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골렘마스터-148화 (148/244)

[골렘마스터]  # 파괴의 신, 디스트로이어[5]

"나도 그래. 오랜 세월을 살아온 나지만, 이런 금속은 정말 처

음이야. 강도를 보아하니, 지금까지 알려진 최강 금속보다도

훨씬 좋은 것 같고 마법 전달 효율도 가장 높은 것 같아. 만약

이런 금속을 많이 확보할 수만 있다면 현재의 마법 과학의 수

준을 엄청나게 끌어올릴 수 있을 지도 모르지."

실피스가 금속을 보며 한 마디 하자, 뒤이어 화이엘이 금속

을 본 소감을 말하였다. 미스티는 그 두 사람의 의견을 종합하

여 정리했다.

"그럼 일단 이 금속은 다른 마법사들과 마법 과학자들에게 맡

겨야할 것 같은데, 화이엘과 실피스의 생각은 어떠하나요?"

"그럴 필요까진 없습니다. 제가 알아서 연구해보도록 하지

요. 빠른 시일 내에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언젠가 고대

서적에서 이러한 금속과 비슷한 성질의 물건 내용을 잠깐 본

것 같군요."

"그럼 수고스럽지만, 실피스가 좀 맡아주세요."

미스티는 금속을 슬쩍 그에게 밀어주었다. 실피스는 알겠다

는 듯이 고개를 끄덕인 뒤, 조심스럽게 금속을 챙겨 품속에 넣

었다.

"일단 아투가 무사하니,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을 것 같은데,

도대체 마족들의 속셈은 뭘까? 왜 파괴의 신, 디스트로이어라

는 알려지지도 않은 존재의 전설에 관한 서적을 훔쳐간 것일

까? 도대체 알 수가 없어."

화이엘은 태고의 고신성문자로 쓰여진 파괴 전설의 사본을

만지작거리며 불안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설마 파괴의 신

을 부활시키려 하는 것인가? 하지만 왜 그런 서적을 다이티라

는 인간에게 넘겨버렸을까.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미스

티도 상당히 고민스러운 표정을 지었지만, 뭐라 딱히 말을 하

지 못했고, 실피스도 이마를 찌푸리며 깊은 생각에 빠져버렸

다.

"으음. 일단 파괴의 신에 대한 전설…. 이것의 진실 여부부터

파악해야 될 듯 싶습니다. 이건 아무래도 화이엘 엔젤님의 힘

을 빌려야 할 듯 싶은데, 어떻게 부탁을 좀 드려도 되겠습니

까?"

실피스는 어두운 표정을 짓고 있는 엔젤을 바라보며 조심스

럽게 물었다. 다행히 그녀는 그 정도라면 괜찮다는 듯이 고개

를 끄덕여 답했다. 한 가지 부분이 해결되자, 실피스가 다시

말을 이었다.

"이 전설에 관한 진실 여부가 밝혀져서 만약 사실인 것이 판

명된다면, 일단 전설에 대한 해석이 필요합니다. 고신성문자

를 알고 있는 존재는 흔치 않습니다. 대현자께서 이렇게 그대

로 써주신 것으로 미뤄볼 때, 그 분께서도 해석이 불가능하다

는 얘기가 됩니다. 현자의 돌을 가지고 계신 그 분까지 불가능

하다면, 역시 전에 오셨던 그라디우스님이나, 여기 화이엘 엔

젤님께 부탁을 드려야 한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잠깐. 그 부분은 일단 내버려두죠. 일단 마족이 과연 그 서적

을 다이티에게 넘겼느냐가 중요한 것 같네요."

미스티는 나름대로의 판단으로 궁중 마법사, 실피스의 말을

가로막았다. 잠깐 머쓱한 표정을 지어 보인 그는 쇼파에 몸을

깊숙이 맡기며 황제 폐하가 의견을 제시할 시간을 주었다.

"으음. 내가 생각하기엔 이래요. 분명 마족은 다이티에게 본

그 서적을 넘기진 않았을 거예요. 다이티가 신이 되기 위한 의

식에 필요한 물품 중, 하나인 성수를 찾으러 부하들을 보냈

고, 금단의 지역에 그 부하들이 나타났어요. 그렇다면 마왕에

게 건네 받은 책의 내용을 이해하고 있다는 소리가 되죠. 만

약 이 고신성문자로 이루어진 전설이 적힌 책을 그대로 받았

다면, 그로서도 시간이 상당히 걸렸을 거예요. 고신성문자는

그렇게 간단히 해석되는 문자가 아니라고 알고 있거든요. 이

런 점으로 미루어본다면, 분명 마왕은 다른 내용의 서적을 교

황에게 넘긴 것 같은데…, 두 분의 생각은 어때요?"

"나도 그렇게 생각해. 일단 다이티는 신이 되길 원했어. 물론

황당할 정도의 동기로 그런 마음을 먹었지만, 일단 신이 되는

방법을 알고 싶어했지. 그런데 만약 마왕이 파괴 전설의 서적

을 넘겼다면, 절대로 받지 않았을 거야. 오히려 마족을 불신하

고, 그들과 대립하게 되었겠지. 하지만 지금의 상황을 봐. 다

이티는 이미 신이 되기 위한 의식을 행하기 위해 필요한 물품

과 제물을 모으기 시작했어. 마왕이 다이티를 속여 무언가를

꾸미고 있다는 소리가 됨과 동시에, 다이티는 지금 마왕의 손

에서 놀아나고 있는 불쌍한 인간이라는 해석이 내려지지."

화이엘은 황제의 말에 보충설명을 덧붙였다. 일단 확실한 것

이 정해지긴 했지만, 일단 마왕과 그 마족들의 속셈을 전혀

알 수가 없었다. 설마 파괴의 신이라도 부활시킬 속셈일까? 그

래서 다이티를 속이면서 그 제물들을 모으게 한 뒤에, 모든 것

을 가로채어 지상계에 파괴의 신을 강림시킬 생각일까? 물론

그녀 또한 파괴의 신에 대해서 그다지 아는 것은 없었다. 그

냥 신들에게 지나가는 말로 들은 자그마한 몇 부분만이 떠오

를 뿐이었다.

"흐음. 일단 이것 또한 해석이 중요하게 되겠습니다. 저로서

도 해석이 불가능하니…. 흐음. 큰일이군요."

실피스는 두꺼운 책 가득히 적혀 있는 고신성문자를 찬찬히

살펴보다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냥 글씨가 꼬부라져

있다는 느낌만 들 뿐, 전혀 무슨 내용인지를 알아볼 수 없었

다. 고대 마도 제국의 문자는 해박하다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잘 알고 있는 그였지만, 역시 태초의 문자까지 알 수는 없었

던 것이다.

"뭐 그 정도는 내가 알아서 할 수 있을 지도 몰라. 물론 나 또

한 상당한 노력이 따르겠지만, 일단 대충 고신성문자에 대한

체계가 잡혀 있으니, 시간만 허락한다면 해석을 할 수 있을 거

야."

화이엘이 웬일인지 머뭇거림 없이 승낙을 하는 모습을 보였

다. 미스티와 실피스는 서로의 얼굴을 돌아보며, 어깨를 으쓱

하였지만, 화이엘은 다른 곳으로 시선을 향하고 있어 보지 못

했다.

"일단 이 사본은 내게 맡겨둬. 지금은 일단 신의 부름을 받고

천상계로 가봐야 할 것 같아서 말이야. 대신 몇 일 안으로 내

가 이곳에 다시 돌아올 때까지 해석을 마쳐서 올 테니까, 제국

의 일이나 잘 해결하고 있으라고."

화이엘은 그렇게 간단히 말을 마치면서 소파에서 몸을 일으

켰다. 그리고는 누가 뭐라고 말을 걸 새도 없이, 테이블 위에

놓여있던 파괴 전설의 사본을 품속으로 챙겨 넣고는, 커다란

창가 쪽으로 다가갔다.

"그럼 난 갔다 올 테니까, 제국을 일단 안정화시키는 것에 대

해 논의나 좀 해보도록 하던지. 마물의 급증으로 인해 민심이

흔들릴 수도 있잖아. 그럼 몇 일 후에 보자."

창틀에 발을 올리고 가볍게 인사를 한 그녀의 등에서 새하얀

날개가 뻗어 나왔다. 하지만 이번엔 전과는 달리 엄청나게 눈

부신 백의 날개가 모두 세 쌍이나 있었다. 천사는 날개의 수

로 그 서열이 정해진다고 하더니, 과연 엔젤 나이트의 수장이

라는 무거운 자리에 있는 존재다운 자태였다.

후우우웅.

그녀가 날개를 한번 펄럭이자, 백색이 깃털이 사방으로 날려

집무실 안으로 떨어졌다. 잠깐 무수히 많은 깃털에 의해 가려

졌던 시야가 확보된 미스티와 실피스의 눈에 들어온 것은, 우

중충한 날씨만 내다보이는 커다란 창문밖엔 없었다.

화이엘과 실피스와 함께 간단한 논의를 마친 미스티는 일단

실피스를 그의 방으로 돌려보낸 뒤, 조심스럽게 집무실을 빠

져나왔다. 이제는 황제라는 막중한 직책이 따르니 만큼, 주변

의 감시도 심해져 개인적인 행동을 거의 할 수 없었지만, 이번

만큼은 모든 위험을 감수하면서라도 꼭 가봐야 할 곳이 있었

다. 물론 성 바깥까지 나갈 필요도 없는 일이었다. 다른 사람

의 눈에 띄어도 간단히 얼버무리면 된다고 생각한 미스티의

발걸음이 저절로 가벼워졌다.

그녀는 천천히 주변을 살피면서 밝은 표정으로 붉은 융단이

깔린 복도를 걸었다. 가끔 복도를 지나가는 왕궁의 사람들이

보였지만, 황제인 그녀가 태연히 인사를 건네니 황송한 표정

을 지으며 급히 자리를 피할 뿐, 그녀의 행동을 탓하는 사람

은 없었다. 사실 지금까지 그녀의 행동에 제재를 가했던 사람

도 궁중 마법사인 실피스와 루미니 공작, 레브로스 공작을 제

외하고는 거의 없었다. 그들의 눈에만 띄지 않는다면 별로 문

제될 것도 없었던 것이다.

"후훗. 정말 아투는 괜찮을까?"

그녀는 슬쩍 상처를 입고 왕성으로 돌아온 아투를 떠올리고

는 걱정스런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점점 더 그녀의 발걸음이

빨라져, 이미 그녀는 아투가 묵고 있는 가디언 나이트의 방까

지 도달해 있었다. 흰색의 밋밋한 문이 달린 상급으로 분류되

는 디자인의 방이었는데, 특별히 미스티의 권한으로 아투에

게 그 방을 내어준 것이었다.

"역시 노크를 해야 할까?"

미스티는 급히 방문을 열어보려다가, 이내 마음을 진정시키

고는 살짝 손등으로 문을 두드렸다. 하지만 문을 두드리고 한

참이 지났지만, 안에서 반응이 없었다. 혹시 아투가 밖으로 나

간 걸까? 미스티는 무의식적으로 문고리를 돌리고 슬쩍 문을

열었다.

"아투……. 안에 있어요?"

그녀가 살짝 얼굴을 들이밀고 방안을 살폈다. 창문이 열려있

는 모양인지, 사나운 바람이 몰아치는 소리가 크게 들려왔다.

그러고 보니, 방 안쪽에 나뭇잎도 많이 떨어져 있었다.

"아투. 들어갈게요."

그녀는 천천히 방안으로 들어섰다. 확실히 창문이 활짝 열려

져, 그다지 좋지 않은 바깥 공기가 실내를 차갑게 만들어 놓

은 것 같았다. 미스티는 일단 아투가 침대에 누워 있는지도 확

인하지 않고, 창가로 다가가 바깥으로 활짝 열린 창문의 문고

리를 잡아당겼다.

『내가 잠깐 닫아주려 했지만, 워낙에 창문이 약해서 내가 건

드려 하니까 깨질 것만 같더군. 날씨가 사나웠는데, 다행히 미

스티가 와서 안심이다.』

순간, 의식을 파고드는 낮게 깔린 음성에 퍼뜩 놀란 미스티

가 주변을 살폈다. 하지만 방안에는 아무도 없는 것 같았고,

이 방은 성에서도 3층 높이에 자리잡은 방이라서 창 밖을 내다

봐도 보이는 건 시커먼 하늘과 완벽히 재건된 도시의 풍경밖

엔 없었다. 미스티의 얼굴이 순간적으로 질렸다.

『여기다. 여기.』

다시 한번 들려오는 소리에 그녀의 시선이 약간 아래쪽으로

내려갔다. 그러자 눈을 크게 뜨고 위를 쳐다보고 있는 골렘과

곧 눈이 맞았다. 미스티는 잠깐 화들짝 놀라 뒤로 물러섰지

만, 이내 아투의 우드 골렘인 가이트리아라는 것을 확인하고

는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거기 서있는 줄은 몰랐어. 정말 미안. 어쨌든 창문은 좀 닫을

게."

미스티는 골렘에게까지 쩔쩔 매며 창문을 닫았다. 차갑게 들

이닥치던 바람도, 이제는 그쳤다. 미스티는 일단 방을 둘러보

며 아투가 있는지 없는지를 살펴보았다.

"하아……."

어디선가, 고른 숨소리가 들려왔다. 미스티는 장난기가 가득

한 얼굴을 하고는 뭔가 볼록 튀어나온 침대 옆으로 다가가 깊

은 잠에 빠진 소년의 얼굴을 확인했다. 아기처럼 평온한 얼굴

을 하고 있는 그를 보고 있자니, 화이엘의 얼굴이 괜히 달아올

랐다.

"흐으으응…."

그가 몸을 뒤척였다. 미스티는 그가 깨지 않게 하기 위해 조

심스럽게 다가가서는 반쯤 걷어 차버린 이불을 끌어올려 가슴

부분까지 덮어주었다. 치료를 위해 상반신의 옷이 벗겨져 있

었는데, 잠깐 이불을 덮어주는 와중에서도 상처 하나 없이 깨

끗함을 알 수 있었다. 과연 그 검은 금속이 뇌전의 기운을 완

벽히 차단시켜주긴 한 모양이었다.

"후훗. 다행이야. 그래도 아투가 무사하니까."

그녀는 아투를 내려다보며 사랑스런 표정을 지었다. 그러다

가 문뜩 아기 같은 얼굴을 하고 있는 그의 입술에 시선이 멈췄

다. 장난기가 가득 담긴 표정을 지어 보인 그녀는 살짝 침대

에 걸터앉아서는 그의 입술로 그녀 자신의 부드러운 입술을

포개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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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악! 입술 도난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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