렘의 몸을 타고 기어올라오는 엔트 자어언트들을

간신히 떨쳐내며 그 도끼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도끼에 뒤이

어 거대한 새의 몸통이 불쑥 튀어나와 구원 부대를 향해 달려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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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 희안한 새도 다 있군요... 쿨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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