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렘마스터] # 클라미디 대륙의 위기[2]
"아닙니다. 지금 당장 명을 받들어 떠나도록 하겠습니다. 꼭
주군의 은혜에 힘입어 명령을 반드시 수행하고 돌아오겠습니
다."
진심으로 고맙게 여긴 섀도우 나이트의 허리가 90도 각도로
굽혀졌다. 타크니스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손을 휘이 저으
면서 막 돌아서는 부하의 뒤통수에다 대고 말하였다.
"아직."
"왜 그러십니까?"
"너에게 내 개인적으로 줄 것이 하나 있다."
무언가 줄 것이 있다는 말에 귀가 솔깃해진 섀도우 나이트가
조심스럽게 뒤를 돌아보았다.
"자, 받아라."
타크니스는 무언가 작은 물체를 손에 쥐고 있다가 부하에게
던져주었다. 은빛 물체가 허공에 호선을 그으며 날아가, 섀도
우 나이트의 손바닥에 잡혔다. 곧 손바닥을 펴 물건을 확인한
그의 눈빛이 밝게 빛났다.
"이, 이것은…."
"그것이라면 상급 마물 중에서는 엄청난 존재로 분류되는 켈
베로스를 자유자재로 불러낼 수 있을 것이다. 물론 한 마리에
국한되지만, 많은 도움이 될 터이니, 가져가거라."
타크니스는 그렇게 말하면서 가볍게 손을 펼쳤다. 그러자 검
은 망토가 순간적으로 사방으로 펴져 나가며 그의 몸을 감쌌
고, 일순 망토가 사라지는가 싶더니 마왕의 모습도 함께 사라
져버렸다.
"켈베로스의 구슬이라…. 감사하게 받겠습니다. 주군. 그럼
명을 수행하여 꼭 좋은 소식과 함께 돌아오도록 하겠습니다."
섀도우 나이트는 은빛 구슬 속에 박혀있는 뜨거운 불길을 바
라보다가 품속에 잘 갈무리했다. 마지막으로 예를 갖추며 보
이지 않는 마왕에게 인사를 한 그는, 흑검을 검집에 넣어 허리
에 차고는 스르르 미끄러지듯 마왕의 집무실을 나섰다.
* * *
몇 일전부터 잔뜩 흐렸던 날씨가 오늘은 이상하게도 화창하
게 풀려 밝은 햇살이 대지를 비추었다. 매섭게 몰아치던 사나
운 바람도 이제는 잔잔한 온풍이 되어 불어왔고, 파릇파릇한
풀 냄새가 실려와 마음을 진정시켰다. 더구나 함께 상승한 온
도 때문인지, 평소와는 달리 성안의 방들이 모두 덥게 느껴졌
다. 미스티의 배려로 전망 좋은 방을 배정 받은 아투는 지금
방안에서 휴식을 취하면서 땀을 삐질 삐질 흘리는 상태였다.
"후아! 정말 덥다!"
아투는 소파에서 땀을 식히다가 도저히 방안의 열기를 참을
수 없어 창가로 다가가 있는 힘껏 창문을 열었다. 순간 맑은
공기와 시원한 바람이 방안으로 스며들며 아투의 젖은 머리칼
을 훑고 지나갔다. 아투는 살짝 고개를 떨구어 바로 밑쪽에 대
기 중인 가이트리아에게 가볍게 손을 흔들어준 뒤, 다시 자리
로 돌아와 편히 몸을 맡겼다.
"그때는 정말 죽는 줄만 알았는데."
아투는 가슴에 손을 얹으며 그 때, 다크 워리어의 뇌전이 가
슴에 작렬했을 때를 떠올렸다. 지금 생각해도 정말 아찔했다.
만약 그 검은 금속이 없었더라면 그는 지금…. 아투는 오랜만
에 떠오르는 드워프 마을의 촌장님 부부를 생각하며 추억에
잠긴 미소를 지었다.
"아, 그러고 보니…."
아투는 오늘 아침 미스티에게서 전해들은 중대한 얘기를 새
삼 떠올리며 좋은 기분이 싹 사라짐을 느꼈다. 마왕과 마족,
다이티와 관련된 상당히 꼬이고 꼬여버린 얘기들. 일단 마왕
이 다이티를 속이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고 했고, 또한 다이티
는 잘못된 정보를 마왕에게 얻어 마족을 도와주는 허수아비
노릇이나 하고 있음이 확실시된다고 했다. 그것도 모르고 자
신의 야망을 위해 위험을 무릎 쓰고 제물을 모으는 다이티….
왠지 안됐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일단 대륙의 평화가 우선이
었다. 어떻게든 다이티를 만나 그런 마왕의 속셈을 알리는 게
급선무였고, 제물을 모으지 못하도록 막아야했다. 그 다음 과
제가 바로 마족의 일이다.
"일단 파괴 전설의 내용을 화이엘이 빨리 번역을 해와야 할
텐데…."
아투는 갑갑한 마음에 소파를 침대 삼에 벌러덩 드러누웠다.
하얀 벽지가 발라진 천장이 눈에 가득 들어왔다.
휙.
그때 갑자기 뭔가가 그의 시야를 가렸다. 금빛 물결이라고 착
각할 정도로 풍성한 그것이 아투의 눈을 가리며 위쪽에서 흘
러내렸다. 퍼뜩 놀란 그가 흠칫하여 몸을 일으키다가, 위에서
내려다보고 있던 누군가와 이마를 부딪혔다.
퍽.
"아야!"
"아아아악. 누, 누구십니까?"
상당한 충격에 불덩이가 된 이마를 부여잡은 아투가 간신히
눈을 떠서 방안의 존재를 확인했다. 가디언 나이트라는 위치
를 생각해 일부러 형식적인 말투를 사용한 그였다.
"아아. 아투. 좀 조심해서 일어날 수 없어요? 그리고 무슨 이
마가 그렇게 단단해요?"
어디선가 많이 들어본 말투와 목소리. 금빛 머리칼을 아름답
게 길러 내린 소녀. 하지만 가녀린 겉모습과는 다르게 엄청난
직위. 제국의 황제라는 막중한 책임감이 따르는 자리에 오른
존재. 미스티였다. 아투는 일단 반가운 마음에 그녀에게 사과
부터 했다.
"흥! 아침에 분명 다시 올 거라고 말했었는데, 벌써 잊은 거예
요?"
미스티가 토라진 모양이다. 고개를 획 돌리니 찬바람이 일었
다.
"아, 그게 사실은 말이지. 아침에 미스티가 해준 이야기. 그
마족이랑 다이티에 관한 일을 생각하느라, 머리가 복잡해져
서 깜빡한 거야. 그 정도는 미스티가 이해해줘야 하지 않아?"
"으음…. 후훗. 뭐 착한 내가 참아야겠죠. 뭐. 항상 그랬잖아
요? 우리 둘 사인…."
우리 둘 사이…. 그런 다정한 말을 사용하는데 익숙하지 않
은 모양일까. 미스티의 얼굴이 딸기처럼 빨개졌다. 아투는 용
기를 내서 그녀의 옆으로 다가가 어깨에 손을 둘렀다.
"요즘 제국의 형세는 어때? 빨리 안정권을 잡아야 다른 국가
에서 이곳 영토를 넘보지 않을 텐데."
"글쎄요. 타 국가에서 지금 불안정한 제국을 노리고 있는 것
은 거의 확실하지만, 다른 곳들 역시 요즘 출몰하고 있는 마물
들의 득세 현상 때문에 그리 녹녹치가 않을 거예요. 그동안 우
리 제국은 내부적 안정을 꽤해야 할 것 같아요."
"뭐 그런 점은 시간이 해결해줄 지도 모르지. 어쨌든 나는 다
이티와 마족과 관련된 그 일에만 전념하고 싶어."
아투는 그렇게 말하면서 살며시 미스티의 매끈한 머릿결을
따라 손을 쓸어 내렸다. 그윽한 표정을 지은 미스티는 고개를
돌려 아투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았다. 전에 같았으면 상당히
어색한 느낌이 들었을 테지만, 이제 두 사람 모두 이런 모습
자체가 익숙해진 모양인지, 태연하게 행동했다.
탁탁탁탁탁.
그때, 누군가 달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조용한 복도에 발자
국 소리가 요란했다. 점점 더 커지던 발자국 소리는 이내 아투
의 방안으로 이어지면서 끝이 났다.
"화, 황제 폐하. 큰일났습니다."
거칠게 숨을 몰아쉬는 존재. 파란색의 머리를 짧게 잘라 미소
년 같은 매력이 풍기는 젊은 여성. 무례하게 가디언 나이트의
방으로 뛰어들어온, 무장차림의 기사를 확인한 미스티의 얼굴
이 묘하게 변했다. 바로 그녀 자신을 수행함과 동시에, 시중
을 들고 있는 칼린이라는 여성 기사였기 때문이다. 항상 과묵
한 모습을 보이던 그녀의 얼굴에 다급함이 잔뜩 묻어나는 것
을 보고 미스티가 입을 열었다.
"무슨 일이죠?"
"갑자기 급증하여 득세하고 있는 마물을 상대하기 위해 영토
의 국경 지대로 향했던 기사단과 성직자들이 거의 전멸 상태
에 이르고, 남은 사람들도 모두 마물들에게 둘러싸여 고립이
된 모양입니다. 지금 간신히 지원을 요청하기 위해, 또 이 엄
청난 사실을 알리기 위해 목숨을 걸고 빠져나와 황제 폐하를
뵙겠다고 하는 기사의 말에 의하면 지방 도시의 대부분이 마
물들의 손에 넘어간 상태라고 했습니다."
"폐하. 그렇다면 정말 큰일입니다. 어서 그 기사부터 만나보
십시오."
아투는 금세 다른 존재를 의식하고는 미스티에게 대하는 태
도를 형식적으로 바꾸었다. 미스티가 슬쩍 그를 돌아보며 미
소짓더니 이내 딱딱한 표정으로 수행 기사 칼린을 앞세우고
집무실로 향했다.
집무실에는 이미 소식을 듣고 급히 모인 제국의 중요 인사들
이 열 띈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괴팍한 노인 내의 얼굴 표정
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는 궁중 마법사 실피스. 제국의 상당한
권력을 쥐고 있지만, 이제 황제를 앞세움으로 해서 어느 정도
황권과 귀족의 권한을 일치시켰다는 평판을 받고 있는 루미
니 공작과 레브로스 공작. 황실근위대 대장인 프란트. 그들의
시선이 황제의 집무실로 불쑥 들어오는 존재들에게 집중되어
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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꺄아~~
열뛰미 업함쉐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